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3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36화(337/412)
#336. 홈런포 재가동
20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아니, 야구를 넘어 거의 대부분의 프로스포츠에 루키 헤이징이라는 문화가 있었다.
Rookie hazing, 말 그대로 신인을 괴롭힌다는 뜻이다.
새로 입단한 신인의 눈썹이나 머리를 밀어버리거나, 옷을 찢어버리거나, 심지어 물리적인 위력을 행사하는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한 문화.
여기서 파생된 것이 루키 헤이징 데이다.
신인들에게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히고, 그 상태로 심부름 같은 걸 보내 망신을 주는 등 베테랑들에게는 즐겁지만, 당하는 신인들은 곤혹스럽기 그지없는 행사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인종과 성별, 차별 등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지며 이런 루키 헤이징 문화는 점차 사라져 갔다.
대신, 평소에 보지 못한 선수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흥미를 느끼는 팬들을 위해 신인뿐만 아니라 팀 내 모든 선수가 참여하는 일종의 코스튬 데이의 형태로만 남게 되었다.
그것이 지금, 한수혁이 이상한 복장을 한 채 T모바일파크로 향하는 이유다.
“오빠, 춥지 않… 푸웁!”
“예린아…….”
“아, 죄송해요. 웃으려고 한 게 아닌데, 사실 복장 자체는 전혀 웃기지 않아요. 그냥 오빠가 이러고 있는 게 웃겨서.”
“그게 웃기다는 거랑 뭐가 다른데?”
“헤에…….”
자율주행차 뒷좌석에 동석해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보며 계속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세상에 다시없을 슈퍼스타라 해도 구단에서 공식으로 주최하는 코스튬 데이에 불참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손가락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타이 존슨조차 참가하는 마당이니 말이다.
끼익
잠깐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 한수혁의 자율주행차가 목적지인 T모바일파크에 도착했다.
선수 전용 주차장에 멈춰선 차에서 민예린이 먼저 내렸고, 뒤를 이어 한수혁이 차에서 내려섰다.
그 순간,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다.
미리 자리를 잡고 선수들의 출근을 기다리고 있던 시애틀 팬들이었다.
파파파파팟!
“이봐, 한! 이쪽을 한 번 봐달라고!”
“아니, 이쪽이야. 이쪽으로 돌아서!”
“그 가운은 벗어버리는 게 어때?”
“오빠! 나 죽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는 검은색 가운.
그걸 뒤집어 쓴 채 눈만 살짝 내놓은 한수혁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그럼 나 먼저 들어간다. 경기 재미있게 봐.”
* * *
본래대로라면 지난 오클랜드와의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치러질 예정이었던 시애틀 매리너스의 코스튬 데이가 이런저런 일들로 인해 오늘,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 전으로 일정이 변경되었다.
시애틀의 클럽하우스 안, 각양각색의 코스튬을 한 선수들이 서로를 놀리기에 바빴다.
매리너스(뱃사람들)의 주장이라는 타이틀답게 선장 복장을 한 라이언 티보우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덩치를 더욱 크게 보이게 하는 설인 코스튬을 한 타이 존슨, 원숭이 탈을 뒤집어 쓴 데릭 플레밍, 메이드 복장에 앞치마까지 걸치고 한숨을 푹푹 쉬고 있는 브루스 매튜스 등.
하지만 그 모든 선수들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건 역시 한수혁이었다.
“흐흐, 내가 이겼군. 다들 천 달러씩 내놔.”
“젠장, 이봐. 한. 그걸 왜 입은 거야?”
“내 피 같은 돈이… 쯧.”
“이봐, 너희들 날 놓고 내기를 한 거야?”
“당연하지. 제길, 난 당연히 다른 옷을 고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 말에 한수혁이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뭘 입든 어차피 우스꽝스러운 건 마찬가지잖아. 그냥 빨리 끝내자고.”
“그래, 좋아. 팬들이 기다리겠군. 나가보자고.”
* * *
– 자, 고동식 위원님, 드디어 한수혁 선수의 복귀전이 치러지는 날입니다.
– 네, 그 데스몬드 킹인지 뭔지 하는 허ㅈ… 흠, 아무튼 네 경기 출장정지가 어제로 모두 끝났죠? 오늘 한수혁 선수는 시즌 선발 21승, 그리고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홈런을 향해 다시 도전하게 됩니다.
