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4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48화(349/412)
#348. 78호
“부담되지는 않나? 사람들이 떠드는 것 말이야.”
“글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타이, 당신이 그런 걸 물어볼 줄은 몰랐네요. 알잖아요? 지금 내가 대충 어떤 심정인지.”
“흐흐, 아니, 전혀 모르겠는데. 난 홈런 70개는 고사하고 50개도 넘겨본 적이 없으니 말이야.”
“은퇴하면 바로 명전에 들어갈 사람이 엄살은.”
“아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젠장,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한번 욕심 내볼 걸 그랬어.”
“욕심? 뭘요?”
“홈런 신기록 말이야.”
“흠.”
“힘이 한창 넘칠 때,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세 시즌 연속 40홈런을 쳤을 때, 그런 생각을 했거든. 홈런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그보다는 누적 커리어를 위해서 타율과 출루율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어, 뭐 그런 자기 합리화랄까? 물론 그로 인해 난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타자 중 하나라는 타이틀을 따내긴 했지. 그런데 널 보니 음, 그래. 그때 난 젊음이라는 특권을 제대로 못 누렸던 것 같아.”
템파베이와의 시즌 마지막 3연전의 첫 경기에 승리한 우리는 마침내 메이저리그 최다 연승 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 홈런 개수는 77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떠들썩한 축하파티 같은 건 없었다.
누군가는 샴페인을 터뜨리고 싶어 했지만, 아직도 시애틀의 팬들, 그리고 이 구단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이들은 2001년의 악몽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승 타이 기록인 116승을 올리고도 챔피언십에서 양키스에 밀려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던 그때의 악몽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축하파티 대신 차분한 마음으로 템파베이의 2차전을 준비하고 있다.
“젠장, 어쨌든 기왕 이렇게 된 거 정말 80홈런까지 가보는 건 어때?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금자탑을 쌓아보라 이 말이지.”
“노력해 볼게요. 병원 잘 다녀오고요.”
“좋아, 되도록 경기가 끝나기 전에 돌아오도록 하지. 이따 보자고.”
손가락 기브스를 풀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 타이의 눈빛에는 진한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팀이 23연승을 넘어 24연승에 도전하는 이 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아쉬움.
음,
암만 생각해도 그때 오클랜드 개자식들을 좀 더 패줬어야…….
“한, 나 어떻게 하지? 이거 심장이 진정이 안 되는데?”
“디몬.”
“하필이면 이럴 때 내가 선발이라니, 오 마이 갓!”
“디몬.”
“템파베이 녀석들, 어제 보니 막판에 타격감이 올라오는 것 같던데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디몬, 진정하고 내 말 잘 들어.”
“음?”
“그냥 5회까지 한 서너 점 정도 그냥 준다고 생각하고 전력으로 던져. 그럼 경기가 끝났을 때 승리투수 옆에 네 이름이 새겨질 테니까.”
“오?”
“자, 그리고 너 유니폼 뒤집어 입었어. 그거부터 다시 고쳐 입고 브루스한테 가봐. 할 말이 있는 거 같으니까.”
이런저런 기록들이 주렁주렁 걸린 경기에서 아무 부담 없이 던지라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동료들에 대한 믿음,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다.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국 최후의 승자는 우리가 될 거라는 믿음 말이다.
* * *
따아악!
“예쓰! 바로 그거야!”
“데릭! 저 녀석 요즘 물이 올랐는데?”
내가 볼넷으로 출루하고, 거기에 데릭의 안타가 이어지며 순식간에 무사 1, 3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2번 데릭 플레밍 카드가 얼마나 먹힐지 나조차도 조금 의문이었는데, 그는 타이 존슨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에 대한 견제를 분산시켜주고 있다.
최대한 볼을 오래 봐 투수를 지치게 하거나, 기습번트를 시도하거나, 혹은 나와 합을 맞춰 런앤히트 같은 작전을 구사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데릭 덕분에 타이가 부상으로 빠진 후 내게 집중되던 견제가 조금씩 느슨해지는 것을 느낀다.
