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2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28화(329/412)
#328. 유타 스트리트
‘음, 저 친구는 대체 왜 저래?’
보스턴과의 시즌 마지막 3연전에서 위닝시리즈를 기록하며 기분 좋은 상태로 볼티모어로 넘어온 시애틀.
주전포수 브루스가 가벼운 복통을 앓는 통에 갑자기 선발출장을 통보받은 레너드 존스가 묘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오늘 레너드와 호흡을 맞추게 될 일본인 좌완 투수 하야시 렌타로가 침중한 표정으로 자신의 라커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이적해온 후 한동안 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던 하야시는 라커룸에 불상을 모신 후로 꽤나 안정을 찾은 듯했다.
물론 불상이나 새로 시작한 명상보다는 한수혁과 한 팀이 된 것에 대한 안정감이 더 큰 몫을 차지했겠지만, 어쨌든 하야시는 이제 완전한 시애틀의 4선발로 거듭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하야시의 표정이 오늘따라 이상할 만큼 좋지 않다.
무슨 일인지 물어볼까 말까 한참 동안 고민하던 레너드가 결국 결심한 듯 그를 향해 다가갔다.
“이봐, 하야시. 컨디션은 괜찮아?”
“음… 레너드, 솔직히 말하면 별로 좋지는 않아.”
“그래? 왜? 무슨 일이 있는 거야? 혹시 몸에 무슨 문제라도? 당장 코치님을 부를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하아.”
“대체 왜 그러는 건데?”
“항상 내게 좋은 말씀을 전해주시던 부처께서 오늘은 말씀이 없으셔. 이건 좋지 않은 증조야. 뭔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혹시 내가 오늘 박살이 날 거란 걸 예언해주시는 건 아닐까? 제길, 안 되는데. 여기서 또 다른 팀으로 이적하긴 싫은데. 하느님, 아니, 부처님, 맙소사, 나 어떻게 하지, 레너드?”
정말로 답답했던 것인지 한 번 터진 하야시의 입에서 계속 불안감을 가득 담은 말들이 튀어 나왔다.
이제야 무슨 일인지 깨달은 레너드가 한숨을 푹 쉬며 생각을 정리했다.
독실한 청교도인 그가 불교신자인 하야시에게 종교적으로 뭔가를 조언하는 건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하야시, 이쪽으로 와봐.”
“음? 왜? 어디?”
“이쪽으로.”
레너드가 하야시를 데려간 곳은 라커룸 한쪽 벽에 설치된 보드판이었다.
그곳에는 오늘 경기에 나설 시애틀의 스타팅 라인업이 붙어 있었다.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3루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짐 브라운
6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7번 2루수 리암 랜드먼
8번 포수 레너드 존스
9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투수 하야시 렌타로
“자, 이 라인업 용지를 자세히 들여다봐.”
“다 봤어. 그런데 이걸 왜 다시 보여주는 건데?”
“난 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이 라인업 용지를 이렇게 부르고 싶군. 좋은 말씀이 담긴 너만의 경전이라고 말이야.”
“경전? 그건 대체 무슨…….”
“자, 이번에는 이쪽으로 와봐.”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하야시를 데리고 레너드가 또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곳에는 라커 앞에서 언더셔츠를 갈아입고 있는 한수혁이 있었다.
“자, 저 친구를 봐.”
“한? 한을 왜 보라는 건데?”
“저게 바로 너의 새로운 부처님이야. 오늘 너를 지켜주고 승리로 이끌어줄.”
“오…….”
“너의 종교에 대해서는 백 프로 인정하고 존중해. 하지만 오늘 너의 부처께서 목소리를 내려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군. 그라운드 위에서는 바로 저 친구가 부처이자 알라이자 하느님이라고.”
“오오…….”
“자, 이제 저분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지. 이봐, 한.”
“음, 왜?”
“오늘 우리가 이길 수 있겠지?”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당연한 거 아냐?”
“좋아, 여기까지.”
레너드가 하야시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야구의 신께서 오늘 꼭 승리한다고 말씀하셨으니 아무 걱정 말고 마운드 위로 올라가시게. 친구.”
