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4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47화(348/412)
#347. 그때 그랬다면
“정말 엄청납니다. 어메이징한 시즌을 보내고 있는 시애틀 매리너스예요.”
“맞아요, 어제 승리로 인해 시애틀이 2017년 클리블랜드 가디언스가 기록했던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인 22연승과 타이를 이뤄냈습니다. 거기에 이번 시즌 내내 아메리칸 리그 승률 1위를 질주했던 양키스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대신 올랐어요. 정말 놀라운 성과입니다.”
“와우!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누가 이런 결과를 예상이나 했을까요? 두 시즌 연속 4위를 기록한 팀에 타이 존슨이 합류할 때까지만 해도, 그래, 저 정도면 와일드카드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딱 그 정도였는데, 세상에…….”
“그가 왔으니까요. 아니, 강림하셨으니까요.”
“하하, 강림이라. 맞아요. 확실히 시애틀 팬들에게 그는 신이나 마찬가지죠.”
“한수혁 선수의 최종 성적에 대해서는 시즌이 끝나는 대로 다시 한 번 자세하게 다뤄보는 걸로 하고, 일단은 시애틀의 질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것부터 예측해보죠. 스티브,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흠, 일단 시애틀에게 남은 건 템파베이 레이스와의 3경기뿐이죠. 이 경기를 모두 잡을 경우 최대 25연승까지도 가능합니다.”
“듣기만 해도 대단하네요. 그런데, 25연승, 과연 가능할까요?”
“글쎄요. 일단 선발 로테이션을 보면 레이스와의 첫 경기에는 4선발인 하야시 렌타로가, 그리고 다음 경기에는 5선발 디몬 앤더슨 주니어가 차례로 등판할 예정입니다. 아마도 마지막 경기에는 댈빈 슈워츠가 등판하지 않을까 예상되고요.”
“선발 로테이션만 놓고 보면 마냥 희망적이지는 않네요. 아무리 템파베이가 시즌을 포기한 상태라고 해도 첫 경기에 에이스 루카 에르난데스가 등판한다는 걸 감안하면 말이죠.”
“맞아요. 단순히 선발진만 놓고 보면 레이스 쪽이 우세하죠. 하지만 언제나 말하듯 시애틀에는 팬들이 그분이라 부르는 존재가 있으니까요.”
“그분… 참, 대단하네요. 올 시즌 빅리그에 데뷔한 루키가 팬들로부터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는 게 말이죠.”
“뭐, 그 선수가 그냥 일반 야구선수가 아니니까요. 어쨌든 내일부터 시애틀 매리너스는 메이저리그 최다연승 기록 경신을 위한 마지막 3연전에 돌입합니다. 다들 많은 시청 부탁드리고, 내일 경기 중계를 통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다른 종목에 비해 경기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메이저리그는 미국인들에게 생활의 일부이자, 때로는 전부이기도 하다.
3월 말부터 10월까지 대략 7개월간 메이저리그 팬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의 결과에 일희일비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 이들을 두고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야구팬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조울증 환자에 가깝다고.
팀이 큰 점수 차로 이기면 ‘이렇게 몰아치지 말고 차라리 내일 나눠 치지’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큰 점수 차로 지면 ‘차라리 구단을 해체해버리라’고 광분하고,
작은 점수 차이로 이기면 ‘쉽게 이길 경기를 더럽게도 어렵게 가져가네’ 하고 열 받고, 작은 점수 차이로 지면 ‘겨우 이걸 못 뒤집어서 경기를 내주네’ 하고 열받는,
그 어떤 결과가 나와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게 바로 메이저리그 팬인 것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팬들 중 유일하게 여기서 벗어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시애틀 매리너스를 응원하는 팬들이었다.
“가자! 이참에 아메리칸 리그 승률 1위 자리 굳히는 거야!”
“오오오! 23연승! 아니, 25연승까지 가보자고, 매리너스!”
“젠장, 외야석은 왜 티켓이 없는 거야! 빌어먹을 자식들, 왜 컵스 팬 놈이 자기 팀 경기는 안 보고 여기까지 온 거냐고!”
양키스를 제치고 아메리칸 리그 전체 승률 1위에 오른, 거기에 22연승을 넘어 최다 연승에 도전 중인 응원팀.
심지어 그 팀에 하루하루 메이저리그의 새 역사를 쌓아가고 있는 선수까지 있다면?
