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3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29화(330/412)
#329. 야구판의 진리
“어때, 내 말이 맞지?”
“맞아, 신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어.”
“그래. 그러니까 부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고 좌절하지 말고 우리 곁에 항상 계시는 야구의 신을 믿어보자고.”
1회초 한수혁의 시즌 66호 선제 홈런으로 먼저 한 점을 선취한 시애틀이 1회 말 수비에 들어갔다.
오늘의 선발투수 하야시 렌타로의 멘탈을 안정시켜준 레너드 존스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1회 초 한수혁이 보여준 밀어 친 장외 홈런은 끝내준다는 말 외에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정말 한수혁만이 칠 수 있는 그런 홈런이었다.
“플레이!”
클리블랜드 시절, 탱킹 중인 팀에 콜업되어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레너드는 시애틀로 건너와 우승팀의 백업 포수가 되었다.
주전 포수인 브루스의 나이가 아직 서른도 안 되었기에 백업포수로서의 전망이 그리 밝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괜찮다.
어쩌면 그가 이번 시즌이 끝난 후 FA로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도 있고, 혹은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백업 포수로, 그리고 대타로 팀에 공헌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는 아직 젊었고,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한 대신 손가락에 우승 반지를 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레너드 존스는 확신했다.
한수혁이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는 한 자신의 생각이 빗나갈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이다.
‘바깥쪽 낮은 포심’
끄덕
4선발을 맡고 있긴 하지만 사실 하야시 렌타로는 전 소속팀인 밀워키에서 2선발까지 맡았던, 수준급의 좌완투수이다.
비록 멘탈이 조금 약하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종교나 미신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괜찮다.
이 팀에는 ‘그’가 있으니까.
바라보기만 해도,
같은 팀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기만 해도 저절로 심신이 안정되는 부적 같은 그가 있으니까.
슈웅
파앙
“볼.”
경험이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본래 역사대로라면 리그 최정상급의 포수로 성정할 선수가 바로 레너드 존스였다.
하야시의 정신 상태와 현재 구위, 그리고 상대타자와의 상성을 모두 고려해 선택한 바깥쪽 낮은 공이 볼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레너드는 또 한 번 같은 곳으로 공을 요구했다.
‘동일 코스로, 똑같이.’
끄덕
파트너에 대한 믿음이 차오른 하야시가 별다른 저항 없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오버핸드에 가까운 역동적인 투구 폼에서 위력적인 포심이 쏘아졌다.
슈웅
파앙
“볼.”
끌려 나오던 타자의 배트가 중간에서 멈춰 섰다.
스윙 판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레너드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피어올랐다.
공의 위력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런 하야시의 상태를 생각하면 승부를 길게 끌고 가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부처, 아니, 한수혁에 대한 믿음, 거기서 기인한 자신감이 꺼지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몸 쪽 포크볼’
이제는 메이저리그에서 거의 사라진, 각은 조금 작지만 대신 구속이 빨라 스플리터와 비슷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하야시의 포크볼.
몸 쪽으로 그걸 던지라는 말에 하야시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곧 그의 손끝에서 하얀 공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몸 쪽 승부에 당황한 타자가 본능적으로 배트를 내밀었다.
따악!
불규칙 바운드를 일으키며 3루를 향해 날아가는 타구.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건만,
공을 던진 투수도, 그리고 그 공을 받아친 타자도,
모두 그 결말을 예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타앗
슈웅
“아웃!”
군더더기 하나 없이 완벽한 한수혁의 3루 수비,
자신의 앞으로 굴러오는 불규칙 바운드의 공을 맨손으로 처리한 한수혁이 하야시를 향해 말했다.
“몽땅 다 내 쪽으로 보내. 완벽하게 처리해줄 테니까.”
“오…….”
하야시의 신앙심이 더욱 더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 * *
선발투수의 이름값만 놓고 보면 볼티모어의 우세가 느껴지던 오늘 경기.
하지만 한수혁의 선제 홈런과 그에 대한 믿음으로 혼을 불태우기 시작한 하야시 렌타로의 역투에 힘입어 시애틀이 1 대 0 리드를 유지해나갔다.
