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3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38화(339/412)
#338. 포스트시즌을 향해
“시즌 초반에 우리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죠, 스티브. 한수혁 저 친구가 어쩌면 53년 동안 맺혀 있던 시애틀 팬들의 한을 풀어주게 될지도 모르겠다고요.”
“맞아요, 기억납니다.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고 소개했었죠.”
“이제 와서 생각하니 우리가 저 선수를 너무 과소평가했네요. 젠장, 그 정도가 아니었어요. 한수혁은 혼자서도 리그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런 선수였네요.”
“맞아요. 타자로서나 투수로서나 역대 어떤 선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죠.”
“한수혁도 한수혁이지만 시애틀도 정말 대단하네요. 오클랜드전에서의 사고로 타이 존슨과 한수혁이 동시에 빠질 때만 해도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올 시즌 시애틀이 1위를 질주하는 데는 그 두 선수의 지분이 정말 컸으니까요.”
“하지만 아니었죠.”
“네, 두 선수가 모두 빠진 경기에서도 연승을 이어간 시애틀이 어제는 주전 절반을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모험을 하면서도 구단 창설 이래 두 번째 시즌 100승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2연승은 덤이었고요. 축하합니다, 시애틀.”
“말이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자면 어제 경기에서는 신인과 백업 선수들의 활약이 정말 대단했죠. 특히 중견수로 나왔던 헨리 에르난데스의 경우 데릭 플레밍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타석에서 두 번의 출루, 그리고 9회 초 결정적인 다이빙캐치까지, 가뜩이나 젊은 선수들이 많은 시애틀에 또 한 명의 유망주가 추가되었군요.”
“하하, 경기가 끝난 후 헨리 선수가 이렇게 말했죠. 모든 건 한수혁 선수의 덕분이라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글러브 안에 공이 들어와 있었다고 말이죠. 휴우, 빅리그 1년 차에 불과한 선수가 동료들로부터 저렇게 지지를 받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자, 그럼 이제 기록 이야기를 해보죠. 한수혁 선수가 대기록을 향해 또 한 발을 내디뎠죠?”
“시즌 72호 홈런.”
“휴,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여기까지 왔네요. 아, 시청자 여러분들이 하나 알아두셔야 할 건 이 선수가 이미 한국에서 한 시즌 73개의 홈런을 날린 경험이 있다는 겁니다. 보수적인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이 그 기록을 인정하냐 마냐를 놓고 떠드는 사이, 한수혁 선수가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은 셈이죠. 자, 입 닥치고 이거나 봐라.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메이저리그에서 다시 한 번 보여주마, 하고 말이죠.”
“멋진 표현이군요. 어쨌든 이렇게 되면 13경기를 남겨놓은 가운데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 타이까지는 단 하나, 신기록까지는 딱 두 개를 남겨 놓게 되었습니다. 스티브, 시즌이 끝날 때까지 한수혁 선수가 몇 개의 홈런을 때려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무리 한수혁 선수라고 해도 그걸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죠. 원래 홈런이라는 게 한 번 몰아서 나왔다가 또 어느 순간 뭔가에 막힌 듯 안 나올 수도 있다는 것 말이죠. 하지만 적어도…….”
“적어도?”
“배리 본즈의 기록 정도는 확실하게 넘어설 것 같습니다. 젠장, 제가 보기에는 그래요. 저 선수가 남은 13경기 동안 단 하나의 홈런도 치지 못하는 모습이 도저히 상상이 안 되거든요.”
“동감입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그럼 다음 소식으로 넘어가죠. 동부 지구 최강팀 양키스 내부에서 선수들 간의 알력 다툼이 있었다는…….”
* * *
세상을 오래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어떤 일이건 간에 모두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는 거다.
똑같은 일을 놓고도 각자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그렇기에 각자의 입장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의 이치였다.
하지만,
파앙
“베이스 온 볼스. 타자 1루로.”