이런 팀을 응원하는 팬들에게 스트레스 따위는 모두 남 일이었다.
2030시즌 대장정을 마무리할 템파베이 레이스와의 3연전 첫 경기를 앞둔 매리너스 클럽하우스, 오늘 선발 투수인 하야시 렌타로가 자신의 라커 앞에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매리너스 선수들이 수근거렸다.
“오늘은 하야시의 부처께서 좋은 말씀 내려주시려나?”
“그러길 바라야겠지. 젠장, 여기까지 왔는데 기왕이면 신기록 한번 세워봐야 하잖아.”
“쉿,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데릭.”
돌이켜보면 꿈만 같은 시즌이었다.
최대 와일드카드 획득을 목표로 시즌을 시작했건만, 3경기를 남겨놓은 지금 리그 전체 승률 1위를 달리고 있다는 데 선수들은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설사 정규 시즌 지구 우승을 차지한다 해도 포스트시즌에서 미끄러진다면 모든 게 끝장이다.
이제 그들은 정규 시즌을 넘어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위해 싸울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선수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집중력을 끌어올리는 사이, 오늘도 손가락에 기브스를 한 채 선수단과 함께하고 있는 타이 존슨이 말했다.
“젠장, 경기에 나가지도 않는데 왜 내가 떨리는 거지?”
“타이, 그것보다 손가락 기브스는 언제 푸는 거예요? 그거 너무 오래 두면 재활에 시간 좀 걸릴 텐데.”
“알아, 오늘 풀 생각이야.”
디비전 시리즈 직행이 확정적인 시애틀은 정규 시즌이 끝난 후 대략 일주일간 휴식을 취하게 될 예정이다.
올 시즌 시애틀에 행운이 따른 건 막판 타이 존슨의 부상을 제외하면 모든 선수들이 큰 부상 없이 포스트시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거였다.
시즌 내내 투수와 타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역사상 최강의 강철 피지컬을 선보인 한수혁을 포함해서 말이다.
“아악! 안 돼! 또 말씀이 없으셔!”
“이런 젠장, 하야시, 진정해! 일단 진정하라고!”
“안 되겠어. 한, 이쪽으로, 빨리!”
자신이 모시는 부처의 말씀을 기다리던 하야시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 있던 선수들이 다급히 한수혁을 불렀다.
하야시가 믿는 또 하나의 신, 야구의 신을 말이다.
“쯧, 또 저러네. 다녀올게요, 타이.”
“흐흐, 그래. 빨리 가서 은총을 내려주라고.”
* * *
야구선수에게는 각자만의 동기 부여 요인이라는 게 있다.
누군가에게 그건 보다 많은 연봉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명예, 혹은 권력일 수도 있다. 가끔은 그게 가족인 경우도 있다.
그런 면에서 오늘 템파베이의 선발투수로 나서게 된 에이스 루카 에르난데스의 동기 부여 요인은 두말할 필요 없이 돈이었다.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쿠바에서 망명한, 한수혁 다음으로 빠른 105마일의 공을 던지는 젊은 투수.
‘최대한 피해가라고? 웃기는 소리.’
올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와일드카드 획득을 목표로 하던 템파베이는 시즌 중반 부상 선수가 속출하고 연패가 잦아지자 결국 탱킹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할 차세대 스타라는 평을 받았던 제임스 테일러를 양키스로 보낸 것을 시작으로 팀의 핵심을 이루는 선수들을 모두 처분했다.
오늘 상대할 시애틀에도 템파베이 출신의 라파엘 오수나가 있는 것처럼 정말 많은 선수들이 여기저기로 팔려 나갔다.
어쨌든 그 와중에도 템파베이는 루카 에르난데스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그대로 팀에 남겨두는 길을 택했다.
시즌이 끝난 후에야 연봉 조정 신청 자격을 갖게 되는 그를 올 시즌까지는 그냥 활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루카 에르난데스 입장에서 이번 시즌은 정말 중요했다.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내년,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먼 미래, 자신의 몸값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루카 에르난데스에게 리그 최고 타자 한수혁은 상당히 먹음직한 먹잇감이었다.
감독은 말했다.
자동고의사구는 요청하지 않겠지만 되도록 정면승부는 하지 말라고.