– 자, 아직 그라운드 정리가 끝나지 않았군요. 지금 TV를 켜신 시청자분들은 조금 의아해하실 수도 있겠는데, 방금 전 식전 행사로 시애틀 매리너스의 코스튬 데이가 진행되었거든요. 위원님, 이번 코스튬 데이의 최고 스타는 역시 한수혁 선수였습니다. 프리미엄 티켓을 구매해 사전 행사를 함께한 시애틀 팬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 맞습니다. 오늘 한수혁 선수는 복싱선수 코스튬을 하고 행사에 참여했죠. 처음에는 왜 저런 걸 입었나 했는데 흠, 알고 보니 그분이 보내주셨더군요.
– 그 분, 네, 그렇죠.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전설적인 복싱선수 마이크 타이슨이 자신이 현역 시절 입었던 복싱 트렁크와 글러브, 가운까지 구단 측을 통해 직접 전달했다죠? 정말 멋진 펀치였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 네, 한국에서는 한수혁 선수의 벤치 클리어링이 있을 때마다 일부 안티 세력들이 과도한 폭력성이니 뭐니 난리를 피워대지만 오히려 여기 현지에서는 한수혁 선수의 펀치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는 여론이 더 우세합니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지난 오클랜드전에서 그 데빈, 데스몬드, 두 개노… 흠, 어쨌든 상당히 흥미로운 행사였고요. 한수혁 선수가 복싱 선수 복장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어휴, 정말 복싱을 했어도 잘했을 거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 한마디로 스포츠 천재죠.
– 맞아요, 천재죠. 야구가 아니라 뭘 했어도 세계 최고가 되었을 그런 선수죠. 어쨌든 오늘 한수혁 선수의 시즌 스물다섯 번째 선발 등판 경기이자 단일 시즌 최다 홈런을 위한 또 한 번의 발걸음, 다 함께 지켜보도록 하시죠.
– 알겠습니다. 그럼 광고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이곳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 T모바일파크입니다.
* * *
한수혁과 타이 존슨, 타선의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두 선수가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10연승을 내달리고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
일찌감치 탱킹을 선택하고 꾸역꾸역 하루를 버티고 있는 휴스턴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상대였다.
팀의 중심을 이루던 선수들이 모두 팔려나가고, 될 성싶은 떡잎들은 아직 마이너에 남아 있는, 그렇기에 처분하기도 어려워 그냥 데리고 있는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휴스턴 선수단이 리그 최강 투수 한수혁을 상대했다.
퍼엉!
“스트라이크!”
지난 시즌까지 7번을 쳤던, 하지만 쓸 만한 선수들이 모두 팔려나가며 얼떨결에 3번 타선에 서게 된 포수 프레드 에이버리는 생각했다.
‘진짜 미친놈이군.’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냥 아시아에서 건너온 야구 좀 잘하는 루키인 줄 알았던 놈이 불과 한 시즌 만에 메이저리그를 폭파해버렸다.
투타 모든 면에서 역대급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야구 실력은 말할 필요도 없고, 한 번 꼭지가 돌면 앞뒤 사정 보지 않고 펀치부터 날리는 흉악한 인성까지.
한마디로 말해 절대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될 그런 놈이었다.
오늘 경기 전 저 녀석이 마이크 타이슨의 코스튬을 하고 있는 걸 보았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몰라도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서 격투기나 할 것이지, 대체 왜 야구를…….’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다 보니 더더욱 한숨이 나온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도 않았건만 프레드 에이버리의 마음은 이미 애인과 함께 떠나기로 약속한 스페인 휴양지로 향해 있었다.
‘쩝.’
입맛을 다신 프레드가 시선을 돌려 덕아웃에 있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 눈이 풀려 있었다.
프레드는 생각했다.
‘끝났군.’
한숨을 푹 쉬는 프레드를 향해 힘이 펄펄 넘치는 한수혁의 107마일 포심이 날아들었고,
부웅
“스윙! 아웃!”
