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2화(33/412)
#32. 사람이 곰에게 맞으면
“수혁아, 나 바로 집으로 들어간다. 아들내미가 오늘은 꼭 아빠랑 저녁 먹고 싶다고 기다린대.”
“네, 선배님. 들어가보세요. 어차피 오늘 제이콥이 연습실 내부 리모델링 한다고 해서 사용 하지도 못하니까요.”
“그래, 그럼 넌 어떻게 하게? 그냥 하루 쉬고 우리 식구들하고 식사하지 않을래?”
“아뇨, 전 여기서 대충 연습 좀 더 하다가 들어가려고요.”
“음, 그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오늘 하루 정도는 쉬라고 하고 싶지만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럼 적당히 하고 내일 보자.”
“네, 그리고 선배님.”
“응?”
“오늘 정말 멋지셨어요.”
“에이, 내가 뭘. 그냥 어쩌다 하나 걸린 거지.”
“아뇨. 제가 지금까지 본 홈런 중 최고였습니다.”
“하하, 그래. 고마워. 홈런왕한테 그런 말 들으니 영광이다. 아무튼 무리하지 말고 얼른 들어가.”
끝내기 만루 홈런을 치고 리포터와 인터뷰를 끝낼 때까지 계속 눈물을 멈추지 못하던 조성오 선배가 이제야 간신히 진정된 얼굴로 퇴근길에 올랐다.
오랜만에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게 기쁜지 조성오 선배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경기 후 연습도 좋지만 이런 날은 가족과 함께 따뜻한 식사 한끼를 하는 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훨씬 좋다.
물론 난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지만.
개인 연습실 리모델링으로 인해 사용이 불가능해진 오늘, 나는 마무리 훈련을 위해 텅 빈 구단 연습장으로 향했다.
“한수혁 선수, 오늘 정말 대단했습니다. 경기 잘 봤어요.”
“아,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래요. 내가 계속 순찰 돌 거니까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말 하고.”
개막전 첫 경기에서 극적인 끝내기 승을 거둬서 그런지 머리가 희끗희끗한 구단관리인 아저씨의 얼굴에도 웃음이 한가득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멋진 개막전이었다.
나야 그런 쪽으로는 별 관심 없지만 경기 전 관중들과 선수들의 사기를 올려준 특별 공연도 좋았고, 무엇보다 9회말 투아웃에서 터진 팀 최고참의 끝내기 홈런은 정말 최고였다.
올 시즌 우리 팀의 최종 성적이 어떻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오늘 조성오라는 베테랑이 보여준 투혼은 팀 사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탁
탁
탁
오늘 큰 것을 노리느라 흐트러진 타격감을 티배팅으로 바로잡으며 생각에 잠겼다.
다 좋다. 오늘 경기는 그야 말로 완벽했다.
하지만 단 하나,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그 한 가지.
장덕수라는 포수가 보여준 소극적인 플레이.
사실 송기태와 한진우, 정기호, 황성민을 트레이드 대상으로 올리는데 있어 유일하게 관계자들의 찬반이 갈린 것이 바로 포수 황성민이다.
포수가 괜히 야전사령관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팀의 수비 포메이션을 조절하고, 시시때때로 불안해지는 투수의 멘탈을 관리하고, 벤치의 사인을 받아 동료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포수다.
그렇기에 지난 8년 간 워리어스라는 팀의 안방을 책임진 황성민의 커리어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황성민의 트레이드와 관련해서는 성훈이 형이나 박재철 단장, 이대준 감독, 그리고 코치들의 의견이 제각각 갈렸다.
하지만 황성민이 갖고 있는 플러스 요인보다는 그 놈이 주변에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는 판단 하에 트레이드가 결정되었다.
결국 구단 내 모든 사람들이 장덕수 선배를 차기 주전포수 감으로 점 찍은 것이다.
장덕수.
거구이면서도 유연성이 좋아 부상도 잘 당하지 않는, 거기에 수비 기본기 하나는 황성민보다 오히려 나은 선수.
사실 오늘 경기운영도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황성민과 달리 자잘한 실수도 거의 하지 않았고, 포크볼을 뒤로 빠트리거나 투수를 향해 눈을 부라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타격에서는 우리 팀에서 이적한 한진우를 상대로 안타를 하나 뽑아 내기도 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 너무 큰 실수를 해버렸다.
글러브를 가져다 대기만 하면 자동 태그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건만, 주자와의 충돌을 피하겠다고 홈을 그대로 내줘버리다니.
실격이다. 적어도 한 팀의 주전포수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다.
“한수혁 선수. 이제 그만 하고 들어가서 쉬세요. 시간이 늦었습니다.”
“아, 네. 이제 슬슬 정리하려고요”
생각에 잠긴 채 기계적으로 배트를 돌리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나 보다.
