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5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58화(359/412)
#358. 장외 홈런
– 아! 결국 경기가 그대로 끝나는군요. 트레버 닉슨이 101마일에 달하는 포심으로 다저스의 마지막 타자 애런 데커를 삼진으로 잡아냅니다!
– 이거 참, 예상 밖이네요. 물론 다저스가 선발 투수진에 있어 조금 문제가 있긴 했지만… 1, 2차전에서 이렇게 맥없이 무너질 거라고는 저를 포함해 누구도 상상을 못 했거든요.
– 마지막 찬스에서 삼진으로 물러난 애런 데커, 아, 정말 분한 표정입니다. 타이 존슨이 시애틀로 이적한 후 내셔널 리그 1루수 부문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선 그가 참담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봅니다
– 전체적인 전력 면에서는 세인트루이스와 LA, 두 팀이 백중세일 거라 예상했지만… 단기전은 역시 투수 싸움이네요. 에이스 앤드류 데이비스가 9이닝 2실점, 그리고 오늘은 2선발인 조던 이스트가 8이닝 1실점, 정말 강합니다. 세인트루이스의 선발 투수진 말이죠.
“압도적이네.”
“맞아, 압도적이야.”
“애런 저놈이 저렇게 열받아 하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젠장, 누가 올라오든 간에 좀 더 치고받았으면 좋겠는데, 저러다가 카디널스가 4연승하는 거 아냐?”
시애틀이 2연승을 거둔 다음 날 진행된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에서 세인트루이스가 선발 조던 이스트의 호투와 타자들의 고른 활약에 힘입어 또 한 번의 승리를 거뒀다.
TV 앞에 모여 경기를 지켜보던 시애틀 선수들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
막판 25연승을 거두며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 지었을 때도, 그리고 포스트시즌이 시작된 후에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한 압박감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지금 팀에 있는 선수들 중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아본 경험이 있는 건 타이 존슨과 마이크 워렌, 두 사람이 유일했다.
한때 양키스의 1선발을 맡기도 했던 베테랑 애덤 머피조차 밟아보지 못한 꿈의 무대, 그것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쉬기는 틀렸군. 저런 미친 공을 상대하려면 배트라도 한 번 더 휘둘러야겠어.”
“같이 가자고.”
선수들 사이에 긴장감이 차올랐다.
그런 선수들을 진정시키는 건 베테랑들의 몫이었다.
“흐흐, 애송이들. 이제야 좀 실감이 나나 보군. 괜찮아. 너무 겁 먹을 거 없어.”
“하지만 타이, 저 녀석 공 좀 보라고요. 괜히 내셔널 리그 세이브 1위가 아니네요.”
“맞는 말이야. 트레버 공이 끝내주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 하지만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무슨 생각이요?”
“다른 팀 놈들이 저 괴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지 말이야.”
타이 존슨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한수혁이 있었다.
그제야 시애틀 선수들의 표정에 옅은 안도감이 떠올랐다.
“흠.”
“맞아, 확실히…….”
“제길, 내가 저놈 공을 쳐야 했으면 차라리 배탈이 났다고 쓰러져 버렸을지도 모르겠군.”
그런 선수들을 본 타이 존슨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 알아들었으면 너무 긴장하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해. 괜히 무리할 필요 없어. 일단 우리가 생각해야 할 건 카디널스가 아니야. 눈앞에 있는 양키스지. 하나하나 처리해 나가자고.”
맞는 말이었다.
내일부터 시애틀은 뉴욕으로 무대를 옮겨 양키스와 3, 4, 5차전을 치러야 한다.
야구 인생 처음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그리고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코앞에 두고 여러모로 뒤숭숭했던 선수단의 분위기가 다시 한 번 다잡아졌다.
“일단 내일 경기부터 확실하게 잡아내자고, 나머지는 그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고 말이야.”
* * *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 선발로 예정된 뉴욕 양키스 샤킬 레너드, 이적 당시 시애틀로 갈까 봐 두려웠다는 발언에 대해 후회하지 않냐는 질문에 “전혀, 그때 나를 선택했던 뉴욕 양키스의 안목이 옳았다는 걸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보여주겠다.”] [자신의 시애틀 이적을 반대한 것이 한수혁이었다는 소문에 대해 “글쎄, 확실히 그는 좋은 투수이고 대단한 타자다. 하지만 선수를 보는 안목까지 최고란 법은 없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샤킬 레너드의 발언에 다시 한 번 타오른 시애틀 팬들 “그는 우리 팀과 한수혁을 동시에 모욕했다. 3차전 경기 장소가 양키 스타디움이라는 데 감사해야 할 것이다. 시애틀이었다면 살아서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 [3차전 선발등판을 앞둔 샤킬 레너드, SNS에서 시애틀 팬들과 설전… 양키스 단장 “선수 보호를 위해 SNS를 잠시 닫았다. 감정보다는 이성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때.”] [여러모로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마이크 워렌 VS 샤킬 레너드의 선발 맞대결, 마지막에 웃는 자가 누가 될 것인가?]‘제길.’
