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2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24화(325/412)
#324. 그가 등판할 차례다
매년 치러지는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는 고교와 대학 야구팀을 합쳐 1만 개를 훌쩍 넘기는 미국 내 아마추어 선수들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도미니카 공화국, 쿠바, 베네수엘라, 푸에르토 리코 등 인접 국가의 선수들이 모두 참가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런 엄청난 경쟁을 뚫고 메이저리그 구단의 지명을 받는 선수가 일 년에 고작 600명 남짓.
여기까지만 해도 기가 질릴 지경인데 그렇게 지명을 받은 선수가 마이너리그 레벨을 모두 통과해 빅리그 유니폼을 입고, 다른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주전까지 차지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주전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은 천재라 불려도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천재에도 등급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올 시즌 투타에서 메이저리그 역대급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는 한수혁 같은 선수를 다른 일반적인 빅리거들과 함께 묶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
한수혁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빅리그 선수들을 재능으로 압도하는, 한 번 본 것만으로 한수혁의 플레이를 어설프게나마 카피해낸 또 다른 천재가 있었다.
“제리, 멋진 스윙이었어. 젠장, 속이 다 시원해지네.”
“운이 좋았지.”
“아냐, 내가 보기엔 너도 저 괴물 못지않은 천재야.”
후속타 불발로 더 이상의 점수는 내지 못했지만, 제리 와그너의 멋진 2루타로 한 점을 쫓아간 보스턴의 덕아웃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특히 한수혁이 보여준 말도 안 되는 스윙에 질려 있던 보스턴 선수들은 자신들의 캡틴이 똑같이 되갚아준 것에 크게 고무되었다.
“좋아, 그럼 일단 수비부터 확실하게 해보자고.”
“가자! 레드삭스!”
그런 동료들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그라운드로 나서는 제리 와그너의 표정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제리 와그너는 생각했다.
‘생각보다 훨씬 미친놈이었군.’
방금 전 한수혁의 스윙을 따라 해 좋은 결과를 얻어낸 건 말 그대로 천운에 불과했다.
원바운드 되는 공을 때린다는 건 생각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방금 타구는 자신이 때렸다기보다 그저 공이 날아와 배트에 맞아줬다 말해야 할 그런 것이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거다. 10번 시도하면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한 그런.
그런데 한수혁 저놈은 그런 스윙을 두 번 시도해 두 번 모두 홈런을 만들어버렸다.
새삼 한수혁에 대한 공포를 실감한 제리 와그너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포구 자세를 취했다.
[7번 타자 캐처 브루스 매튜스]2회초 시애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타석에 들어선 브루스가 제리를 향해 먼저 말을 걸었다.
“젠장, 역시 너도 만만치 않은 또라이야. 그걸 그렇게 받아쳐?“
브루스의 말에 그게 아니라고 답하려던 제리가 잠깐 뭔가를 생각하더니 전혀 다른 대답을 내뱉었다.
“당연하지. 뭐, 별 거 아니던데.”
“좋아, 앞으로 널 상대할 때는 그냥 자동고의사구를 요청하자고 감독에게 말해놔야겠군.”
“흠,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일부러 약한 척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최대한 갈기를 세워 자신을 크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할 때도 있는 법.
양팀 에이스 간의 맞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오늘 경기는 명백히 후자에 속했다.
“아냐, 생각해 보니 내 생각이 짧았어. 우리 평화 협정을 맺는 건 어때? 고의사구는 없는 걸로 말이야.”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하자고, 친구.”
서로 지킬 생각이 전혀 없는 약속이 오가는 가운데 알렉스가 던진 초구가 브루스의 몸 쪽에 거의 닿을 듯 날아들어 왔다.
파앙
“스트라이크!”
“젠장, 언제 봐도 끔찍하군. 저 나이에 이런 구위라니.”
“너희 팀 타이도 만만치 않잖아.”
“그건 그래, 이 빌어먹을 리그에는 천재들이 너무 많아. 나 같은 평범한 선수는 어떻게 살아남으라고 이러는 건지.”
“맞아. 동감이야.”
“이봐, 제리.”
“왜?”
“방금 말한 천재에는 너도 포함되어 있어. 모르는 척하는 거야, 정말 모르는 거야?”
“그래? 진짜 몰랐네. 어쨌든 고마워. 그런 의미에서 한가운데 치기 좋은 놈으로 하나 주지.”
