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4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44화(345/412)
#344. 크고 장엄한 홈런
“다들 훈련해야지.”
“아앗, 준영 선배님! 잠시만!”
“다들 내일이 어떤 날인지 잊었어?”
“그건 아니지만…….”
“야야, 준영아. 그러지 말고 1회 첫 타석까지만이라도 보자. 나도 궁금하다, 야.”
“형님까지…….”
“흐흐, 아직은 내가 주장이잖아. 내년에 주장직 인계받으면 네 마음대로 하고 일단 오늘은 내 말대로 하자. 수혁이 첫 타석만 보고 다들 훈련 시작하는 걸로, 오케이?”
“네! 주장!”
시애틀 매리너스가 일찌감치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짓고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연승에 도전하는 가운데, 바다 건너 KBO에서는 월요일 휴식일임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위해 구장을 찾은 워리어스 선수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시즌 마감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KBO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워리어스, 하지만 최근 10연승을 내달리며 턱밑까지 쫓아온 매지션스 때문에 전혀 안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일부터 워리어스는 매지션스와 시즌 마지막 3연전을 치를 예정이다. 사실상 올해 정규 시즌 우승이 걸린 결정전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런 급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워리어스 선수들은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메이저리그를 혼자 박살 낸 것으로도 모자라 약물로 얼룩진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순위를 하나하나 타고 올라가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선,
워리어스가 배출한, 아니, 어쩌면 이 지구가 배출한 최고의 선수일지도 모를 한수혁이 또 한 번 홈런포 가동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3연전을 앞두고 실시된 미디어 데이, 한수혁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동고의사구가 아닌 이상 어떤 공이든 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앞으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록을 세우고 말겠다고.
그 말을 하는 한수혁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언제나 뭔가에 쫓기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만든 어떤 그림자에 가려 있던 표정이 아닌, 진심으로 야구를 즐기는 이의 얼굴이었다.
“야야, 시작한다.”
“오늘도 1번이네.”
“타이 존슨이 없는 상황에서는 저 타순이 제일 낫지.”
“이럴 때 내가 저 팀에서 뛰고 있어야 도와주든 말든 했을 텐데.”
“뭐래, 형주 너, 매리너스 가면 백업 외야수야.”
“야! 안치욱, 너 말이 좀 심하다? 내가 백업이라고? 이 천재 중견수 서형주가?”
오늘도 어김없이 티격거리는 서형주와 안치욱의 목소리가 클럽하우스 안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1회 말 매리너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전 이닝에서 라이언 티보우의 3타자 연속 삼진으로 잔뜩 기세가 오른 매리너스.
한수혁을 상징하는 강렬한 베이스 연주음이 장내에 울려 퍼지자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와아… 진짜 장관이네.”
“확실히 아메리칸 스케일은 달라도 뭐가 달라. 그렇지?”
“자막 봐라. 오늘 49,200명 입장했단다. 역대 최다 관중이래.”
“거의 5만 명이네. 히야… 진짜 저런 데서 뛰면 기분 좋긴 하겠다. 그렇죠, 덕수 형?”
“이, 맞어. 국제 대회 때 저기서 경기해 봤는데 좋긴 좋더구먼.”
지금 TV 앞에 모여 있는 이들 중에는 한수혁이 직접 뛰는 모습을 보지 못한 신인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한수혁은 감히 닿을 수도 없는 영웅이자 우상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런 선수가 자신의 선배라는 것에 더할 나위 없는 자부심을 느꼈다.
“수혁이 시즌 끝나고 한국 들어온다며?”
“네, 주장. 민예린 씨랑 같이 귀국할 거라네요.”
“허허, 그놈 이제 숨길 생각도 없나 보네. 하긴 그게 숨긴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지만.”
“수혁이 그놈 천상 무뚝뚝한 줄만 알았는데 요즘 인터뷰 할 때마다 민예린 씨 언급하는 거 보면 벌써 꽉 잡혔나 봐. 미래가 대충 상상이 간다. 크크.”
“에이, 아니에요. 설사 수혁이 그놈이 잡혀줄려고 해도 민예린 씨가 그렇게 안 놔둘걸요. 수혁이가 기침만 해도 얼굴이 허예져서 후다닥 달려오는 게 민예린 씨인데.”