“흠,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제길,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각자에게는 입장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좋아, 멍청이들, 오늘 일은 꼭 기억해두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 타이까지 불과 한 개만을 남겨놓은 데다가 뒤를 지켜주던 타이까지 사라졌으니 혹시 이러지 않을까 예상하긴 했다.
얻어맞으면서도 계속 덤벼들던 어제의 애송이 투수 대신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이 날까 두려워하는 늙은이가 마운드에 오를 때부터 느낌이 쎄하긴 했다.
하지만 설마 하니 네 번 연속 고의사구가 날아들 줄은 몰랐다.
그것도 4 대 2로 자신들이 앞서는 가운데 맞은 8회말 2사 만루 위기에서 말이다.
“빌어먹을 개자식들! 그게 야구야?”
“휴스턴 저 머저리들은 우리 서부지구의 망신이야. 저것들을 내셔널리그로 보내버려야 해.”
“고의사구를 던질 때마다 연봉을 10%씩 삭감해야 해. 그럼 저 녀석은 대출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군.”
쏟아지는 야유와 비아냥에 휴스턴의 베테랑 투수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무슨 마음인지 이해는 간다.
얼마 남지 않은 커리어, 그런 가운데 불명예스러운 기록 옆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싫어서겠지.
하지만 내 기록 여부는 둘째 치고, 과연 지금의 선택이 옳은 걸까?
2사 만루에서 고의사구가 나오며 4 대 2던 점수가 4 대 3, 한 점 차로 좁혀졌다.
“정말 빌어먹을 자식들이야. 안 그래, 한?”
“창피함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족속들이죠.”
베이스코치와 내가 대놓고 욕을 하는데도 휴스턴의 1루수는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 딴청을 피워댔다.
됐다. 이놈들이 이런 식인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연장으로 가지 않는 한 오늘 기록을 세우는 건 물 건너 간 것 같으니 지금은 다른 건 모두 잊고 승부에 집중할 때다.
[3번 센터필더 데릭 플레밍]벤자민 감독은 어제 1번 중견수로 좋은 모습을 보였던 헨리 에르난데스를 오늘 다시 1번 좌익수로 기용하는 과감한 라인업을 선보였다.
어제 경기에서 빠졌던 데릭은 3번 타자 겸 중견수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어쩌면 감독은 타이 존슨이 없을 경우 내 뒤를 지켜줄 차기 주자로 데릭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저 철없는 녀석은 그런 감독의 의중을 전혀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플레이!”
어쨌든 지금은 타순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오늘 휴스턴은 우리의 13연승을 저지하기 위해, 그리고 내 홈런 기록을 중단시키기 위해 내게 네 번 연속 고의사구를 던져댔다.
그 네 번의 고의사구의 책임 중 일부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데릭의 표정은 경기를 시작할 때보다 한층 어두워져 있었다.
사실 오늘 연속으로 고의사구를 당한 것 자체는 별 상관없다. 기록 달성이 조금 미뤄진다 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보다는,
음,
데릭 저 녀석이 이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앞선 타석에서 나를 1루에 두고 병살타와 삼진, 외야 플라이로 물러났던 녀석이 이번에는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파앙
“스트라이크!”
대놓고 고의사구만 던질 정도로 염치 없는 놈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마운드 위에서 공을 뿌려대고 있는 저 휴스턴 투수의 실력 자체는 무시할 바가 아니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휴스턴의 덕아웃이 움직이지 않는 게 바로 그 증거였다.
어쨌든,
빅리그에서 닳을 대로 닿은 베테랑 투수가 데릭을 향해 두 번째 공을 던졌다.
좌타자에게는 가장 먼, 배트를 내밀어도 쉽게 닿지 않을 곳으로 향하는 위력적인 투심.
예전 같으면 장타 욕심에 헛스윙을 했을 데릭이 침착하게 그 공을 밀어쳤다.
따아악!
“좋아! 가라!”
“됐다! 달려! 달리라고!”
힘을 빼고 가볍게 받아 친 타구가 우익 선상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갔다.
잡아당기기를 의식해 좌측으로 치우쳐 있던 우익수가 기겁을 하며 달려왔고, 그 사이 3루 주자, 2루 주자가 모두 홈인하며 순식간에 5 대 4로 시애틀이 역전.
