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2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27화(328/412)
#327. 노장의 포효
“초롱아, 이쪽으로 와. 옳지. 여기 앉아서 우리 같이 야구 보자.”
가수 활동 복귀 준비로 인해 시애틀의 원정길에 동참하지 못한 민예린.
그녀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강아지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TV 속 한수혁의 경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한수혁의 뒤를 따라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오고, 이곳 시애틀에 새 집을 마련하고, 그에게서 여자 친구로 인정을 받고, 엉망이 되긴 했지만 함께 토크쇼에도 출연하며,
민예린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한수혁의 파트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민예린에게도 여전히 한수혁은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런 어려움이 두 사람 모두 연애 경험이 거의 없다는 데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초롱아, 우리 오빠 외로워 보이지? 응? 네가 봐도 그렇지?”
3회초 시애틀의 공격,
TV 속 한수혁이 담담한 표정으로 타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최다 홈런 신기록, 4할 타율, 0점대 평균자책점, 거기에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까지 수많은 짐을 떠안고 있는 한수혁.
힘들지 않냐는 그녀의 물음에 한수혁은 이렇게 대답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민예린은 그 대답이 너무나 슬프게 느껴졌다.
어쩌면 한수혁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감정을 스스로 억누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이유가 아직 기댈 곳을 찾지 못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를 따라오는 건 자신이 아직 그에게 완전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었다.
무릎 위 초롱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민예린이 말했다.
“나는… 오빠가 나한테 조금 더 솔직해졌음 좋겠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녀는 알고 있다.
한수혁이 겉보기와 달리 세심하고 여린 사람이라는 걸,
다른 사람 일에 별 관심이 없는 척하지만 조금이라도 연이 닿은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쓰는 사람이라는 걸,
누군가의 기대가 자신에게 쏠릴 때 그걸 이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 역시 부담감과 책익감 앞에 힘들어하는 보통의 사람이라는 걸.
그런 속마음을 한수혁은 저렇게 평범한 표정과 태도로 애써 감추고 있을 뿐이다.
세상 그 무엇보다 한수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민예린은 그것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내려놓아도 괜찮을 텐데.
힘들 때는 힘들다 말하고, 외로울 때는 외롭다 말해주면 좋을 텐데.
그래야 스스로가 더 편해질 텐데.
“초롱아, 내가 아직 부족한가 봐. 더 노력해야겠다. 그치?”
“끼이잉.”
주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초롱이가 그녀의 손등을 정성껏 핥아주었다.
그런 초롱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민예린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빠, 힘내요.”
* * *
타이 존슨의 적시타와 마이크 워렌의 호투로 1 대 0으로 앞서 나가고 있는 시애틀의 3회초 공격,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한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분명 시애틀에 두고 왔건만, 오늘 경기 전에도 시애틀에 있는 그녀와 메시지를 주고받았건만,
방금 전 어디선가 민예린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너무 많이 들어 이제는 그 세세한 톤까지 구별할 수 있는,
힘내라는 민예린의 목소리.
하지만 방금 전까지 시애틀에 있던 그녀가 이곳에 나타날 수 있을 리 없다.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린 한수혁이 스파이크로 타석을 찍으며 투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첫 타석에서 고의사구를 당한 탓에 오늘 처음으로 상대하게 된 보스턴의 3선발 브라이언 베일리.
2025년 자이언츠 소속으로 사이 영 상을 수상한 후 갑자기 노쇠화가 시작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기량을 인정받아 보스턴으로 트레이드되어 온 베테랑.
한수혁의 머릿속에 그가 주로 던지는 구종과 구질이 줄줄이 떠올랐다.
살짝 싱커성의 움직임을 보이는 포심과 다른 투수들에 비해 상당히 빠른 체인지업, 그리고 간간히 던지는 커브까지.
전성기에는 그 세 개의 공만으로 리그를 호령했던,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구위보다는 제구력과 머리싸움으로 타자를 요리하게 된 투수.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그가 1점 차 뒤진 상황에서 선두 타자에게 볼넷을 줄 정도로 멍청하거나 제구력이 부족한 투수가 아니라는 거다.