* * *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에서 양키스, 레드삭스, 블루제이스에 이어 4위를 달리고 있는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지난 시즌 체결한 주축 선수들과의 장기계약 때문에 섣불리 탱킹을 선택할 수도 없는, 그렇다고 와일드카드를 노리기에는 너무 멀어진 어정쩡한 상태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2010년대 후반 김성수 선배, 그리고 2020년대 초중반 이창모 선배가 뛸 때만 해도 한국인들에게 그럭저럭 인지도가 있는 팀이었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 와서는 미국이나 한국, 양쪽 모두에게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그런 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늘 경기가 마냥 쉬울 것 같지만은 않다.
자말 몽고메리, 지난 시즌 볼티모어와 10년 장기계약을 체결하며 가을야구에 대한 희망을 품게 만들었던 에이스가 등판하는 경기이니 말이다.
“플레이!”
주심의 경기개시 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말 몽고메리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2미터에 달하는 키에 사이드암에 가까운 투구 폼,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102마일 포심과 엄청난 각을 자랑하는 슬라이더, 그리고 가끔 유인구로 사용하는 스플리터까지.
여기까지 들으면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좌우의 차이만 있을 뿐 시애틀을 거쳐 애리조나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빅유닛 랜디 존슨과 아주 흡사한 유형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저 선수를 제2의 랜디 존슨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를 지칭하는 별명은 따로 있다.
제2의 로저 클레멘스.
영광스럽기만 한 별명이 아니다.
상대 타자의 몸 쪽으로 서슴없이 위협구를 던져댄다는 뜻이니까.
슈웅
파앙
“볼.”
그런 명성에 걸맞은 100마일 포심이 데릭의 몸 쪽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인상을 잔뜩 쓰긴 했지만 데릭은 처음 그 자리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데릭을 향해 자말 몽고메리가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슈웅
파앙
“볼.”
초구보다 공 반개 정도 더 몸 쪽으로 바싹 붙는, 타자를 타석에서 멀리 떨어뜨리기 위한 공.
하마터면 팔꿈치에 공을 맞을 뻔했던 데릭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타석에서 반보 정도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자말 몽고메리의 의도대로 경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좌타자에게서 가장 먼 바깥쪽 낮은 코스로 들어오는 100마일 포심.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공 하나를 더 지켜보려던 데릭의 허를 찌르는 백도어 슬라이더.
그리고,
슈웅
부웅
“스윙! 아웃!”
한 경기에 10개 던질까 말까 한, 그렇기에 더욱 타자를 유혹하기 쉬운 스플리터에 데릭의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다.
“젠장! 상대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재수 없는 놈이야.”
“내가 복수해주지. 들어가서 구경이나 해.”
“조심해. 너무 타석에 붙지 말고. 저 자식은 정말 맞히고도 남을 놈이라고.”
삼진을 당한 데릭이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린 후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안다.
저놈이 승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타자를 맞출 수 있는 놈이라는 것.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정면대결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쓰리쿼터를 넘어 거의 사이드암에 가까운 폼에서 뿜어지는 슬라이더.
저놈이 던지는 빈볼이 두려워 타석에서 물러서면 나 같은 우타자는 녀석의 슬라이더에 전혀 대응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저놈과 나의 승부는 누가 먼저 겁을 먹고 물러나느냐에 달린 것이다.
“이봐.”
“흠, 왜. 건방진 루키.”
“저 투수 녀석 올해 연봉이 2,500만 정도 되나?”
“맞아, 네 녀석이 받는 돈의 30배 정도 되지.”
“좋아, 그렇게 많은 돈을 받는 놈이 설마 나 같은 루키가 무섭다고 도망을 가진 않겠지.”
“도망? 누가? 우리가? 아니, 자말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까지 네가 만난 놈들과는 차원이 다른 투수이니까.”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여기서 내게 고의사구가 날아올 것 같지는 않다.
몸 쪽 공 승부를 즐기는 호전적인 에이스, 거기에 팀 순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아도 될 볼티모어의 현 상황을 고려하면 말이다.
”좋아, 그럼 내일 볼티모어 신문 1면에 저 녀석의 얼굴이 올라오게 만들어주지. 메이저리그 역대 3위 홈런 기록을 헌납한 얼간이로 말이야.“
사인을 주고받는 중인지 뒤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상관없다. 도망만 가지 않는다면 무슨 공을 던지든 환영이다.