강팀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다양한 옵션이 정말 중요하다.
올 시즌 나와 타이에게 많은 부분을 기대던 시애틀의 어린 선수들은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익혀나가고 있다.
툭
“어어! 홈! 젠장, 늦었어! 퍼스트! 퍼스트!”
“빌어먹을 자식들! 여기서 번트라고?”
시애틀의 선수들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벤치의 지시에 별다른 저항 없이 순응한다는 점이다.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사는, 일 년에 최소 수백만 달러에서 수천만 달러를 받는 팀의 중심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벤자민 감독은 내 볼넷과 데릭의 안타로 1, 3루가 만들어지자 망설임 없이 스퀴즈 번트를 지시했고, 언제나 감정의 동요가 없는 척 클락은 그 지시를 멋지게 이행했다.
“좋아! 이젠 토니의 한 방을 기대해보자고!”
“척! 멋진 플레이였어!”
시즌 초만 해도 여러모로 미숙하고, 손발이 맞지 않아 삐걱거리던 팀이 마치 한 몸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은 꽤나 감명적이었다.
그라운드에서 함께 뛰는 나조차도 그렇게 느낄 정도이니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는 팬들이 느끼는 감동은 이보다 훨씬 클 것이다.
“젠장! 매리너스! 너희가 최고야! 시애틀에 존재하는 가장 멋진 스포츠 팀은 어디?”
“당연히 매리너스지!”
“이제부터 시애틀은 베이스볼의 도시가 될 거야! 너흰 이 도시의 주인이 될 거라고!”
정부 차원에서 KBO를 통해 이런저런 것들을 후원하고 관리하는, 거기에 대기업들이 모그룹 지원금이라는 명목 하에 구단의 손실을 보존해주는 한국야구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저렴한 티켓 가격이다.
아무리 비싼, 예를 들어 한국시리즈 경기라 해도 티켓의 가격이 10만 원대에 불과하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메이저리그?
이곳에서 10만 원으로는 포스트시즌 경기 야구장 주차권조차 구매하기 힘들다.
어쨌든 말하고 싶은 건 이거다.
지금 이 구장을 찾은 거의 5만 명에 가까운 저 사람들은 최소 수십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했다는 것.
팀의 일원이기에 앞서 이 구단의 소유주 중 하나로서 묘한 책임감이 든다.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경기를 보여줘야겠다는 그런 마음 말이다.
음,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내일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준비한 작은 이벤트가 시애틀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답례가 될 듯하다.
자, 구단주 모드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따아아악!
“그래! 역시! 믿었다고, 토니!”
“이대로 가는 거야, 매리너스! 고! 고!”
기대했던 토니의 한 방이 터지며 순식간에 석 점.
매리너스의 기세는 오늘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 * *
지난 시즌 어린 나이와 부족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팀 사정상 2선발로 나서야 했던 디몬 앤더슨 주니어는 올 시즌 5선발로 자리를 옮긴 후 한층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4점 중반대의 평균자책점과 1.5의 WHIP는 결코 뛰어나다 말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단 한 번도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으며 158이닝을 소화한 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자신의 몸값을 해냈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강렬한 임펙트를 주기에는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강한 내구성과 정신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팀에 꼭 필요한 윤활유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오늘 경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팀의 24연승이 걸린 중요한 경기에 선발로 등판한 디몬은 매회 안타와 볼넷을 허용하면서도 꾸역꾸역 이닝을 소화해냈다.
2회에 한 점, 3회에 두 점, 그리고 다시 5회에 한 점,
5회까지 101개의 공을 던지며 넉 점을 내준 디몬에게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어제보다는 오늘, 그리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기대되는 시애틀의 차세대 스타에 대한 기대가 담긴 박수였다.
그렇게 디몬이 물러난 마운드에는 제이크 하워드가 올라왔다.
