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3화(34/412)
#33. 꺼져라, 쓰레기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스마트폰부터 집어 들고 스포츠 란을 뒤적거리는 게 습관인 야구팬들에게 난데없는 주전포수 방출 소식이 얼마나 큰 충격일지 대충 짐작은 간다.
부산 타이탄스와의 2차전이 예정된 날 아침,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뉴스가 야구팬들의 아침을 깨웠다.
<서울 워리어스, 주전포수 황성민 전격 방출···>
<박성훈 대표 “우리 팀에 있어서는 안 될 선수, 입에 담기도 부끄럽다”>
<구체적인 이유를 묻는 질문에 “폭행, 후배 선수의 플레이 방해”라고 짧게 답변>
﹂이거 오피셜임?
﹂눈이 달려 있으면 직접 봐라
﹂폭행? 플레이 방해? 야랄났네···
﹂근데 방출이면 다른 팀이 데려갈 수 있는 거 아님? 임의탈퇴로 묶어야 하지 않나?
﹂언제 적 얘기야. 그거 규정 바뀌어서 이제 임탈 시키려면 선수 동의 받아야 함. 저건 황성민하고는 아예 상종도 하기 싫다는 뜻임
﹂야, 야, 그게 문제가 아니고··· 저기 기사에 나온 후배가 장덕수면 걔도 오늘 경기 못 뛸테고, 그럼 우리 포수는 누가 봄?
팬들의 걱정대로 일이 흘러갔다.
2군에서 올라온 포수 둘이 급하게 경기에 투입되었지만 제대로 포구조차 하지 못하고 허둥거렸고, 급기야 9회에는 포수 경험이 있는 최민석 선배까지 마스크를 써야 했다.
그렇게 개판이 나버린 타이탄스와의 2차전,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승리했다.
어제 터진 조성오 선배의 끝내기 홈런 여파가 아직 남아 있었다. 모든 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덤벼들었고, 결국 9회말 내가 끝내기 안타를 터뜨리며 부산에 2연승을 거뒀다.
그렇게 우리가 타이탄스와 2차전을 치르는 동안 황성민이 기어코 일을 쳤다.
전날 밤 병원으로 실려갔던 놈이 어디서 본 건 있는지 휠체어까지 타고 나타나 기자들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휠체어 타고 나타난 황성민, “모든 것은 누군가의 음해다. 나는 오히려 피해자다” 주장>
<선후배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작은 오해가 있어··· 대체 무슨 말인지? 횡설수설>
﹂얼굴 보니까 저거 누구랑 싸운 거는 맞네. 아님 그냥 처맞은 건가
﹂설마··· 진짜 설마 해서 하는 소리인데 한수혁 건드린 건 아니겠지? 진짜 그런 거면 내가 황성민 저 새끼 죽여버린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답답해 죽겠네 정말
“수혁아, 역시 저 새끼는 우리가 예상한 범위를 안 벗어나는구나.”
“뭐 쓰레기들이 다 그런 거지. 기자들 모아서 영상하고 증거들 싹 다 공개해버려.”
“그래, KBO가 협조를 하든 안 하든 저 새끼는 내가 무조건 묻어버린다.”
이른 아침 발표된 황성민의 방출 소식.
이에 질 새라 워리어스가 경기를 치르는 중 진행된 황성민의 반박 기자회견.
부산과의 경기가 끝난 후 진행된 워리어스 공식 브리핑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스포츠 기자들이 모인 그곳에서 성훈이 형이 담담한 표정으로 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딸깍
“준비한 영상은 여기까지입니다.”
“···저기 박 대표님. 그러니까 황성민 선수가 후배인 장덕수 선수에게 일부러 삼진 먹을 것을 강요하면서 폭행했고, 이를 발견한 한수혁 선수와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말씀이시죠?”
“네, 방금 CCTV 영상 보신 대로입니다.”
“헐··· 그럼 저 야구 배트를 휘두른 것도 모두 다 그것 때문이고요?”
“맞습니다.”
“미친··· 황성민이 드디어 미쳤구나.”
“저거 배트에 한수혁 맞았으면 진짜 일 엄청 커졌겠는데?”
“저 지랄 해놓고 겨우 뺨 한 대 맞았다고 휠체어 타고 쇼한 거야?”
“병신 새끼, 운동 하는 놈이 쪽팔린 것도 모르고 후배한테 배트 휘두르다 제압당하고 기자회견을 벌여?”
“이해가 안 되네. 이렇게 곧바로 탄로날 거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거지?”
“거기 CCTV가 있는지도 몰랐을 걸. 불펜으로 쓰던 거 폐쇄하고 창고로 쓰느라 카메라 달아 놨다니까.”
“하긴, 걔 지능이 좀 모자라긴 해. 포수라는 놈이 경기 중에 자기 팀 사인 까먹은 게 한 두 번이 아니니까.”
“허허, 그나저나 거 싸대기 한 번 진짜 시원하네. 잘 처맞았다, 그놈 새끼. 어디 야구선수라는 놈이 사람한테 배트를 휘둘러?”
