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1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15화(316/412)
#315. 말로만 하지 말고
[에인절스 스윕한 시애틀 매리너스, 무서운 기세로 지구 1위 질주, 와일드카드에 대한 희망 이어가던 에인절스, 라이언 티보우의 기세에 눌려 무기력한 3연패] [9이닝 무실점 완봉승 기록한 라이언 티보우 “마지막 타구가 넘어갔다면 팀의 승리도, 내 완봉승도 없었을 것이다. 한수혁에게 감사하고 싶다.”] [결승 홈런, 그리고 9회 투아웃 결정적인 다이빙 캐치, 한수혁 “누가 뭐래도 우리 팀의 에이스는 라이언이다. 그는 올 시즌 단 한 번도 선발 로테이션을 건너뛰지 않고 마운드를 지켰다. 좋은 투수이며, 동시에 멋진 리더다” 실력뿐만 아니라 겸손까지 장착한 완벽한 스타] [이날 홈런으로 시즌 57호 달성한 한수혁 “팀의 지구 우승도, 그리고 단일 시즌 홈런 기록 경신도, 무엇 하나 포기하지 않고 모두 달성할 것” 시애틀 팬들 환호] [에인절스전 스윕으로 시즌 승률을 0.629까지 끌어올린 시애틀, 아메리칸 리그 승률 2위 화이트삭스 턱 밑까지 추격]하반기 들어 약간의 부침이 있었던 팀 성적과 선수들의 컨디션이 에인절스전을 스윕하며 다시 본 궤도로 돌아왔다.
돌아가며 휴식을 취한 야수들의 컨디션이 제자리를 찾았고, 라이언의 완봉승 덕에 중간계투진의 피로도 역시 대폭 낮출 수 있었다.
그렇게 최상의 상태로 돌아온 우리는 홈에서 휴스턴과 3연전을 갖게 되었다.
시즌 포기를 선언한 채 탱킹에 열중하고 있는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최하위 휴스턴 애스트로스 말이다.
“좋아, 한, 나는 준비됐어.”
“흠, 왜 이렇게 신이 난 거야?”
“그야 너와 호흡을 맞추는 게 즐거우니까?”
“흐음…….”
클리블랜드에서 데려온 백업포수 레너드 존스, 만약 그대로 뒀다면 먼 훗날 리그를 대표하는 포수이자 팀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그가 앳된 얼굴을 한 채 나를 바라본다.
올스타 브레이크전까지만 해도 점점 출장 비율을 높여가던 레너드는 하반기 들어 팀의 사정이 급박해지며 좀처럼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팀의 1선발인 라이언은 주전 포수인 브루스와 단짝이나 마찬가지였고, 3선발인 마이크 워렌의 너클볼은 브루스 외에는 아무도 잡지 못한다.
거기에 4선발과 5선발이 나서는 경기에 주전 포수를 제외할 경우 전체적인 무게감이 확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감독은 내 등판 경기에 레너드를 집어넣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뭐,
내 입장에서는 회귀 전에 함께 뛰며 낯이 익어서 그런지 이 녀석하고 뛰는 게 그닥 낯설지만은 않다.
물론 그때는 투수와 포수가 아닌 외야수와 포수였지만,
어쨌든,
“오늘도 리드는 네가 할 거지?”
“당연하지.”
“좋아, 난 그럼 열심히 공 받는 기계가 되도록 하지.”
언제 봐도 넉살 좋고, 주변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녀석이다.
아직 스킬이 여물지 않아 브루스에게는 한참 밀리지만, 경험이 쌓이고 별 일 없이 제대로 성장하기만 하면 몇 년 내에 그를 넘어설 포수가 될 것이다.
흠,
그러고 보니 브루스가 올 시즌이 끝나면 FA였지.
그럼 내년 시즌 구상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브루스를 포기하고 대신 레너드를 주전으로? 그리고 그 돈으로 쓸 만한 중간계투를…….
관두자.
갑자기 구단주 모드로 들어가려는 정신을 다시 그라운드 안으로 끌어왔다.
“플레이!”
본격적인 탱킹 모드에 들어간 휴스턴은 라인업에 난생 처음 보는 애송이들을 잔뜩 포함시켰다.
이번 휴스턴 3연전이 끝나면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전체 승률 2위인 화이트삭스와의 4연전이 기다리고 있다.
