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3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33화(334/412)
#333. 오클랜드 4연전(2)
나라마다 인종이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 관습, 문화 모든 것이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살아가며 맞닥뜨리게 될 불행에 대한 속담이다.
불행은 언제나 무리를 이뤄 찾아온다, 안 좋은 일은 항상 연이어 벌어지곤 한다, 어느 날 내게 불행이 찾아왔다면 그 뒤에 또 다른 불행을 달고 오지 않았는지 주의해야 한다 등등.
이런 속담에서 알 수 있듯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렇게 안 좋은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법이다.
오늘, 두 번의 병살타와 팀의 패배를 부르는 결정적인 포구 실책,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급소보호대에 타구를 맞고 교체되어야 했던 오클랜드의 주전포수 데스몬드 킹처럼 말이다.
“아악! 만지지 마!”
“환자분? 엄살 부리지 마시고요. 괜찮습니다. 그냥 순간적으로 놀랐을 뿐이에요. 저희가 드리는 팩으로 찜질 잘 하시면 내일 아침이면 별 문제 없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빌어먹을 개자식들…….”
마이너리그에서 2년, 그리고 다시 빅리그에서 거의 7년,
나름 야구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데스몬드 킹이었지만 오늘처럼 운이 없는 날은 정말 난생 처음이었다.
1회, 적시타가 될 뻔한 타구가 병살타가 된 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8회까지 진행된 숨 가쁜 난타전.
1사 만루 찬스에서 그가 친 타구가 또다시 한수혁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을 때,
‘빌어먹을…….’
데스몬드 킹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 믿는 신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대체 왜 이런 시련을 내리는 거냐고, 왜 저런 자식을 같은 지구 팀으로 오게 해서 이런 아픔을 겪게 하는 거냐고.
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반발에 역정이라도 내듯 더 큰 시련을 내려주었다.
“끄억…!”
“헤이, 이봐! 괜찮아? 살아 있는 거지? 숨 쉬어! 숨 쉬라고!”
9회 말 수비, 오늘 결정적인 찬스에서 두 개의 병살타를 기록한 데스몬드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데릭이 친 파울 타구가 좋지 못한 곳으로 향했고, 결국 그는 코치의 부축을 받으며 덕아웃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수혁이 끝내기 안타를 치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다.
따아악!
– 됐어요! 끝났습니다! 이 길고 긴 승부가 결국 시애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한수혁 선수가 친 타구가 아무도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집니다!
– 중계 카메라가 오클랜드의 데스몬드 킹 선수를 잡습니다. 저 선수 오늘 정말로 많은 일들을 겪었죠. 괜찮아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그나저나 급소는 괜찮나 모르겠습니다
– 어쨌든 오늘 경기는 결국 시애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멋진 경기었어요. 그럼 스티브, 내일 다시 만나도록 하죠.
그렇게 3시간 반 동안 이어진 혈전의 승자가 시애틀로 결정났고, 데스몬드 킹은 경기를 망친 주범이자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9회말 투아웃까지 이어진 팽팽했던 승부, 결국 포구 실책에 이은 끝내기 안타로 시애틀의 8 대 7 승리로 끝나] [홈런은 추가하지 못했지만 안타 2개, 3타점으로 맹활약한 한수혁 “팀이 이겼으니 다른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일도 최선을 다할 것.”] [확장로스터로 올라와 데뷔 첫 승을 기록한 시애틀의 루키 사무엘 라모스 “내가 뭘 한 건지 아직도 얼떨떨하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인 한수혁이 다가와 축하한다고 말해줬을 때 나는 비로소 승리투수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지만 투수로서 그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날 승리로 4연승 기록한 시애틀, 1선발 라이언 티보우 앞세워 5연승 도전] [팀의 패배에 분노한 오클랜드 팬들 “경기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겠지만 오늘 경기 패배는 모두 데스몬드 킹 때문. 그와의 FA 계약에 대해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차라리 그를 내보내고 다른 선수를 잡아야 한다.” 맹비난] [9회말 급소보호대에 타구를 맞고 실려나간 데스몬드 킹, 검사 결과 특별한 부상은 없어, 내일 경기에도 정상 출전할 듯. 오클랜드 팬클럽 “빌어먹을, 불알 하나는 쓸데없이 튼튼한 모양이군.” 조롱]“Fuck!”
아무도 없는 텅 빈 호텔 객실, 급소에 찜질팩을 댄 채 누워 있던 데스몬드 킹이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던져 버렸다.
* * *
“한, 정말 존경합니다. 어제는 모두 당신 덕분이었어요.”
