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1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12화(313/412)
#312. 노력하는 천재
“넌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여.”
“형, 아무리 그래도 우리끼리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과격한 발언은 좀…….”
“뭐여, 넌 우리 팀 아니여? 여기 연예인분 계시다고 갑자기 수혁이 편 들겠다는겨?”
“아니, 그래도 연말에 한국 가면 소개팅까지 시켜주신다는 분 앞에서 남편 될 분 험담을 하는 건 좀 예의가 아니잖아. 안 그래요, 제수 씨?”
“어멋, 남편 될 분이요? 제수 씨?”
“엇, 혹시 제가 설레발 친 건가요? 혹시나 그런 거면 정말 죄…….”
“아뇨, 아뇨, 그럴 리가. 아차, 내 정신 좀 봐. 갈비찜을 안 내왔네. 잠시만요, 금방 가져올게요!”
“흠.”
에이스 류한결이 등판한 에인절스와 하야시 렌타로를 내세운 매리너스 간의 시즌 8차전은 솔로 홈런을 비롯 안타 3개와 타점 2개를 기록한 한수혁의 활약에 힘입어 시애틀 매리너스의 4 대 2, 두 점 차 승리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후 나는 약속대로 류한결과 이찬호 선배를 차에 태우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민예린이 말하길 ‘한수혁도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붙은 저녁식사를 위해 말이다.
식사가 시작된 지 벌써 30분이 지났건만, 나는 그저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내게 승부를 걸다 홈런을 허용한 류한결 선배는 30분 내내 툴툴거리면서 계속 음식을 해치웠고, 오늘 1타점 2루타를 날리며 체면치레를 한 이찬호 선배는 예린이와 꿍짝이 맞아 신나게 떠들어댔다.
어쨌든 예린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우리 집에 초대하고,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야, 그런데 너 대체 시애틀한테 얼마를 받은 거야?”
“아시잖아요. 계약금이랑 연봉 다 합쳐봐야 올해 형이 받을 인센티브보다도 적다는 거.”
“그런데 대체 무슨 돈으로 이런 집을… 아니, 그리고 기왕 이렇게 큰 집을 샀으면 좀 꾸미든지 하지 이게 뭐냐? 뭐 이렇게 다 텅텅 비었어?”
“그러게. 이렇게 텅 비게 내버려둘 거면 그냥 작은 집을 샀어도…….”
식사를 마친 후 빅리그에서 함께 뛰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인 두 선배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은 채 우리 집 탐색을 시작했다.
뭐, 저 두 사람이 집 내부 사진을 찍어 SNS 같은 데 올릴 일도 없을 테니 걱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었다.
사실 예전 같으면 그런 것조차 전혀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얼마 전에 우리 집 거실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파파라치 짓을 하던 놈이 잡힌 후에는 약간 민감한 상태다.
무엇보다 우리 집에는 구경할 거리라는 게 없다.
집이 좀 과하게 넓은 것을 제외하면, 생필품 외에는 아무것도 갖춰놓은 게 없으니까.
최근에는 예린이가 슬쩍 슬쩍 집 여기저기를 꾸미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음… 뭐랄까, 기분이 좀 이상해서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왠지 예린이의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달까.
“수혁아, 그런데 여기 지하는 뭐냐? 한번 들어가 봐도 돼?”
“네, 뭐 별 거 없어요.”
“그래? 그럼 어디… 헉?”
“야, 한수혁, 이거 뭐야? 너 여기 뭘 만들어놓은 거야?”
“그냥 개인 연습실?”
“허어… 너 설마 지하에 이거 만들려고 일부러 넓은 집을 산 거야?”
“네, 사실 집에 들어오면 잠 잘 때 말고는 거의 지하에만 있으니까요.”
“미친, 그래서 지난번에 너 파파라치 컷 터졌을 때도 집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거구나.”
두 사람이 놀란 건 내가 지하공간에 만들어놓은 개인 연습실 때문이었다.
내가 이 집을 고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본래 와인저장고로 쓰였다는 거대한 지하 공간, 저택 1층보다 오히려 지하가 더 넓은 특이한 집 구조 때문에 필요 이상의 거액을 주고 이 집을 사들인 것이다.
어지간한 프로구단 실내 훈련장 못지않은 시설을 갖춘 내 연습실을 돌아본 류한결 선배가 물었다.
“수혁아.”
“네?”
“그냥 구단에서 훈련하면 되잖여. 굳이 집에서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불편해서요. 집에 훈련시설 있으면 편한 게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뭔가 생각나면 바로 내려와서 수정할 수 있거든요.”
내 말에 류한결과 이찬호 선배의 입이 갑자기 닫혔다.
뭔가 생각을 하는 것 같길래 나도 굳이 말을 시키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와 훈련장을 번갈아 바라보던 두 사람은 예린이가 내온 후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곧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너무 많이 먹어 속이 불편한 모양이다.
“저럴 줄 알았어. 어쩐지 과식하는 거 같더라.”
“오빠.”
“음?”
“오빠는 예리한 거 같으면서 이상하게 둔감할 때가 있어요.”
“뭔 소리야?”
