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5화(36/412)
#35. 불타는 잠실야구장
– 안녕하십니까, 스포츠 초대석입니다. 위원님. 비록 시즌 초반이기는 하지만 서울 워리어스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현재 7승 4패로 수원과 함께 공동 2위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 아, 네. 맞습니다. 지난 4년 동안 9-8-10-10위를 기록하며 최하위를 전전하던 워리어스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시즌 초반이라 해도 2위 자리에 올라 있다는 건 분명 주목해봐야 할 부분입니다
– 자, 그럼 워리어스의 상승세,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요?
– 일단은 ‘그 선수’죠
– 하하, 요즘 워리어스 팬들은 ‘그 분’이라고 부르더군요
– 네, 시즌 10경기에서 타율 0.411, 출루율 0.499, 장타율 0.998, 거기에 6홈런 15타점을 기록중인 한수혁 선수야말로 워리어스 초반 약진의 선봉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위원님, 우리 솔직히 한 번 얘기해볼까요? 한수혁 선수가 저렇게 잘 할 거라 예상하셨나요?
– 물론이죠. 시애틀의 350만 달러 제안을 걷어찬 선수 아니겠습니까? 당연히···
– 그때 술자리에서 저한테 말씀하신 거랑 조금···
– 아앗! 집에서 제 와이프와 자식들이 보고 있습니다. 가장이 일자리를 잃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싶은 게 아니면 그 얘기는 거기까지만 하시죠
–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한수혁 선수 외에 또 다른 요인은 뭐가 있을까요?
– 투수진, 그 중에서 선발 투수진이 제법 괜찮았습니다. 지난 시즌에도 나란히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라이언 스타크와 브룩스 파커, 두 명의 용병이 나란히 2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고요. 3선발로 나선 이만식 선수도 비교적 안정적인 투구를 보여줬습니다
– 반면 구원투수진은 조금 아쉬웠죠?
– 네, 한진우 선수가 빠져 나간 마무리 자리에 최정수 선수와 홍영식 선수가 교대로 투입이 되고 있지만···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이대준 감독이 타자 출신이라서 그럴까요? 파격적인 라인업이 제법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 부상으로 주루에 약점이 있는 이창모 선수가 1번으로 나서는데 의아해한 분들이 많았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성공입니다. 주루보다는 출루로 팀에 기여하고 있고요. 2번 타순에서는 트레이드 되어 온 최민석 선수가 연결고리 역할을 잘 해주고 있고··· 3번 한수혁 선수야 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죠
– 하위타선도 생각보다 괜찮았죠?
– 네, 개막전에서 5번을 치던 안치욱 선수가 1할대까지 타율이 떨어지면서 7번으로 강등되었는데요. 최근 2경기에서 각각 안타 1개와 2개를 기록하며 점차 프로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면 워리어스 하위타순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 자, 그런 워리어스가 내일부터 3일간 잠실 라이벌 매지션스와 주말 3연전을 갖게 됩니다. 매지션스는 현재 워리어스에 이어 4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이번 3연전은 정말 치열할 겁니다. 전통적인 서울 라이벌 전인데다가 시즌 전에는 양팀 선수 두 명이 서로 유니폼을 바꿔 입기도 했고요. 게다가 워리어스에서 매지션스로 적을 옮긴 정민식 단장도 빼놓을 수 없겠죠. 이래저래 얽힌 게 많은 양팀입니다
– 정말 여러 의미를 담고 있는 경기가 되겠군요.
– 말 그대로 전쟁이죠. 두 팀 간의 경기가 언제나 그랬지만 객관적인 팀 전력과 상관없이 이번 잠실 3연전은 말 그대로 전쟁이 될 것입니다
딸깍
TV를 끈 민예린이 비장한 목소리로 매니저에게 말했다.
“들었지, 오빠?”
“으응? 뭘··· 예린아?”
“전쟁이라잖아. 전쟁준비 해야지.”
“아니, 그걸 네가 왜···”
“됐고, 일단 내일 필요한 건 다 준비된 거 맞지?”
“어? 어, 어.”
“커피차, 관중들한테 돌릴 응원용품, 기타 등등등, 똑바로 정신차리고 다시 한 번 체크해봐. 매지션스 애들한테 뭐 하나라도 밀리면 우리 그냥 다 거기서 죽는 거야.”
왜 자꾸 자기 돈으로 워리어스 서포트를 하냐는 말이 매니저의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쑥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민예린이 그간 몇 번이고 야구 보려고 연예인으로 돈 버는 거라 말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뭐 죽을 필요까지는···”
“됐어, 빨리 가서 마지막 체크해봐. 나 인터넷 좀 해야 하니까.”
