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2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21화(322/412)
#321. 헛소리하지 마
2020년대 초반, 양키스를 이끄는 주장이자 주포였던, 그리고 약쟁이들이 세운 불명예스러운 홈런 기록들을 깰 수 있을 거라 기대를 모았던 애런 저지.
그런 애런 저지의 인기와 그에 대한 기대감은 2022년 그가 62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절정에 달했다.
배리 본즈와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등 약쟁이들을 제외한, 사실상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역대 최고 기록.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야구 팬 전체가 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쳐달라고, 그래서 야구계에 남은 그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말끔히 씻어 달라고.
하지만,
201㎝에 130㎏ 가까운 거대한 체형은 애런 저지에게 잦은 부상을 가져왔고, 결국 그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만 했다.
그렇게 새로운 홈런 기록에 대한 메이저리그 팬들의 열망은 한동안 어둠 속에 잠들어 있어야 했다.
한수혁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애틀 매리너스 한수혁, 시즌 61호 홈런으로 1961년 로저 매리스와 함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공동 8위에 이름 올려] [괴수 블라드미르 게레로를 연상시키는 원바운드 공 홈런, 한수혁 “그 이상 좋은 공이 안 들어올 것 같아 그냥 스윙했다. 좋은 결과로 이어져 다행이다.”] [61호 홈런볼의 주인공은? 시애틀 팬 토마스 프랭크(15)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게 다 한수혁 선수 덕분이다. 우리 가족 전체가 그를 위해 기도드릴 것.”] [시애틀 매리너스 관계자 “지난 60호와 61호 홈런 모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해 구단 박물관에 전시할 예정.”] [한수혁의 선제 홈런, 그리고 기대치 않은 백업포수 레너드 존스의 2타점 적시타, 시애틀 매리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3 대 2로 꺾고 연승 행진 이어가] [타석에서뿐만 아니라 마운드 위에서도 맹활약한 한수혁, 9이닝 2실점 완투, 시즌 17승째 수확하며 아메리칸 리그 다승 부문 단독 선두] [시애틀 매리너스 벤자민 레이놀즈 감독 “투타에 걸쳐 엄청난 공헌을 한 한수혁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내일 경기 역시 중요하지만 그에게 하루 휴식을 부여하기로 했다. 한수혁의 플레이를 보고 싶은 팬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남은 시즌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 [한수혁 결장 소식에 시애틀 VS 시카고 간 4차전 경기 예매 취소표 쏟아져, 슈퍼스타가 리그 흥행에 미치는 영향은?]* * *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4연전에서 먼저 3승을 거둔 벤자민 레이놀즈 감독은 치열했던 경쟁 구도가 선수들의 체력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판단했다.
이에 마지막 4차전에서 한수혁과 타이 존슨, 조쉬 올리버 등 피로도 관리가 필요한 주전 선수 여럿을 제외하는 결단을 보였다.
그럼에도 선발투수 마이크 워렌의 호투와 백업 선수들의 분발로 9회까지 4 대 4 팽팽한 경기를 이어갔지만, 9회초 등판한 조나 버로우가 상대팀 3번 타자 액토르 마르티네스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하며 연승 행진이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팀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메리칸 리그 전체 승률 2위 자리를 지켰을뿐더러 주전들을 대신해 경기에 투입된 백업 선수들이 주전 못지않은 활약을 보이며 팀 전체에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렇게 달콤했던 홈 19연전을 마친 시애틀은 다시 원정을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전반기 끝내지 못한 인터리그 경기와 취소 경기 등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시애틀은 하루 동안의 달콤한 이동일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전날 경기에 대타로조차 나서지 않고 완벽한 휴식을 취한 한수혁 등 몇몇 선수들은 사실상 이틀간의 휴식을 갖게 된 셈이다.
– 방송 끝나는 대로 바로 떠날 수 있도록 전세기를 준비해놓겠습니다. 그걸 타고 오시면 됩니다.
“좋아요. 고마워요, 다니엘.”
– 별 말씀을,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하십시오.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다른 선수들이 전용기를 이용해 신시내티로 떠나던 그때, 한수혁은 시애틀에 홀로 남았다.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NBC 방송국에서 요청한 미국 최고의 토크쇼, 지미 펄튼쇼에 출연하기 위해 시간을 비운 것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의 투타 모든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인 한수혁.
미국 내 최고의 인사들만 출연한다는 지미 펄튼쇼에서 그를 섭외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토크쇼에 섭외 요청을 받은 게 한수혁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빠, 저만 믿으세요.”
“음?”
“이상한 질문 하면 제가 다 커트할 테니까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흠.”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NBC에서는 한수혁과 함께 민예린을 동반 초청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로 부상한 한수혁, 그리고 한국을 넘어 미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팝스타 민예린 커플.
그 커플을 향해 수많은 관심이 쏟아졌지만 외부에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었다.
시애틀 구단, 그리고 한수혁을 보호하고자 하는 여러 사람들이 이중삼중으로 보호막을 쳐둔 상태였다.