“아뇨, 그건 됐고… 그보다 오늘 세 분이 식사하는 모습은 제 SNS에 올릴게요. 그래도 되죠?”
“그거야 뭐 마음대로. 근데 진짜 뭐야, 내가 뭐가 둔감…….”
모르겠다.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을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오랜 시간 그들과 동떨어진 생활을 해온 듯하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지.
자꾸만 도망가는 양키스와 화이트삭스 놈들을 쫓아가려면 조금 더 분발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마지막 타석에서 스윙이 아무래도 영…….
“예린아, 그럼 나 밑에 내려가서 연습 좀 해야 할 거 같으니까 설거지는 일단 그냥 두고 집에 가. 길 어두우니까 직접 운전하지 말고, 매니저님 꼭 부르고. 알았지?”
* * *
세계의 중심은 미국이며, 그 미국의 경제와 문화, 패션, 그리고 야구의 중심지는 바로 뉴욕이라고 믿는 수많은 뉴요커들.
지난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뉴욕 양키스를 응원하는 뉴요커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바로 한수혁이었다.
다른 팀 선수인 그를 응원해서가 아니다.
그 어떤 선수라 해도 돈만 있으면 무조건 데려올 수 있다 주장하는 자신들의 돈 많은 구단주가 이번에도 한수혁을 데려오지 않을까, 그런 헛된 기대감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트레이드 마감 기한이 지나며 그들의 기대가 전혀 헛된 것임이 밝혀졌지만,
어쨌든 한수혁을 데려오는 것을 포기한 양키스 팬들은 이제 자신들의 팀을 대표하는 두 명의 스타를 앞세워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투수 쪽에서는 밀워키로부터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데려온 젊은 에이스 샤킬 레너드가 그랬고, 타자 쪽에서는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주장인 루카스 앤더슨이 바로 그들이 내세운 한수혁의 라이벌이었다.
따아아악!
“Fuck!”
– 아, 아쉽습니다! 이건 정말 아쉽네요. 루카스 앤더슨이 친 큰 타구가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히고 맙니다!
– 이것만 넘어갔으면 마흔 번째 홈런이 되었을 텐데요. 아, 양키스의 캡틴이 분한 표정으로 펜스를 노려봅니다.
지난 시즌까지 호타 준족의 대명사였던 루카스 앤더슨은 올 시즌 부상 위험이 큰 도루를 포기하는 대신 장타를 선택했다.
그 결과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까지 타율 0.304, 출루율 0.384, 장타율 0.655, 홈런 33개 70타점이라는 데뷔 이래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고, 이후 7월 잔여 경기 동안 6개의 홈런을 추가하며 40홈런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본래대로라면 리그 MVP를 노려봐도 좋을 그런 성적,
하지만 아메리칸 리그에는 그가 있었다.
타자로서, 루카스가 감히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한수혁 말이다.
타율에서는 1할 이상, 홈런 숫자에서는 10개 이상 차이가 벌어진 상황.
양키스 팬들이 만들어낸 한수혁과의 라이벌 구도는 루카스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 뿐이었다.
한편, 한수혁으로 인해 부담을 받고 있는 건 루카스뿐만이 아니었다.
슈웅
파앙
“스윙! 아웃”!
“좋았어!”
– 대단합니다! 샤킬 레너드가 세 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6회말 위기를 스스로 탈출합니다!
– 역시, 뉴욕의 자랑, 양키스의 심장다운 활약입니다. 샤킬 레너드 선수, 팬들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네요.
– 하반기 들어 구속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퍼포먼스는 오히려 더욱 좋아지고 있죠?
– 맞습니다. 현 시점에서 한수혁과 사이 영을 놓고 겨룰 유일한 선수라는 평을 받는 게 바로 샤킬 레너드죠. 정말 좋은 투수를 데려왔어요.
올 시즌 중반 밀워키에서 데려온 27세의 파이어볼러 샤킬 레너드는 전 소속팀에서의 기록을 합산하면 8월초 현재 시즌 12승, 평균자책점 2.65이라는 아주 좋은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대단한 성적이다. 한수혁만 아니었다면 아메리칸 리그 최고 투수 자리를 노려봐도 좋을 그런 성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투수 한수혁이 기록한 시즌 15승, 평균자책점 0.49라는 찬란한 업적 앞에 샤킬 레너드는 감히 명함조차 내밀 수 없었다. 한수혁은 고사하고 그의 팀메이트인 라이언 티보우보다도 못한 것이 샤킬의 현주소였다.
그럼에도 뉴욕 팬들, 그리고 그들의 민심을 대변하는 지역 언론들의 논조는 한결같았다.
[2030시즌 아메리칸 리그 최고 투수는? 샤킬 레너드와 한수혁 간의 2파전] [한수혁의 홈런포가 주춤하는 사이 턱 밑까지 쫓아간 양키스의 별 루카스 앤더슨, 과연 최종 승자는?]어쩌면 그건 한수혁에 대한 구애에도 불구하고 그를 자신들의 선수로 만들지 못한 뉴욕 시민들의 삐뚤어진 애정일 지도 몰랐다.