“…좋겠다. 말하다 보니 갑자기 현타가 오네. 야구 잘해. 애인이 민예린이야. 이제 곧 돈도 엄청 벌 예정이야. 이거 뭐 다 가졌네, 다 가졌어.”
사실 돈 역시 이미 넘치도록 벌고 있지만 그걸 이들이 알 리 없었다.
그렇게 잡담이 오가는 사이 텍사스의 선발 투수가 던진 공이 포스 미트에 날아와 박혔다.
포수가 펄쩍 뛰며 간신히 잡아낸, 도저히 배트가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온 공이었다.
“음, 고의사구를 주려나.”
“어차피 텍사스 쟤들 포스트시즌은 물 건너갔고, 저 투수 하반기에 콜업된 루키라며? 그럼 승부를 피하기보다는 한번 밀어붙여 볼 것 같은데? 최고 타자를 상대로 얼마나 할 수 있는지 확인도 할 겸 말이야.”
“하기사, 그건 투수도 마찬가지겠지.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마음 편히 한수혁하고 승부해 보겠어.”
“맞아요, 방금 공은 제가 보기에는 힘이 너무 들어가서 빠진 거 같아요.”
“그렇지? 그럼 기대해 봐도 되겠네.”
야구 선수들답게 공 하나를 놓고 여러 분석들이 오가는 가운데 얼굴이 잔뜩 굳은 텍사스의 투수가 한수혁을 향해 힘차게 공을 뿌렸다.
그리고,
따아아아악!
마치 현장에서 듣는 것처럼 선명하고 웅장한 타격음이 울려 펴졌고, 오직 한수혁의 홈런 하나만을 쫓기 위해 설치되었다는 특수 카메라가 타구의 궤적을 쫓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한 한수혁은 배트를 지팡이처럼 바닥에 짚은 채 자신이 만든 타구를 감상하고 있었다.
잠시 후,
터어엉
좌측 외야 관중석 3층 최상단 한복판에 타구가 떨어지고,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경기장이 진동했다.
서로를 얼싸안은 채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시애틀 팬들, 그들을 향해 손을 한 번 슬쩍 들어 올린 한수혁이 아주 천천히 다이아몬드를 돌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되었던 축포가 터지고 한수혁을 상징하는 등장음악이 경기장이 떠나갈 듯 울려 퍼졌다.
그런 아수라장을 뚫고 한수혁이 홈플레이트를 밟는 순간 전광판에 한수혁의 시즌 75호 홈런을 축하는 메시지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시애틀 매리너스 No.1 한수혁,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75호 홈런 달성]환호하는 관중들, 사방에서 터지는 폭죽, 그리고 장엄한 음악,
T모바일파크가 순식간에 축제의 현장이 되어 버렸다.
“시발… 졸라 멋있네.”
“75호… 진짜 미친 거 아냐?”
“하나쯤 더 치겠지 했지만 그게 바로 다음 경기가 될 줄은 몰랐네.”
“한결이 형은 이제야 한숨 돌리겠네. 흐흐.”
“자자, 이제 다들 일어나자. 수혁이 홈런도 봤으니 이제 우리 차례다.”
“네, 주장. 맞는 말이네요. 저놈이 저러고 있는데 우리가 1위 놓치면 그건 진짜 망신이죠.”
“좋아, 그럼 여기 대충 정리하고 10분 후에 그라운드에 집합!”
한수혁의 홈런을 본 워리어스 선수들의 전의가 후끈 달아올랐다.
메이저리그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역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엄청난 기록을 쌓고 있는 옛 동료, 그를 위해서라도 내일 반드시 승리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저 야구를 하는 것만으로 주변 동료들에게 엄청난 영감과 동기 부여를 해줄 수 있는 선수,
그것이 바로 한수혁이었다.