아마도 존 구석구석을 찔러오는 유인구로 타자의 배트를 끄집어내려 할 것이다.
“플레이!”
주심의 목소리와 함께 브라이언 베일리가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파앙
“볼.”
존 바깥쪽을 거의 훑듯이 스쳐 지나가는 커브.
배트를 낼까 말까 고민하던 한수혁이 그 공을 참아냈고 볼이 선언되었다.
단일 시즌 최다 홈런까지 이제 10개만이 남은 상황.
다른 타자들 같으면 어떻게든 장타를 치기 위해 발버둥을 쳤겠지만 한수혁에게서는 전혀 그런 낌새를 느낄 수가 없었다.
한수혁은 알고 있었다.
장타를 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조바심이 아닌 평정심이라는 것.
야구의 기록이란 건 결국 평균으로 수렴하게 마련이다.
올 시즌 133경기를 치르며 64개의 홈런을 때려낸 자신이다.
산술적으로 대략 2경기당 1개의 홈런이 나왔다. 그렇다는 건 현재 페이스만 지키면 남은 29경기 동안 10개 정도의 홈런은 충분히 가능하리라는 계산이었다.
물론 세상일이란 게 반드시 계산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상관없다.
그는 이제 내일 모레 은퇴를 걱정하는, 온몸에 부상을 달고 있는 늙은 야구선수가 아니었으니까.
만약 올 시즌 기록 달성에 실패하면?
그럼 다음 시즌, 그래도 안 되면 다음 시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기록에 대한 부담감을 완전히 떨쳐낸 한수혁이 투수가 던질 다음 공을 기다렸다.
그리고,
슈웅
따아아아악!
존 중앙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이 포수의 요구보다 약간 높게, 겨우 공 반개 정도 높게 들어왔고, 그 약간의 차이를 감지해낸 한수혁의 배트가 힘차게 돌았다.
– 으아아아아! 드디어! 드디어! 갑니다! 갑니다! 계속 날아갑니다! 한수혁 선수가 친 타구가 좌측으로, 좌측으로, 넘어, 갔습니다! 넘어갔어요! 이번 3연전 동안 한수혁 선수가 그린몬스터를 완전히 박살 내버립니다. 시즌 65호! 한수혁 선수가 1999년 마크 맥과이어 선수와 함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4위에 이름을 올립니다!
– 아! 정말 방금 홈런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멋진 배트 컨트롤이었습니다. 느린 영상 보세요. 포심을 예상하고 나오던 배트가 중간에서 잠깐 멈추죠? 체인지업인 걸 알아챈 거예요. 그리고 잠깐 멈칫했던 배트가 그대로 쭉 뻗어 나오는 거 보이시죠? 이게 엄청난 힘과 기술이 없으면 절대 불가능한, 하아… 진짜 울컥하네요.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홈런 65개를 치는 걸 보게 될 줄이야.
– 홈런을 맞은 브라이언 베일리 선수가 마운드 위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니다. 정말 기가 질린다는 표정이네요.
– 사실 잘 던진 공이었어요. 포수가 리드한 것보다 살짝 높게 들어가긴 했지만 100점 만점에 90점 정도는 줄 수 있는 멋진 체인지업이었거든요. 그냥, 한수혁 선수가 워낙 잘 쳤습니다. 괜찮아요. 브라이언 베일리, 당당히 고개를 들어도 돼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거든요.
* * *
너클볼러가 갖고 있는 여러 장점 중 딱 하나만을 꼽으라면 그건 어깨에 큰 무리를 주지 않고 많은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투수들의 투구 한계수가 보통 100개 내외라고 한다면 너클볼 투수는 마음만 먹으면 200개도 거뜬히 던질 수 있다.
너클볼러는 공을 못 던져서 은퇴하는 게 아니라 내야 땅볼이 나왔을 때 1루 커버를 들어가는 게 어려워 은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깨에 가해지는 부담이 적은 게 너클볼이다.
