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5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54화(355/412)
#354. 바뀌어가는 역사
“라이언, 나와 라일리, 그리고 시애틀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믿고 있어요. 하지만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는 야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당신에게 최고의 동료들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들을 믿고 던지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고마워, 미아.”
“다녀오세요. 라일리와 함께 응원할게요.”
“그래, 일어나면 스프부터 좀 먹이고, 아빠가 사랑한다고 전해주고.”
한수혁의 완벽에 가까운 호투와 팀 타선 폭발로 디비전 시리즈 1차전에서 6 대 0 완승을 거둔 시애틀 매리너스.
무려 29년 만에 맛본 디비전 시리즈에서의 승리로 인해 시애틀 시 전체가 활활 타오르는 가운데,
오늘,
어릴 적부터 이 팀의 팬이었으며, 야구 선수가 된 후 시애틀이 아닌 다른 팀 유니폼을 입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팀의 주장 라이언 티보우가 2차전 출격을 준비 중이었다.
딸아이가 갑자기 감기 증세를 보이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그는 부인을 믿고 자율주행차에 몸을 실었다.
위이잉
경기장으로 향하는 차 안, 라이언은 눈을 감은 채 어제 경기를 복기했다.
어제 한수혁이 어떤 식으로 오클랜드 타자들을 무너뜨렸는지, 중요한 순간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의 투구 하나하나를 다시 한 번 곱씹어본 라이언이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어…….”
새삼 말할 필요도 없지만 한수혁은 괴물 그 자체였다.
별다른 비결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몸 쪽 공에 약한 타자에게는 몸 쪽 공으로, 브레이킹 볼에 약점이 있는 타자에게는 철저하게 브레이킹 볼을 던진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한수혁이 완벽한 성적을 거둔 이유는 명확했다.
알고도 치기 어려운 공의 위력, 그리고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공을 던질 수 있는 제구력 덕분이었다.
남들은 자신을 아메리칸 리그 최고 투수 중 하나라 부르지만,
라이언은 알고 있다.
자신, 아니, 자신을 포함한 모든 메이저리그 투수들과 한수혁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있다는 것.
평범한 투수 입장에서 보자면 한수혁은 마치 신화 속 존재와도 같았다.
107마일에 달하는 광속구를 목표한 곳에 한 치 오차도 없이 꽂아 넣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존재였다.
불행히도, 아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라이언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그보다 공도 느리고, 브레이킹 볼의 각도 적으며, 가끔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공이 날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라이언이 누구보다 자신 있는 것 하나.
그것은 바로 시애틀에 대한 사랑, 이 팀을 반드시 우승시키겠다는 집념이었다.
끼익
목적지인 경기장에 차가 도착했다.
아직 경기 시작이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애틀 저지와 점퍼를 입은 수많은 팬들이 경기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라이언이 아직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하던 시절부터 저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믿고 응원해줬다.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월드시리즈 진출의 꿈을 이뤄줄 에이스가 될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혼자서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낼 수 있는 선수인가?
“아니.”
라이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대답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그의 표정 어디에도 어두운 구석은 없었다.
불행히도 라이언은 혼자 시애틀을 우승시킬 수 있는 선수가 되진 못했다.
아니, 이 지구상 누구도 혼자의 힘만으로 팀을 월드시리즈에 진출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한수혁,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라이언은 알고 있다.
그가 팀에 입단한 순간부터 T모바일파크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한수혁이라는 것.
하지만 상관없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라이언이 원하는 건 단 하나,
이 팀의 숙원인 창단 이후 첫 월드시리즈 진출.
매리너스 선수이기에 앞서 이 팀의 열렬한 팬인 라이언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 * *
“컨디션은 어때, 친구?”
“더 바랄 것도 없이 최상이야.”
“좋아, 어제 오클랜드 저 멍청이들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봤지? 저 녀석들 완전히 기가 죽었어. 기세를 살려서 빠르게 승부를 가져가보자고.”
벌써 6년 넘게 호흡을 맞춘,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던 루키 시절부터 서로의 부족한 면을 지켜보며 함께 성장해온 배터리.
브루스 매튜스의 격려를 받으며 마운드에 선 라이언이 천천히 연습투구를 시작했다.
“플레이!”
어제 경기에서 한수혁에게 완전히 눌린 오클랜드는 포스트시즌 동안 중심타선에 배치했던 맷 로빈슨을 다시 리드오프로 이동 배치했다.
그들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 경기 초반 승부가 향후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걸,
2차전까지 밀리면 그 뒤로는 속절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파앙
“스트라이크!”
한수혁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바깥쪽 낮은 코스에 잘 제구가 된 99마일 포심이 스트라이크로 선언되었다.
어제 한수혁의 107마일 포심을 상대하던 타자들에게는 어쩌면 조금 느려 보일 지도 모른다.
상관없다.
한수혁처럼 삼진을 펑펑 잡지 못해도 괜찮다.
그의 뒤에는 이 세상 누구보다 믿는 동료들이 버티고 있으니까.
따아악!
바깥 쪽 낮은 코스에 이어 이번에는 몸 쪽 낮은 곳을 노리고 던진 커터가 목표했던 곳에서 조금 벗어났다.
그걸 놓치지 않고 받아친 맷 로빈슨의 타구가 중견수 머리 위를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안 돼!”
“달려! 젠장, 데릭, 달리라고!”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타구.
안전하게 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그냥 펜스 플레이를 하는 게 나아 보였지만,
타다다다닥
“이이익!”
경기 초반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건 라이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믿음직한 수비수 데릭 플레밍이 전력을 다해 펜스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턱
“좋았어! 바로 그거지!”
“제기랄! 내가 태어나서 본 중견수 수비 중 오늘이 최고야!”
