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1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17화(318/412)
#317. 널 따라한 거야
“명심해, 싸움은 안 돼. 그러다가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시즌 전체를 망치게 될지도 몰라. 저 끔찍한 아시아인은 무시해. 아, 하마사키, 너한테 한 말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고. 어쨌든 잘 들어. 뭐가 어찌 됐든 싸움은 안 돼. 지금까지 저 녀석하고 붙어서 제 발로 경기장을 나간 놈이 없다는 걸 명심하라고.”
화이트삭스의 주전 1루수이자 캡틴인 액토르 마르티네스가 덕아웃에 앉은 동료들에게 신신당부를 한 후 대기타석을 향해 걸어 나갔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오늘 시애틀의 1번 타자 겸 3루수로 출전한 한수혁.
올 시즌 저놈과 시비가 붙었다가 박살이 나고, 그 결과 병원으로 실려가거나 아예 시즌 아웃이 된 놈들이 한 트럭이다.
성질 더럽고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오클랜드의 포수 데스몬드 킹을 시작으로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 타이슨 바샴, 시카고 컵스의 션 터커, 다저스의 주전포수 티건 버크해드, 일본에서 한주먹 했다는 애틀랜타의 야마모토 겐이치까지.
그라운드에서 한수혁과 시비가 붙은 놈들이 주먹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박살이 난 건 메이저리그 30개팀 선수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ESPN 특집방송에 출연했던 UFC 전 챔피언이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전문적으로 격투기를 배우지 않은 일반인은 절대 한수혁을 이길 수 없다고.
지금 당장 링 위에 올려도 3라운드 정도는 거뜬히 소화해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플레이!”
꼭 그것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번 4연전은 화이트삭스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경기다.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또 한 번 탱킹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던 팀이 같은 지구 팀들의 삽질에 힘입어 갑자기 1위로 치고 올라왔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구단주가 돈 보따리를 풀었고, 이에 신시내티에서 데려온 하마사키 아키노리를 시작으로 제법 괜찮은 선수들이 화이트삭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월드시리즈 진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디비전 시리즈에 직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메리칸 리그 전체 승률 2위 자리를 절대 내주면 안 된다.
내심 이번 4연전 스윕을 노리고 있는 화이트삭스.
따악!
“젠장, 저게 빠지다니!”
“리암! 좀 더 빠르게 움직여! 방금 공은 잡을 수 있었다고!”
톱타자인 하마사키가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다음 타자가 친 타구가 2루수 글러브를 맞고 내야 안타가 되었다.
1사 주자 1루 상황이 만들어졌고 드디어 이 팀의 주장인 액토르 마르티네스의 차례가 돌아왔다.
지난 10년간 이 화이트삭스를 이끌어온 기둥이자,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1위로 선정된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
타석에 들어선 그가 신중한 눈으로 상대편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타이 존슨,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수이며, 나아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리그 상위권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아주 좋은 1루수다.
2루수 리암 랜드먼과 유격수 조쉬 올리버의 조합 역시 리그 최상급이다.
그리고 한수혁,
1회 초가 시작되자마자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킬 뻔했던, 적으로 만날 경우 최악의 상대가 될 수밖에 없는 현 시점 빅리그 최고의 선수.
‘음.’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시애틀의 내야진을 보며 액토르가 한숨을 쉬려던 그때, 홈플레이트 뒤에 앉아 있던 브루스가 아는 척 말을 걸어왔다.
“아까 그건 실수야, 액토르. 디몬 저 녀석이 아직 제구가 완벽하지 않아서.”
“상관없어. 어차피 몸에 맞은 것도 아니고.”
“역시, 말이 통해서 다행이야.”
“그것보다 저 녀석에게나 전해줘. 자꾸 다른 팀 선수들 겁주지 말라고.”
“저 녀석? 아, 한? 흐흐, 좋아. 꼭 전해주도록 하지.”
10년 넘게 빅리그에서 뛰며 여기저기 인맥을 쌓아올린 그다.