어깨 부상이나 노쇠화 등으로 빠른 공을 던질 수 없게 된 투수들이 너클볼을 선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1회 타이 존슨의 적시타, 그리고 3회 한수혁의 홈런 등으로 석점을 내준 보스턴은 어떻게든 위닝시리즈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동원 가능한 모든 불펜투수들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런 보스턴의 노력은 결국 성공했다.
4회부터 9회까지 이어진 시애틀의 공격을 추가 실점 없이 막아낸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단 하나, 오늘 시애틀의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마이크 워렌이 미친 듯한 호투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8회 말까지 125개의 공을 던지며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은 36세 너클볼러의 역투.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노장 마무리 투수 애덤 머피를 연투시키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벤자민 감독이 마이크에게 경기를 맡기기로 했다.
“마이크, 오늘 경기는 자네가 끝내도록 해. 만루 홈런을 맞아도 탓하지 않을 테니 편하게 던져보라고.”
“감사합니다. 보스.”
다저스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온, 이제 다시는 과거의 영광스러운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좌절하던 노장이 2년 만에 찾아온 완봉승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이를 악 물었다.
수비 강화를 위해 대수비가 투입되고, 지난 3번의 타석에서 모두 삼진으로 물러난 8번 타자를 대신해 좌타자가 대타로 들어섰다.
따악!
“파울!”
풀 카운트까지 가는 접전이 이어졌고 투구 수 130개를 넘어섰지만 여전히 어깨에 여력이 있는 마이크 워렌이 마지막 승부구를 뿌렸다.
앞선 던진 너클볼보다 더 느린, 60마일에 불과한 초저속 너클볼에 타자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스윙! 아웃!”
“젠장! 어떻게든 1루에 나가라고! 아직 안 끝났어!”
“칠 수 있어! 대체 왜 저런 공을 못 치는 거야!”
팀의 패배를 눈앞에 두게 된 보스턴 팬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는 가운데 9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첫 번째 타석에서 볼넷을 골라낸 바 있는 그는 이번에도 침착하게 마이크의 너클볼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따악!
살짝 빗맞은 타구가 2루수 글러브를 피해 우익수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원아웃 1루, 경기장 내 모두의 시선이 시애틀 덕아웃 쪽으로 향했지만 그곳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불펜의 투수들 역시 모두 철수한 상황.
벤자민 감독의 뜻은 명확했다.
마무리 애덤 머피의 연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마운드 위에 서 있는 저 투수가 현 시점 시애틀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라는, 그런 메시지였다.
이마에서 미친 듯이 땀을 흘리던 마이크 워렌이 감독의 의중을 읽은 듯 힘겨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고비가 찾아왔다.
리그 최강 수준의 보스턴 테이블 세터,
1번 잭 로저스와 2번 맷 케프가 연속으로 볼넷을 얻어내며 순식간에 1사 주자 만루.
철수했던 시애틀 투수들이 다시 불펜으로 돌아갔고, 타석에 보스턴 레드삭스의 간판타자 제리 와그너가 들어섰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수명이 10년씩은 줄어드는 것 같아. 안 그래, 브루스?”
“…….”
전 타석까지만 해도 능글맞게 말을 받아주던 시애틀의 포수에게서 아무런 대답도 나오질 않았다.
더 이상 자극해봐야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제리 와그너가 입맛을 다시며 타격 자세를 취했다.
오늘 경기에서 마이크 워렌은 집요할 정도로 제리 와그너를 괴롭혔다.
너클볼이라 생각하면 포심이 날아오고, 스윙 타이밍을 포심에 맞추면 체인지업이 날아 들어왔다.
다른 타자들에게는 너클볼 하나만 던지는 투수가 제리에게만큼은 세 개의 구종을 구사한 것이다.
어쨌든 그건 모두 지난 일이다.
석 점 차 뒤진 상황에서 맞이한 1사 만루 찬스.
만약 큰 것을 때려낼 수 있다면 단번에 동점, 혹은 역전까지도 가능한 상황이다.
제리 와그너는 생각했다.
