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3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34화(335/412)
#334. 오클랜드 4연전(3)
올 시즌 최악의 라이벌 관계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사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시애틀과 오클랜드는 서로를 라이벌로 인식한 적이 거의 없었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홀로 북서부에 따로 떨어진 시애틀은 애초에 라이벌이라 부를 만한 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신경 쓰이는 팀이라 봐야 시애틀이 황금기를 맞았던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포스트시즌에서 매번 앞을 막아섰던 양키스 정도.
오클랜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필라델피아에 연고를 두던 시절 악연을 쌓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라든지 지구 내에서 세력 다툼을 벌인 LA에인절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정도가 오클랜드의 라이벌이라 부를 만한 팀이었다.
만년 약체의 이미지가 풀풀 풍기는 시애틀은 애초에 라이벌로 쳐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오클랜드가 올 시즌 시애틀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다.
승부뿐만이 아니었다.
개막전에서 터진 벤치클리어링으로 인해 자신은 FA 직전 해 가장 중요한 시즌을 망치고 말았고, 어제 경기에서는 팀의 리드오프가 빈볼을 맞기도 했다.
사실 개막전에서 벤치클리어링은 데스몬드 자신이 자처한 것이고, 어제 경기에서의 사구는 투수의 실수였을 뿐이지만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데스몬드 킹에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데빈, 훌리오는 이대로 넘어갈 생각인 거 같지만 난 도저히 못 참겠어.”
“나도 같은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뭘 어쩌려고? 타석에도 들어서지 않는 투수를 맞출 수는 없는 거잖아. 아니, 잠깐만, 너 설마?”
“설마, 뭐?”
“한수혁 저놈을 맞추자는 건 아니겠지. 이봐, 그건 절대 사양이야. 지금 이런 분위기에 저 녀석을 맞혔다가는 난 살아서 시애틀을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고.”
아무리 데스몬드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그리고 그와 오랜 시간 친분을 쌓은 사이라 해도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까지 불과 4개만을 남겨놓은, 그리고 내일 선발로 등판해 시즌 20승을 노릴 예정인 한수혁에게 빈볼을 던질 수는 없었다.
이곳 T모바일파크를 가득 메운 시애틀 팬들, 그리고 그의 홈런 볼을 잡기 위해 몰려든 가지각색의 야구팬들을 생각하면 말이다.
“젠장, 나도 알아. 생각 같아서는 그 녀석부터 박살 내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겠지. 그러니 뭐, 어쩌겠어. 저놈들이 우리 팀 주장을 맞힐 뻔했으니 우리도 저쪽 베테랑을 노릴 수밖에.”
“그럼……?”
“타이, 저 노친네한테 본때를 보여주자고. 제기랄, 생각해보면 이게 다 그놈 때문인지도 몰라. 시애틀 저 애송이들이 저렇게 맘대로 날뛰는 거 말이야.”
“보복구도 좋고, 기선 제압도 좋고, 다 좋은데 말이야. 데스몬드.”
“좋은데 뭐?”
“한수혁 그 개자식이 또 미쳐 날뛰지 않을까?”
“풋, 너 같으면 홈런 신기록에 내일 선발 20승 도전에, 몸값을 올릴 기회가 주렁주렁 걸린 이런 상황에서 또 주먹을 휘두를 것 같아? 절대 못 해. 안심해. 만약에 저놈이 뛰어 나오면 이번에는 내가 꼭 갚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너 저번에도 그러다가 반항 한번 못 하고 박살 나지 않았냐는 말이 데빈 맥퍼슨의 목구멍까지 올라갔다 쑥 내려갔다.
잔뜩 흥분한 채 눈알을 번득거리는 자신의 오랜 파트너.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몸값 수천만 달러가 오갈지도 모를 이런 중요한 상황에서 주먹질을 할 미친 인간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어쩌면 오늘이 저 꼴 보기 싫은 팀, 그리고 미친 개자식에게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몰랐다.