그리고,
– 아아! 한수혁 선수, 멈추지 않습니다! 계속 달립니다! 2루를 돌아 3루, 다시 3루를 돌아 홈으로, 홈으로, 홈에서, 세이프! 세이프! 으아아, 살았어요, 고동식 위원님, 이걸 사네요!
– 정말 멋진 슬라이딩이었습니다! 태그를 피해 한 바퀴 구른 한수혁 선수가 반대편 손으로 홈플레이트를 찍으며 득점에 성공합니다! 그 사이 발 빠른 데릭 선수는 3루까지! 이로써 스코어는 6 대 4! 일순간에 경기를 뒤집는 싹쓸이 3루타가 나왔습니다!
경기의 향방을 다시 시애틀로 가져오는 멋진 3루타를 친 데릭 플레밍이 베이스 위에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순간,
우리는 예감했다.
오늘 경기 역시 우리의 승리로 끝나게 될 거라는 걸.
* * *
[막아설 자가 없다! 시애틀 매리너스, 8회 말 터진 데릭 플레밍의 3타점 3루타, 9회 등판한 애덤 머피의 완벽 마무리에 힘입어 6 대 4 승리, 휴스턴 애스트로스 스윕하며 파죽의 13연승] [주전과 백업, 루키와 베테랑의 완벽한 조화, 시애틀 팬들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도무지 질 것 같은 생각이 안 든다. 그들은 우리의 영웅.”]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까지 불과 두 개만을 남겨 놓은 한수혁, 그에게 쏟아진 네 개의 고의 사구. 부끄러운 메이저리그의 자화상.] [휴스턴 감독 “기록 때문에 피한 건 아니다. 그저 경기에 이기고 싶었을 뿐.” 이기고 싶은 팀이 탱킹을 하냐는 질문에 버럭 화를 내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에드가 마르티네스 “내가 현역으로 뛰던 당시 휴스턴은 적어도 염치가 뭔지는 아는 팀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사람이 아무도 안 남은 모양.” 맹비난] [한국 국적의 세계적인 팝스타 민예린 “나는 야구를 보기 위해 일 년 동안 가수 활동을 중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휴스턴의 경기를 볼 때마다 뭔가 손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건 그들이 하는 게 야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의 팬들, 휴스턴 선수들의 SNS 폭격] [메이저리그 사무국 “고의사구에 대한 규정을 손질할 필요성을 느낀다. 일단 내년 시즌부터는 자동고의사구에 대한 것부터 손을 보겠다.”] [또 다른 한국인 메이저리거인 LA에인절스의 류한결 “만약 그 자리에 있는 게 나였다면 그와 당당히 승부했을 것. 홈런은 그저 홈런일 뿐이다. 신기록에 해당하는 홈런을 맞았다고 해서 특별히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형, 정말 고맙기는 한데, 그럼 진짜 나랑 만나면 정면 승부할 거예요?”
– 내가 미쳤냐? 미리 경고하마. 내 사전에 스트라이크는 없다.
“그럴 줄 알았지. 아무튼 나 때문에 기자들이 자주 찾아가는 거 같은데 미안해요. 마지막 경기 때 밥이나 같이 해요.”
– 미안하긴. 나쁜 일도 아니고 좋은 일로 찾아오는 건데. 야, 내가 완봉 했을 때보다 네가 홈런 친 날 찾아오는 기자가 더 많더라.
“흠.”
다른 팀에 비해 비교적 빡빡한 일정을 치러낸 우리는 그 대가로 오늘 하루 휴식일을 갖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내일부터 시작될 디트로이트와의 3연전을 포함 총 12경기뿐이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이번 디트로이트와의 3차전이 나의 올 시즌 마지막 선발 등판무대가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아니, 우리는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시즌 162경기를 모두 마친 후 전체 30개 팀 중 오직 12개 팀에게만 주어지는 포스트시즌.
세계 최고 팀을 가리는 치열한 승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