소문에 듣자 하니 이번에 두 사람을 섭외하는 데 성공한 NBC 관계자가 내부 승진 명단에 포함될 거라는 소식이 들릴 정도로 한수혁과 민예린 커플의 방송 출연은 화제 그 자체였다.
“아무튼 오빠는 저만 믿으시면 돼요.”
“흠.”
자신의 전공 분야인 방송인 만큼 한수혁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하는 민예린.
그런 그녀를 한수혁이 귀엽다는 듯이 바라봤다.
사실 한수혁이 지미 펄튼쇼에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미 펄튼쇼뿐만 아니라 제임스 코든 쇼, 굿모닝 아메리카 등 이름값 있는 프로그램에는 모두 출연해본 경험이 있다.
물론 회귀 전에 말이다.
“나도 방송 좀 해봤는데.”
“네? 에이, 오빠가 무슨 방송을. 제가 뻔히 아는데.”
“흠, 진짠데.”
생각해보면 출연을 많이 하긴 했지만 딱히 기억하고 싶진 않은 과거였다.
몸값을 높이기 위해 방송 출연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사회자가 지껄이는 말에 흥분해 폭주한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왜 여자를 만나지 않는 거냐, 혹시 특별한 성적 취향을 가진 건 아니냐부터 시작해서 툭하면 주먹질을 하는 이유가 뭐냐, 혹시 UFC에 진출할 생각은 없냐 등등.
야구와는 전혀 상관없는, 오직 시청률을 위해 출연자 속을 긁어대던 사회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중 한 놈의 얼굴에 펀치를 먹일 뻔한 이후 한수혁은 방송국의 그 어떤 출연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만 믿으시라니까요? 제 본업이 이건데요. 헤헤.”
“으음.”
머리카락을 비비 꼬며 자신을 바라보는 민예린을 본 한수혁이 자기도 모르게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화내지 않고 방송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번 촬영을 위해 특별히 시애틀 현지에 마려된 공개부스홀, 그곳을 향해 두 사람이 출발했다.
* * *
“더 이상 들어줄 필요 없는 헛소리군요.”
“네?”
“기록을 세우는 데 다른 선수들이 발목을 잡는 거 아니냐고요? 태어나서 들어본 질문 중에 가장 멍청한 헛소리네요.”
자신의 이름을 딴 미국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인 지미 펄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사실 별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저 타이 존슨을 제외하면 특별할 게 없는 타자들 때문에 홈런 기록을 세우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느냐 하는, 뭐, 그냥 시청자들과 방청객들을 가볍게 웃기기 위한 멘트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던 한수혁이 대뜸 그 말을 잘라버렸다.
미국 최고의 토크쇼 진행자라는 자부심으로 먹고 살던 지미 펄튼으로서는 상당히 치욕스러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가 상당히 오랜 기다림 끝에 마련되었다는 걸 상기한 그가 인내심을 발휘하며 다음 멘트를 이어갔다.
“흠, 좋아요. 제 말이 약간의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는 것, 인정하죠. 그럼 조금 더 가벼운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여기 옆에 나와 계신 민예린 씨와 상당히 깊은 관계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결혼을 전제로 사귀는 중인가요? 아니면 그냥 서로 가볍게 즐기는 엔조이?”
이것은 미국식 조크인가, 아니면 시비를 거는 것인가.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과 민예린에 대한 이야기다.
“질문 수준이 정말 한심하군. 기껏 바쁜 시간을 쪼개서 나왔는데 이런 것밖에는 물을 게 없나요?”
“네?”
살짝 기분이 상하긴 했지만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참고 넘기려 했던 민예린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한수혁을 말렸다.
하지만 한 번 입이 터진 한수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한 번만 더 헛소리를 지껄이면 오늘 녹화는 여기서 끝입니다.”
“허, 뭐 이런… 좋아요. 그럼 당신이 원하는 질문을 던져드리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2001년 배리 본즈가 기록한 73개의 홈런, 그 기록을 존중합니까? 그리고 깰 자신은 있습니까?”
“존중? 아뇨, 존중하지 않습니다. 깰 자신? 투수들이 승부를 피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요.”
“방금 그 발언은 메이저리그 154년 역사를 부정하려는 건가요? 승리를 위해 신중한 승부를 가져가려는 다른 팀 투수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너무 없는 것 아닙니까?”
사실 이 정도까지 나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토크쇼를 진행하며 평생 출연자와의 기 싸움에서 밀려본 적 없는 지미 펄튼의 입에서 다소 공격적인 멘트가 튀어 나왔다.
미국 최고 방송국의 최고 토크쇼, 최고의 사회자라는 자존심이 그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 것이다.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끝났다.
“도대체 뭐라는 거야, 짜증 나게? 예린아, 일어나. 가자. 괜히 시간만 버렸다.”
“이렇게 녹화를 끝내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한수혁 선수.”
