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5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56화(357/412)
#356. 트라우마
[마침내 확정된 챔피언십 대진표, 아메리칸 리그 시애틀 매리너스 VS 뉴욕 양키스, 내셔널 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VS LA 다저스] [신구의 완벽한 조화 시애틀 매리너스, 스타군단 뉴욕 양키스, 전통의 명가 세인트루이스, 막강 화력 LA 다저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구?] [창단 53년 만에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노리는 시애틀 매리너스 VS 2009년 이후 21년 만에 월드시리즈 복귀를 꿈꾸는 뉴욕 양키스 간의 맞대결] [메이저리그 전문가들, 한수혁과 라이언 티보우가 버티는 1, 2선발은 시애틀이 우세, 종합적인 투수력은 양키스가 우세] [데릭 플레밍-한수혁-타이 존슨으로 이어지는 막강 1, 2, 3번의 시애틀 매리너스, 리그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제임스 테일러-루카스 앤더슨-잭 헤인즈-트로이 버클리로 구성된 최강화력 뉴욕 양키스] [전문가들 입을 모아 “양 팀 전력이 백중세인 걸 감안하면 승부의 키는 투타 모든 면에서 상식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수혁에게 달렸다” 전망] [시애틀 매리너스의 최대 주주이자 에이스, 그리고 주포인 한수혁 “우리는 이번 정규시즌에서 양키스를 압도했다. 가을이라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건 없을 것.” 여유 있는 답변에 양키스 팬들 격분] [시애틀 매리너스 팬클럽 “그분이 하시는 말에 토를 달지 말라.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될지어니.”] [2001년, 스즈키 이치로, 에드가 마르티네즈, 프레디 가르시아, 브렛 분, 존 올러루드도 해내지 못한 월드시리즈 진출, 과연 이번에는 가능할 것인가?]“인터넷에서 기자들이 떠드는 말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앞에서 숨도 못 쉬던 시애틀 놈들이 저렇게 설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 어떠냔 말이야.”
“…….”
“루카스, 주장으로서 말해봐. 우리가 저놈들을 확실하게 박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든 한수혁 그놈을 마운드에서 끌어내려…….”
“틀렸어.”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뉴욕 양키스를 이끄는 노감독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잘 들어라. 우린 그 괴물과 정면승부하지 않는다. 단순히 볼넷을 주거나, 그놈이 등판하는 경기를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런 거다. 오늘 경기에는 5일을 푹 쉬며 체력을 회복한 놈이 등판한다. 그래, 성적과 지표만 놓고 보면 그놈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챔피언십은 단판 승부가 아니다. 7번, 무려 7번이나 맞상대를 해야 한다.”
“맞습니다!”
“내 계획은 이거다. 오늘 우리는 경기를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한수혁의 투구 수를 늘린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쪽에서 한수혁을 일찍 내리지 못하도록 실점 역시 최소화해야 한다. 타이슨, 믿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보스.”
“좋아, 그렇게 녀석의 체력을 갉아먹고 홈에서 펼쳐질 2, 3, 4차전을 모두 잡아내면… 어깨에 부하가 걸린 놈이 5차전 마운드에 오르게 될 거다. 그때 우리는 그 괴물을 사냥한다. 다들 내 말 이해했지?”
“네! 보스!”
“이 계획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모든 걸 끄집어내야 한다. 우리는 양키스다. 정규시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두 잊어라. 저놈들이 시즌 116승을 기록했던 2001년에도 우리에게 1승 4패로 무너졌다는 걸 잊지 마라. 그때의 악몽을 다시 한 번 선사해준다는 각오로 싸워라. 자, 그럼 나가자!”
양키스 감독의 말처럼 두 팀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부딪힌 2001년, 시애틀은 1승 4패로 허무하게 무너지며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비록 시즌 막판 25연승을 달린 시애틀의 미친 질주에 밀려 리그 전체 승률 1위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올 시즌 양키스는 무적에 가까운 팀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남은 목표는 단 하나, 갑자기 나타나 앞을 막아선 시애틀을 넘어뜨리고 세계 최고의 야구팀을 가리는 무대에 진출하는 것.
하지만,
퍼어엉!
“스트라이크!”
“우어어어어!”
“저게 뭐야!”
“맙소사!”
제임스 테일러를 상대로 던진 한수혁의 초구,
완벽하다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한 포심이 몸 쪽 가장 깊숙한 코스에 박히는 순간 양키스 선수들이 어렵게 다진 각오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 배, 배, 배, 백구 마일! 맙소사, 한수혁 선수가 자신의 기존 최고 구속인 107마일을 넘어 109마일을 기록했습니다. ㎞/h로 환산하면 무려 175.4㎞/h! 시청자! 여러분! 야구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습니다!
– 으아아아! 정말 이걸 대체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 정규 시즌을 치르면서 다소 체력이 떨어졌다는 우려를 받았던 한수혁 선수가 초구부터 자신의 의지, 그리고 실력을 보여줍니다! 못 쳐요! 인간이라면 저거 못 칩니다!
T모바일파크 한켠에 설치된 KBC 중계부스에서 찢어질 듯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한수혁의 투구가 이어졌다.
파앙
“스트라이크!”
부웅
“스윙! 아웃!”
메이저리그, 아니, 전 세계 야구 역사에 남을 109마일 포심에 이어지는 80마일 슬로우 커브, 그리고 다시 105마일 하드싱커.
마지막 공에 어이없는 헛스윙을 한 제임스 테일러가 허탈한 표정으로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올림픽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그와 자신 사이의 격차가 이렇게 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수혁이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을 때까지도 언젠가는 꼭 따라 잡을 거라 각오를 다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이 목표로 했던 그는 단순한 야구 선수가 아니었다.
