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3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30화(331/412)
#330. 시즌 68호
– 외야에 추락한 비둘기 때문에 경기시작이 조금 지연되고 있습니다. 자, 시간이 난 김에 이 선수 이야기를 좀 해보죠. 데이브, 한수혁 선수의 타격 성적을 좀 보세요. 타율이 0.428, 출루율 0.530, 장타율 1.045, OPS가 1.575에 달하고요. 홈런 숫자가 무려 67개입니다, 67개. 이 상태로 가면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은 물론이고, 세워진 지 100년이 넘은 타율, 장타율, OPS같은 기록들까지 전부 갈아치울 기세예요.
– 두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뿐만이 아니죠. 투수로서도 평균자책점, WHIP 같은 기록들을 갱신할 것이 유력시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말도 안 되는 성적이에요. 그런데 말이죠. 저는 이 선수의 성적이 아닌 다른 부분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싶군요.
– 그게 뭔가요? 얼굴? 인기?
– 하하, 아뇨. 확실히 그 부분도 대단하긴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저 선수의 내구성이에요.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부상으로 일찍 은퇴를 선택했던 오타니 쇼헤이 선수를 생각해보세요. 일본에서 다섯 시즌, 그리고 미국에서 여덟 시즌, 총 13시즌을 뛰는 동안 투수로서 정규이닝을 채운 게 고작 다섯 시즌에 불과합니다. 타자로서 규정타석을 채운 것도 네 번에 불과하죠.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데뷔부터 은퇴까지 거의 매년 내구성에 문제를 일으켰다는 뜻이에요.
– 네, 확실히 그렇죠. 심지어 그런 오타니 선수가 한수혁 선수 등장 이전까지 거의 유일무이한 ‘성공한 투웨이 선수’였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요.
– 맞아요. 그런데 한수혁 선수를 보세요. KBO에서 세 시즌,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거의 한 시즌, 총 네 시즌을 뛰면서 그 모든 시즌에서 규정 타석을 채웠죠? 투수로서도 투웨이 시작이 조금 늦었던 데뷔 시즌을 제외하면 매년 정규이닝을 채웠습니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탈인간급 내구도예요. 전 이게 한수혁이라는 선수가 갖고 있는 최고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전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야구 선수 중 역대 최고의 파워를 가졌다고 평가받던 지안카를로 스탠튼이나 바로 그 뒤를 잇던 애런 저지 선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6피트 6인치, 7인치에 달하는 신체를 견디지 못하고 매년 부상에 허덕이다 일찍 은퇴했잖아요? 그보다 조금 작긴 하지만 빅사이즈에 포함되는 한수혁 선수가 저렇게 엄청난 움직임을 보여주는 게 정말 사기 아닌가 그런 생각 말이죠.
– 좋은 지적입니다. 그래서 항간에 이런 소문이 돌기도 했죠. 오늘날 한수혁을 있게 해준 전담 트레이너인 제이콥 튜너가 어쩌면 지구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요. 하하, 사실 그 친구. 네, 제가 그 친구랑 안면이 좀 있거든요. 그냥 딸을 사랑하고, 술을 좋아하는, 평범한, 아니, 이제 평범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군요. 어쨌든 종족으로 볼 때 확실히 지구인에 해당되는 인간입니다.
– 항간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뉴욕 양키스에서 그 트레이너에게 200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을 제안했다더군요. 직접 만나 보지도 못하고 바로 까이긴 했지만 말이죠.
– 당연하죠. 이게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긴 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게 한수혁 선수가 데뷔하기도 전이거든요. 그때부터 한수혁 선수가 제이콥 그 친구의 딸 아이 병원비를 전담하기도 했고요. 둘이 그런 인연으로 이어졌는데 200만 달러? 턱도 없죠. 돈으로 둘 사이를 갈라놓긴 힘들 겁니다.
– 말이 좀 샜군요. 어쨌든 충격적인 데뷔 시즌을 보내고 있는 한수혁 선수가 잠시 후 타석에 들어서게 될 예정입니다. 뭐, 저희같이 평범한 인간들이 한수혁 선수에 대해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도 있겠군요. 그냥 지켜보시죠. 저 선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말이죠.