그렇게 뉴요커들에게 복잡한 마음을 품게 만든 한수혁은 지금 LA 에인절스와의 시즌 9차전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 * *
“넌 인간이 아녀.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잖여?”
“뭘요?”
“됐어, 천재가 열심히 하기까지 하면 보통 사람은 어떻게 쫓아가라는겨?”
“흠.”
“아무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절대 양키스 놈들한테는 지지 말어. 루카스 앤더슨이랑 샤킬 레너드, 걔들 데리고 너한테 비비는 거 눈꼴 시어서 못 보겠응게.”
“미국 애들 설레발 떠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닌데요, 뭐.”
“아니, 그러니까 홈런 좀 빵빵 쳐서 아예 비교할 엄두도 안 나… 음, 내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겨. 못 들은 걸로 해. 나 그럼 간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난데없이 푸념을 늘어놓은 류한결 선배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신의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나 역시 인터넷을 통해 뉴욕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충은 알고 있다.
루카스 앤더슨, 샤킬 레너드라…….
흠,
확실히 루카스는 대단한 타자다.
7월까지 거의 40개에 가까운 홈런을 친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재능 있는 타자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회귀 전과 비교해도 그는 명백하게 더 좋은 타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샤킬 레너드?
걔는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아버지가 트레이너로 붙어 있는 한 1년, 빠르면 반 년 안에 폭망할 게 확실하다.
최근 들어 녀석의 구속이 계속 내려가고 있는 걸 보면 두 달 뒤 가을야구를 할 때쯤이 되면 녀석의 어깨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을 것이다.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시한폭탄이 되어 말이다.
어쨌든 저 두 녀석에 더해 내게 빈볼을 던지다 턱이 박살 나긴 했지만 이제는 다시 제 페이스를 찾은 타이슨 바샴을 비롯 템파베이의 젊은 스타 제임스 테일러까지 영입한 양키스의 전력은 그야말로 막강 그 자체다.
올 시즌 판도가 이대로 흘러갈 경우 우리 팀과 챔피언십에서 만날 확률이 높은 뉴욕 양키스.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 그 팀의 로고를 떠올리며 타석에 들어섰다.
“플레이!”
선발 투수가 하야시 렌타로에서 디몬 앤더슨 주니어로 바뀐 걸 제외하면 어제와 완전히 똑같은 라인업.
1회초 선두타자 홈런으로 먼저 1점을 내준 가운데 우리 팀의 1회말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봐, 한, 저 녀석의 버릇을 알아냈어.”
“무슨 소리야?”
“잘 봐. 일단 결과로 보여주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남긴 데릭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투수의 초구를 받아쳤다.
따악!
“아웃!”
“뭔가 보여준다며?”
“…젠장, 저 투수, 체인지업을 던질 때마다 글러브 낀 손이 살짝 밑으로 쳐지거든. 그런데 이게 안타를 만드는 거랑은 또 별개네.”
“헛 걸 본 건 아니고?”
“아니라니까? 날 믿고 한번 노려봐. 잊지 마. 평소보다 글러브 낀 손이 5센티 정도 내려가면 체인지업 타이밍이야.”
순간적인 투구 동작에서 글러브 낀 손의 위치가 5센티 낮아졌는지 높아졌는지를 체크하는 게 불가능할 것 같지만, 애초에 우리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수백, 수천만 달러를 받고 있는 메이저리거들이다.
조금 미심쩍긴 하지만 데릭의 말을 머릿속에 새긴 채 타석에 들어섰다.
슈웅
파앙
“볼.”
초구 바깥쪽 높은 코스로 빠지는 포심. 투수의 글러브 위치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몸 쪽 가장 낮은 코스로 들어오는 백도어 슬라이더.
욕심을 내볼까 했지만 일단 데릭의 말을 믿고 한 번 더 기다려보았다.
그 순간,
스르륵
투수의 글러브 낀 손이 평소보다 조금 낮게 내려온 게 내 시야에 포착되었다.
정말 체인지업이 들어올 것인가? 들어온다면 어디로?
당연한 말이지만 코스까지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일단 무게 중심을 뒤로 두고, 머릿속으로 떨어지는 공을 받아치기 위한 어퍼스윙의 궤적을 그린 채 투수를 바라본다.
슈웅
정말이다. 데릭의 말대로 바깥쪽 낮은 코스로 날아 들어오는 체인지업.
따아아아아악!
땅에 처박힐 듯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후려쳐버렸다.
– 갑니다! 갑니다! 한수혁 선수가 친 타구가 우익수 뒤로, 뒤로, 담장을 넘어, 갑니다! 시즌 54호 홈런! 한동안 홈런포가 뜸했던 한수혁 선수가 어제 오늘 연속 홈런포를 가동하며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 경신에 다시 한 번 시동을 겁니다!
– 정말 멋지네요! 일반적인 타자였다면 외야수 플라이에 그쳤을 타구가 힘을 받아 엄청나게 멀리 날아갔습니다. 이야, 진짜 이럴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인 게 자랑스럽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지금 우리는 빅리그 무대를 정복 중인 자랑스러운 한국인 선수의 발자취를 실시간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를 이 위대한 역사의 순간을 가슴 깊이 간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