타자로서, 그리고 투수로서 홀로 독보적인 경지에 올라선, 다른 선수들이 어떤 짓을 해도 절대 따라 잡을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
밀려오는 무기력함에 고개를 푹 떨군 제임스 테일러가 물러나고 양키스의 주장 루카스 앤더슨이 타석에 들어섰다.
올 시즌 3/4/6의 슬래시 라인에 57홈런 25도루 130타점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한수혁만 아니었다면 아메리칸 리그 타자 부문 주요 타이틀을 모두 획득했을 게 확실한 양키스의 심장.
하지만 지금, 타석에 들어선 그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107마일에 달하는, 거기에 최대 3,050RPM에 육박하는 한수혁의 포심을 상대하기 위해 지난 며칠간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건만,
저 괴물은 그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109마일이라는, 인간이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말도 안 되는 공을 새롭게 선보였다.
부웅
“스윙!”
한수혁이 정말 무서운 건 바로 이런 거다.
난생 처음 보는 109마일 포심 앞에 잔뜩 질려버린 타자를 상대로 80마일 슬로우 커브를 던질 수 있는 배짱 말이다.
경기 전 감독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무슨 수를 쓰든 한수혁의 투구 수를 늘리라는, 녀석의 체력을 갉아먹으라는 지시.
하지만,
‘보스, 이래서야 녀석의 장난감이 될 뿐이란 말입니다…….’
감독, 아니, 자신들이 잘못 생각했다.
한수혁은 그런 단순한 접근 방식으로 상대할 선수가 아니었다.
모든 야구선수들의 머리 위에 군림하는 저 괴물과 상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갖고 있는 모든 걸 내던져 스스로를 활활 태우는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익!’
이를 앙 다문 루카스가 배트를 짧게 잡고 타격 자세를 취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구종을 던질 줄 아는 말도 안 되는 놈이지만, 결국 타자 입장에서는 둘 중 하나다.
말도 안 되게 빠른 공, 그리고 그 빠른 공을 더 빠르게 보이게 만드는 느린 공.
다음 공은 아마도 빠른 공일 것이다.
그 경우의 수가 포심, 투심, 하드싱커, 커터, 스플리터까지 다섯 가지나 되는 게 문제이지만 말이다.
어떻게든 쳐낸다.
이런 분위기로 가다가는 자칫 경기 시작부터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 배트에 공을 맞춰 저 괴물의 공이 무적이 아니라는 걸 동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양키스의 주장인 내 역할이다.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꽉 깨문 루카스 앤더슨.
그런 그를 흘끗 바라본 한수혁이 평온한 표정으로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그의 손끝에서 하얀 공 하나가 떠올랐다.
“흡!”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내며 스윙을 시작한 루카스 앤더슨.
그의 생각이 맞았다. 한수혁의 손끝을 떠난 공이 총알같은 속도로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제발, 제발!’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리며 스윙을 계속하는 루카스.
하지만,
틱
루카스가 내민 배트 앞에서 공이 마치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위로 솟아올랐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구속과 회전수가 만들어낸, 마치 업슛처럼 보이기도 하는 마법의 공.
부웅
“스윙!”
그 순간, 루카스는 깨달았다.
한수혁이 마운드에 버티고 있는 한 자신들에게 이길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는 걸.
* * *
“빌어먹을…….”
“타이슨, 왜 그래? 제구가 잘 안 돼? 방금 전에는 괜찮았잖아?”
“아니, 젠장, 빌어먹을…….”
1회 초 양키스의 첫 번째 공격이 삼진 2개와 포수 팝 플라이 하나로 간단하게 끝난 후 1회 말 시애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풀카운트 승부 끝에 리드오프 데릭 플레밍을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낸 양키스의 에이스 타이슨 바샴.
정규시즌 경기에서 배트플립 복수를 하겠답시고 한수혁에게 빈볼을 던졌다가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았던, 그걸로도 모자라 30경기 출장정지와 치악골 골절로 시즌 중반을 통째로 날려 먹었던 머저리가 바로 그였다.
챔피언십 1차전 선발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고 마운드에 선 그에게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원 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한수혁이 타석에 들어선 순간,
갑자기 그때 녀석에게 두드려 맞았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손발이 벌벌 떨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아무리 진정하려 해도 진정이 되질 않았다.
설상가상,
몸 쪽으로 던지려는 공이 전혀 제구가 되지 않은 채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한수혁에 대한 공포가 PTSD를 유발한 것이다.
마치 야구공을 처음 쥔 풋내기처럼, 제구가 전혀 되지 않은 공 세 개가 연속으로 볼이 되었고, 투수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포수가 마운드로 올라왔다.
“타이슨, 정말 괜찮겠어? 제기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툭 떨군 양키스의 에이스.
문제가 발생한 게 확실하다 판단한 포수가 덕아웃을 향해 다음 투수를 준비시키라는 사인을 보낸 후 마운드를 내려갔다.
당황한 양키스 덕아웃이 분주해졌고, 정상적인 승부가 불가능하다 느낀 포수가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지는 공을 요구했다.
하지만,
따아아아아악!
차라리 자동고의사구를 요청했어야 했다.
바깥으로 빼려던 공이 어이없이 존 가까이로 날아 들었고, 한수혁의 배트가 힘차게 뻗어나갔다.
언제 들어도 소름이 오싹 끼치는 거대한 타격음,
보란 듯이 배트를 뒤로 집어던진 한수혁이 양키스 포수를 향해 말했다.
“저 친구, 야구가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
양키스 선수들의 얼굴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