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5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50화(351/412)
#350. 폭탄 선언
현역으로 뛰면서, 혹은 선수생활을 완전히 마친 후 연예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활동을 이어가는 운동선수들을 일컬어 스포테이너라 부른다.
말 그대로 스포츠와 엔터테이너의 조합.
하지만,
[1번 타자 서드베이스맨 한수혁]그저 타석에 들어서는 것만으로 팬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작은 몸짓 하나에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한수혁이야말로 진정한 스포테이너가 아닐까.
1회 초 레이스의 공격이 득점 없이 끝난 가운데 1회 말 한수혁의 첫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오늘 경기 전까지 78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앞으로 빅리그 그 어떤 타자도 넘볼 수 없는 금자탑을 쌓아올린 한수혁.
지금 그가, 그리고 팬들이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전인미답의 경지라 할 수 있는 80홈런이었다.
“저기 팬들의 함성 소리가 들리나, 친구?”
“내가 왜 네 친구야? 그리고 나 귀 안 먹었어. 당연히 들리지.”
지난 두 경기를 모두 내주며 자존심이 잔뜩 상한 레이스의 포수가 시큰둥한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걸어 내보내고 싶다.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기도 싫고, 이놈의 홈런이 터질 때마다 울려대는 그 지긋지긋한 베이스 연주음도 듣기 싫다.
하지만 경기 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구단 수뇌부에서 내려온 지시야. 우리는 오늘 도망가지 않고 정상적으로 놈을 상대한다. 자동고의사구를 요청할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 그라운드 위에 있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 상황에 따라 승부를 하든 걸러서 내보내든 모두 너희의 자유야.’
스몰마켓이라는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템파베이 레이스가 나름 성적을 거두는 건 잘 다듬어진 팜 시스템 외에도 이렇게 팬들을 가장 우선시하는 자세가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감독의 지시를 떠올리며 포수가 신중하게 사인을 보냈다.
‘일단 밖으로 하나 도망가자.’
‘싫은데.’
‘그럼 몸 쪽 높은 공으로 겁 한번 줘볼까?’
‘그건 더 싫고.’
‘제길, 그럼 뭘 어쩌자는 거야’
‘그냥 땅에 처박을 테니까 알아서 받아.’
계속 고개를 흔들던 투수가 직접 사인을 보내왔다.
몸 쪽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낙차 큰 체인지업.
안 건드리면 무조건 볼이고, 혹여 건드려도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는 그런 공.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며 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파앙!
“볼.”
한수혁은 그 공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침을 꿀꺽 삼킨 투수가 또 한 번 같은 코스 공을 던지겠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포수는 생각했다.
어차피 이런 상황이라면 그냥 저놈이 던지고 싶은 대로 던지게 내버려두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
쏟아지는 관중들의 함성을 한 귀로 흘리며 포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슈웅
이전 공과 거의 비슷하지만 살짝 높은, 그래 봐야 공 한 개 정도 높은 코스로 체인지업이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한수혁의 배트가 벼락같이 뻗어나갔다.
마치 그 공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평생 떨어지는 체인지업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콰아아앙!
타격음이라기보다는 마치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심각한 파괴음과 함께 공이 하늘로 새까맣게 솟구쳐 올랐다.
“됐다! 됐다! 간다!”
“멈추지 마! 젠장! 계속 날아가라고!”
“그래, 여기! 여기! 어, 어, 거기 말고! 안 돼!”
45도 이상으로 솟구쳐 비행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발사각이 큰 한수혁의 타구.
그 하얀 공 하나가 T모바일파크 상공의 기류를 타고 힘차게 비행했다.
멀리, 아주 멀리.
그렇게 날아간 타구가 마침내,
콰앙!
T모바일파크 정중앙 조명탑을 강타한 후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비켜! 내 거야!”
“아악! 내 손에 들어왔었는데!”
“오, 주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홈런 볼이 떨어진 곳 주변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타구가 완전히 넘어간 것을 확인한 한수혁이 아주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기 시작했다.
파바방! 파방!
미리 셋팅해 두었던 폭죽들이 사방에서 발사되었고, 오늘 경기 전 발표된 한수혁의 새로운 테마곡이 장엄하게 연주되었다.
난리가 난 건 경기장 내부만이 아니었다.
미처 경기장에 입장하지 못한, 그래서 그 주변에 모여 스마트폰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팬들, 그리고 각자의 집에서 TV로 경기를 관람하던 팬들까지.
모두가 진심을 담아 그의 이름을 외쳤다.
“한수혁! 젠장, 네가 최고야! 넌 역사상 최고의 야구선수야!”
* * *
“제가 던지겠습니다, 감독님.”
“자네가? 안 돼.”
“할 수 있습니다. 새삼 루틴을 깨기도 뭐해서 오늘 경기 전까지 몸도 충분히 풀어뒀으니까요. 1이닝 정도는 얼마든지 던질 수 있습니다. 어차피 오늘 경기가 끝나면 일주일 휴식입니다. 내보내주십쇼.”
