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1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13화(314/412)
#313. 나도 간다
한수혁이 KBO리그에서 뛴 3년이라는 시간은 한국 야구팬들과 전문가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빈 많은 선수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3년 연속 4할의 타율, 60개 이상의 홈런, 거기에 투타 겸업 시작이 늦었던 첫 시즌을 제외한 2년 연속 20승을 올린 한수혁.
특히나 그가 한국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기록한 타율 0.441, 출루율 0.576, 장타율 1.257, 홈런 73개 163타점 50도루라는 말도 안 되는 타격 성적과, 28번 선발로 등판해 만든 23승, 평균 자책점 0.28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은 아마도 한국 야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절대 깨어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이 될 것이 분명했다.
정말 놀라운 건 세계 최고라는 빅리그로 무대를 옮긴 한수혁의 성적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는 거다.
시즌의 3분의 2가 지난 현 시점에서 한수혁은 타율 0.420, 출루율 0.525, 장타율 1.098, 홈런 54개를 기록 중이다.
OPS만 따지면 1.833에서 1.623으로 0.21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걸 떨어졌다고 표현하기도 애매한 게 홈런의 개수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빅리그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인 73개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투수 한수혁은 어떨까?
KBO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29시즌, 한수혁은 총 28번 선발로 등판해 180이닝을 던지며 23승, 평균자책점 0.28이라는, 앞으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절대 깨어지지 않을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현재, 빅리그 투수 한수혁은 19번의 선발등판에서 148이닝을 던져 15번의 승리를 가져왔으며 평균자책점은 0.49에 불과하다.
종합해보면 이렇다.
확실히 성적이 떨어지긴 떨어졌다.
개미 눈물만큼.
따아아아악!
– 자, 추가점을 내주며 3 대 1로 뒤지고 있는 매리너스, 타석에는 한수혁 선수, 과연 어떤 결… 아앗! 갑니다! 갑니다! 한수혁 선수가 친 타구가 또 한 번! 또 한 번! 넘어 갔습니다! 시즌 55호 투런 홈런! 3 대 1로 뒤지던 시애틀이 순식간에 동점으로 쫓아갑니다!
– 거 보세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한수혁 선수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했죠? 텍사스 그 비겁한 쪼… 흠, 텍사스전에서 고의사구가 쏟아지면서 잠깐 주춤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그걸 뚫어냈죠? 그리고 보란 듯이 홈런포를 재가동하고 있고요? 장담합니다. 올 시즌 홈런 74개가 아니라 80개도 가능합니다. 백퍼!
한수혁이 없는 한수혁의 집,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한수혁이 한국을 떠나며 자신의 두 동기들에게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간 잠실의 아파트.
그곳 거실 소파에 앉은 서형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TV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홈런으로 한수혁의 빅리그 데뷔 첫 시즌 홈런 기록이 55개로 늘어났다.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저거 미친 놈 아냐?’
지난 시즌 대비 0.21 정도 하락한 OPS.
하지만 서형주가 생각하기에 그건 리그 수준 차이에 따른 성적 하락이 아니었다.
그저 전혀 다른 리그에 적응하기 위한 과도기 같은 거라 봐야 했다.
6월 이후의 성적만 놓고 보면 그게 더 확실하게 보인다. KBO에서 뛸 때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 말이다.
투수 한수혁에 대해서는 굳이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자기 전공 분야도 아니거니와, 평균자책점이 0.28이든 0.49이든 무슨 차이가 있나 싶다.
마치 사자가 세냐, 호랑이가 세냐 하는 아무 의미 없는 논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한수혁과 함께 뛰며 본래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보다 훨씬 나은 선수로 성장하고 있는 서형주, 그리고 안치욱.
특히 그중에서도 한수혁을 라이벌이라기보다는 우상으로 생각하는 안치욱과 달리, 서형주는 여전히 그에 대한 경쟁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 서형주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팀 간의 경기가 계속되었다.
어제까지와 달리 난타전으로 진행되는 오늘의 경기.
한수혁의 홈런으로 3 대 3 동점이 된 다음 이닝, 에인절스가 이찬호의 적시타로 1점을 추가하며 다시 앞서 나갔다.
최근 폼이 꽤 올라온 에인절스의 기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5회초, 에인절스가 또 하나의 홈런을 추가하며 5 대 3, 두 점 차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6회말, 한수혁이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 두 점 차로 뒤지고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 하지만 이번에는 타순이 좋습니다. 2번 한수혁 선수부터 시작하는 6회 말 시애틀의 공격입니다.
– 네, 오늘 한수혁 선수 페이스가 아주 좋습니다. 두 타석 연속 홈런이었죠. 과연 세 번째 타석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사뭇 기대가 됩니다.
LA 에인절스의 3선발인 라파엘 로드리게스는 TV로만 봐도 그 위력이 확연히 느껴지는 강력한 파워피처였다.
102마일에 달하는 묵직한 포심과 쓸 만한 체인지업, 그리고 커브까지.
KBO에 던져놓으면 리그를 박살 낼 게 분명한 괴물.
하지만 그런 괴물이 격이 다른 진짜 괴물 앞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다.
한수혁이 배트를 가볍게 휘두르자 라파엘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 떨어졌다.
현대기술의 발전은 가끔 그 피사체가 되는 이에게 너무나 가혹한 환경을 제공한다.
16K 카메라와 TV가 보편화된 지금, 연예인들은 모공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자라 있는 솜털 하나하나까지 대중에게 노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연예인뿐만 아니다. 스포츠 선수들 역시 화면에 잡힌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대다.
중계 카메라에 잡힌 라파엘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 벌겋게 달아올랐고, 매운 음식을 먹은 사람처럼 연신 땀방울이 흘러 내렸다.
