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2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19화(320/412)
#319. 랭크인
“젠장, 이딴 허접스러운 Butterfly net이 20달러나 한다는 게 믿어져?”
“그러니까 나처럼 그냥 글러브나 끼고 오라니까 그게 무슨 짓이야?”
“글러브? 하, 여기 주변을 돌아봐. 나비 채를 들고 온 놈들이 한 가득인데 글러브로 상대할 수 있겠어? 솔직히 말해. 너 내가 부럽지?”
“아니, 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방해하는 물건은 쓰고 싶지 않아.”
“흐흐, 그러지 말고 그냥 부럽다고 인정해. 인정하면 내가 이걸 빌려줄 수도 있으니까.”
“젠장.”
다른 몇몇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나 야구와 관련해서는 한국보다도 훨씬 보수적인 곳이 바로 미국이다.
KBO에서는 홈런 관련 기록 달성이 예상될 때마다 잠자리채를 든 관중들이 외야를 가득 메우곤 했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글러브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한수혁이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순위 10위에 랭크되자 T모바일파크 외야석에 Butterfly net, 나비 채를 든 관중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야구장 주변에서 나비 채를 불법 판매하는 사람들을 단속하느라 시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한수혁의 첫 번째 타석이 시작되었다.
“플레이!”
약쟁이들의 기록을 제외하면 사실상 1위나 마찬가지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7위에 랭크된 애런 저지의 기록이 세워진 지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구속과 구위가 점점 증가하고, 이에 맞춰 타자들의 파워와 타격 매커니즘이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야구 전문가들은 162경기 체제 하에 인간이 최대로 때려낼 수 있는 홈런의 개수는 60개 내외라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한수혁이 120경기 만에 59개의 홈런을 때려냈으니 야구계 전체가 들썩일 수밖에 없다.
오래 전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는 약물의 힘을 빌어 세기의 홈런 대결을 펼쳤고, 그 결과 선수 파업으로 몰락하던 메이저리그의 인기를 다시 되살린 미국인의 영웅이 되었다.
물론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며 그 모든 인기와 명성이 물거품이 되었지만.
슈웅
파앙
“볼.”
1루에 선 데릭이 계속 스타트를 끊으며 투수를 괴롭히는 가운데 초구 바깥쪽 낮은 코스 슬라이더를 한수혁이 골라냈다.
비록 볼이 되긴 했지만 스윙을 유도하기 위해 던진 아주 좋은 공이었다.
지난 WBC에서 한수혁과 한 번 상대해본 바 있는 쿠바 출신의 투수 에밀리오 카스트로가 한 구, 한 구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파앙
“볼.”
아무리 화이트삭스가 지구 내 다른 팀들의 동반 삽질로 인해 어부지리 격으로 1위에 올랐다 해도, 한 팀의 에이스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최고 102마일에 달하는 포심과 리그 정상급의 커브, 그리고 슬라이더를 갖춘 에밀리오를 상대로 한수혁 역시 전력으로 맞부딪혔다.
에밀리오의 공은 강력하고 정교했다.
한수혁을 맞아 전투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에밀리오의 공은 구위와 제구, 모든 면에서 리그 최정상급이라 불릴 만했다.
하지만,
홈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과 동료 선수들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홈런 사냥에 나선 한수혁을 막아설 정도는 아니었다.
따아아아아아악!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한수혁의 배트에 공이 걸리고, 홈런을 예감한 그가 그대로 배트를 허공으로 집어던지자 T모바일파크를 가득 메우고 있던 관중들이 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간다! 간다! 간다!”
“젠장! 외야에 앉아야 했어!”
배트 중앙에 제대로 걸린 타구가 좌익수 머리 위로 날아갔다. 펜스를 넘은 시점에서도 고도가 거의 떨어지지 않는 엄청난 타구였다.
민예린을 포함 좌측 외야에 앉아 있던 관중들이 나비 채와 글러브를 들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찾기 위해 말이다.
그러나 타구는 그 사람들의 키를 넘어 외벽을 향해 계속 날아갔다.
“안 돼!”
“내 거야! 내 거라고! 가지 마!”
그렇게 관중들을 머리 위를 지난 타구가 외벽을 넘어 경기장 밖으로 사라지려 할 때쯤,
철컥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해왔지!”
아프로 머리를 한 남자 하나가 들고 있던 나비 채를 머리 위로 힘껏 들어올렸다.
그러자 1미터 남짓하던 나비 채가 쭈욱 늘어났고, 거의 2미터 넘게 늘어난 채 안으로 한수혁이 친 타구가 쏙 빨려 들어갔다.
“어어억!”
“젠장, 저 이상한 머리를 한 놈이 공을 잡았어!”
“뭐야! 저 나비 채는 대체 뭐야? 가제트 팔이야? 왜 늘어나는데?”
* * *
– 넘어갔습니다! 대단합니다! 드디어! 드디어! 시애틀 매리너스의 한수혁 선수가 시즌 60호 홈런을 기록하며 1927년 베이브 루스와 함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9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 언빌리버블! 정말 엄청나네요! 대단해요!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할 정도로 엄청난 타구였습니다. 다시 한 번 보시죠. 몸 쪽으로 완벽하게 제구된 포심을 받아쳤죠? 102마일! 올 시즌 에밀리오 카스트로가 던진 공 중 가장 빠른 공을 한수혁 선수가 홈런으로 만들어냈습니다!