여기서는 절대 포심만 던지지는 못할 거라고,
만루 위기에 몰린 투수라면 결국 자신의 주무기를 꺼내들 수밖에 없을 거라고.
꾸욱
주인의 뜻을 읽은 제리 와그너의 육체가 자연스럽게 너클볼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아주 약간만 회전이 들어가도 70마일짜리 배팅볼이 되는 게 너클볼이다.
한순간의 실수, 혹은 방심.
지금 제리 와그너가 노리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플레이!”
자칫하면 역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마운드 위 마이크 워렌의 표정은 침착했다.
한참 동안 사인을 주고받은 마이크 워렌이 제리 와그너를 처리하기 위한 첫 번째 공을 뿌렸다.
그가 선택한 공은 위기의 순간 가장 믿을 수 있는, 은퇴를 고민하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부여해준 70마일 너클볼이었다.
공 하나에 모든 것이 달린 긴박한 순간,
마이크가 믿을 수 있는 건 그 공뿐이었다.
하지만,
던지는 순간 깨달았다.
손가락 끝에 가해진 약간의 힘이 공에 회전을 걸어버렸다는 걸.
“젠장!”
따아악!
마이크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경쾌한 타격음이 펜웨이파크에 울려 퍼졌다.
높이 11.3m에 달하는 거대한 성벽, 그 성벽에서도 가장 수비하기 까다로운, 파울 라인 선상 깊숙한 곳을 향해 날아가는 커다란 타구.
시애틀 선수들의 머릿속에 싹쓸이 동점 2루타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지던 그때,
“어어억!”
“뭐야! 언제 저기까지 간 거야?”
“안 돼! 이 빌어먹을 자식아!”
타격음이 들리는 순간 곧바로 라인을 향해 스타트를 끊은 한수혁이 맹렬한 속도로 타구가 떨어지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5미터, 3미터, 그리고 1미터,
순식간에 좁혀진 타구와의 거리,
백이면 백, 2루타가 되었을 타구를 한수혁이 다이빙캐치로 잡아냈다.
“고!”
순간, 이대로 만루 찬스를 이어가며 4번 타자에게 모든 걸 맡길 것인가, 아니면 순리대로 1점을 먼저 따라간 후 다음 타자들을 믿어볼 것인가 고민하던 3루 베이스 코치가 주자를 향해 출발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타탓
재빠르게 3루로 귀루한 보스턴의 주자가 한수혁의 글러브에 공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홈을 향해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날 보스턴이 내린 최악의 결정이었다.
공을 잡기 위해 다이빙캐치를 한 한수혁이 그라운드에서 한 바퀴 구르며 속도를 줄인 후 벌떡 일어났다.
펜스와 불과 3미터 정도 떨어진 파울라인 근처,
그곳에서 시작된 한수혁의 송구가 홈플레이트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다.
슈웅
파앙!
턱
“아웃이야!”
“아니, 세이프! 이건 세이프지!”
주자의 발이 먼저냐, 아니면 태그가 먼저냐,
한참 동안 망설이던 주심의 입이 마침내 벌어졌다.
“아웃!”
“빌어먹을! 이게 아웃이라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죽여버릴 거다!”
보스턴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VR판독을 요청했다. 그리고 약 30초 후 판독실로부터 결과를 통보받은 심판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웃! 게임 셋!”
“아악! 안 돼! 개자식들아!”
“빌어먹을 괴물 자식! 이걸 아웃시킨다고?”
“망할 자식들아, 죽어! 죽어버리라고!”
사방에서 오물이 날아들고, 1사 만루 찬스를 허망하게 날려먹은 제리 와그너와 나머지 보스턴 선수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을 만들어낸,
완벽하게 빠지는 2루타성 타구를 건져낸 것으로도 모자라 태그업하는 주자까지 잡아낸 한수혁이 가벼운 걸음으로 마이크에게 다가왔다.
“시즌 첫 완봉승 축하해요. 마이크.”
“…제길.”
아주 오랜만에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낀 서른여섯 베테랑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마운드 위에 서 있던 마이크 워렌이 허공을 향해 힘차게 포효했다.
“으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