“데릭! 메이저리그 최고의 중견수!”
한 발로 펜스를 밟고 점프한 데릭이 관중석으로 들어가려던 타구를 억지로 걷어 올렸다.
그 순간 경기장이 떠나갈 것처럼 진동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관중들이 박자를 맞춰 발을 구르며 데릭의 이름을 연호했다.
라이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잡혔다.
삼진을 잡지 못해도 좋다.
한수혁처럼 혼자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반드시, 반드시 오클랜드를 누르고 챔피언십에 진출할 것이다.
그리고 월드시리즈 진출의 꿈을 이뤄낼 것이다.
야구 인생을 통틀어 자신의 목표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아메리칸 리그 넘버 2 투수가 두 눈을 번득이며 다음 타자를 노려보았다.
* * *
“제리가 다치지 않았으면 너희가 디비전 시리즈에 올라올 일은 절대 없었을 거야. 안 그렇게 생각해?”
“…….”
1회 말 시애틀의 공격.
선두타자 데릭 플레밍이 유격수 앞 땅볼로 아웃된 가운데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섰다.
비아냥인지 진심인지 모를 한수혁의 도발에도 데스몬드 킹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한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전문 격투기 선수가 아닌 이상 야구판에서 자신을 주먹으로 이길 놈은 절대 없을 거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한수혁과 시비가 붙어 두 번 연속 아무 저항도 못 한 채 박살이 나고 나니 갑자기 세상 모든 게 두려워졌다.
아, 세상에는 저런 미친 괴물도 있구나.
0점대 평균 자책점에 80개에 가까운 홈런을 치는 걸로도 모자라 사람까지 이렇게 잘 치는 놈이 존재하는 거구나.
‘하아…….’
지금 이 순간 데스몬드 킹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빨리 이 녀석과 멀어지는 것.
“베이스 온 볼스.”
두려움과 공포에 잔뜩 움츠러든 오클랜드의 배터리가 볼 네 개를 연속으로 던지며 한수혁이 1루에 진출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어제 한수혁에 이어 백투백 홈런을 작렬시킨 또 하나의 괴물 타이 존슨의 차례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한 가지는 확실히 해둬야겠군. 만약 우리와의 경기에서 너희가 조금이라도 다른 마음을 먹었다는 게 눈에 띄면 난 너부터 죽여 버릴 거야. 그래, 출장정지를 당할 수도 있겠지. 남은 포스트시즌에 못 뛸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상관없어. 너희 때문에 시즌 막판에 결장한 걸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널 찢어 죽여 버리고 싶으니까.”
“…….”
“이봐, 타이.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조금 진정하고 일단 야구부터 하는 게 어떨까?”
신장 2미터, 체중 120㎏를 훌쩍 넘기는, 그 체구만큼이나 크고 아름다운 커리어를 자랑하는 타이 존슨의 협박에 데스몬드 킹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심판조차 그를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선수란 바로 이런 거다.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타이 존슨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1루에 선 괴물,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또 다른 괴물,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기대할 수 없는 주심.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이 데스몬드의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다.
경기 시작부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주전포수, 그 영향을 받아 갈팡질팡하는 투수.
“베이스 온 볼스, 타자 1루로.”
결국 또 하나의 볼넷이 나오며 순식간에 1사 1, 2루.
오클랜드 선수들의 머릿속에 불길한 예감이 들던 그 순간,
따아아악!
옆에서 폭탄이 터져도 제 스윙을 할 수 있을 거라 평가받는 무념무상(無念無想) 타법의 소유자 척 클락의 배트가 힘차게 돌았고,
터엉
그 타구가 중견수 키를 넘어 관중석 한가운데 떨어지는 순간,
“와아아아아아!”
“그렇지! 바로 이거야! 오클랜드 개자식들을 박살 내버려!”
“척! 매리너스의 4번 타자!”
구장 안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그리고 TV 앞에서 중계를 시청하던 모든 사람들이 깨달았다.
오클랜드의 가을야구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음을.
* * *
[1차전에 이어 2차전에서도 완승 거둔 시애틀 매리너스,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까지 1승만을 남겨 둬] [8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라이언 티보우, 2선발로 밀려난 심정을 묻는 질문에 “한수혁은 올 시즌 양대 리그를 통틀어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에이스 중의 에이스다. 나 아닌 누구라 해도 그에게 1선발 자리를 양보했을 것”] [1회 말 석 점 홈런으로 기선 제압에 성공한 매리너스의 4번 타자 척 클락 “내 앞에 선 타자들은 리그, 아니, 세계 최고다. 그들의 뒤를 받칠 수 있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는 강하다. 반드시 챔피언십에 진출하고 말 것이다.”] [9회 등판해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팀의 4 대 0 승리를 지켜낸 베테랑 애덤 머피 “양키스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챔피언의 기운을 여기 시애틀 선수단에게서 느낀다. 복귀 팀으로 시애틀을 선택한 나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 [고의사구 네 번에 도루 두 개로 화답한 매리너스 한수혁 “나는 한국에서 뛴 3년간 단 한 번도 챔피언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뛰는 한 시애틀은 영원한 챔피언으로 기억될 것이다.”]└ 끔찍할 정도로 멋진 말이군. 영원한 챔피언.
└ 정말 꿈만 같아. 우리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운데 매 경기에서 이렇게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다니.
└ 시즌 22승에 79홈런을 때린 선수가 심지어 구단주라니… 오 마이 갓! 이런 행운들이 계속 겹쳐도 괜찮은 걸까?
└ 먼 훗날 역사가들은 이렇게 기록해야 할 거야. 한수혁이 미국에 발을 디딘 순간, 130년 메이저리그의 역사가 송두리째 바뀌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