하지만 루카 에르난데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어차피 오늘이 자신의 시즌 마지막 등판이다. 여기서 홈런 한두 방 맞는다고 해서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칠 일은 없다.
불명예?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브로커를 통해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낼 돈.
지금 루카에게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한수혁의 홈런 행진을 멈춰 세운, 2030시즌 최고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이라는 타이틀이 필요했다.
레이스의 1회 초 공격이 득점 없이 끝난 후,
1회말 시애틀의 리드오프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번 시즌, 한수혁에 이어 두 번째로 빠른 구속을 기록했던 105마일 포심,
루카 에르난데스의 자부심과 욕망을 모두 담은 강력한 공이 한수혁의 몸 쪽을 향해 강하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따아아아아악!
강렬한 타격음이 구장 전체에 울려 퍼지고, 루카 에르난데스의 고개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시즌 77호 홈런을 축하하는 축포와 함께 한수혁을 상징하는 등장 음악이 구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홈런 볼을 잡아낸 관중이 얼굴이 벌개져서는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고, 안전망을 타고 오르는 관중들을 말리기 위해 안전요원들이 긴급 투입되었다.
그 누구도 홈런을 맞은 투수 따위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한수혁을 잡아내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겠다는 루카 에르난데스의 시도는 그렇게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 * *
“진짜 끔찍한 놈이군, 안 그래?”
“누군가 그러더군요. 저 친구가 분명 검사에 걸리지 않는 약물을 복용하고 있을 거라고. 인간의 힘으로 저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젠장, 전혀 의미 없는 이야기군.”
부족한 팀 예산으로도 매년 포스트시즌에 도전하는 팀을 만들어낸, 메이저리그 최고의 단장 타이틀을 갖고 있던 현 템파베이 레이스 사장 체이스 에드먼즈가 허탈한 표정으로 TV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에는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한 한수혁이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덕아웃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만약 그때, 그러니까 2026년에 말이야. 우리가 저 친구를 영입했다면, 곧바로 메이저리그로 데려올 수 있었다면 정말 많은 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잖습니까?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건 좋은 팀을 만드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맞아, 내가 분명 그랬지. 하지만… 하아, 메이저리그 직행은 어렵다 치더라도 우리도 시애틀처럼 저 친구를 따라 다녔어야 했어. 다니엘 그 친구가 한국에서 3년을 체류하는 동안 그걸 비웃을 게 아니라 우리도 똑같이 했어야 했다고.”
체이스 에드먼즈가 자신의 뒤를 이어 단장 자리에 오른 사내에게 계속 한탄을 내뱉었다.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을 받으며 타자로서 4할 77홈런, 투수로서 0점대 평균자책점, 22승을 기록한 한수혁은 저비용 고효율을 추구하는 템파베이 레이스에게 꿈에서나 등장할 유니콘과도 같은 존재였다.
한수혁이 메이저리그 진출 대신 KBO 잔류를 선택했던 2026년 가을은 그렇다 치고, 그가 3년 만에 한국을 박살 내고 미국으로 건너온다고 했을 때, 그 조건으로 자신의 뒤를 받쳐줄 최고의 타자가 있는 팀을 원했을 때,
좀 더 과감하게 나섰어야 했다.
그때만 해도 이 팀에는 떠오르는 신성이자 타이 존슨의 뒤를 이을 후계자라 불렸던 제임스 테일러가 있지 않았는가?
“망할 구단주 놈.”
“동감입니다.”
당시 한수혁의 의중을 읽어낸 체이스 에드먼즈는 구단주와 독대해 타이 존슨의 영입을 요청했다.
서른 중반에 접어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타자와의 장기계약.
분명 그건 평소 템파베이가 추구하는 저비용 고효율 야구와는 많이 동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한수혁을 최저 연봉으로 기용할 수 있지 않은가?
체이스가 생각하기에 그건 무조건 남는 장사였다.
물론 그런 체이스의 계획은 구단주의 말 한마디에 바로 묵살되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있는 선수들이나 잘 활용해봐. 난 자네의 능력을 믿네, 체이스.’
따아악!
– 아웃!
체이스가 지난 일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삼키고 있는 사이, 레이스의 7번 타자가 때려낸 2루타성 타구를 한수혁이 건져 올려 아웃시켜 버렸다.
“하아…….”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게 앞으로의 계획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체이스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레이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수혁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건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