매니저를 돌려보낸 민예린이 노트북을 열고 워리어스 갤러리에 접속했다.
그리고는 살벌한 표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키보드를 눌렀다.
– 이번 잠실 라이벌전은 워리어스가 3승으로 개 바를 듯
* * *
빅리그에서 뛰던 시절 내게는 라이벌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팀이 딱히 없었다.
내가 뛰었던 팀들이 상대적으로 약팀인데다가 스몰마켓이어서 그런지 양키스-레드삭스 같은 극적인 라이벌 관계도 없었거니와, 설사 그런 게 있다 해도 내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프로에 진출하기 전, 그러니까 워리어스 어린이 회원 때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봐도 딱히 라이벌 팀 때문에 흥분하거나 열이 받았던 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내가 어린이 회원일 때 워리어스는 한 해 걸러 한 번씩 한국시리즈를 재패하는 강팀이었고, 앙숙이라 할 수 있는 매지션스는 워리어스 앞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잠실 라이벌전을 앞두고 미친 듯이 달아오르는 이 분위기가 내게는 조금 낯설기만 하다.
웅성웅성
매지션스와의 3연전 첫 경기가 예정된 금요일 오후.
경기 시작까지 아직 5시간이 남은 시각, 평소 같으면 한산했을 잠실야구장 주변이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저기 일렬로 서 있는 커피차 부대는 뭔데? 누가 부른 거야, 저건?
난리네, 난리.
인파들 사이를 헤치며 구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에서 내 얼굴을 알아본 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경기를 앞둔 선수를 배려하려는 듯 직접 다가오지는 않았다.
선수단용 출입구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입구 앞에 팬들이 가득 모여 선수들이 출근할 때마다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다 좋은데··· 사람이 들어갈 자리는 좀 만들어줘야···
“저기 죄송한데 잠시만···”
“에이, 누가 미는··· 헉! 한수혁 선수?”
“네, 죄송합니다. 저 구장에 들어가야 해서 조금만···”
“아, 아, 물론이죠. 잠시만요. 제가 길을 싹 닦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얼굴 절반 정도가 턱수염으로 덮여 있는, 동양인치고는 꽤나 그럴 듯한 수염을 가진 거구의 남자가 내 얼굴을 확인하곤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여러분! 여기 한수혁 선수가 있습니다! 일단 길부터 만들어 주시고 응원은 그 다음에! 거기! 여자분! 통로 쪽으로 너무 붙었어요. 떨어지세요!”
“진짜? 한수혁이라고? 어디? 어! 정말이네?”
“자! 다들 조금만 우측으로 밀착! 우리 한 선수, 빨리 들어가서 훈련할 수 있게! 자, 천천히, 천천히. 네, 좋습니다!”
덩치 큰 남자가 몇 번 소리를 지르자 곧 입구로 향하는 길이 만들어졌다.
그 길을 따라 통로로 들어서는데 등뒤로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따른다.
이게 대체 뭔 난리람.
그렇게 간신히 구장 안으로 들어섰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야구장 바깥만이 아니었다.
그라운드 위의 분위기 역시 심상치 않았다.
“수혁아, 왔니?”
“네, 선배님. 일찍 나오셨네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요?”
“투수들은 만식이가 따로 모아서 얘기중인 것 같고··· 음, 우리도 일단 한 번 모여볼까?”
평소 나보다 늦게 나오던 야수조 선배들이 모두 구장에 출근해 있었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야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 갔다.
주전 야수들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조성오 선배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지?”
“네!”
별 것 아닌 말이건만 귀청이 떠나갈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깜짝이야.
“매지션스 놈들하고는 가위바위보도 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심지어 지난 4년 동안 쟤네들이 가을야구 할 때 우리는 집에서 TV로 그걸 구경해야 했고.”
“알고 있습니다!”
“좋아. 다른 말은 필요 없다. 오늘은 무조건 이긴다. 공이 몸 쪽으로 날아오면 맞고라도 나가는 거다. 투수조 애들한테 쪽팔리지 않게 하자. 자, 그럼 파이팅!”
“파이팅!”
크게 함성을 지른 선수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사방으로 흩어졌다.
서울 워리어스와 매지션스.
지금은 파이터즈가 추가되며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팀이 세 곳으로 늘어났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서울을 양분하며 경쟁해온 영원한 라이벌.
두 팀의 치열했던 역사를 조금 살펴보면 90년대 중반까지는 실력이나 인기 모두 매지션스가 우위를 보였지만 95년 워리어스의 우승과 황금세대의 등장으로 인해 2020년까지는 워리어스의 압승이 이어졌다.