실력 면에서는 최고의 1루수라 부르기 힘들었지만 적어도 인성 면에서는 다른 팀 선수들의 존경을 받아온 액토르 마르티네스.
슈웅
파앙
“볼.”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제구가 잘 안 돼서. 하하.”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욕을 내뱉을 뻔했다.
몸 쪽 가까이, 거의 유니폼에 스칠 듯 날아오는 빠른 공.
눈이 마주친 투수가 손가락으로 글러브를 툭툭 치며 미안하다는 사인을 보냈다.
물론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액토르도 잘 알고 있었다.
투수의 시선이 자신과 한수혁을 번갈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뭐, 어쩌라고? 나 한번 때려보려고? 그러다가 한에게 죽도록 맞을 텐데?’
“흠… 브루스.”
“음? 왜? 실수라니까.”
자꾸 시애틀의 분위기에 말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할 말은 많았지만 여기서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건 말싸움이 아니다.
아무리 도망가도 계속 쫓아오는 이 지긋지긋한 시애틀 놈들을 이기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 선발 싸움에서는 화이트삭스가 유리하다.
후안 벨레스가 5선발이라 해도 지난 시즌까지는 3선발로 뛰던, 올 시즌 초반을 부상으로 날려 잠시 5선발 자리를 맡고 있는 좋은 투수이니까.
그렇기에 선취점을 내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1사 주자 1루 상황, 최악은 병살타이고, 최상은 큰 것 한 방으로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것.
그 순간, 상대 투수가 던진 두 번째 공이 또다시 몸 쪽을 향해 날아왔다.
하지만 초구와 달리 존 안쪽으로 말려 들어오는 공,
이것이 실투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잘못 맞으면 병살타가 될 수도 있는, 하지만 잘만 때리면 큰 타구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코스의 공이다.
“흡!”
몸통에 팔꿈치를 꽉 붙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기합 소리가 튀어 나온다.
갈비뼈가 움푹 들어갈 정도로 꽉 힘을 준 채 전력을 다해 스윙을 시작했다.
따아악!
됐다.
약간 배트 밑단에 맞기는 했지만 2루 쪽으로 치우쳐 있던 3루수의 위치를 감안하면 절대 잡을 수 없는, 3루 베이스 위를 타고 넘는 강한 타구가 만들어졌다.
타격음이 들리자마자 곧바로 배트를 집어던진 액토르가 전력을 다해 1루로 질주하던 그때,
터억
“우오오오오오!”
전력을 다해 몸을 날린 한수혁의 글러브 속으로 타구가 빨려 들어갔다.
관중석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함성을 에너지 삼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한수혁이 2루를 향해 전력으로 공을 뿌렸다.
“아웃!”
그 공을 잡은 리암 랜드먼이 다시 1루로.
“아웃!”
병살타,
완벽한 2루타가 될 거라 생각했던 액토르가 1루 베이스 위에서 고개를 푹 떨군 채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진짜… 빌어먹을 개자식이군.”
* * *
“우우우우우!”
“망할 자식들! 그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싶은 거냐!”
“텍사스 놈들이 당하는 걸 못 본 모양이군. 멍청한 놈들!”
1회초 1사 주자 1루 찬스를 아깝게 날린 화이트삭스는 1회말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자동고의사구를 요청했다.
사실 한수혁을 상대함에 있어 정답 같은 건 없다.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지난번 한수혁에게 자동고의사구를 시도하다 박살이 난 텍사스의 전례가 있었지만, 화이트삭스 감독이 보기에 지금 한수혁은 절대 상대해서는 안 될 괴물이었다.
“타자, 1루로!”
한수혁이 1루로 걸어 나가고 타석에 타이 존슨이 들어섰다.
처음, 자신의 앞 타자가 자동고의사구를 당했을 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던 타이 존슨이었지만 이제는 이런 상황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쓸데없는 자존심이 아니다.
그보다는 확실하게 적을 박살 내서 다시는 이런 시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화이트삭스 벤치에서 한수혁에게 자동고의사구를 요청한 이유는 아주 명확하다.