단일 시즌 홈런 기록에 도달하기까지 내 앞에 남은 장애물은 단 3개.
1998년 새미 소사가 기록한 66개의 홈런, 1998년 마크 맥과이어의 70개 홈런,
그리고 마지막 남은 2001년 배리 본즈의 73개 홈런.
너무 오래되어 곰팡내까지 나는 그 기록들을 갈아치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슈웅
파앙
“볼.”
데릭에게 던졌던 것과 거의 비슷한, 몸 쪽으로 바싹 붙어 들어오는 101마일 포심.
차라리 조금만 더 몸 쪽으로 들어오면 몸에 맞는 공이 나오거나, 혹은 주심에게서 경고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가 던지는 공은 그 경계선을 교묘하게 넘나들며 타자를 위협했다.
“하나도 안 무서우니 쓸데없는 짓 말고 빨리 덤벼.”
“그래? 정말 그럴까?”
나에 대해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대기록 달성을 눈앞에 둔 내가 퇴장을 두려워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랄까.
전혀,
저놈을 비롯해서 그 어떤 놈이든, 나, 혹은 동료 선수들에게 빈볼을 던지는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그놈의 턱을 박살 낼 것이다.
기록?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야구에는 그보다 중요한 게 훨씬 많으니까 말이다.
“분명히 말하는데 저 공이 내 몸에 닿는 순간 난 너희 투수를 죽여 버릴 거야.”
“어디 진짜 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우리 둘 사이에 오가는 말이 점점 험해지자 듣고 있던 심판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좋아, 여기까지는 내가 못 들은 걸로 하지. 투수에게 전해. 몸 쪽 공을 던지는 건 좋지만 노골적인 위협구로 판단되면 바로 경고를 먹게 될 거라고. 그리고 한, 자네도 마찬가지야. 상대 선수를 너무 위협하는 건 곤란해.”
심판의 말에 약속이나 한 듯 우리 둘의 입이 닫혔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서 굳이 이놈들과 싸움을 벌일 이유는 없다. 그건 올 시즌부터 10년 동안 장기계약을 체결한 저놈 역시 마찬가지이고.
이건 그냥 남자들 간의 기세 싸움 같은 거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역시나 몸 쪽으로 바싹 붙어 들어오다 존안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슬라이더.
배트를 내볼까 했지만 궤적을 완벽하게 눈에 익히기 위해 한 번 참기로 했다.
연속되는 몸 쪽 공에 내가 꿈쩍도 않자 마운드 위 자말 몽고메리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저놈이 이렇게 집요하게 타자를 물러서게 만들려는 건 그만큼 바깥쪽 승부구에 자신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몸 쪽 공 승부에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버텨야 한다. 어떻게든 이 타석을 지켜내야 한다.
슈웅
파앙
“볼.”
내가 물러서지 않자 던질 곳이 없어진 자말이 존 가운데 낮은 곳에서 더욱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던졌다.
헛스윙은커녕 내가 아예 그 공을 쳐다보지도 않자 등 뒤에서 포수가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승부구가 날아올 차례라고.
몸 쪽 위협구를 즐겨 구사하지만 사실 바깥쪽 승부에 더욱 자신이 있는 사이드암 투수.
내가 노리는 공은 존 중앙으로 들어오다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공이 들어올 거라는 데 모든 걸 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확신이 들었다.
드드득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공을 밀어치기 위해 스탠스를 안으로 닫고, 95마일 슬라이더에 타이밍을 맞춰,
슈웅
하나, 둘, 지금!
따아아아아아악!
– 됐어요! 제대로 맞았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친 타구가 우측 펜스를 넘어, 넘어, 아아! 캠든 야즈 외벽을 완전히 넘긴 타구가 구장 밖 B&O 웨어하우스까지 날아갔습니다! 엄청납니다! 밀어 쳐서 장외 홈런을 날린 한수혁 선수! 유타 스트리트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동판을 새겨 넣게 되었습니다! 기뻐해주십시오! 이번 홈런으로 한수혁 선수가 1998년 새미 소사와 함께 단일 시즌 최다 홈런 3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