“음.”
시애틀의 임시 선발과 레이스의 5선발이 맞붙은 경기는 예상 외로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8회 말까지 이어진 4 대 4 접전 상황.
9회 초,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에 나선 레이스의 4번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가자 경기장 안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애덤 머피를 제외하고는 확실히 믿을 만한 투수가 없는 상황, 하지만 연장전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동점 상황에서 그를 올리는 건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 라이언 티보우가 등판을 자원했다.
정규시즌 선발등판 일정을 마감하긴 했지만 평소 하던 루틴대로 꾸준하게 등판을 준비해온 시애틀의 에이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면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25연승의 기회입니다. 올 시즌 내내 우리를 응원해준 팬들에게 마지막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자신의 영광이 아닌 팀, 그리고 팬들을 위해 등판을 자처하는 에이스.
한참 동안 고민하던 감독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딱 한 이닝만 부탁하지. 라이언.”
“감사합니다.”
[투수 교체, 칼튼 벨 물러나고 라이언 티보우]“오오오! 라이언이?”
“그래, 바로 이거지! 널 기다렸다고, 라이언!”
“박살 내버려! 레이스 저 자식들을 박살 내버리라고!”
투타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한, 그렇기에 시애틀은 물론이고 리그 전체에서도 비교할 대상조차 없는 한수혁.
그런 한수혁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시애틀 팬들이지만, 그들의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이 팀의 암흑기를 홀로 견뎌온 젊은 에이스 라이언 티보우가 있었다.
이미 정규시즌 등판일정을 마감한 그가 팀의 영광을 위해 다시 한 번 마운드에 선다는 사실이 시애틀 팬들을 광분시켰다.
데뷔 후 첫 계투로 등판하게 된 라이언 티보우.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강력한 공을 뿌렸다.
파앙
“스트라이크!”
어떻게든 스윕만은 피하기 위해,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팀을 응원해준 팬들을 위해 끝까지 덤벼들던 레이스의 타자들이 라이언이 던지는 공에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삼진 2개, 그리고 외야 플라이 하나.
9회 초 찾아온 위기를 완벽하게 막아낸 라이언이 마운드 위에서 모자를 벗고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관중석이 무너질 듯한, 마치 한수혁이 홈런을 쳤을 때를 연상시키는 엄청난 함성이 경기장 전체에 메아리쳤다.
그리고 이어진 9회 말,
대타로 나선 헨리 에르난데스가 불규칙 바운드에 힘입은 내야 안타로 1루에 출루하며 경기장 분위기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2번 타자 서드베이스맨 한수혁]오늘 첫 타석에서 시즌 79번째 홈런을 날리며 사상 최초의 80홈런 타자에 도전장을 날린 한수혁.
메이저리그가 생겨난 이래 최고의 타자이자 투수로 기록될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타격을 준비했다.
설사 걸어 내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좋은 공은 주지 않겠다 다짐한 투수가 젖 먹던 힘을 다 짜내 그에게 대항했다.
따악!
“파울!”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공을 한수혁이 커트해내며 순식간에 풀 카운트.
사인을 주고받던 투수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고,
팀의 스윕패를 막겠다는 집념이 담긴 강력한 공이 몸 쪽 낮은 코스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따아아악!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나? 가나? 가는 건가?”
“제발! 제발! 조금만 더! 가라! 가라고!”
배트 윗단에 맞아 평소보다 더 높게 뜬, 고개를 들어 쳐다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높게 날아가는 타구.
얼굴이 파랗게 질린 좌익수가 전력을 다해 펜스를 향해 달려갔고, 그를 제외한 경기장 내 모든 선수, 그리고 팬들이 타구의 방향을 쫓아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터엉!
“아악! 이런 빌어먹을!”
“펜스를 낮췄어야 해! 빌어먹을!”
“이게 안 넘어가다니! 이게!”
그렇게 날아간 타구가 좌익수 키를 넘어 펜스 최상단에 맞고 그라운드로 떨어지고, 1-2루 사이에 멈춰 있던 주자가 다이아몬드를 돌아 홈플레이트를 밟는 순간 야구장 전체에 깊은 탄식이 맴돌았다.
선수, 팬들, 그리고 관계자들, 모두의 눈빛에 짙은 아쉬움이 떠올랐다.
하지만 단 한 사람, 한수혁만은 예외였다.
“이런 젠장, 뭐 하는 거야? 이겼잖아? 멋진 끝내기 안타였어. 안 그래?”
“그게 지금 할 소리예요? 아, 괜히 홈을 밟았나? 그냥 공과로 아웃되고 연장전을 갔어야 하나!”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됐고, 다들 이리 나와! 우승이야. 안 즐길 거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80홈런 타자로 기록될 순간을 눈앞에서 놓쳤건만, 한수혁은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선수들을 한데 불러 모았다.