“좋아. 나 역시 저런 놈들이 설치고 다니는 걸 지켜보긴 싫으니까.”
“잘 생각했어. 뒷일은 내게 맡겨, 데빈. 어차피 넌 선발투수잖아. 몇 경기 출장정지를 먹는다고 해서 특별한 불이익은 없을 거야.”
* * *
1회 말, 시애틀의 선두타자로 나서게 된 데릭 플레밍은 생각했다.
어쩌면 이전 이닝에 있었던 일로 인해 자신에게 빈볼이 날아올지도 모르겠다고.
어제 경기 분위기를 감안하면 분명 일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오늘 오클랜드의 안방을 지키는 놈은 한수혁에게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리그 최악의 폭군이라 불리던 데스몬드 킹.
‘흠, 엉덩이 정도라면 그냥 한 대 맞아주고 끝내는 게 나을지도.’
어제부터 시작된 이 긴장된 분위기가 엉덩이 한 방에 끝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참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데릭이 타격 자세에 들어갔다.
하지만,
따악!
“아웃!”
공 다섯 개 끝에 2루 땅볼로 물러난 데릭이 의아한 표정으로 투수를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빈볼은 없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긴 했지만 자신의 예상이 빗나간 거라 믿었다.
다음 타자인 한수혁이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날 때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오클랜드 역시 쓸데없는 감정싸움보다는 승리를 위해 노력하기로 마음먹은 거라 생각했다.
투수가 던진 공이 타이 존슨의 어깨를 향해 날아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퍼억!
“아아악!”
어지간한 일에는 꿈쩍도 않는 타이 존슨이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쓰러졌다.
운이 없었다.
어깨로 날아오는 공을 피하기 위해 들어 올린 손, 그중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약한 손가락에 97마일 포심이 작렬했다.
자신의 예감이 맞았음을 알게 된 데릭이 욕설을 퍼부으며 그라운드로 뛰어올랐고, 그 뒤를 이어 시애틀 선수들이 우르르 마운드를 향해 달려 나갔다.
그 순간 데스몬드 킹과 데빈 맥퍼슨의 눈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에는 코치들에게 둘러싸인 채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한수혁이 있었다.
“개자식들! 죽여버릴 거다!”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곤 있지만 데스몬드와 데븐의 눈동자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놈들은 한수혁의 말을 허세라고 생각했다.
선수 커리어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지나고 있는 놈이 겨우 이런 일에 모든 걸 포기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한수혁에 대한 경계심을 거둬도 된다고 판단한 데스몬드와 데빈이 시애틀 선수들과 몸싸움을 시작했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심판이 달려오고, 흥분한 선수들이 여기저기에서 충돌을 일으켰다.
자신의 의도가 제대로 먹혀들었음을 느낀 데스몬드가 그 충돌의 현장 가장 바깥쪽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그때,
“안 돼! 잡아! 빨리!”
“한을 말려! 안 된다고!”
“젠장, 왜 저렇게 빨라! 미친!”
어디선가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시애틀 코치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데스몬드 킹이 그 소리의 근원지를 빠르게 쫓았다.
“막아! 데릭! 한을 막으라고!”
“안 돼! 절대 안 돼! 여기서 주먹을 휘두…….”
자신을 막던 코치들을 힘으로 뚫어낸 한수혁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순간 소름이 오싹 돋은 데스몬드가 자신의 친구이자 파트너인 데빈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한수혁이 달려가는 곳 앞에 데빈 맥퍼슨이 애처롭게 서 있었다.
주변에 있던 시애틀 선수들이 한수혁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둘러싼 인의 장벽을 치기 시작했을 때,
데스몬드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잠시 후,
퍼어억!
“꾸웩!”
동료들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일직선으로 달려온 한수혁이 그 속도 그대로 데빈 맥퍼슨의 턱을 날려버렸다.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데빈 맥퍼슨이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르 돌더니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제길! 바로 그거야! 비켜! 나도 갈 거다!”
“오빠! 기다려요! 내가 가요!”