워리어스의 브리핑이 끝나자 마자 인터넷 포털 스포츠란이 황성민의 이름으로 뒤덮였다.
<다시는 벌어져서는 안 될 사건, 워리어스의 분노는 정당했다>
<내심 황성민 영입 노리던 몇몇 구단, 팬들 여론에 화들짝 놀라>
사실 KBO의 입장도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선수들 간의 체벌, 그리고 친한 선수들 사이에 벌어지는 고의적인 삼진, 혹은 안타 내주기 같은 관행들. 이건 무척이나 예민한 문제다.
KBO가 일처리를 구단에게 위임하고 한발 뒤로 빠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황성민 문제를 도마 위에 올렸다 일이 커지면 10개 구단 모든 선수들을 전수조사해야 할 판이니까.
워리어스 역시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었다. 다른 팀에서 이런 비슷한 일이 있든 말든 솔직히 알게 뭔가.
우리가 원하는 건 단 하나, 황성민 그놈이 다시는 그라운드에 서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놈에 대한 여론이 최악으로 치달은 지금 그 리스크를 감수하고 영입을 시도할 간 큰 구단은 없어 보였으니까.
상황이 그렇게 흐르자 황성민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장덕수를 폭행죄로 고소하려 했다.
하지만 턱도 없는 짓이었다.
“증거는 다 확보했습니다. 대표님.”
“네, 변호사님. 수고하셨습니다.”
구단에서 붙여준 로펌이 장덕수를 철저히 보호했다. 폭행을 문제 삼자면 지난 수년간 장덕수를 지속적으로 괴롭혀온 황성민의 죄질이 훨씬 안 좋았다.
손바닥 만한 한국 야구판에서 동료 선수와 소송전을 벌인다? 심지어 귀책사유가 본인에게 있는데?
나중에 야구 교실 같은 거라도 해서 먹고 살려면 절대 그런 짓은 해선 안 된다는 걸 그놈이 모를 리 없었다.
결국 모든 게 끝났다는 걸 깨달은 황성민은 SNS에 자신의 심경을 담은 메시지 하나를 남기고 조용히 잠적해버렸다.
<황성민 “모든 건 결국 무(武)로 돌아가는 것”>
﹂武는 무협, 무술 할 때 ‘무’고 아마도 無라고 쓰고 싶던 거겠지. 武식한 새끼···
﹂맨날 구단버스에서 무협지나 보더니 ㅋㅋㅋ
﹂지가 무슨 천마야? 모든 게 무로 돌아가게
﹂진짜 저 새끼는 끝까지 병신이네. 내가 다 쪽팔린다
끝까지 자신의 무식함을 뽐낸 황성민은 그렇게 우리 눈 앞에서 사라졌다.
그 일이 벌어지는 사이 우리 팀은 제대로 된 포수 없이 창원 랩터스, 광주 재규어스와 각각 3연전씩 총 6경기를 치렀고 그 중 네 번의 승리를 따냈다.
안치욱이 데뷔 첫 홈런을 치기도 했고, 타격폼 교정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조성오 선배의 방망이가 연일 불을 뿜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문제를 해결한 장덕수 선배가 선수단 앞에 나타났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모두의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감독님! 수혁아! 그리고 후배, 선배님들!”
“덕수 선배···?”
“제가 잘못했구만유! 용서해주세유!”
신장 2m, 몸무게 120kg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진심을 다해 팀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간 최선을 다해 입에 붙이려 노력했던 표준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장덕수의 진심을 가장 정확하게 담을 수 있는 구수한 사투리가 연습장에 메아리쳤다.
장덕수는 깨달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에서 시작되었다.
황성민이라는 쓰레기 자식이 설치게 만든 것도, 그리고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기 싫다는 이유로 느슨한 플레이를 한 것도.
모두 자신의 잘못이다.
지난 며칠 간 야구를 잠깐 떠나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할머니를 위해, 그를 키워준 어르신들을 위해 야구를 해왔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선수단에서 분리되어 TV로 동료들의 모습을 본 순간 깨달았다.
주전포수와 백업포수가 모두 빠진 상황에서 2군 포수, 거기에 최민석까지 임시 포수 마스크를 쓴 걸 보고 확실히 알게 되었다.
뛰고 싶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내 팀원들을 위해 포수 마스크를 쓰고 싶다.
나 때문에 동료들이 고통받는 걸 더 이상 보기 싫다.
장덕수가 아주 어린 시절, 주변 또래들에 비해 말수도 적고, 행동도 느린 것에 걱정한 할머니가 그를 데리고 병원에서 아동심리 검사를 받게 한 적이 있다.
다행이 처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장덕수의 모든 지표는 정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장덕수는 그저 나이대에 비해 성장이 조금 느렸을 뿐이다.
그런데 검사를 진행한 의사들은 그에게서 한 가지 특이한 부분을 발견했다.
보호본능.
자신의 것이라 생각되는 것, 혹은 자신의 가족이라 생각한 사람들에 대한 절대적인 보호본능.