그리고 3회초, 한수혁의 두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아까 홈런은 정말 멋졌지, 안 그래?”
“인정해. 솔직히 내가 본 홈런 중에 손꼽을 정도였어.”
“한 번 더 보고 싶지 않아? 그럼 가운데로 던져봐. 똑같은 코스로 날려줄 테니까.”
“그건 곤란하지. 젠장, 말이 너무 길어졌군. 다시 시작해보자고.”
전 타석에서 조금 험한 말을 주고받긴 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볼티모어의 주전포수인 프랭크 윌리엄스를 싫어하지 않는다.
누구처럼 음흉하게 딴 말을 하거나 뒤에서 일을 꾸미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맞부딪히는 게 훨씬 낫다.
마운드 위 저 투수나 이 포수나,
볼티모어가 좀 더 강팀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빛을 봤을 선수들이다.
만약 자말 몽고메리가 볼티모어와 장기계약을 맺지만 않았다면 영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내년 샐러리캡이 조금 간당간당하긴 하지만 뭐, 내가 그냥 그대로 최저 연봉을 받고,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 한둘 정도를 내보내면…….
됐다. 아직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승부에 집중하자.
“플레이!”
우타자의 몸 쪽으로 강력한 포심을 던져 뒤로 물러나게 하고,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로 삼진을 양산해내는 투수가 그 공으로 홈런을 허용하게 되면?
그럼 다음에 던질 공은 뭘까?
슈웅
파앙
“볼.”
“설마 볼넷을 주려는 건 아니겠지? 그럼 실망인데?”
“전혀, 네가 자말을 몰라서 그래. 저 녀석, 지금 널 잡겠다고 활활 불타오르고 있거든.”
“좋아, 한번 믿어보지.”
“마음대로, 대신 이번에는 네가 당하게 될 거야.”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지난 주 내내 볼만 던져대는 투수들과 하도 기 싸움을 하다 보니 이런 볼티모어 배터리의 공격성이 반갑기만 하다.
농담이 아니라 이 두 녀석, 정말 데려오고 싶은데?
포수 자리가 좀 넘치긴 하지만 그거야 어떻게든 교통정리를…….
흠,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하나.
프랭크의 말처럼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올 듯 활활 타오르고 있는 자말 몽고메리가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두 번째 공을 뿌렸다.
그 공은 내가 기다리던,
우타자 몸 쪽에서 존 안으로 말려들어가는 슬라이더였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내 배트가 그 공을 향해 힘차게 나아갔다.
따아아아아악!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한 나는 그대로 배트를 뒤로 던져버리며 말했다.
“이봐.”
“…젠장, 왜.”
“너랑 저 녀석, 나중에 우리 팀에서 볼 수 있게 되면 좋겠군.”
“그건 또 뭔 헛소리야?”
“일단은 여기까지, 나중에 보자고. 친구.”
* * *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에서 터진 시즌 66, 67호 홈런, 70홈런 시대, 다시 돌아올까?]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단독 3위에 이름 올리게 된 한수혁 “오리올스의 투수 자말 몽고메리와 포수 프랭크 윌리엄스의 투지에 감탄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이기긴 했지만 그 둘은 정말 좋은 선수들이었다.” 겸손한 발언] [시즌 66, 67호 홈런 허용한 볼티모어 오리올스 자말 몽고메리 “그에게 기록을 허용한 것이 불명예스럽진 않냐고? 전혀, 진짜 창피한 건 홈런을 맞기 싫어 도망가는 거다. 나는 이 시대 최고의 타자를 맞아 최선을 다해 싸웠고, 그 결과 패배했다. 그냥 그게 오늘 일어난 일의 전부이다.”] [시애틀 팬들 “자말 몽고메리는 우리 팀의 선발진에 이어 리그 전체에서 여섯 번째 가는 아주 좋은 선발 투수다. 내년 시즌 시애틀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을 보고 싶다.” 오리올스 팬들 집단 반발] [한수혁의 홈런과 선발 하야시 렌타로의 호투에 힘입은 시애틀 매리너스, 5 대 3으로 승리하며 기분 좋은 3연승 이어가]“좋아, 챔피언. 혹시 기록 달성을 위해서 자네의 타순을 조정해줄 필요가 있을까?”