“이봐, 너랑 나랑 몇 살 차이 난다고 생각해? 그렇게 깍듯할 필요 없어.”
“아뇨, 야구에 나이 같은 게 무슨 상관인가요. 아무튼 전 처음 메이저리그 승리투수가 된 어제의 기억을 잊지 못할 겁니다.”
“흠.”
9월 확장 로스터로 팀에 합류해 어제 경기에서 3분의 1 이닝을 던지고 승리 투수가 된 사무엘 라모스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따라다녔다.
98마일에 달하는 포심과 20-80 스케일에서 60점을 받은 아주 괜찮은 커브를 가진 좌완투수.
회귀 전에는 보스턴으로 트레이드 된 후 기량이 만개했던 녀석이 풋내기의 얼굴을 한 채 나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말 윗사람을 대하듯 어휘 선택 하나하나에 공을 기울인 그의 말이 약간은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왠지 고개를 끄덕이면 아기 새가 하나 더 늘어날 것 같은 기분이랄까.
물론 그러려면 이 녀석이 계속 로스터에 남아 있어야겠지만.
“흐흐, 웬만하면 그냥 받아주지 그래. 처음도 아니잖아.”
“처음이 아니니 문제죠.”
“그런가? 하하, 아무튼 이제는 너도 익숙해져야지. 지금 마이너에 있는 놈들 중에 타자나 투수나 전부 너만 바라보고 뛰고 있을걸? 젠장, 이렇게 말하니 꼭 내가 퇴물이 된 기분이군.”
어제 경기에서 손맛을 봐서 그런지 기분이 한층 좋아진 타이 존슨이 나와 사무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갔다.
나를 존경하는, 혹은 따르는 후배.
그러고 보니 한국에도 그런 녀석들이 있다.
최마루와 박동석, 최재민,
어느덧 신인 티를 벗고 워리어스의 중심이 된 녀석들.
“그나저나 한, 시즌 끝나면 한국에 다녀올 거야?”
“음… 원래는 그냥 미국에서 훈련이나 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한번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네.”
* * *
시애틀의 1선발인 라이언 티보우와 오클랜드의 1선발 데빈 맥퍼슨.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라이언 티보우 쪽이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두 선수 모두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들이라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들이다.
그 두 선수가 맞붙은 가운데 시애틀과 오클랜드 간의 시즌 11차전이 시작되었다.
“플레이!”
어제 경기에서 발가락이 불편한 걸 참고 뛰었던 짐 브라운에게 하루 동안의 휴식이 주어졌고 대신 확정 로스터로 팀에 합류한 헨리 에르난데스가 좌익수로 들어간 걸 제외하면 현재 시애틀이 가동할 수 있는 최선의 선발 라인업이다.
이제는 정말 보기만 해도 든든한 마음이 드는 자신의 동료들을 훑어본 라이언이 타자를 향해 힘찬 초구를 뿌렸다.
파앙
“스트라이크!”
어제 경기에서 몸에 맞는 공으로 조기 교체된 오클랜드의 리드오프 맷 로빈슨은 장타력이 조금 부족하지만 출루에는 상당한 장점이 있는 타자다.
또한 볼 카운트가 불리해지면 공에 배트를 갖다 대고 내야안타를 노리기도 하는, 약간은 클래식한 타입의 리드오프다.
이런 타자와 상대할 때는 최대한 빠른 승부를 가져가는 편이 좋다 생각한 라이언이 몸 쪽 공을 요구하는 포수의 사인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파앙
“스트라이크!”
유인구 하나 없이 연이어 존 안으로 들어오는 위력적인 공들.
눈썹을 살짝 찌푸린 맷 로빈슨이 타임을 요청하고 타석에서 물러섰다.
배팅장갑을 벗었다 다시 끼고, 시애틀 내야진의 움직임을 다시 한 번 체크하고,
준비를 끝낸 맷 로빈슨이 신중한 표정으로 타격 자세를 취했다.
비슷한 코스로 공이 들어오면 일단 때려내겠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오늘 라이언 티보우의 컨디션은 그야말로 최고조,
부웅
퍼엉
“스윙! 아웃!”
홈플레이트 거의 앞까지 포심처럼 날아오다 훅 가라앉은 스플리터에 맷 로빈슨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다.
공 세 개 만에 아웃카운트 하나를 따낸 라이언 티보우는 다음 타자에게도 빠른 승부를 걸기로 마음먹었다.
‘또? 노리고 있을 텐데.’
‘상관없어. 오늘 내 공은 최고야.’
‘흠, 좋아, 라이언. 한번 해보자고.’