리그 승률 1위인 양키스와의 정규시즌 일정이 모두 끝났고, 화이트삭스와의 일정 역시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감안하면 자력으로 1, 2위 팀과의 승률 차를 좁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팀의 포커스는 그 화이트삭스와의 4연전에 맞춰져 있다.
이번 휴스턴과의 3연전에서는 주전들의 체력 보전을 위해 백업들이 자주 라인업에 포함될 것이고, 선발투수들은 최대한 긴 이닝을 책임지며 계투진의 과부하를 막아야 한다.
고개를 돌려 전광판에 새겨진 라인업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투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짐 브라운
6번 3루수 리암 랜드먼
7번 2루수 로니 몬타릭
8번 포수 레너드 존스
9번 유격수 조나단 오웬스
상위 타선에 비해 6번부터 9번까지 이어지는 하위 타순이 평소보다 많이 헐거워 보인다.
이럴 때는 최대한 초반에 승부를 내야 한다.
그걸 위해 내가 할 일은,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타석에 들어선 저 애송이를 최대한 빨리 덕아웃으로 돌려보내는 거다.
* * *
따악
“세이프!”
“좋아! 저 수비도 제대로 못 하는 멍청이들을 지옥으로 보내버려!”
“저런 머저리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뛰다니, 이건 야구에 대한 모욕이야!”
“박살 내버려! 얼굴도 못 들 정도로 박살 내버리라고!”
1회초 휴스턴의 첫 번째 공격이 삼자범퇴로 끝나고, 1회말 시애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선두 타자로 나선 데릭 플레밍의 타구가 3루수 정면으로 갔지만, 불과 일주일 전 더블A에서 콜업 된 이름 모를 3루수가 그 공을 놓쳐버렸고, 그 사이 데릭이 1루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2번 타자 피처 한수혁]그리고 타석에 그가 들어섰다.
다른 팀들에게 재앙이라 불리는 사나이,
최근 홈런을 몰아치며 다시 한 번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에 경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4할 타자 한수혁.
“플레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홈런타자이자 약쟁이인 배리 본즈가 40세에 접어들었던 2004 시즌,
그는 타율 0.362, 홈런 45개, 101타점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런데 팬들이 정말 놀란 건 타율이나 홈런 개수가 아니었다.
무려 0.609에 달하는 출루율,
타율에 비해 0.100만 높아도 선구안이 우수한 타자라는 소리를 듣는 마당에 타율 대비 0.247이나 높은 말도 안 되는 출루율.
당연한 말이지만 0.609는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고 출루율이었고, 그와 비교될 수 있는 건 배리 본즈 자신이 2002년 수립한 0.582뿐이었다.
메이저리그 최후의 4할 타자라 불리는 테드 윌리암스(1941년 0.553)나 야구의 신 베이브 루스(1923년 0.545) 같은 위대한 이름 역시 배리 본즈의 기록 앞에 빛이 바랠 정도였다.
그런 엄청난 출루율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
아직까지도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역대 최대 볼넷으로 기록되어 있는 232개의 사구가 그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해 배리 본즈가 기록한 135개의 안타보다 100개나 많은 수치였다.
슈웅
파앙!
“볼.”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타율 면에서는 테드 윌리암스의 수준을 넘어서는, 홈런에 있어서도 배리 본즈의 기록을 넘어설 것으로 주목받는 한수혁이 오늘날 이 정도나마 타격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다음 타자인 타이 존슨의 덕이었다.
한수혁보다는 못해도 커리어 통산 3/4/6의 슬래시라인을 자랑하는, 거기에 올 시즌 커리어하이를 기록 중인 타자를 뒤에 두고 함부로 볼넷을 줄 수 없었던 것이다.
2004년 배리 본즈가 갖지 못했던 강력한 동료들의 지원,
한수혁에게는 그게 있었다.
슈웅
파앙!
“볼.”
“흠, 이럴 거면 차라리 자동고의사구를 요청해. 뭐 하는 거야? 서로 피곤하게.”
“…닥쳐.”
“나도 닥치고 싶으니까 야구를 하려면 좀 제대로 하라고, 머저리들아.”
“개자식.”
홈플레이트 뒤에 앉은 포수를 슬쩍 자극해 보았다.
라인업 전체가 듣도 보도 못한 선수들로 가득 찬 가운데 애송이 투수들의 뒤를 닦아주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장 포수 지미 존스턴.
