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4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42화(343/412)
#342. 오늘 하루도 길겠구먼
“예린아,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아, 이거 사진이 좀 이상하게 나온 거 같아서요. 이 기자 혹시 배리 본즈나 자이언츠 팬인 건 아닐까요? 하필 사진을 이런 식으로 찍다니.”
“그런 건 됐고, 이리 와.”
“네, 그럼 이거 좀 내려놓… 어머.”
스르륵 무너지듯 내 품 안에 안긴 예린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디 봐. 사진이 어떻게 나왔길래.”
“보세요. 하필이면 이런 이상한 각도에서.”
“음… 내가 보기엔 괜찮은데?”
[그녀와 대화 이후 터진 시즌 73호 홈런, 시애틀 팬들 “민예린은 행운의 여신”] [한수혁의 타석 전 민예린과 나눈 대화의 내용은? 당시 주변에 있던 한국인 관중들의 증언 “한수혁이 민예린에게 물었다. 소원이 무엇이냐고, 그녀가 대답했다. 홈런이 보고 싶다고, 한수혁이 말했다. 그럼 쳐주겠노라고.”]하나같이 비슷비슷한 제목의 기사들이 어제 내가 때린 홈런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을 담고 있었다.
안전망을 사이에 두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민예린의 옆모습.
그 모습을 보니 어제 내가 느꼈던 그 이상한 감정들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여전히 많은 것이 모호하고, 의문 속에 싸여 있지만,
그런 건 모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저 내 품 안에 안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아니, 충분할 거라 생각한다.
“그나저나 오빠, 정말 괜찮으신 거 맞아요?”
“당연하지. 아까 병원에서 들었잖아. 전혀 문제없다고.”
“네, 그렇긴 한데…….”
“됐고,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이렇게 있자.”
“…네.”
품에 안긴 채 나를 바라보던 예린이의 얼굴이 또 다시 발갛게 달아올랐다.
오늘 나는 검사를 위해 하루 휴가를 받았다.
타이 존슨에 이어 나까지 빠진 매리너스는 지금쯤 시즌 18연승을 달성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TV나 스마트폰을 틀어 경기 결과를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그저,
정말 오랜 시간을 걸려 깨닫게 된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사람,
민예린,
이 애와 함께 오늘 하루 온전한 휴식을 갖고 싶을 뿐이다.
“예린아, 그런데 정말 소원이 그게 다야? 홈런? 우승? 고작?”
“네? 아, 네! 당연하죠. 저는 정말 그거 말고는 바라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 음, 나는 웬만하면 다 들어줄 생각이었는데.”
“앗……!”
“음? 왜 뭔가 생각났어?”
“아뇨, 당장은 아닌데 뭔가 생각날 거 같기도 하고…….”
“그래, 나중에 생각나면 언제든 말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건 다 들어줄 테니.”
“헤에…….”
서로의 몸을 포갠 우리는 한참 동안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인 생텍쥐페리,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을 하는 것은 둘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지금 이 순간, 나와 예린이가 함께 바라보는 곳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 * *
[한수혁의 결장에도 불구하고 에인절스와의 시리즈 2차전에서 완승 거두며 18연승 질주한 시애틀 매리너스, 2017년 클리블랜드가 세운 최다 연승 기록인 22연승에 도전장] [아메리칸 리그 승률 전체 1위 양키스와의 격차, 어느새 1푼 1리까지 좁혀… 포스트시즌 시드 1번 자리는 누구의 것?] [시즌 106승 49패, 승률 0.684, 거칠 것 없는 질주, 지난 두 시즌 연속 4위에 그쳤던 시애틀의 선전 비결은? 한수혁과 타이 존슨의 입단, 그리고 신구의 완벽한 조화] [시애틀 다니엘 미첼 단장 “모두가 나를 비웃었다. 서른 중반을 넘어선 타자에게 거액의 장기계약을 제안하고, 아시아 리그에서 뛰던 선수 영입에 모든 걸 걸었을 때 정신 나간 놈이라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내가 그렇게 노력하는 동안 너흰 대체 무엇을 했지?”] [한수혁, 타이 존슨, 하야시 렌타로, 마이크 워렌, 그 외 여러 알짜배기 영입선수들과 자체 팜에서 키워낸 선수들과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낸 시애틀, 이제 남은 건 한수혁이 만들어낼 역사의 대기록, 그리고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젠장, 이봐, 류, 저 인간 한국에서도 저랬던 거야?”