양키 스타디움에서 진행되는 시애틀과 뉴욕 간의 챔피언십 시리즈 3차전.
선발 마운드에 선 샤킬 레너드가 굳은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원 소속팀이던 밀워키가 탱킹을 선택하며 트레이드 대상에 올랐던 샤킬.
그에게 접근한 팀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그중 영입에 가장 근접했던 건 시애틀이었다.
한수혁과 라이언 티보우의 뒤를 받칠 강력한 3선발을 찾고 있던 시애틀.
밀워키 역시 시애틀의 제안에 만족감을 드러냈고 트레이드가 거의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자네의 새 팀이 정해졌어.’
‘어디입니까? 시애틀로 가면 되는 건가요?’
‘아니, 뉴욕이야. 이번 트레이드가 자네 선수 인생에 새로운 기회가 되길 바라네. 행운을 비네, 샤킬.’
양키스로의 트레이드 소식을 전해 들은 샤킬 레너드는 복잡한 심경을 감출 수 없었다.
시애틀과 뉴욕, 시장 규모나 향후 연봉협상 같은 선수 대우 측면에서는 당연히 뉴욕이 훨씬 나았지만 그 팀은 너무나 노쇠했고 사방이 꽉 막힌 감옥과도 같았다.
2030년이라는 시대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딱딱한 위계질서와 규율, 그리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과도한 관심과 간섭.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샤킬에게 그건 너무나도 큰 단점이었다.
하지만 트레이드 거부권을 갖지 못했던 샤킬은 양키스의 선수가 될 수밖에 없었고, 분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그리고 다친 자존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 자신을 거부한 시애틀에게 독설을 퍼부어댔다.
“플레이!”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은 절대 질 수 없는 경기였다.
시애틀이라는 팀도 문제이지만 맞상대할 선발 투수가 다름 아닌 마이크 워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신해 시애틀이 선택한 나이 든 너클볼러.
한때, 내셔널 리그를 넘어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를 꿈꾸었던 샤킬 레너드의 자존심은 그런 늙은 투수와의 비교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끄덕
경기가 시작되고, 타석에 시애틀의 리드오프 데릭 플레밍이 들어섰다.
몇 차례 사인을 주고받은 샤킬 레너드가 천천히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마이너리거 출신인 그의 아버지가 직접 개발해 어린 시절부터 샤킬 레너드에게 전수한, 투수치고는 작은 사이즈에도 불구하고 100마일이 넘는 강속구를 뿌리게 해준 역동적인 투구 폼.
누군가는 그 폼이 너무 위험하다고, 장기적으로 부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고, 실제로 올 시즌 하반기에 들어서며 구속과 구위가 떨어지는 등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상관없다.
이제 와서 뭔가를 후회하고 바로 잡기에는 너무 늦었다.
자신에게 야구를 가르친, 베이스볼을 사랑하게 만들어준 아버지를 믿고, 그리고 자신의 육체를 믿고,
던진다.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담아.
파앙
“스트라이크!”
시즌 초반 최고 101마일에 달했던 포심은 이제 없다.
하지만 97마일의 포심 역시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바깥쪽으로 맹렬히 파고드는 그 공을 데릭이 그냥 흘려보냈다.
샤킬 레너드를 삐딱하게 보는 전문가들 중 일부는 데드암이라는 표현을 입에 올리기도 한다.
글쎄,
그의 아버지는 말했다. 투수의 팔은 소모품이기에 결국 언젠가는 끝이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그것이 두려워 스스로에게 제한을 두는 건 200마일로 달릴 수 있는 스포츠카를 사서 정속주행을 하는 것과 같은 멍청한 짓이라고.
파앙
“볼.”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본다.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데드암이 와서 자신이 공을 던질 수 없게 된다면,
자신은 아버지를 원망하게 될까?
체격이 작다는 이유로 빅리거 스카우터들에게 푸대접을 받던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만들어준 아버지를?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젠장, 아버지. 이렇게 된 거 갈 때까지 가보렵니다.’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은 샤킬 레너드가 전력을 다해 세 번째 공을 뿌렸다.
