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2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25화(326/412)
#325. 넘어야 할 기록
단일 시즌 홈런 순위 7위에 해당되는 62개의 홈런, 그리고 그 바로 위 6위에 랭크된 63개의 홈런.
차이는 불과 한 개뿐이지만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주는 느낌은 상당히 달랐다.
그건 단일 시즌 홈런 순위 10위부터 7위까지의 기록이 약물과 상관없는, 말 그대로 청정 타자들의 기록이라면 그 위 6위부터 1위까지의 기록은 약물로 얼룩진, 메이저리그의 치부와도 같은 기록이기 때문이다.
기록에 남아 있는 걸 부정할 수는 없지만 차라리 누군가 빨리 깨주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그런 팬들의 염원이 하늘에 닿았다.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시즌 5차전 1회초 무사 1루 상황,
한수혁이 때려낸 타구가 그들이 지우고 싶어 하는 영역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 으아아! 으아아! 갑니다! 갑니다! 계속 날아갑니다!
– 넘어갔어요! 드디어! 마침내! 비로소! 한수혁 선수가 시즌 63호 홈런을 날리며 1999년 새미 소사와 함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6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 아, 공을 놓친 관중들이 너무 안타까워하는군요.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린몬스터 위를 넘어 장외로 날아가는 타구를 잡으려면 비행슈트가 필요할지도 모르니까요.
– 네, 2단 변신 나비 채로도 커버가 안 되… 아,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죠! 자, 이제 말이죠. 한수혁 선수는 정말 중요한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시즌 63호부터는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약물의 힘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그런 영역에 한수혁 선수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발을 디뎠습니다!
– 그러네요. 이제부터는 정말 홈런 하나를 칠 때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셈이군요.
– 맞습니다. 하아… 진짜 한수혁 선수가 처음 KBO 데뷔할 때부터 잘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 위원님? 저기, 위원님. 혹시 지금 우시는 건가요?
– 억울해서요. 하, 제가 한수혁 선수 얘기를 할 때마다 뭘 받아먹었다느니, 뒤를 ㅃ…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상한 놈 취급을 당했던 걸 생각하면 정말 분통이 터지네요. 보세요! 제 말대로 한수혁 선수는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이걸 가장 처음 알아본 게 바로 저라는 겁니다!
– 무슨 말씀인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자, 다이아몬드를 한 바퀴 돈 한수혁 선수가 데릭 플레밍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덕아웃으로 돌아갑니다. 스코어 2 대 0, 어제 경기에서 패한 시애틀이 먼저 두 점을 선취합니다.
– 솔직한 말이지만 이미 경기는 끝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보스턴이 한수혁 선수 상대로 2점? 글쎄요, 가능할까요?
– 그나저나 투수가 영 정신을 못 차리네요. 1회초부터 투수 코치가 마운드 위로 올라오면서 경기가 잠시 중단됩니다. 그럼 저희도 광고 보고 돌아와야겠군요. 이곳은 원정팀 시애틀 매리너스와 홈팀 보스턴 레드삭스 간의 시즌 5차전이 펼쳐지고 있는 미국 보스턴 펜웨이파크입니다.
* * *
“젠장, 가운데로 몰렸어. 미안해요.”
“아냐, 라파엘. 원하는 곳으로 백프로 공을 던질 수 없는 투수는 없… 아니, 있긴 있군. 저기 저 괴물.”
“…아무튼 이제 괜찮아졌어요. 그러니 다시 시작하죠.”
“좋아, 두 점은 일단 머리에서 잊어. 저놈이 아무리 괴물이라 해도 두 점 정도는 쫓아갈 수 있어. 그동안 우리가 할 일은 동료들을 믿고 버티는 거야. 할 수 있겠지?”
“네, 제리.”
“자, 다시 시작해보자고.”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투런 홈런을 맞고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투수를 달래준 제리 와그너가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타석에는 시애틀의 3번 타자 타이 존슨이 들어섰다.
“어때, 멋진 홈런이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 팀의 루키는 정말 끔찍해요.”
“흐흐, 그 정도에 놀라면 곤란해.”