– 홈런도 홈런이지만 타구를 잡은 관중도 정말 대단하네요. 토마스, 저게 대체 뭔가요? 외벽을 넘어가려던 타구를 2미터가 넘는 나비 채를 이용해서 아주 제대로 건져냈네요.
– 모르겠습니다. 저게 대체 뭘까요? 분명 잠자리 채 같기는 한데… 언뜻 보면 무슨 안테나 같기도 하고, 저렇게 늘어났다 줄어났다 하는 잠자리 채가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네요. 설마 본인이 직접 제작한 걸까요?
– 설사 직접 만들었다 해도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었겠는데요? 저 공을 팔지 안 팔지는 모르겠지만 잠자리 채를 만든 돈 정도는 충분히 뽑을 테니까요. 하하.
– 역시 우리 미국이 첨단 테크놀러지의 나라이긴 하네요. 자, 홈런을 친 한수혁 선수가 드디어 다이아몬드를 한 바퀴 돌아 홈으로 들어왔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메이저리그의 역사가 바뀌고 있습니다. 한수혁 선수, 마음 같아서는 오늘 하나만 더 쳤으면 좋겠습니다.
└ 미친 ㅋㅋㅋ 저 자식 결국 해냈군.
└ 뭔 소리야? 저 아프로 머리, 혹시 아는 놈이야?
└ 맞아, 우리 옆집 사는 너드야. 어제 차고에서 저 나비 채를 만들고 있길래 멍청한 짓 하지 말라고 했는데 젠장, 멍청한 건 내 쪽이었군.
└ 그래? 그럼 부탁 하나만 하지. 저 나비 채, 혹시 살 수 없는지 알아봐줘. 가격은 좀 비싸도 상관없어. 굉장한 물건이군.
└ 흐흐, 안 그래도 저놈이 돌아오면 같이 사업 구상을 해볼 생각이야. 혹시 팔게 되면 내가 SNS에 올리도록 하지.
└ 어쨌든 드디어 60개야. 이제 최다 기록까지 14개 남았어. 남은 경기가…. 42경기, 젠장! 정말 가능할 거 같은데?
└ 당연하지, 내가 뭐랬어? 저 친구가 해낼 거라고 했지?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딱 하나야. 저 너드 놈이 만든 멋진 나비 채를 가지고 경기장을 찾는 거라고.
* * *
“한! 축하해! 드디어 해냈군.”
“흐흐, 젠장, 홈런 60개라니, 이게 대체 말이 돼?”
“데릭, 너도 잘했어. 다음에도 한 번 더 출루해. 이 친구에게 타격할 기회를 만들어주라고!”
“당연하지, 난 리그 최고의 리드오프니까. 출루 정도는 기본이지.”
동료들에 둘러싸여 한참 동안 축하를 받은 후에야 벤치에 앉을 수 있었다.
내가 치긴 했지만 정말 제대로 맞은 타구였다.
맞는 순간 아무런 느낌이나 저항조차 없을 정도로, 정말 잘 맞은 그런 타구.
“한, 이거 좀 봐. 흐흐, 정말 재미있는 놈이야.”
브루스가 내민 태블릿을 받아 보니 방금 전 내 홈런 영상 리플레이가 나오고 있었다. KBO 시절에는 덕아웃에서 전자기기 사용이 아예 불가능해 불편했는데 확실히 이게 있으니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그나저나 뭘 보라는 걸까.
흠, 다시 봐도 정말 멋진 타구… 아, 저건가?
엄청나게 크고 무거워 보이는 아프로 머리를 한 남자 하나가 2단으로 늘어나는 잠자리채를 이용해 경기장 밖으로 넘어가려던 홈런볼을 순식간에 낚아채는 모습이 영상에 담겨 있었다.
거참…
이젠 하다하다 별…….
그나저나 예린이 쟤는 왜 그 사람 옆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걸까.
그깟 홈런볼, 내가 얼마든지 줄 수 있는데.
직접 잡아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다음에는 예린이가 있는 곳으로…….
“플레이!”
내 홈런으로 인해 혼란해졌던 장내가 다시 조용해지고, 타이 존슨이 타석에 들어섰다.
다혈질로 유명한 에밀리오 카스트로의 얼굴이 눈에 확 띌 정도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타이 존슨이라면 지금 저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슈웅
따악!
“오오오오오오!”
“좋아! 또 간다! 간다!”
“미친! 난 이 팀이 너무 좋아! 빌어먹을 매리너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내게 홈런을 맞고 흥분한 투수가 한복판에 102마일 포심을 꽂아 넣었고, 이미 그 공을 예측하고 있던 타이 존슨이 놓치지 않고 제대로 받아쳤다.
“타이! 앞으로 딱 10년만 시애틀 유니폼을 입고 뛰는 거야. 그 전에는 아무 데도 못 가!”
“넌 시애틀, 그리고 메이저리그의 전설이 될 거야!”
“젠장, 우리 타선이긴 하지만 정말 끔찍하군. 최고야! 너희가 최고라고!”
또 한 번 야구장이 터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얌전하게 배트를 내려놓은 타이가 천천히 다이아몬드를 돌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스코어 3 대 0.
당초 팽팽하리라 예상되었던 오늘 경기 승부의 추가 시애틀 쪽으로 기우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