“기록을 위해서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몰라도 말이죠.”
“내가 기대하던 대답이군. 알았어. 내가 충분히 참고하도록 하지.”
감독과의 대화를 끝마친 나는 원정팀 감독실을 나와 라커룸으로 향했다.
어제 한 경기에서 두 개의 홈런을 추가하며 이제 신기록까지 단 일곱 개의 홈런만을 남겨놓게 되었다.
누군가 얘기했다.
이번 시즌 후 재논의될 약물 복용자들의 기록 말소가 실제로 이루어질 경우 그냥 가만히 있어도 1위가 될 수도 있다고,
그러니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그림이 아니다.
어차피 기록 도전에 나선 참에 다시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게,
내 육체의 힘만으로 그 오명으로 얼룩진 기록들을 완벽히 박살 내고 그곳에 내 이름을 새겨 넣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감독의 말처럼 1번 자리에 들어서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지만 팀의 밸런스를 깨뜨리면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 팀의 선수들, 그리고 팬들의 염원인 월드시리즈 진출을 위해서는 시즌 말미까지 조금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나는 여전히 내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를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체력 관리가 필요하다.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 1번 타자로 나서다가는 분명 방전되고 말 것이다.
시즌 막판이 되며 체중이 조금씩 줄어들고, 몸에 느껴지는 힘 역시 약간이나마 약해지는 것이 느껴지지만,
상관없다. 언제나 완벽한 상태로 경기를 할 수 없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흠.”
“음? 방금 나 부른 건가?”
“아니, 그냥 뭐 좀 생각하느라.”
내가 헛기침을 하자 옆에 있던 라이언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볼티모어에서 썩어 가고 있는 자말 몽고메리와 프랭크 윌리엄스, 두 녀석을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올 시즌 라이언, 나, 마이크, 하야시, 디몬으로 이어지는 선발 로테이션도 나쁘지는 않지만 내 생각에 디몬 앤더슨 주니어 저 녀석은 선발보다는 짧은 이닝 동안 전력을 다해 던지는 마무리 쪽이 더 적성에 맞는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우리 팀의 마무리인 애덤 머피가 훌륭히 제 몫을 다해주고 있지만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장기적으로는 디몬이 그 자리를 물려받는 게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빈 선발 자리에 자말 그 녀석을 넣을 수 있다면…….
흠,
나쁘지 않은데?
당장이야 장기계약을 맺은 투수를 함부로 풀려 하지 않겠지만, 당장 내년이라도 탱킹을 선택하게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럴 공산이 크다.
같은 지구에 속한 양키스나 레드삭스, 블루제이스의 기세가 워낙 좋은 데다가 템파베이 같은 경우에는 돈을 안 쓰는 것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저력을 발휘하는 팀이니까.
포수인 프랭크 윌리엄스의 경우 당장은 자리가 없지만 1루 수비도 가능하기에 타격을 살려 타이 존슨의 후계자로 키워도 된다.
이 모든 일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건?
많은 돈.
좋아, 올 시즌이 끝날 때쯤이면 내 계좌에 얼마나 돈이 쌓일지 그게 관건이다.
“자, 오늘 라인업이다.”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좌익수 한수혁
3번 1루수 타이 존슨
4번 우익수 짐 브라운
5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6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7번 3루수 리암 랜드먼
8번 2루수 로니 몬타릭
9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투수 디몬 앤더슨 주니어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감독이 들어와 라커룸 벽에 라인업 용지를 붙여놓았다.
어제는 3루수, 오늘은 좌익수.
타격만 놓고 생각하면 당연히 좌익수 쪽이 더 편하다.
홈런 신기록을 세우기까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경기를 뛰라는 감독의 배려일 거다.
이럴 때마다 하루라도 빨리 기록을 세워버리고 싶지만.
그게 어렵다는 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야구를 하는 데 있어 특별한 방법이나 꼼수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열심히, 천천히, 차분하게, 하나하나 쌓아나갈 수밖에.
그것이 내가 지난 오랜 시간 야구를 해오며 깨달은 가장 큰 진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