“헛소리 하지 말고 잘 들어요. 나는 우리 팀 동료들을 누구보다 존중하고 존경합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좋은 동료이고 투사이니까요. 그리고 나는 타자와 싸울 준비가 된 투수들에 대해 깊은 존중을 갖고 있습니다. 눈만 마주쳐도 도망부터 치려는 얼간이들 말고, 진짜 투수들 말이에요. 이제 됐다. 진짜 가자, 예린아.”
한수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뒤이어 얼굴이 차갑게 굳은 민예린이 뒤따라 일어나며 저 멀리 서 있는 담당 PD를 향해 말했다.
“올해 NBC 크리스마스 공연 참가는 취소예요. 아니, 앞으로 NBC에서 진행하는 그 어떤 프로그램에도 제가 참여할 일은 없을 겁니다. 가요, 오빠.”
민예린의 말을 들은 PD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방청객들이 웅성거렸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한 지미 펄튼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방청객들을 향해 말했다.
“거참, 상당히 성질 급하고 공격적인 사람이군요. 우리가 오늘 게스트를 잘못 모신 것 같네요. 안 그런가요, 여러분?”
* * *
엉망진창이 된 녹화분을 그냥 폐기할까, 아니면 방송할까 고민하던 지미 펄튼과 NBC 측은 고심 끝에 그 내용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다. 물론 사회자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도록 교묘한 편집을 거쳐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이 저지른 최악의 실수였다.
“조, 지금 저것들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들어볼 필요조차 없는 헛소리군요, 도련님.”
“일단 저기 들어가는 우리 광고 다 빼. 그리고 바로 인수 작업 들어가고. NBC 측에 전해. 저 헛소리하는 놈 또 한 번 TV에 얼굴 비치면 방송국 인수하자마자 그대로 공중분해 해버릴 거라고.”
“곧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수혁이 형 기록 때문에 안 그래도 신경 쓰이는 판국에 저런 날파리들 안 달라붙게 신경 좀 더 쓰고.”
“알겠습니다.”
토크쇼 사회자의 멍청한 짓거리로 인해 NBC 방송국이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져 있던 그때, 한수혁이 합류한 시애틀은 또 한 번의 길고 긴 원정을 시작했다.
신시내티와 피츠버그와의 인터리그, 그리고 토론토와의 잔여 경기에서 시애틀은 5승 3패를 기록하며 선전했다.
시즌 성적 84승 47패, 승률 0.641. 여전히 양키스에 이어 아메리칸 리그 전체 승률 2위에 해당하는 좋은 성적이었다.
한수혁의 분전 역시 계속되었다.
투수로서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2차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비록 타선의 침체로 승수를 추가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시즌 총 22번을 선발로 등판해 169이닝을 던져 17승, 평균자책점 0.59를 기록 중인 투수를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그건 타격 쪽이었다.
홈런을 몰아치며 당장이라도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였던 한수혁의 방망이가 잠깐 주춤한 것이다.
사실 부진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해당 기간 0.398의 타율과 0.455의 출루율, 거기에 6개의 타점을 기록한 타자를 부진하다 평가하면 리그에서 부진하지 않은 타자를 찾는 게 어려울 테니까.
다만,
“젠장! 내일은 꼭 쳐야 해!”
“이제 31경기 남았다고! 충분해, 할 수 있어!”
“시애틀에서 여기까지 따라왔다고, 그러니까 힘내! 한수혁!”
그 기간 동안 홈런이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저 기록 달성의 희생양이 되기 싫은 투수들이 좋은 공을 주지 않았고, 한수혁은 팀의 승리를 위해 그 안 좋은 공을 받아쳐 안타를 만드는 데 집중했을 뿐이다.
어쨌든,
한수혁의 홈런 숫자가 61개에서 늘어나지 않자 야구팬들은 얼마 전 한수혁과 충돌을 일으킨 후 사회자 자리에서 잘린 지미 펄튼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이게 다 그 개자식 때문이야.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한수혁의 심기를 건드려놓은 거라고.”
“빌어먹을 자식, 무례하기 짝이 없는 자식. NBC가 올해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건 그놈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린 거야.”
“젠장, 아무튼 내일은 꼭 홈런을 치겠지?”
“당연하지, 잠깐 주춤하지만 그는 곧 다시 일어설 거야. 그리고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홈런 타자로 기록되겠지. 지금 우린 그 역사의 현장을 보러 가는 거라고.”
“좋아, 비록 이 거지 같은 나비 채를 50달러나 주고 샀지만 그의 홈런을 볼 수만 있다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각자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은, 그야말로 연합군이라 불러도 무방한 여러 팀의 야구팬들이 한수혁의 경기를 보기 위해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들의 손에는 시애틀에 사는 괴짜 너드 테일러 머피가 수작업으로 제작, 판매한 나비 채가 하나씩이 들려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한수혁의 홈런 기록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시애틀이 상대하게 된 팀은 다른 아닌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빨간 양말 군단의 홈구장, 펜웨이파크에 미국 야구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