잠깐 머뭇거리던 시애틀 선수들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뒤늦게 축포가 터지고, 1, 3루 안전망이 우르르 무너지며 시애틀 팬들이 그라운드로 난입했다.
21년 만에 찾아온 지구 우승, 그리고 8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결정짓는 멋진 경기였다.
“제길! 오늘을 임시공휴일로 선포해야 해! 시장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저기 저쪽에서 방방 뛰고 있는 게 시장 아냐?”
“멍청한 얼굴을 보니 확실히 맞는 거 같군. 이봐, 시장! 뭐 해? 우리 영웅들을 위해 뭐라도 한번 해보라고!”
샴페인을 뒤집어 쓴 채 그라운드 위에서 기뻐 날뛰고 있는 선수들, 그런 선수들을 둘러싸고 열광적인 목소리로 환호하는 팬들.
그렇게 시애틀의 정규시즌 우승을 자축하는 세레모니가 끝나고, 흥분에 들떴던 관중들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물론 민예린을 비롯해 안전망을 넘어 그라운드로 난입한 팬들은 그라운드 주변에 엉거주춤하게 앉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나저나 깜짝 발표는 대체 뭐야? 팀이 우승한 것보다 더 놀랄 일이 있나?”
“글쎄, 설마 연고지를 이전하겠다, 뭐 그런 개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아냐, 가만…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한 번 그럴 뻔했잖아?”
“제기랄! 닥쳐!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이 구단을 폭파시켜 버릴 거다!”
이런저런 억측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구단 직원들이 나와 마운드 옆에 작은 단상과 마이크를 설치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깜짝 발표라는 게 뭔지 몰라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는 것 말이다.
대체 누가 마이크를 잡을 것인가? 단장? 아니면 사장?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그때, 덕아웃으로 돌아가 잠깐 휴식을 취하던 한수혁이 저벅저벅 그라운드 위로 돌아왔다.
그렇게 걸어 나온 그가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자 사람들의 머릿속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구단 관계자도 아닌 선수가 대체 뭘 하려고?
마이크를 잡은 한수혁은 오늘 아깝게 놓친 80홈런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먼저 오늘 80홈런 달성에 실패한 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너무 섭섭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년에 또 도전해볼 생각이니까요.”
“괜찮아! 젠장! 끔찍할 정도로 멋진 시즌이었어!”
“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가벼운 말이 오가고 경기장 안에 감돌던 가벼운 긴장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정확히 말하면 한수혁의 입이 열리는 순간,
경기장 안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긴장된 표정으로 노트북을 펼쳐놓았던 기자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오늘 마이크를 잡은 이유는… 음, 그동안 숨겨서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이 구단의 주인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 이 자리를 준비했습니다.”
“…으응? 지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잘못 들은 거지?”
“닥치고 잠깐 가만있어 봐! 좀 더 들어보자고.”
관중들의 웅성거림, 그리고 기자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플래시 세례에 잠깐 말을 끊었던 한수혁이 담담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시즌 중반 시장에 나온 매리너스 지분을 매입했고, 얼마 전 그 작업이 모두 끝나면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지분 35%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자, 자, 잠시만요! 그럼 진짜 한수혁 선수가…….”
“네, 맞습니다. 주인이라는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됐네요.”
“이런 젠장!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본사, 빨리 본사 연결해! 속보 띄우라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자들이 급하게 속보를 올리고, 본사와 연결해 취재팀 파견을 요청하는 가운데 한수혁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제가 이 사실을 발표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올 시즌 성적과 상관없이 내년 시즌 매리너스의 운영 방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네, 시즌 중반만 해도 돈 몇 푼이 없어… 흠, 어쨌든 이거 하나는 약속드립니다. 저희가 돈이 부족해 갖고 싶은 선수를 놓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불필요한 과소비는 하지 않겠지만 팀 전력에 도움이 된다면 그게 누구든 적극적으로 영입하겠습니다. 제 목표는 단 하나.”
한수혁의 입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제가 뛰는 동안 시애틀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없는 왕조를 건설하는 것. 그것뿐입니다. 자, 이상입니다.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이 순간을 즐겨주세요. 오늘이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되도록 말이죠.”
“잠시만요! 질문 하나만, 딱 하나만! 한수혁 선수! 야! 한수혁!”
“아! 중요한 걸 빼놓을 뻔했군요. 제가 한국에서 뛰던 당시 소속팀이던 서울 워리어스 말입니다.”
“네, 네, 거긴 또 뭐죠? 설마 그것도 한수혁 선수 소유인가요?”
“어라, 어떻게 아셨죠? 네, 맞습니다. 서울 워리어스의 모기업인 아이코닉 파트너스의 최대 주주가 바로 저입니다. 자, 그럼 이제 정말 발표 마치겠습니다. 다들 좋은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