잔뜩 짜증 섞인 표정으로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던 그가 마침내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서 하얀 공 하나가 발사되었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공이 라파엘이 던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이라는 걸.
하지만,
따아아아아악!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한수혁이 친 타구가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그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도저히 넘어갈 것 같지 않은 각도로 날아간 타구가 좌측 관중석 최상단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라파엘 로드리게스가 창백한 얼굴로 마운드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홈런을 허용했음에도 여전히 경기는 에인절스가 리드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의 분위기는 이미 시애틀로 넘어가버렸다.
따아아악!
한수혁의 뒤에 등장한 타이 존슨이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날리는 걸 본 서형주가 TV를 끄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닫혀 있던 안치욱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야, 돼지. 일어나.”
“으으음… 뭐야, 몇 신데? 오후에 훈련도 받아야 하는데 늦잠 좀 자자.”
“넌 이 새끼야. 지금 이 와중에 잠이 와?”
“…뭐? 지금이 어떤 와중인데? 왜? 뭔 일 생겼어?”
“수혁이 그 자식이 지금 홈런을 세 개… 됐고, 빨리 일어나. 안 일어나면 찬물 가져와서 끼얹어버린다?”
“잠깐! 알았어, 스탑! 알았다니까!”
이미 한 번 서형주에게 물벼락 세례를 당한 바 있는 안치욱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트레이닝복 입고 나와. 아침 먹기 전에 공원 10바퀴다. 오케이?”
“야, 빈속으로 너무 많이 뛰면 위염 생길 수도 있어.”
“헛소리 하지 말고 5분 안에 거실로 집합.”
“…하아, 수혁이가 없으니까 이젠 다른 놈이.”
안치욱이 일어나는 걸 확인한 서형주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두고 봐라… 나도 간다. 한수혁.”
처음 프로에 데뷔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서형주의 목표는 오직 하나, 한수혁뿐이었다.
그런 라이벌이자 인생 최대의 목표가 빅리그에서 저렇게 날아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서형주가 할 일은 단 하나.
“올 시즌 끝내고 포스팅으로 간다. 무조건.”
자신 역시 빅리그에 진출하는 것.
그것은 한수혁을 따라 잡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목표치였다.
얼마 전 워리어스의 구단주인 박성훈이 인터뷰를 통해 직접 말했다.
리그에서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선수라면 그게 누구든, 연차든 경력이든 아무 상관없이 미국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서형주는 생각했다.
KBO 리그 내 최고의 성적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까?
한수혁은 일단 제외다. 그놈을 기준으로 하면 국내 어떤 선수도 해외 진출을 할 수 없을 테니까.
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필요했고, 마침 거기 딱 적합한 샘플 하나가 있었다.
한수혁을 제외하면 국내 최고 타자라 불리던 이찬호, 그가 미국 무대에 진출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기록한 성적.
타율 0.348, 출루율 0.420, 장타율 0.574, 22홈런 112타점, 15도루.
‘음…….’
4년차에 접어들며 서형주는 플레이스타일에 약간 변화를 준 상태이다.
딱히 한수혁을 따라한 건 아니지만 장타를 늘리고 도루를 줄이는 것이 리드오프로서의 생산성에 보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세이버매트리션들의 주장에 따…….
젠장, 사실은 그냥 따라 한 게 맞다.
그 괴물 같은 놈이 홈런을 더 늘리겠다고 도루를 포기하는 걸 보고 서형주 역시 벌크업을 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봤다.
바뀐 몸에 적응하느라 한때는 타율이 3할 밑으로 떨어진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본격적인 하반기가 시작되는 8월 첫 주 현재 타율 0.320, 출루율 0.405, 장타율 0.515, 11홈런 17도루까지 성적을 끌어 올렸다.
일단 도루는 됐다. 남은 목표는 잔여 시즌 동안 10개 정도의 홈런을 추가하고 타율을 3할 중반 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 정도 성적을 올리고 난 후 구단주에게, 그리고 팬들을 향해 선포할 것이다.
나 서형주가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던지노라고.
“좋아, 아주 좋아.”
그저 상상만 한 것뿐인데 벌써부터 미국 구단의 오퍼라도 받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눈을 꼭 감은 채 그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끼고 있던 그때,
“야, 빨리 나와. 얼른 뛰고 밥 먹자.”
“에이 씨, 감성 좋았는데.”
“뭔 소리야. 빨리 나가자며. 준비 다 됐어.”
문득 자신마저 떠나고 나면 저 뚱땡이를 누가 컨트롤할지 살짝 걱정이 들었지만 이내 그런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저래 보여도 올 시즌 데뷔 이후 첫 3할 30홈런 고지를 밟을 거란 기대를 받고 있는 워리어스의 중심타자이니까.
자신이 없어도 알아서 잘 살아갈 것이다.
“나가자, 돼지.”
“야, 몇 번을 말하냐. 이게 살이 아니라 근육이라니까?”
“됐고, 빨리 나와.”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1층에 도착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한수혁의 경기 중계를 확인해보니 5 대 4로 뒤지던 시애틀이 어느새 경기를 5 대 6으로 뒤집은 상태였다.
전혀 놀랍지 않았다.
한수혁이 저렇게 미쳐 날뛸 때면 팀의 승리는 당연히 따라 오는 것었으니까.
그와 같은 팀에서 뛰며 느꼈던 안정감, 이제는 그립기까지 한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애써 날리며 서형주가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오늘은 1시간 안에 끊는 거다. 1분이라도 늦으면 디저트는 압수.”
“뭐? 야! 서형주! 같이 가! 같이 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