“그때는 훨씬 더 끔찍했지. KBO는 팀이 10개뿐이라 잠깐 눈 감았다 뜨면 또 저놈하고 경기가 잡혔었거든.”
“홀리 쉣…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군.”
“자, 됐고, 우리는 그냥 우리 할 일만 하면 돼. 오늘 경기를 빼도 아직 10경기나 남았어. 토론토 그 촌놈들도 요즘 페이스가 안 좋고 말이야. 지난 두 경기는 잊어. 오늘 경기에만 집중하자고. 안 그래, 류?”
이 팀의 중심타자이자 주장인 레이몬드 퍼킨스의 말에도 불구하고 류한결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시애틀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하게 된 류한결,
그런 류한결의 시선은 저 멀리 시애틀 덕아웃에 고정되어 있었다.
오늘 경기 전 잠깐 만났던 한수혁, 그에게로.
침을 꿀꺽 삼킨 류한결이 옆에 서 있던 이찬호에게 말했다.
“찬호야, 너도 봤지, 저놈 표정?”
“네, 봤어요.”
“큰일났구먼.”
“동감입니다.”
최근 경기에서 집중적인 견제를 받으며 여러 모로 고전했던 한수혁,
그것과 연관이 있는지는 몰라도 경기 중에 이상을 느껴 한 차례 결장까지 했던 그가 오늘 세상 다시없을 개운한 표정으로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약간의 잡념조차 없이 온전하게 야구에 집중하고 있는 표정.
류한결은 알고 있다. 저런 얼굴을 했을 때의 한수혁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모를 수가 없다. 한국에서 이미 수없이 당해온 그이니까.
“허이구야… 오늘 여기저기서 곡소리 나겠구먼.”
물론 가장 큰 비상이 걸린 건 선발인 자신이었다.
마음의 짐을 벗어던지고 최고조의 컨디션이 된 한수혁과 정면승부를 벌이게 된 자신 말이다.
* * *
“굳이, 억지로, 연승을 이어가잔 말은 하지 않겠다. 그냥 우리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나머지는 그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다.”
“…….”
“…라고 할 줄 알았지? 아니, 제군들. 잘 들어라. 메이저리그 최다 연승팀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늘 경기를 포함해서 4번, 딱 4번만 이기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강한 팀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다. 어때? 탐나지 않는가?”
“네! 물론입니다, 감독님!”
“좋아, 오늘 우리는 5선발, 그리고 저 팀에서는 에이스가 등판하게 된다. 디몬에게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마운드 무게에서 조금 밀리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경기를 타격전으로 끌고 간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뭐다?”
“선취점입니다.”
“그렇지. 오늘은 한이 리드오프로 나선다. 만약 저 비겁한 놈들이 또 한을 거르면 어떻게든 그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거다. 그걸 위해 필요한 경우 적극적으로 작전을 걸 생각이다. 내 말 이해했지?”
“알겠습니다!”
매리너스와 에인절스의 선수들이 각자의 이유로 필살의 의지를 다진 가운데 양팀 간의 시즌 최종전이 시작되었다.
벤자민 감독은 어제 하루 푹 쉬고 돌아온 한수혁을 리드오프로 기용함으로써 오늘 어떻게든 연승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물론 거기에는 한수혁의 강한 의지도 반영되었다.
‘하나라도 더 많은 홈런을 치고 싶습니다. 무턱대로 절 거르지 못하게 하고 싶고요. 그러니 리드오프로 나서고 싶습니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심신이 지쳐 보이던 한수혁이 완벽하게 회복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벤자민 감독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일말의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되었다.
누가 뭐래도 시애틀은 한수혁의 팀이었다.
팀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한수혁의 적극적인 자세에 벤자민 감독이 화답했다.