제리 와그너는 생각했다.
방금 전 홈런을 맞은 공은 명백한 실투였다.
무사에 주자가 1루에 있는 상황에서 한수혁을 거를 수 없었던 제리는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져 나가는 슬라이더를 요구했는데, 아직 구위에 비해 제구력이 조금 부족한 라파엘의 공이 존 한가운데로 들어온 것이다.
아무리 실투였다고 해도 단 한 번에 그 공을 받아쳐 홈런으로 만들었다는 게 너무나도 끔찍했다.
하지만 잊어야 한다. 이건 그냥 자연재해 같은 거다.
정신을 차린 제리가 신중한 자세로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몸쪽 포심, 최대한 낮게.’
제리의 사인이 피치컴을 통해 투수에게 전달되고, 이를 들은 야수들이 주춤주춤 수비 위치를 변경하며 타이 존슨을 압박했다.
하지만,
따아악!
“젠장!”
어깨에 힘을 완전히 뺀 타이 존슨의 가벼운 스윙이 그 공을 정확히 받아쳤다.
유격수 머리 위를 살짝 넘기는 안타를 친 타이 존슨이 1루 베이스 위에서 원정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예전, 홈런을 날리고 다이아몬드를 돌던 타이 존슨도 무서웠지만, 저렇게 욕심 없는 스윙을 할 수 있게 된 그는 더더욱 무서웠다.
“…쉽지 않네. 이거.”
하지만 제리, 아니, 보스턴의 시련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무사 주자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시애틀의 4번 타자 척 클락.
그가 초구에 보내기 번트를 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툭
“세컨! 아니, 퍼스트!”
“아웃!”
언제나 그렇듯 상황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역할을 하는 데 충실한 시애틀의 4번 타자가 덕아웃에서 지시한 보내기 번트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냈다.
그렇게 1사 주자 2루 상황이 만들어지고 타석에 들어선 짐 브라운이 라파엘의 초구를 그대로 잡아당겼다.
따아악!
“안 돼!”
“Fuck! 대체 뭐 하는 거야!”
보스턴 팬들의 아우성 속에 2루에 있던 타이 존슨이 3루를 돌아 홈까지 파고들었고, 1루 베이스 위에서는 짐 브라운이 특유의 침착한 표정으로 관중들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순식간에 스코어 3 대 0,
보스턴 선수들의 머릿속에 패배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내 홈런 숫자가 점점 늘어나며 앞선 선수들이 쌓아올린 기록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기자들이 종종 나타났다.
글쎄,
만 33세의 젊은 나이에 홈런 400–도루 400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의 홈런 대결에 묻힌 배리 본즈는 그들 위에 서기 위해 약물의 길을 선택했다.
사실 약물에 손을 댄 선수들 중 이들 셋이 가장 유명해서 그렇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메이저리그는 그야말로 대약물의 시대라 불러도 좋을, 혼돈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그렇게 약을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던 시기였기에 모든 유혹을 뿌리친 켄 그리피 주니어 같은 선수들의 업적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어쨌든,
인간으로는 아주 약간이나마 이해가 가지만 야구인, 아니, 스포츠인의 관점으로 돌아와서 생각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그들이 쌓아올린 부정한 기록들을 모두 삭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순수한 육체의 힘만으로 자신, 그리고 상대와 싸워나가고 있는 수많은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모독이니까.
“플레이!”
3회초 공격,
내 두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첫 타석에서의 홈런은 솔직히 운이 좀 따랐다.
마운드 위 저 라파엘 실바라는 투수가 아직 제구력에 문제가 좀 있다 해도 그렇게 한가운데 실투를 던질 정도로 엉망은 아니다.
그저 오늘 경기에 대한 과도한 압박감이 그의 손을 미끄러지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타자이기에 앞서 투수이기도 한 나는 오늘 같은 경기에서 투수가 어떤 생각을 갖게 되고, 또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처음 잘못 꼬인 실타래를 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 터진 투수는 또 터진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스르륵
무사 주자 없는 상황,
라파엘의 초구가 바깥쪽 가장 낮은 코스를 향해 맹렬히 날아왔다.