지난번 대결에서도 나와 쌍욕을 주고받은 바 있는 포수가 콧김을 씩씩 뿜었다.
하긴, 그 역시 지금 상황이 답답할 거다.
기본적으로 야구 선수가 경기를 하는 목적은 승부에서 이기기 위함이다.
아무리 많은 연봉을 받는다 해도 패배가 결정된 경기를 계속 뛰다 보면 인생 자체에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그나마 나이라도 어리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현재의 괴로움을 견딜 수 있겠지만,
글쎄,
서른 중반에 접어든 저 포수에게 그런 미래가 허락될 것 같지는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생판 처음 보는 애송이 투수가 콜업되고, 구단에서는 자신에게 그런 투수의 뒤처리를 부탁하고,
짜증 나겠지.
암,
그러니 조금 더 짜증 나게 해줘야지.
“우리 팀 에이스인 라이언에게는 라일리라는 아주 예쁜 딸이 있지.”
“뭔 개소리를 하려는 거야?”
“아직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하는데 개소리라니, 이거 기자들이 들으면 참 좋아하겠군.”
“그게 아니라… 하아.”
뭔가 해탈한 듯한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기왕 입을 연 김에 계속 하기로 했다.
“얼마 전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 아이가 그러더군. 아저씨, 저기 모자에 H가 박힌 선수들은 왜 저렇게 야구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대답해줬지. 응, 저 녀석들은 이기는 법을 완전히 잊어버린 멍청이들이거든. 어때, 내 대답이 꽤나 적절했지?”
“Fuck you.”
“방금 그 말이 나한테 향한 것이기를 바라. 아무리 멍청이들이라고 해도 설마 10살도 안 된 어린아이한테 욕을 하진 않으리라 믿으니까.”
“…….”
됐다.
이 정도면 분노 게이지가 꽤 차올랐겠지.
어차피 탱킹 중인 팀이니만큼 1회가 시작되자마자 나를 거르려 하지는 않을 거다. 더군다나 선두타자가 에러로 출루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니 방금 내가 한 일은 탱킹 중인 이 팀의 볼 배합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는 이 늙은 포수의 정신을 빼놓기 위한 거였다.
제구력이나 변화구는 엉망이지만 볼 빠르기 하나로 빅리그에 콜업된 휴스턴의 애송이 투수.
그리고 타자를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 베테랑 포수의 조합.
위협구가 들어올 확률이 절반, 그리고 몸 쪽 빠른 승부가 들어올 확률이 절반.
일반적인 경우라면 결코 큰 것을 노릴 상황이 아니지만,
슈웅
따아아아아악!
그렇지.
몸 쪽으로 바싹 붙이려던 공이 손에서 빠졌고, 밋밋하게 한가운데로 들어온 포심이 배트에 제대로 걸렸다.
“좋았어! 바로 이거지!”
“퍼킹! 거기 마운드 위의 애송이! 넌 나중에 정말 좋은 투수가 될 거야! 왜냐고? 한수혁에게 홈런을 맞았으니까!”
정말 제대로 맞긴 했다.
좌측 펜스를 향해 발사된 타구가 좀처럼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배트를 지팡이처럼 땅바닥에 짚고 그 타구를 감상했다.
등 뒤에서 들리는 콧김 소리로 짐작하건대 지금 포수가 어떤 표정으로 날 노려보고 있을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지만,
뭐, 홈런 친 타자에게 주먹을 날릴 만큼 멍청한 놈은 아니리라 믿는다.
터엉
결국 계속 날아간 타구가 경기장 외벽에 맞고 관중석 쪽으로 떨어졌다.
“어때, 정말 멋진 홈런이지? 장외로 넘어갔으면 더 좋았을 텐데.”
“개자식… 다음 타석에서 널 죽여 버릴 거다.”
“왜? 머리에 공이라도 던지게? 흠, 좋아.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난 망설임 없이 투수가 아닌 너부터 죽여 버릴 거야. 그러면 넌 시즌아웃이 될 테고 난 정당방위를 인정받아 몇 게임을 쉬게 되겠지. 서른 중반에 시즌아웃이라… 과연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
“…….”
“입으로만 떠들 거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 마. 개자식아. 그리고 야구를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알아 들었어?”
짚고 있던 배트를 발로 툭 밀어버리고 1루를 향해 걸어 나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탱킹을 하는 팀이 정말 싫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