“좋아, 기대해보지.”
대화를 멈춘 브루스가 타격 자세를 취하고, 언제 농담을 주고받았냐는 듯 표정을 굳힌 제리 와그너가 투수를 향해 사인을 보냈다.
‘몸 쪽 높은 공, 최대한 가깝게.’
끄덕
슈웅
파아앙!
“볼.”
“…젠장, 애초에 믿지도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미안, 알렉스 악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공이 미끄러진 모양이야.”
몸에 맞을 듯 날아온 강력한 위협구에 놀란 브루스가 반보 정도 물러나 타격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생긴 아주 약간의 빈틈을 향해 알렉스의 포심이 날아들었다.
파아앙!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에 완벽하게 제구 된 포심에 브루스는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슈웅
부웅
“스윙! 아웃!”
같은 코스로 들어온 체인지업에 그대로 헛스윙을 하며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번 승부에서 완전히 밀렸다는 걸 깨달은 브루스가 헛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놈들 천지군.”
* * *
[양팀 에이스 간의 맞대결에서 승리한 보스턴 레드삭스, 시즌 상대 전적 2승 2패로 균형 맞춰… 9회말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 제리 와그너 “정말 어려운 경기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우리는 반드시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것.”] [시애틀 선발 라이언 티보우 8이닝 3실점, 보스턴 선발 알렉스 데이비스 8이닝 3실점, 사이 영 위너 간의 명품 투수전] [이적 후 첫 패배 기록한 시애틀의 새로운 마무리 투수 애덤 머피 “안타를 맞긴 했지만 후회는 없다. 나는 내가 던질 수 있는 최선의 공을 던졌다. 상대의 집중력이 좀 더 좋았을 뿐이다.”] [패장이 된 시애틀 벤자민 감독 “선발과 마무리, 그리고 타자들까지, 우리 팀 선수들은 모두 제 몫을 다해줬다. 다만 보스턴 선수들의 집중력이 굉장했다. 패배를 인정한다. 하지만 내일 경기는 다를 것.” 자신] [시즌 62호 홈런 기록하며 애런 저지(2022년 뉴욕 양키스)와 함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7위에 이름 올린 한수혁 “팀이 패배한 상황에서 홈런 기록 같은 건 별 의미 없다. 내일은 반드시 설욕할 것.”]└ 젠장, 경기에 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보람은 있었어. 한수혁의 62호 홈런을 내 눈으로 직관했으니까.
└ 나도 같은 생각이야. 솔직히 다른 팀 선수들 중에 제리 와그너 저 자식이 제일 무서워. 겉으로 보이는 성적하고 상관없이 중요한 순간마다 꼭 뭔가를 저지른단 말이지.
└ 어쨌든 상관없어. 오늘은 그가 등판하는 날이니까.
└ 좋아, 승리에 들떠 있을 보스턴 놈들의 기를 완벽히 죽여 놓을 기회군.
└ 난 많이 안 바라. 퍼펙트게임에 홈런 두 개 정도면 완벽할 거 같아.
└ 제길, 지난 시즌을 생각하면 정말 꿈만 같아. 우리가 팀이 진 날에도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다니.
* * *
올 시즌 투타 양면에서 엄청난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한수혁.
양쪽 모두 역대급 성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일반 야구팬들의 관심은 타자 한수혁 쪽으로 많이 쏠려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야구를 깊이 파고들지 않는 일반 야구팬들에게 홈런이 갖고 있는 화려함은 그 무엇보다 큰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팀의 선수와 코칭스태프들, 그리고 전문가들은 한수혁의 투구 능력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었다.
총 22번을 선발 등판해 169이닝을 던진 한수혁은 17승, 평균자책점 0.59라는 말도 안 되는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0.59라는 평균자책점은 지난 196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밥 깁슨이 갖고 있는 단일 시즌 최저 평균자책점 1.12의 절반밖에 안 되는 압도적인 수치였다.
쉽게 말해 그런 거다.
한수혁이 등판하는 경기에서는 딱 한두 점만 내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
어제 에이스 간의 맞대결에서 패배한 시애틀 라커룸의 분위기가 전혀 쳐지지 않은 건 모두 그 때문이었다.
“좋아, 제군들. 어제의 패배는 잊어라. 아직도 우리는 서부지구 챔피언이고, 보스턴 저놈들은 동부지구 2위에 불과해. 오늘과 내일 두 경기 반드시 잡아내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볼티모어로 넘어가는 거다. 준비됐지?”