‘모든 건 자네 뜻대로 될 거야. 다만 조금이라도 불편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이 대화의 결과,
1번 한수혁, 2번 데릭 플레밍, 3번 척 클락, 4번 안토니오 가르시아, 5번 짐 브라운으로 이어지는, 현재 시애틀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타순이 구축되었다.
그리고,
“플레이!”
시애틀의 1회 초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젠 제법 빅리거 태가 나는군.”
“음? 날 기억해?”
오늘 선발 포수로 출전한 루이스 에레라는 시즌 초, 한수혁으로부터 애송이 취급을 당해 서로 얼굴을 붉혔던 2년 차 루키였다.
그때만 해도 루이스는 정말 한수혁을 많이 원망했다.
자신과 별로 차이도 나지 않는 놈이 야구를 좀 잘한다고 함부로 나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단순히 야구를 ‘좀’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야구 그 자체였다.
루이스의 아버지는 그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 분야의 정점에 선 사람이 어떤 말을 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뜻이 담겨 있을 거라고.’
물론 한수혁이 당시에 그런 말을 한 건 반쯤은 장난이었을 뿐이지만.
어쨌든, 서로 간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진 상황에서 두 사람 간에 훈훈한 이야기가 오갔다.
“기억하지. 그때만 해도 완전히 애송이였는데. 그래도 이제는 제법 포수 같은데?”
“좋아, 인정해. 나도 그때 화를 낸 건 좀 성급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훌륭한 자세야.”
“그럼 우리 이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야구나 해볼까?”
“그것 역시 훌륭한 자세군.”
회귀 전 그녀, 그리고 민예린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정리한 한수혁은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면 데스몬드 킹처럼 악연으로 똘똘 뭉친 녀석과 만나더라도 웃으면서 먼저 악수를 건넬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실제로 만나면 서로 간에 오가는 건 악수가 아닌 주먹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훈훈한 대화가 끝나고, 류한결이 던진 초구가 스트라이크 존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날아왔다.
파앙
“볼.”
“흠, 자동고의사구가 아닌 걸 감사해야 하는 건가.”
“미안해, 너도 알겠지만 우리랑 제이스랑 승차가 거의 나지 않거든. 그런 상황에서 역대 최고의 타자인 너와 함부로 승부를 할 순 없다고.”
“뭐, 각자의 입장이라는 게 있는 거니까.”
파앙
“베이스 온 볼스.”
그렇게 네 개 연속 볼이 날아들고 입맛을 쩝 다신 한수혁이 1루로 걸어 나갔다.
한수혁의 홈런 볼을 잡기 위해 모여든 외야 관중석의 팬들이 미친 듯한 야유를 보냈고, 반대로 에인절스 팬들이 모인 내야 관중석에서는 류한결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펴졌다.
그런데,
1루 베이스를 밟고 선 한수혁이 갑자기 엄청나게 큰 리드를 잡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2루로 뛸 것 같은 그런 표정으로 말이다.
파앙!
“세이프!”
당황한 류한결이 연거푸 견제구를 던졌지만 한수혁의 재빠른 귀루에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판정이 내려졌다.
그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되자 류한결을 욕하는, 혹은 응원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제 고작 1회 초가 시작되었건만, 에인절 스타디움의 분위기는 이미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운드 위에 선 류한결도, 중견수 자리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이찬호도, 그리고 나머지 에인절스 선수들도,
모두 깨달았다.
오늘 경기가 자신들의 뜻대로 풀리지 않을 거란 걸 말이다.
그리고,
따아악!
류한결이 초구를 던지는 순간 한수혁이 스타트를 끊고,
당황한 에인절스 야수들이 움찔하던 그 순간, 데릭 플레밍이 때려낸 타구가 1루 베이스를 타고 쏜살같이 외야로 빠져 나갔다.
공이 내야를 벗어나는 순간 이미 2루에 도착해 있던 한수혁이 아무 망설임 없이 2루를 돌아 3루, 그리고 마침내 홈을 향해 질주했다.
외야에서 공을 전달받은 2루수가 홈을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한수혁의 발이 홈플레이트를 밟은 후였다.
순식간에 1 대 0.
시작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류한결이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쓰벌, 오늘 하루도 길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