구장 관리인의 호의에 웃음으로 답해준 나는 대충 샤워를 끝내고 아무도 없는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멀리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장덕수 선배다.
우리 팀에서 가장 큰, 아니, 프로야구판 전체를 봐도 용병들 외에는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든 거대한 체격이다.
이 시간에 구장에는 무슨 일이지? 아니, 그보다 대체 왜 저런 덩치로 그렇게 몸을 사리는 걸까.
갑자기 뭔가 울컥한다.
여기서 한 마디를 하지 않으면 집에 가서 잠도 오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그 거대한 실루엣이 사라진 곳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이제는 사용하지 않아 창고가 되어버린 예전 외야 불펜이 있던 곳.
장덕수 선배는 왜 폐쇄된 외야 불펜으로 향하고 있는 걸까?
의아한 마음에 걸음속도를 높여 가던 나는 저 멀리 누군가의 모습을 발견하고 벽 뒤로 몸을 숨겼다.
‘황성민?’
그곳에 서 있는 건 분명 황성민이었다.
새끼 발가락 부상으로 오늘 경기에 결장한 황성민이 장덕수 선배 쪽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둘 사이에 오간 대화를 들은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리 늦어,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식사 좀 하고 오느라.”
“좋냐? 나 다쳐서 주전으로 뛰니까 좋아? 밥이 아주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지?”
“아닙니다. 선배님.”
“좆까. 입이 귀에 걸렸구만, 하긴 마지막에 그런 병신 같은 짓을 저질렀으니 앞으로는 주전은 글렀다. 그치?”
“······”
“대답 안 해?”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 있어? 너 병신인 건 세상이 다 아는데. 아무튼 그건 됐고, 너 한진우 공 왜 쳤냐?”
“네?”
“이 개새끼야. 내가 말했지? 진우 상대하게 되면 그냥 봐주라고. 안 그래도 단장 그 미친 새끼 땜에 부산으로 트레이드 된 불쌍한 놈인데 우리까지 후려패면 되겠냐고. 내가 말 했어, 안 했어?”
“······”
“대답 안 하네? 이 새끼야! 내가!”
퍼억!
“분명!”
퍼억!
“진우 나오면 그냥 삼진 먹어주라고 했지!”
퍼억!
“아우, 씨발! 발가락 울려! 이 미친 놈이 쓸데없이 몸만 튼튼해가지고!”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 몇 마디 대화만으로 나는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황성민 저 미친 인간은 지 기분이 나쁠 때마다 장덕수 같은 후배들을 불러내 이런 미친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거다.
다쳤다는 발가락은 저렇게 후배를 때리다 입은 부상일 것이다.
지금 중요한 건 욕설과 폭행이 아니었다. 아니, 그 역시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일단 넘어간다 치자.
그런데 뭐? 한진우 공을 그냥 보내라고? 삼진을 먹으라고?
한 팀의 주전포수라는 놈이 상대 투수의 공에 일부러 삼진을 당하라며 후배를 윽박지르고 있다.
팀에 대한 이단행위고, 팬들에 대한 배신이며, 자칫 승부조작으로까지 해석될 수도 있는 짓이다.
미친 새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트레이드고 뭐고 저런 새끼를 더 이상 내 팀에 둘 수는 없다.
“황성민!”
“···뭐야? 거기 누구야?”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구장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황성민이 깜짝 놀라 이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성큼성큼 다가가 그 둘의 앞에 섰다.
“한수혁? 너였냐? 지금··· 네가 내 이름을 부른 거야? 까마득한 후배 새끼가 선배 이름을?”
황성민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구린 짓을 들켰다는 당혹감과 후배에게 반말을 들은 것에 대한 모멸감이 뒤섞인 결과물이었다.
“이게 어디서 뒤질··· 엌!”
콰앙!
그런 놈의 멱살을 잡아 그대로 벽에 밀어붙였다.
“잘 들어.”
“이··· 이거··· 놓··· 켁!”
“넌 이제 야구 같은 건 못하게 될 거다. 내일 아침이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네가 한 짓을 알게 될 거니까. 구단에서 널 방출하겠지만 그 어떤 구단도 일부러 게임을 내주려는 포수 따위는 데려가지 않을 거야.”
“누, 누구··· 켁, 누구 마음 대··· 커헉, 이거 놔!”
“애초에 너 같은 새끼를 그냥 둔 게 후회돼 미치겠으니까 지금 당장 짐 싸서 내 팀에서 꺼져.”
“내··· 내 팀···? 이 미친··· 켁! 놓으라고!”
멱살을 잡힌 채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면서도 놈은 계속 뭐라고 중얼거렸다.
상관없다. 한 번 쓰레기라고 판명된 놈의 말 따위는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그런 쓰레기의 멱살을 그대로 움켜 잡은 채 장덕수 선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장덕수 선배.”