* * *
[이틀 만에 깨진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터진 한수혁의 시즌 75호 홈런] [시즌이 시작되기 전 한수혁에 대해 부정적인 예상을 내놓았던 메이저리그 전문가들 “우리가 미쳤었다. 그는 감히 우리가 평가할 수 없는 선수였다. 다시 한 번 그에게 정중한 사과의 인사를 보낸다.”] [한수혁의 홈런을 보기 위해 T모바일파크를 찾은 49,253명의 관중들… T모바일파크 개장 이래 최다 입장 관중 돌파, 하루하루 새로운 기록을 쌓아가는 시애틀 매리너스] [텍사스전 7 대 3 승리로 시즌 막판 20연승 달린 시애틀 매리너스, 아메리칸 리그 전체 승률 1위 뉴욕 양키스와 승률 5리 차이로 접근, 디비전 시리즈 1번 시드 획득 눈앞] [벤자민 레이놀즈 감독 “이번 시즌 라이언이 보여준 투지와 헌신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이제 한수혁에 이어 라이언 역시 정규 시즌 등판 일정을 마치고 포스트시즌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게 될 것이다”]└ 좋아, 2001년이 매리너스의 최고 전성기였다는 내 말을 이제는 취소해야 할 것 같군. 비록 남은 경기에서 모두 승리한다 해도 그때 기록한 116승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선수단이 매리너스 역대 최고 팀이야.
└ 당연하지. 시즌 초반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날린 경기 중 몇 경기만 챙겼어도 그 116승 기록까지 깨버렸을 거야. 젠장, 내 생에 다시 이런 날이 올 줄이야.
└ 내 손주는 벌써부터 월드시리즈 우승 카퍼레이드에서 사용할 피켓을 만들고 있어. 웃긴 건 내가 그걸 말리기는커녕 함께 동조하고 있다는 거지. 이러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되면 손주가 크게 상처 입을 걸 알면서도 말이야.
└ 걱정하지 마.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우리 에이스의 어깨는 여전히 싱싱하고, 나머지 투수들 역시 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지. 새로운 마무리 투수는 최근 일곱 경기에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았고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 그가 건재하지.
└ 맞아, 우리에게는 역대 최고의 야구 선수 한수혁이 있어. 오늘 아침에 그가 한 말을 들었잖아.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경기를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고. 난 세상 누구보다 그의 말을 믿어.
└ 음, 그나저나 우리가 1번 시드를 차지하게 되면… 오클랜드와 보스턴 중 한 팀을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나게 되겠군.
└ 누가 되든 상관없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최고야. 오클랜드, 보스턴, 그리고 그 빌어먹을 양키스까지, 상대가 누가 됐든 모두 박살 내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 월드시리즈 진출을 향해서 말이지
“한, 약속 지키는 거예요. 내가 오늘 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면 내년 스프링캠프에서 그 하드싱커를 가르쳐준다는 약속.”
“걱정 말고 잘 던지기나 해. 셋업 포지션에서 턱 들리지 않게 조심하고.”
“당연하죠.”
텍사스와의 시즌 12차전, 본래대로라면 내가 등판했어야 할 차례이지만 벤자민 감독은 나를 대신해 루키인 사무엘 라모스를 선발로 내세웠다.
사실 한 경기 정도 더 등판한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겠냐 싶었지만 감독의 얼굴에 깃든 근심과 걱정을 읽은 나는 못 이기는 척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팀이 20연승을 넘어 21연승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몇 달 전 첫 빅리그 무대를 밟은 신인에게 선발 마운드를 맡긴다는 건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매리너스 구단주 그룹 중 일부가 벤자민 감독의 부족한 커리어를 이유로 다른 감독 선임을 주장한다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글쎄, 그런 헛소리를 하는 놈은 그냥 경영에서 내쫓는 게 나을 것 같다. 얼마 되지도 않는 지분을 들고 주인 행세를 하려는 놈은 이 집에서 쫓아낼 수밖에.
어쨌든,
선발투수도 그렇지만, 하반기 내내 등 쪽에 작은 불편을 겪고 있는 짐 브라운 대신 루키 헨리 에르난데스가 좌익수로 들어섰고, 브루스의 체력 관리를 위해 레너드 존스가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되었다.
라인업 중 세 명이 백업, 혹은 신인이다.
그렇기에 오늘 경기 역시 초반 승부에 많은 것이 좌지우지될 것이다.
우리가 먼저 텍사스의 기세를 박살 내버리고 편안하게 경기를 가져가느냐, 아니면 우리 팀의 경험 부족한 루키들이 무너지느냐의 싸움.
그런 초반 기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두말할 필요 없다.
홈런,
아주 크고 장엄한 홈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