그리고 데릭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았다.
따아악!
잘 맞은 타구가 1, 2루 사이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양키스가 자랑하는 리그 최강의 2루수 그렉 조세프가 있었다.
터억
“아웃!”
“좋았어! 그렉! 바로 그거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시애틀 놈들을 박살 내버리라고!”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양키스 팬들의 응원 소리를 들으며 샤킬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부터 그를 괴롭혔던 부상에 대한 공포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시애틀을 꺾고 싶다는 마음,
그것만이 그에게 남은 전부였다.
* * *
오늘 경기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샤킬 레너드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와 비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마이크 워렌,
그가 이를 악물고 양키스 타자들을 막아냈다.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서 기록한 9이닝 1실점만큼의 호투는 아니었지만 7과 3분의 2 이닝을 3실점으로 막아내며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냈다.
“좋아, 잘했어. 마이크.”
“멋진 투구였어. 이제부터는 동료들에게 맡기라고.”
3 대 3으로 양 팀이 팽팽하게 맞선 8회 말 뉴욕 양키스의 공격.
투 아웃을 잘 잡은 마이크 워렌이 양키스의 간판타자 루카스 앤더슨에게 2루타를 허용하자 시애틀 감독은 곧바로 다음 투수를 마운드로 올렸다.
[시애틀 매리너스 투수 마이크 워렌 ▶ 애덤 머피]그렇게 오늘 이 경기에 목숨을 걸 이유가 있는 또 한 명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양키스의 은퇴 제안을 거절하고, 원클럽맨으로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고 다시 한 번 현역에 도전한 43살의 노장.
반 년 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칼을 간 후에야 시애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던 전 양키스의 터줏대감.
“제길, 이건 야유를 보낼 수도 없군, 애덤! 너 대체 왜 거기 있는 거야?”
누군가의 절규처럼 지금 양키스 팬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했다.
20년 동안 양키스 마운드를 지켜온, 그렇기에 정이 안 들려야 안 들 수가 없는 노장이 챔피언십 상대팀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올랐으니 말이다.
심경이 복잡한 건 애덤 머피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잊지 않은 프로 중의 프로였다.
“플레이!”
모자를 벗고 고향팀 팬들에게 정중한 인사를 한 애덤 머피가 한때 그의 믿음직한 동료였던 양키스의 3번 타자 잭 헤인즈를 바라보았다.
끄덕
1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뛰며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투수와 타자.
치열한 머리싸움과 함께 풀 카운트 접전이 이어졌다.
어떻게든 한 점을 더 내려는 양키스, 이를 막아내고 9회 초 마지막 공격에 모든 걸 걸려는 시애틀.
두 팀의 집념과 염원을 가득 담고 진행된 이번 승부의 승자는
따아악!
터억
“아웃!”
시애틀이었다.
잭 헤인즈가 때린 잘 맞은 타구가 3루 베이스 옆으로 총알같이 빠져나가려는 순간 몸을 날린 한수혁이 그 공을 노바운드로 처리했다.
“아아악! 빌어먹을! 개자식아!”
“죽여! 저 자식을 죽여 버리라고!”
“그걸 잡다니! 그걸!”
눈앞에서 1점을 도둑맞은 양키스 팬들, 그리고 결승타점을 잃어버린 타자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양키스의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9회 초 시애틀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양키스 감독이 3 대 3 동점상황에서 리그 최강의 마무리 투수 저스틴 자발라를 마운드에 올렸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 1.40, WHIP 0.75, 1승 1패 45세이브를 기록하며 뉴욕 양키스의 수호신이라 불린 저스틴 자발라.
그런 저스틴이 첫 타자 한수혁과 만났다.
활발하게 움직이던 양키스 덕아웃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이제 더 이상의 작전은 필요치 않았다.
3 대 3 동점 상황,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이제 남은 건 무슨 수를 써서든 선두타자를 잡아내려는 투수, 그리고 이 경기를 끝내기 위해 모든 것을 건 타자와의 싸움뿐이었다.
끄덕
구종 가치 면에서 한수혁의 공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저스틴 자발라의 포심이 바깥쪽 낮은 코스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갔다.
공기를 찢듯 힘차게 꿈틀거리며 날아가는 저스틴의 광속구.
그리고,
따아아아악!
오늘 전 타석에서 볼넷으로 출루했던 한수혁의 방망이가 처음으로 휘둘러졌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
경기장 좌측 외벽을 넘어 장외로 떨어지는 거대한 홈런.
양키 스타디움이 침묵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