지난 시즌까지 팀의 선발 한 자리를 차지했던 우완 투수, 하지만 올 시즌 한수혁과 마이크, 하야시 등이 합류하며 중간계투로 자리를 옮긴 선수.
24연승의 재물이라는 타이틀만은 피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레이스 선수들을 상대로 제이크는 최선을 다해 마운드를 지켰다.
비록 상대 중심타자에게 석 점 홈런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그것만 제외하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는 그런 투구였다.
두 투수가 합쳐 일곱 점을 내주는 동안 시애틀 타자 역시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한수혁을 피해 도망가는 투수들을 데릭과 척 등 뒤 타자들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한 점을 내면 또 한 점을 내주고, 또 한 점을 내면 다시 한 점을 내주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따악!
“아앗, 안… 아니, 됐다! 됐어!”
“좋았어! 헨리! 젠장, 해낼 줄 알았다고!”
7 대 7로 두 팀이 팽팽하게 맞서는 9회 말 시애틀의 마지막 공격.
2사 1, 2루 찬스에서 대타로 나선 헨리 에르난데스의 땅볼 타구가 템파베이 1루수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시애틀 덕아웃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비명은 곧 환호로 바뀌었다.
공을 잡아 1루 베이스를 찍으려던 템파베이의 1루수가 중심을 잃은 채 비틀거리고, 그 사이 발 빠른 헨리가 먼저 베이스를 밟은 것이다.
2사 주자 만루.
연장전을 준비하던 템파베이 선수들의 고개가 땅으로 툭 떨어졌고, 이 길고 긴 승부를 끝낼 때가 왔음을 직감한 시애틀 선수들이 덕아웃 난간에 매달려 소리를 질러댔다.
물론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애틀의 선수들, 그리고 팬들은 이미 팀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지이잉
[1번 타자 서드베이스맨 한수혁]강렬한 베이스 연주음과 함께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번 시즌 77개의 홈런을 기록 중인, 역대 그 어떤 선수도 밟아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한수혁이.
“플레이!”
2사 만루 찬스에서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서자 T모바일파크가 순식간에 콘서트장이 되어버렸다.
스마트폰 플래시를 켠 관중들이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한수혁의 이름을 연호했고, 안전망에 매달린 관중들이 고함을 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외야의 풍경은 더욱 가관이었다.
여러 경매 업체에서 한수혁의 78호 홈런 볼에 최소 백만, 최대 수백만에 달하는 현상금을 내걸었다.
일확천금을 노린 관중들이 머리 위로 나비 채와 글러브를 들고 홈런을 외쳐댔다.
그야말로 메이저리그가 생긴 이래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잘 도망다녔는데,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 그렇지 않아?”
“…….”
오늘 경기에서 볼넷만 세 개를 얻어냈던 한수혁이 레이스의 포수를 향해 슬쩍 도발을 날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포수뿐만 아니라 투수, 그리고 그라운드 위 나머지 야수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딱 하나뿐이었다.
빨리 이 지긋지긋한 경기를 끝내고 광신도들이 가득한 경기장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
굳이 대답을 바라고 말한 건 아니었는지, 피식 웃음을 지은 한수혁이 배터 박스를 툭툭 고르며 타격을 준비했다.
야구장에서, 혹은 TV 화면을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본 팬들, 그리고 전문가들은 한수혁의 그런 담대한 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저것이 빅리그 첫 시즌을 맞이한, 아니, 한국에서의 경력을 감안한다 해도 프로 4년 차에 불과한 선수의 모습이란 말인가.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마지막 승부에 나선 한수혁.
얼굴이 하얗게 질린 투수가 벌벌 떨리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공을 뿌렸고,
따아아아악!
공이 쪼개지는 듯한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하늘로 치솟는 순간,
“와아아아아아!”
시애틀의 연승 숫자가 23에서 24로 늘어났고, 한수혁은 단일 시즌 78개의 홈런을 친 타자로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