장덕수의 보호본능은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99점이었다. 거의 만점에 가까운 수치였다.
그날, 폐쇄된 외야 불펜에서 황성민이 한수혁을 향해 배트를 휘두른 그 행동이 잠들어 있던 장덕수의 보호본능을 깨워버렸다.
황성민의 일탈행동이 불러 일으킨 나비 효과로 워리어스는 홈플레이트를 사수할 진짜 포수다운 포수를 얻게 된 것이다.
* * *
“집 나갔던 백업, 아니 주전 포수가 돌아왔습니다. 선생님.”
“오,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왜 표정이···”
“그게··· 이런 걸 선생님에게 여쭤봐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뭐든 말씀하세요. 박성훈 님의 마음 속에 있는 그 모든 걸 다 말씀해주셔야 제가 제대로 된 상담을 해드릴 수 있으니까요.”
“하아··· 그게 돌아온 우리 팀 포수가 자꾸 사람을 때, 아니, 패대기칩니다.”
“네에?”
* * *
퍼억!
“꾸웩!”
“···선배님. 괜찮으세요?”
“응, 괜찮여! 난 끄떡없응게 걱정 말고! 어이, 윌리엄, 꾀병 그만 부리고 일어나. 어여!”
“세, 세, 세, 세이프!”
“뭐여! 이게 왜 세이프에유! 분명히 태그혔는디!”
“주, 주루방해!”
110kg에 달하는 덩치를 믿고 홈으로 무지막지하게 쇄도하던 서울 파이터즈의 2년차 용병 타자 윌리엄이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통곡했다.
“아이구! 나 죽어! 엄마 나 아파! 윌리엄 죽는다! 불쌍한 외국인은 오늘도 운다!”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인지 몰라도 제법 운율까지 느껴지는 제대로 된 한국어였다.
하지만 장덕수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쓰러진 그의 등판을 발끝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일어나. 윌리엄 허리업! 허리 접어버리기 전에!”
장덕수의 으르렁거림에 상대 용병 윌리엄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코어 1대 0, 장덕수 선배의 주루 방해로 우리가 먼저 한 점을 내주게 되었다.
“저기 선배님··· 방금 거는 그냥 정상적으로 플레이했어도···”
“뭔 소리여, 시방! 홈플레이트는 내꺼여!”
변해도 너무 변했다.
황성민과의 일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돌아온 장덕수 선배.
선수단 전원이 있는 앞에서 무릎까지 꿇고 달라질 것을 약속한 그는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몸 싸움을 피하기는커녕 방금 전처럼 그냥 피해도 되는 일에까지 적극적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120kg에 달하는 강철 같은 육체가 홈으로 쇄도하는 상대 주자를 마구마구 튕겨냈다.
문제는 그런 플레이 중의 일부가 주루방해로 판정 받았다는 점이었다.
장덕수를 바라보는 수비코치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찔끔 떨어졌다.
좋다.
아직 플레이 면에서는 여러 모로 다듬을 곳이 많지만, 기본기 자체가 있는 선수이기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황성민이라는 쓰레기가 사라지고 장덕수라는 확실한 주전포수가 등장하자 팀 분위기가 더욱 달아올랐다.
올해는 해볼 만하다.
적어도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선수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지금 이 상황에도 웃지 못하는 선수가 딱 하나 있었다.
지난 8경기에서 1할대의 빈타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 팀의 주전 3루수 안치욱.
내 등뒤를 지켜줄 타자들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상황에서 저놈을 빨리 정상궤도에 올려 놓아야 한다.
훈련량 부족 같은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경기 전과 경기 후 타격코치가 전담으로 붙어 안치욱의 상태를 체크하며 미세한 밸런스를 잡는 작업을 하고 있고, 휴식일에도 계속 구장에 나와 추가 훈련을 소화하고 있으니까.
놈은 그저 난생 처음 접한 프로의 벽에 짓눌려 있을 뿐이었다.
“안치욱, 너 오늘 경기 끝나고 나 좀 따라와라.”
“음? 어디를?”
“잔말 말고. 일단 경기부터 제대로 끝내고.”
그렇기에 지금 안치욱에게 필요한 건 지옥훈련 같은 게 아니다.
나는 이놈에게 조금 다른 걸 전해줄 생각이다.
“여기는 어디···”
“두리번거리지 말고 들어와. 내 연습실이니까.”
“흠, 친구. 오늘은 또 새로운 얼굴을 데려왔군.”
“뭐 좀 할 게 있어서요. 제이콥. 아, 조성오 선배는 30분 정도 늦을 거예요.”
“좋아, 난 그럼 하던 식사부터 마치고 나오지.”
나는 알고 있다.
프로의 벽에 부딪힌 저런 풋내기에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처방전이 뭔지.
그것은 바로 자신감이다. 부족한 실력을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의 자신감과 자존감.
어떻게 아냐고? 내가 직접 경험해봤으니까.
“뭐해? 스트레칭부터 하고 타석에 들어설 준비 안 하고?”
“뭐? 타석?”
“그래, 내가 오늘 너를 위해 친히 공을 던져주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