* * *
“플레이!”
그라운드 정리가 끝나고,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시애틀의 리드오프를 맡게 된 데릭 플레밍이 볼티모어의 포수 프랭크 윌리엄스에게 말을 걸었다.
“헤이, 프랭크. 하룻밤 새 별 일 없었지?”
“글쎄, 왜 멍청하게 정면승부를 하다가 홈런을 두 개나 내줬냐고 욕하는 글이 나와 자말의 SNS를 폭발시킨 걸 감안하면 딱히?”
“흐흐, 고생했네. 수고했어.”
“젠장, 그런 말 할 거면 빨리 삼진이나 먹고 덕아웃으로 꺼져버려.”
“그럴 순 없지. 어쨌든 난 어제 깜짝 놀랐어. 한수혁 저 친구가 다른 팀 선수 칭찬하는 걸 처음 봤거든. 덕아웃에서도 그러더라고. 너랑 자말이 아주 좋은 선수라고 말이야.”
“…홈런 두 개를 내준 머저리가 아니고?”
“그래, 흐흐. 심지어 너희랑 같이 뛰고 싶다는 말까지 하더라고. 너 1루 수비도 가능하다며? 내년 시즌에 우리 팀으로 와도 괜찮겠네.”
“흠, 트레이드가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자자, 친구들.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건 좋은데 그런 얘기는 경기 끝나고 따로 만나서 하든지 하고 우리 야구부터 하자고.”
“좋아요. 전 찬성.”
타자와 포수 간,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볼티모어의 선발투수 호세 벨트레가 던진 초구가 데릭 플레밍의 몸에 거의 닿을 듯 날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슈웅
파앙
“볼.”
“젠장, 이러기야.”
“미안, 저 친구가 원래 좀 슬로우 스타터라. 제구가 잡히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거든. 혹시 몸에 맞을지도 모르니 살짝 물러나 있으라고.”
어제 선발 등판한 볼티모어의 에이스 자말 애덤스가 빠른 공을 가진 우완 투수라면 오늘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2선발 호세 벨트레는 구속보다는 제구력과 다양한 구종으로 승부하는 좌완 투수다.
그런 투수가 제구력에 문제가 있다니.
데릭이 콧방귀를 뀌는 가운데 호세 벨트레의 두 번째 공이 데릭을 향해 날아왔다.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첫 번째 공과 거의 흡사한, 하지만 AI판정시스템의 영역 안에 들어온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고, 자기도 모르게 살짝 물러났던 데릭이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 타석에 붙어 섰다.
밀리면 안 된다.
어제 한수혁이 두 개의 홈런을 칠 수 있었던 건 투수와의 몸 쪽 공 승부에서 물러서지 않아서다.
덕아웃에서 그 광경을 보며 아주 작은 깨달음을 얻은 데릭이 긴장된 표정으로 다음 공을 기다렸다.
슈웅
따악
“파울!”
역시나, 기다렸다는 듯이 날아온 바깥쪽 포심.
호세 벨트레라는 투수가 볼티모어의 2선발을 맡고 있는 건 그닥 빠르지 않은 구속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존에 과감하게 공을 넣을 수 있는 배짱과 제구력을 갖춘 덕분이었다.
원 볼 투 스트라이크.
순식간에 불리해진 볼 카운트.
다시 한 번 몸 쪽 공을 예상한 데릭이 스탠스를 살짝 넓히고 다음 공을 기다렸지만,
슈웅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손 쓸 사이도 없이 바깥쪽 낮은 코스로 파고드는 절묘한 포심에 그대로 삼진.
기선을 제압당한 시애틀의 리드오프가 덕아웃으로 물러나고, 이제 한수혁의 차례가 돌아왔다.
“오오오오오!”
“드디어! 자! 이쪽이야! 이쪽이라고!”
“널 보려고 다섯 시간을 날아왔어! 날 실망시키지 말아줘!”