“수혁아.”
이런 상황에도 거의 표정에 변화가 없는, 어떤 면에서는 엄청난 강심장의 소유자처럼 보이는 장덕수 선배와 시선을 맞췄다.
황성민의 협박에도 장덕수 선배는 결국 그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아무 죄도 없는 건 아니다.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을 혼자 숨기고 있었던 것 자체가 문제다.
아니, 애초에 매 순간순간 승부가 갈리는 이 치열한 프로야구판에서 느슨한 마음으로 경기를 뛰는 것부터가 문제다.
“다른 사람하고 부딪히는 게 겁나고, 누굴 다치게 하는 게 싫으면 차라리 야구를 그만둬요.”
“···수혁아.”
“누군가와 경쟁하는 게 싫고, 남에게 양보하는 게 마음이 편하고, 언제나 착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야구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세요.”
“······”
“중요한 건 야구는 9명이 함께 하는 스포츠라는 겁니다.”
“······”
“선배가 그렇게 상대를 배려하고, 충돌을 피하고, 멈칫거릴 때마다 우리 팀의 누군가가 대신 그 자리를 메워야 합니다. 그 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
“그건 착한 게 아니에요. 그냥 자신의 일을 다른 동료들에게 떠넘기는 것뿐이죠.”
“···알았으니까 일단 황성민 선배 놔줘. 그러다 숨 막혀서 큰일난다.”
“···하아.”
이 와중에도 자신이 아닌 황성민을 먼저 챙기는 장덕수를 보니 온 몸에 힘이 쭉 빠졌다.
반쯤 체념한 나는 황성민을 뒤로 밀어버리고 다시 장덕수를 향해 돌아섰다.
“대체 선배는···”
그때였다.
내가 잠시 뒤로 돌아선 사이 황성민이 옆에 있던 야구 배트를 집어 들고 내게 덤벼들었다.
“이 시건방진 애새끼가!”
이제는 정말 막 나가자는 것인지 나를 향해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황성민.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CCTV는 살아 있겠지?
이 정도면 여기서 그냥 황성민 저 새끼를 죽여버려도 정당방위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놈이 휘두르려는 야구배트를 피하려던 찰나.
미끈
장비 손질용 오일 때문에 미끄러웠던 바닥을 밟으며 몸이 기우뚱 하고 말았다.
실수다.
내 쪽을 향해 날아오는 야구배트가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팔로 막아야 하나? 그러면 최소 몇 달은 야구를 쉬어야 할텐데? 워리어스의 우승은?
반사적으로 팔을 십자로 교차해 날아오는 배트를 막아내려던 그 순간.
턱
“무슨···?”
인간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거대한 손바닥 하나가 내 귓등을 스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 거대한 손이 황성민의 목덜미를 잡아채더니 그대로 벽에 설치된 안전망 쪽으로 집어던져버렸다.
“컥!”
투웅
안전망에 내동댕이쳐졌던 황성민의 몸뚱이가 퉁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앞으로 튕겨져 나왔다.
그리고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뻐어어어억!
마치 프로레슬링을 보는 것만 같았다.
장덕수 선배가 안전망에 튕겨져 나온 황성민의 머리통을 솥뚜껑만한 손바닥으로 그대로 후려갈겼다.
철푸덕
“끄륵···”
곰 발바닥을 연상시키는 장덕수 선배의 싸대기에 황성민이 공중에서 팽그르 한 바퀴를 돌더니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빅리그에서 15년을 뛰며 별의 별 괴물들을 다 봤고, 그 놈들과 얽혀 주먹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맹세코 저런 엄청난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가만, 저거 혹시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덕수 선배?”
“이런 개 잡넘의 새끼가 어디서 함부로 연장질이여? 죽고 싶은겨? 어이, 황성민, 안 일어나? 확 밟아서 대가리 으깨 버리기 전에 일어나라고. 이 잡넘아!”
“끄으으으···”
목소리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완전히 혼절한 줄 알았던 황성민이 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다행이다. 저런 걸 맞고 용케 살아는 있네.
“안 일어나? 하나, 둘, 셋, 진짜 죽인다?”
“끄어어어어···”
앞 이빨이 빠졌는지 뭔가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려온다. 땅에 처박힌 황성민의 얼굴을 흘끗 보니 정말 곰에게 덤비다가 한 대 얻어맞은 그런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저거 안 되겠는데.
“저기, 덕수 선배님? 일단 구급차부터 불러야겠는데요···?”
“구급차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황성민! 마지막으로 센다. 하나, 둘···”
“끄어, 끄어, 끄어어···”
모든 사람들이 빠져 나간 폐쇄된 외야 불펜.
그곳에서 들리는 건 귀싸대기 한 방에 혼백이 날아가버린 황성민의 처절한 신음 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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