“물론이죠, 보스!”
“내가 바라던 대답이야. 자, 오늘 라인업이다.”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투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짐 브라운
6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7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8번 3루수 리암 랜드먼
9번 2루수 조나단 오웬스
라인업 용지를 확인한 데릭이 들고 있던 음료수를 단숨에 들이키며 말했다.
“좋아, 오늘은 이 출루왕께서 활약하실 시간이군.”
“언제는 출루율 같은 데는 전혀 관심 없다더니.”
“누가? 내가? 대체 어떤 놈이 그런 헛소리를? 최고의 팀에는 최고의 리드오프가 필요하고, 최고의 리드오프라면 당연히 출루율이 높아야 하는 것 아니겠어?”
장타를 늘려 30-30 타자가 되고자 했던 데릭 플레밍은 이제 자신의 역할이 어떻게든 한수혁 앞에 출루해 그를 거르지 못하게 하는 거란 걸 깨달은 상태였다.
그런 마음가짐의 변화 덕분일까, 데릭의 성적은 커리어 하이를 달리고 있었고, 시애틀은 언제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진정한 리드오프를 갖게 되었다.
“다들 모여 봐. 감독님도 말했지만 오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해. 초반에 승부를 보자고. 저 친구가 마운드에 있을 때 말이야.”
“당연하지. 이봐, 한. 걱정하지 마. 내가 승리투수로 만들어줄 테니까.”
멋대로 떠드는 동료 선수들을 뒤로하고 한수혁이 먼저 그라운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저 평균자책점, 그리고 최고 홈런 기록으로 향하는 또 한 번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멋진 저녁이야. 안 그래?”
“동감이야. 데릭.”
“그런 의미에서 좋은 공 하나 부탁해.”
“먼 곳에서 온 손님인데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줘야지. 좋아, 한가운데 포심 기대하라고.”
어제 3번에서 오늘 다시 1번 자리로 복귀한 데릭 플레밍과 제리 와그너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대화를 끝낸 제리가 묘한 표정으로 데릭을 바라보았다.
준수한 선구안과 섬세한 타격 능력, 적당한 배팅 파워, 거기에 발도 빠르고 수비 센스도 뛰어난, 흔히 말하는 5툴 플레이어의 전형과도 같은 선수다.
하지만 지난 시즌까지는 상대하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한눈에 봐도 큰 걸 노리는 게 훤히 보였기에 유인구로 살살 도망 다니다 보면 알아서 헛스윙을 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시즌 시애틀의 리드오프가 된 데릭 플레밍은 지난 시즌까지와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되었다.
어떻게든 1루로 출루해 곧바로 도루를 시도하는, 그런 전형적인 리드오프보다는 출루율과 장타력을 갖춘 OPS형 리드오프가 더욱 선호되는 시대다.
하지만 시애틀의 경우에는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2번과 3번에 각각 현 시대, 그리고 지난 시대를 대표하는 강타자가 줄줄이 등장하는 만큼 1번에게 요구되는 가장 첫 번째 항목은 무슨 수를 써서든 1루로 출루하는 것이었다.
시즌 초반만 해도 그런 역할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던 데릭은 이제 그걸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선수가 되었다.
따악
“파울!”
스리 볼 투 스트라이크 상황.
오늘 보스턴의 선발로 나선 라파엘 실바의 바깥쪽 포심을 데릭이 가볍게 커트해냈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든 공을 잡아당기려 애쓰던 데릭이 투구의 결에 맞춰 가볍게, 가볍게 계속 공을 걷어내고 있었다.
마운드 위 투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투수의 심기를 건드리는 타자.
뛰어난 구위와 터프한 배짱으로 레드삭스 군단의 차세대 에이스로 불리는 라파엘이었지만 그런 타자와의 신경전을 이겨낼 정도로 여물지는 못했다.
“볼, 타자 1루로.”
“우아아아아아!”
“좋아! 데릭!”
“저 자식, 기어코 해냈어!”
그저 선두 타자가 볼넷을 얻어 나간 것뿐이건만, 시애틀 덕아웃과 원정 응원단 쪽에서 경기에 이긴 듯한 엄청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건 바로 이 사내 때문이었다.
[2번 타자 피처 한수혁]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와 함께 한수혁이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타석을 향해 걸어나왔다.
“하아…….”
제리 와그너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