몇 년간 호흡을 맞추며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 라이언과 브루스.
라이언은 생각했다.
만에 하나 저 친구가 FA로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되면 꽤나 허전해질 것 같다고.
레너드 존스 역시 좋은 포수가 될 자질을 보이고 있지만, 자신이 풋내기이던 시절부터 함께 성장해온 옛 친구의 자리는 그만큼 클 수밖에 없는 거니까.
머리를 한 번 흔드는 것으로 떠오르는 잡념을 몰아낸 라이언이 오클랜드 2번 타자의 몸 쪽 가장 낮은 코스로 파고드는 컷패스트볼을 던졌다.
잠시 움찔했던 타자의 배트가 뭔가에 이끌리듯 끌려 나왔고, 중심에 맞지 못한 힘없는 타구가 3루수 앞으로 굴러가며 또 하나의 아웃 카운트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오클랜드의 주장이자 리그 정상급의 1루수인 훌리오 페냐가 타석에 들어섰다.
* * *
“헤이, 데스몬드 그 친구는 좀 괜찮아?”
“괜찮으니까 오늘 선발로 나왔겠지? 그래도 걱정해줘서 고맙군.”
“당연하지. 우리는 몸이 재산이잖아. 누가 됐든 다치는 일은 없어야지.”
“동감이야.”
전체적으로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두 팀의 선수들이지만 어디나 그렇듯 예외는 있는 법이다.
다른 놈들과는 말조차 섞기 싫어하는 브루스이지만 훌리오 페냐만큼은 예외였다.
아니, 브루스뿐만이 아니었다.
평소 기부나 자선활동에도 자주 참여하는, 다른 팀 선수들에게도 최대한 예의를 잃지 않는 훌리오 페냐를 싫어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니까.
그런 훌리오를 슬쩍 바라본 브루스가 라이언을 향해 조심스럽게 사인을 보냈다.
‘이놈은 조심해야 해. 일단 이 공으로 슬슬 유인해보자.’
‘좋은 생각이야.’
라이언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졌고, 그의 손끝에서 96마일의 투심이 힘차게 쏘아져나갔다.
바깥쪽 존에 걸칠 듯 말 듯 들어온 예리한 공.
“볼.”
하지만 훌리오의 배트는 움직이지 않았고, 주심의 입에서 볼이 선언되었다.
‘볼이 되었지만 좋은 공이었어. 이번에는 아래로.’
끄덕
땅 바닥에 처박혀도 좋으니 최대한 낮게 던지라는 브루스의 주문에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실전에서는 거의 써먹기 힘들었던 스플리터이지만 한수혁의 투구에서 영감을 얻은 라이언은 이 공의 완성도를 집중적으로 끌어 올렸고 그 결과 새로운 무기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슈웅
부웅
“스윙!”
역시나,
홈플레이트 앞에서 급격하게 가라앉는 스플리터에 훌리오의 배트가 그대로 끌려 나왔다.
볼 카운트 원 볼 원 스트라이크.
유인구를 하나 더 던질까 고민하던 브루스가 오늘 라이언의 구위를 생각하곤 금세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렇게 좋은 공을 던질 수 있는 날에는 그 리듬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 생각하며.
‘몸 쪽 높은 코스 포심’
끄덕
어퍼 스윙을 즐겨하는 훌리오 페냐의 약점 중 하나인, 제대로 던지기만 하면 삼진을 잡아낼 수 있는 몸 쪽 높은 코스.
포수와 뜻이 통한 것에 기분이 좋아진 라이언이 들뜬 기분으로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지기 위해.
하지만,
최고의 공을 던지겠다는 욕심이 라이언의 밸런스를 무너뜨렸고, 릴리스 포인트가 흔들린 공이 목표했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다.
퍼엉
“볼.”
몸쪽 높은 곳으로 날아 들어온 공.
깜짝 놀란 훌리오가 뒤로 물러나며 그 공을 피해냈고, 투수의 표정에서 고의성이 전혀 없었다는 걸 깨달은 그가 별 말 없이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슈웅
따악!
결국 훌리오는 1루수 땅볼로 물러났고, 그렇게 1회초 오클랜드의 공격이 끝났다.
몸에 맞는 공이 나올 뻔했지만 공을 던진 라이언이 미안하다는 사인을 보냈고, 당사자인 훌리오 역시 그 뜻을 이해하며 사태는 유야무야 지나갔다.
그렇기에 방금 전 일을 문제 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한 사람,
대기 타석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투수를 노려보고 있던 데스몬드 킹을 제외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