어제 두 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단일 시즌 최다 홈런 3위에 이름을 올린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서자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시애틀을 응원하기 위해 서부에서 동부까지 날아온 원정팬들, 그리고 그의 홈런 볼을 잡기 위해 모여든 전국의 야구팬들,
심지어 볼티모어 팬들 중 일부도 나비 채를 들고 한수혁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선수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열광하는 야구팬들, 그리고 그런 팬들을 위해 매일 홈런을 날려대는 슈퍼스타.
오랜 시간 다른 프로스포츠 종목의 인기에 밀려 서서히 주류에서 밀려나고 있던 메이저리그의 인기가 다시 살아났음을 입증하는 장면이었다.
“오늘도 잘 부탁해, 친구.”
“젠장, 보란 듯이 삼진으로 잡아낼 테니 두고 봐.”
“그것도 나쁘진 않지. 어느 쪽이든 저 관중들이 실망하지 않을 경기를 해 보이자고.”
포수와 가벼운 대화를 나눈 한수혁이 침착한 표정으로 투수를 노려보았다.
떠들썩하던 경기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숨죽인 야구팬들의 시선이 투수의 손끝, 그리고 한수혁에게로 집중되었다.
어떻게든 한수혁을 잡아내겠다 마음먹은 투수가 이를 꽉 깨물며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물고 있던 마우스피스에서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온 힘을 다 한 공이었다.
그리고 그 공을 한수혁이 그대로 걷어 올렸다.
따아아아아아악!
맞는 순간 홈런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타구.
까마득한 점이 되어 날아가던 타구가 마침내 캠든 야즈 좌중간 관중석 3층에 떨어지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아!”
“젠장! 그래! 바로 이거지!”
“넌 최고야! 한! 네 이름이 역사에 남게 될 거라고!”
시즌 68호 홈런,
한수혁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 * *
[또다시 터진 시즌 한수혁의 68호 홈런, 5선발 디몬 앤더슨 주니어의 7이닝 2실점 역투… 시애틀 매리너스,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5 대 3으로 제압하며 연승행진 이어가] [2위 마크 맥과이어의 70홈런까지 남은 건 단 두 개, 1위 배리 본즈의 73홈런까지는 다섯 개, 엄청난 홈런 페이스를 이어가고 있는 한수혁] [68호 홈런 허용한 볼티모어 투수 호세 벨트레 “한수혁에게 홈런을 맞은 공은 내 투수 인생에서 가장 완벽했다 자부할 수 있는 그런 공이었다. 홈런을 맞았지만 분함보다는 감탄이 먼저 앞선다. 그는 정말 대단한 선수다.”] [한수혁의 68호 홈런 볼을 잡은 주인공은? 텍사스에서 볼티모어까지 원정 온 야구팬 로이 설리반(65), “홈런 볼을 잡아냈다는 기쁨보다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는 게 더 즐겁다. 연금을 다 털어먹는 한이 있더라도 남은 한수혁의 경기를 모두 쫓아다닐 계획.”] [메이저리그를 넘어 미국 전체로 퍼져 나가고 있는 한수혁의 이름, 미국 모든 프로 스포츠 선수 중 인지도와 인기 면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는 스물 초반의 젊은 청년 한수혁] [다시 한 번 재조명되는 한수혁의 시애틀 입단 과정, 다니엘 미첼 단장 “그분을 모시기 위해 3년 동안 공을 들였다.”] [역대 최강의 홈런타자와 에이스를 동시에 갖게 된 시애틀 팬들 “하루하루가 너무 즐겁다. 시즌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그렇게 볼티모어에 연승을 거둔 시애틀은 그들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라이언 티보우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4 대 3, 한 점 차 석패를 당했다.
홈런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5타수 2안타 2타점으로 활약한 한수혁, 그리고 오랜만에 홈런을 추가한 타이 존슨이 분전했지만 3연패만은 안 된다는 각오로 똘똘 뭉친 볼티모어 선수단의 기세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시애틀 팬들 중 그 누구도 선수들의 탓하지 않았다.
경기에 지든 이기든, 언제나 납득할 수 있는 경기, 어쩌면 올 시즌 시애틀의 최고 강점은 바로 그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볼티모어와의 시즌 마지막 3연전을 마친 시애틀 선수단은 이번 원정 17연전의 마지막을 장식할 클리블랜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