“오클랜드 이 개자식들! 그래, 내 펀치 맛을 보여주마!”
“흔들어! 안전망을 무너뜨려 버리라고!”
한수혁의 폭주에 잔뜩 흥분한 시애틀 팬들이 입에 거품을 물며 안전망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수십 명에 달하는 관중들이 안전망에 매달린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아, 으, 어… 이게…….”
데스몬드 킹의 머리가 재빠르게 회전했다.
설마 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단일 시즌 최다 홈런, 20승, 그런 중요한 고지를 코앞에 둔 녀석이 저렇게 폭주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단 덕아웃으로……!’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도망뿐이었다.
경기장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덕아웃 안에 있었다.
데스몬드의 눈이 빠르게 덕아웃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으로 가려다가는 돌진해오는 한수혁, 그리고 마치 그를 호위하듯 따르고 있는 시애틀 선수들과 정면으로 충돌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외야! 그래 불펜으로 도망을…….’
그 순간 저 멀리 외야 쪽 불펜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떠올랐다.
생각을 마친 데스몬드가 마스크를 집어던지고 외야 쪽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렸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한수혁이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놈이란 걸,
그리고 한 번 열이 뻗치면 성적이고 커리어고 그런 건 아무 상관도 없는 진짜 미친 인간이라는 걸,
‘젠장, 빌어먹을!’
이럴 줄 알았다면 절대 이런 무모한 짓은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스피드로 자신을 쫓아오는 한수혁, 그리고 자신을 도와주기에는 너무 멀어져버린 동료들과 심판들.
지금 믿을 건 자신의 다리밖에 없었다.
“에잇! 걸리적거리잖아!”
차고 있던 프로텍터를 벗어 던지니 그나마 조금 속도가 올라간다.
열심히 도망가다 보니 어느새 외야 불펜 통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 정도면 됐겠지, 이 정도면 포기했겠지,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본 데스몬드 킹.
그 순간 그의 눈에서 별이 번쩍였다.
퍼어억!
“커헉!”
“이 개자식!”
한수혁이었다.
대체 어느 틈에 여기까지 쫓아온 것인지 한수혁이 데스몬드 킹의 턱에 펀치를 먹이곤 그대로 위에 올라탔다.
“끄으윽, 이거, 이거 놔… 놔! 이 개자…….”
“내가 저번에 분명히 경고했지? 한 번만 더 헛짓거리를 하면 죽여버릴 거라고.”
“…크허헉, 너 여기서 날 치면 기록이고 뭐, 뭐고…….”
“기록? 네가 왜 그걸 걱정해, 이 개자식아. 지금 네가 걱정할 건 내일 네가 살아서 아침 해를 볼 수 있냐 그거뿐이야.”
“놔… 놓……!”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좆같은 짓을 하면 좆같은 짓을 당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둬. 이 빌어먹을 자식아.”
그것이 데스몬드가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한수혁의 목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또 한 번 별이 번쩍였고,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데스몬드의 의식이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허억, 허억, 허억, 퇴, 퇴, 퇴장……!”
“저리 비켜! 한! 한! 괜찮아?”
“저 친구를 보호해. 오클랜드 빌어먹을 자식들이 몰려오기 전에!”
뒤늦게 달려온 심판이 한수혁을 향해 퇴장을 외치고, 그 뒤를 이어 도착한 시애틀 동료들이 한수혁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쌌다.
그 순간,
와장창!
우르릉!
뭔가 심각하게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1, 3루 안전망이 동시에 그라운드 안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수백 명에 달하는 시애틀 팬들이 눈에 불을 켠 채 그라운드 안으로 뛰어 들었다.
“어억! 도망쳐! 빌어먹을!”
“젠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한수혁과 데스몬드를 향해 달려오던 오클랜드 선수들이 그 광경에 기겁을 하고는 자신들의 덕아웃을 향해 전력으로 도망쳤다.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1, 2위 팀 간의 라이벌전이 그렇게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