턱도 없는 스윙을 한 프레드 에이버리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 * *
얼마 전까지 시애틀 매리너스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이 팀의 최고 전성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MVP와 신인왕,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 등 타자가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싹쓸이한 스즈키 이치로와 에드가 마르티네스, 마이크 캐머런, 브렛 분, 존 올러우드 등의 타선, 그리고 프레디 가르시아를 중심으로 한 선발진, 일본인 마무리 투수 사사키 가즈히로 등의 활약에 힘입어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승 타이 기록인 116승을 올렸던 2001년이야말로 시애틀의 최고 전성기였다고.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T모바일파크는 찾은 시애틀 팬들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모두 똑같이 대답할 것이다.
산술적으로 116승까지는 힘들겠지만 98승 49패, 승률 0.666을 기록하며 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는, 거기에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한수혁의 데뷔 시즌이기도 한 2030년이야말로 시애틀의 최고 전성기가 아니겠냐고 말이다.
[2번 타자 피처 한수혁]7 대 0으로 앞선 시애틀의 8회 말 공격, 2사 만루 찬스,
웅장한 베이스 연주음과 함께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 선발로 등판해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한수혁.
앞선 타석에서 이미 안타 1개와 타점 한 개를 기록한 그가 침착한 표정으로 상대 투수를 바라보았다.
점수가 크게 벌어지자 벤자민 감독은 아무 미련 없이 그를 마운드에서 내리고 계투진을 투입시켰다.
그렇기에 선발투수에서 지명타자로 자리를 옮긴 그는 아무 부담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타격에 집중할 수 있었다.
경기가 시작됐을 때부터 이미 마음은 휴양지로 떠나 있던 휴스턴 포수 프레드 에이버리가 인상을 잔뜩 쓴 채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싫어, 저놈 특기가 그걸 밀어 쳐 우측 담장을 넘기는 거라고.’
‘후, 그럼 몸 쪽 낮은 체인지업.’
‘미쳤어? 저놈이 원바운드 공을 어떻게 받아쳤는지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그럼 대체 뭘 어쩌자고, 미친놈아!’
‘됐어, 내 마음대로 던질 거야.’
포수와 투수 간의 사인이 길어지자 한수혁이 무심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왜, 투수가 말을 안 들어? 특별히 기다려줄 테니 가서 한 대 쥐어박고 와. 포수 말을 안 듣는 투수는 벌을 받아야지.”
“닥… 휴, 됐고. 난 너랑 할 말 없어.”
한수혁과의 대화를 사전에 차단해버린 프레드가 투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 마음대로 던지던지, 개자식아.’
아직 승부는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이미 내부 분열이 시작되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투수가 바깥쪽 턱도 없는 곳으로 공을 뿌렸다.
하마터면 그대로 뒤로 빠질 뻔한 그런 위험한 공이었다.
“볼.”
“우우우우우!”
“겁먹었냐! 왜? 만루에서 고의사구라고 주게?”
“그러니 너희가 평생 탱킹이나 하는 거야, 개자식들아!”
“정정당당하게 승부해! 빨리 얻어터지고 꺼져버리라고!”
폭투로 점수를 줄 뻔한 투수, 그 공을 놓칠 뻔했던 포수, 그리고 쏟아지는 시애틀 팬들의 야유에 정신이 어질어질해진 나머지 휴스턴 선수들,
그들의 소원은 단 하나,
조금이라도 빨리 경기를 끝내고 이 지긋지긋한 경기장을 탈출하는 것.
그런 휴스턴 선수단의 염원을 담은 97마일 포심이 바깥쪽 낮은 코스를 향해 힘차게 날아왔다.
그리고,
따아아아아아악!
– 으아아아아아아아! 됐어요! 됐어요! 갑니다! 쭉쭉 갑니다! 한수혁 선수가 친 타구가! 우익수 키를 넘어! 관중석으로! 떨어! 집니다! 넘어갔습니다! 시즌 71호 홈런! 한수혁 선수가 1998년 마크 맥과이어를 넘어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단독 2위로 올라섭니다!
– 허엉… 허어엉…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눈물이, 눈물이 멈추지 않는군요. 이곳 광경을 보세요. 4만 명이 넘는 야구팬들이 목이 터져라 한수혁의 이름을 외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영웅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고 있습니다. 정말 감격스러운 날입니다. 이제 한수혁 선수 앞에 남은 건 2001년 배리 본즈뿐입니다. 3개만 더 치면 한수혁 선수의 이름이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