장타를 만들기 쉽지 않은 코스이지만, 오늘 이 타석에서 이 이상의 공이 들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때린다.
따아아아아악!
“우아아아아아아아아!”
“또 간다! 가아아아안다!”
“제발 이쪽으로! 이쪽으로!”
살짝 배트 끝에 맞긴 했지만 그럭저럭 힘이 실린 타구가 우측 펜스를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배트를 지팡이처럼 짚은 채 그 타구를 바라보았다.
파울이 될지 페어가 될지, 플라이가 될지 홈런이 될지 확실치 않은 타구.
보스턴의 우익수가 전력을 다해 그 공을 쫓아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개자식들아! 펜웨이파크에서 꺼져! 그 빌어먹을 나비 채 저리 치우고!”
“뭔 개소리야! 헛소리하지 말고 비켜!”
우측 외야 관중석에 앉아 있던 관중들이 타구의 방향을 쫓아 사방으로 흩어졌고, 낙하 지점을 캐치한 우익수가 펜스 바로 앞에서 힘껏 점프를 했지만,
터엉
“아아아악! 그게 왜 거기 맞아!”
“안 돼! 내놔! 내놓으라고!”
“빌어먹을 자식! 빨리 그 공을 이리 던져!”
“던져! 이쪽으로 던지면 내가 천, 아니, 만 달러를 줄 테니까 빨리 이리 던지라고!”
홈플레이트부터 불과 90m밖에 안 떨어진 펜웨이파크의 우측 폴대, 일명 ‘페스키 폴’(Pesky’s Pole)에 맞은 타구가 그라운드 안으로 툭 떨어졌다.
눈앞에서 일확천금을 놓친 관중들이 펜스 밖으로 손을 내민 채 아우성을 쳤다.
쏟아지는 함성과 야유 속에 한수혁이 천천히 다이아몬드를 돌기 시작했고, 홈런볼을 잡은 보스턴의 우익수가 참담한 표정으로 손 안의 공을 바라보았다.
한 경기 만에 터진 두 개의 홈런.
한수혁의 이름이 2001년 새미 소사의 이름 바로 옆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 * *
“애덤. 어제의 기분 나쁜 기억을 말끔히 씻어버릴 기회야.”
“당연하죠. 전 준비됐습니다.”
“좋아, 저 빨간 양말들을 잡는 건 자네에겐 일도 아니겠지. 나가서 자네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보여주도록.”
비록 팀에서 버림받다시피 쫓겨나 시애틀의 선수가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20년 넘게 보스턴과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던 애덤 머피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한수혁의 홈런 두 방과 짐 브라운의 적시타, 거기에 상대 실책 등을 묶어 5점을 낸 시애틀은 한수혁의 투구 수가 95개에 달하자 미련없이 그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8이닝 1실점 1자책점 15K.
오랜만에 2루수로 선발 출전한 조나단 오웬스의 실책성 플레이가 아니었다면 한 점도 안 줬을지도 모를 완벽한 투구 내용이었다.
9회말, 오늘 경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시애틀의 마무리 애덤 머피가 마운드에 올랐다.
비록 어제 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맞긴 했지만 그는 애덤 머피였다.
오랜 시간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고 레드삭스를 학살하던 애덤 머피.
그가 1이닝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로 보스턴의 마지막 반격을 무효화시켰다.
따아아악!
“아웃!”
“됐다! 이겼다!”
“역시! 믿었다고, 한! 네가 최고야!”
“홈런 5위 달성 축하해! 빨리 더 쳐서 망할 놈들 위에 우뚝 올라서라고!”
“넌 시애틀의 영웅이고 희망이야!”
날이 갈수록 숫자가 늘어나는 듯한 시애틀 원정 응원단의 함성에 한수혁과 시애틀 선수들이 모자를 벗어 답례했다.
시즌 성적 85승 48패 승률 0.639.
한수혁이 단일 시즌 최다 홈런 5위에 이름을 올린 그날,
시애틀은 월드시리즈 진출을 향해 한 발을 더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