그를 내보내고, 도루를 주고, 자신이 적시타를 때려내 점수를 낼 확률보다 한수혁에게 승부를 걸다가 홈런을 허용할 확률이 더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잘만 하면 병살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기대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꾸욱
1루에서 한수혁이 당장이라도 뛸 것처럼 투수를 압박했다.
배트를 잡은 타이 존슨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타고난 힘과 어퍼스윙을 바탕으로 엄청난 궤적의 홈런타구를 만들어내는 한수혁과 달리 타이 존슨은 배팅의 교과서라 불릴 정도로 깨끗하고 안정적인 타격폼으로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양산해내는 타입의 타자였다.
하지만 지난 텍사스전에서 한수혁에게 자동고의사구가 쏟아진 후,
타이 존슨은 개인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타격 자세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발사각을 높여 베럴 타구가 나올 확률을 높이기 위한 조정 작업.
시즌 중에 그런 시도를 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 위험성을 감수하기로 했고, 그 결과 값진 성과를 얻어냈다.
상대가 자신에게 병살타를 노린다고?
그런 머저리 같은 놈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대답은 바로 이것이다.
따아아아악!
투수가 던진 낮은 코스의 포심을 타이 존슨이 그대로 걷어 올렸다.
그것은 마치 한수혁을 연상시키는, 다듬어지지 않은 야수와도 같은 타격폼이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빌어먹을 화이트삭스 개자식들! 맛이 어떠냐!”
“됐어! 이래도 한수혁에게 볼넷을 내줄 거냐, 이 멍청이들아!”
맞자마자 홈런임을 직감한 타이 존슨이 침착하게 배트를 옆에 내려놓고 1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홈런을 칠 때마다 엄청난 배트 플립을 보여주는 한수혁과 달리 너무나도 얌전한 퍼포먼스였지만 시애틀 팬들의 박수 소리만큼은 한수혁 때와 그닥 차이가 없었다.
팬들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올 시즌 한수혁과 함께 뛰기 위해 팀까지 옮긴 타이 존슨의 각오를, 그리고 한수혁의 뒤를 받치기 위해 그가 얼마나 큰 노력을 하고 있는 지를.
└ 나는 두 번 맞아죽어야 할 놈이야
└ 갑자기 무슨 소리야?
└ 처음 한수혁을 데려온다고 했을 때 겨우 아시아에서 홈런왕 하던 놈 때문에 뭐 저렇게 호들갑을 떠냐고 인터넷에 글을 남겼지.
└ 좋아, 일단 첫 번째는 총살형으로 하지. 그럼 두 번째는?
└ 타이 존슨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매리너스 홈페이지에 헛소리를 지껄였지. 언제 은퇴할지 모르는 늙은이에게 그렇게 큰돈을 주는 게 말이 되냐고.
└ 이번 건 최소 화형이군. 아무튼 양심 고백을 했으니 네 죄를 사하겠노라.
└ 제길, 내가 어렸을 때 이 팀의 중심타선에는 켄 그리피 주니어, 알렉스 로드리게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제이 뷰너가 있었지. 그리고 팀은 역대 최다 기록인 264개의 홈런을 때려냈어. 그 선수들이 팀을 떠나거나 은퇴한 후 다시는 그런 타선은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 시애틀 타선을 봐. 데릭, 한수혁, 타이, 척, 짐, 토니로 이어지는 타선을 보면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려.
└ 한 가지는 확실해. 그때 시애틀은 결국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반드시 양키스 그 빌어먹을 자식들을 박살 내고 월드시리즈에 나갈 거라는 것.
화이트삭스의 자동고의사구 작전을 힘으로 박살 내버린 타이 존슨이 다이아몬드를 한 바퀴 돈 후 홈 플레이트를 밟았다.
먼저 도착해 있던 한수혁이 타이 존슨을 향해 주먹을 내밀었다.
“그런 멋진 스윙은 어디서 배운 거예요?”
“젠장, 맞아. 널 따라한 거야. 이 말을 듣고 싶었던 거겠지?”
“정확해요.”
“흐흐, 빌어먹을 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