하지만 2022년 워리어스가 9위로 추락하고 줄곧 최하위권을 전전하는 동안 매지션스는 가을 야구 단골손님이 되어 매년 우승을 다투는 강팀으로 거듭났다.
그런 역사를 가진 두 팀이 올 시즌 처음으로 격돌한다.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FA 2명을 보강한데 이어 구멍 난 유격수 자리에 송기태 놈까지 데려간 매지션스.
반면 내가 입단한 것을 제외하면 특별한 전력보강이 없었던 워리어스.
라이벌 전이라는 게 전력 외의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현 시점에서 언더독은 분명 워리어스다.
흠.
뭐, 원래 야구란 게 강팀을 후려패는 맛으로 하는 거니까.
그나저나 오늘도 경기전 축하공연이 있네? 민예린? 또 그 연예인이야?
* * *
“와아아!”
“최고다!”
“···저게 대체.”
“수혁아, 뭘 그렇게 열심히 보냐? 연예인에 관심 없다며?”
“아니, 그게 아니라···”
“크크, 너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구나. 그래, 좋을 때다.”
김수학 선배의 놀림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끔 구단에 방문할 때면 성훈이 형이 맨발로 뛰쳐나가 마중을 한다는 워리어스의 광팬 민예린.
지금 내 눈 앞에서 그녀가 또 노래를 하고 있다. 잠실 라이벌전을 앞둔 워리어스 선수들을 격려하겠다면서.
<내가 너의 이름을 부를 때~ 워! 리! 어! 스!>
잠실야구장 상공에 드론이 날아다니고, 레이저 조명대수가 늘어나고, 폭죽은 쉴 새 없이 터지고.
뭔가 지난 번 개막전 무대 때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것 같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저 여자가 민예린···”
전광판 디스플레이에 큼지막하게 잡힌 얼굴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자신의 옆집에 사는 그 숫기 없어 보이던 여자, 아버지와 함께 집에 찾아와 집들이 선물을 왕창 던져놓고 간 여자.
그리고···
성훈이 형의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준 극렬 워리어스 서포터 민예린.
그게 동일인이었다니.
맙소사.
“흐흐, 한수혁. 내가 저번에 말했지? 모름지기 대한민국 남···”
“시끄럽고, 글러브 들고 따라와. 쓸데없는 짓 할 시간에 몸이라도 풀게.”
“···왜 자꾸 나한테만.”
나도 몰라.
기분이 이상할 때는 일단 너부터 한 번 조져야 진정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후우.
신경 끄자. 지금 중요한 건 저 여자가 누구냐가 아니니까.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 이대준 감독이 내놓은 라인업은 이랬다.
1번 2루수 이창모
2번 중견수 최민석
3번 유격수 한수혁
4번 우익수 맥스 워커
5번 1루수 조성오
6번 지명타자 강진석
7번 3루수 안치욱
8번 포수 장덕수
9번 좌익수 김수학
선발 투수 라이언 스타크
최근 2군 5경기에서 홈런 4개를 친 우타 외야수 강진석 선배가 1군으로 콜업되며 6번 타자 자리에 이름을 올린 것을 제외하면 기존과 거의 같은 라인업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경기까지만 해도 지명타자로 설 선수가 없어 신인 유인철이 들어섰던 걸 생각하면 말이다. 물론 라인업에서 빠진 녀석의 얼굴이 상당히 어두워졌지만.
덕아웃 앞에 기대 오늘 경기에 투입될 우리 선수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다들 기대감과 긴장감이 어우러진 표정으로 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안치욱의 표정이 조금 묘했다. 어딘가를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원정팀 덕아웃 앞에 송가 놈이 나와 있었다.
황성민과 송기태, 한진우, 정기호.
워리어스의 문제아 4인방 중 유일하게 우리 눈에 자주 띄는 놈이 바로 저 송기태다.
황성민이야 지난 사태로 인해 팀에서 방출된 후 어디론가 사라졌고, 한진우와 정기호는 여전히 2군에서 잘 지내는 모양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1군 무대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게 바로 저 송기태.
예전 같으면 다가와서 시비라도 걸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황성민 사태로 기가 질려서 그런지 멀리서 인상만 쓸뿐 별다른 짓은 벌이지 않았다.
잘 생각한 거다. 송기태.
나도 경기 시작 전부터 벤클 벌여서 퇴장당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흠.
뭐 저런 미미한 놈이야 그렇다 치고···
오늘 선발로 나올 1선발 히메네스, 포수이면서도 호타준족을 자랑하는 박수길.
리그를 대표하는 리드오프 중 하나인 중견수 양선우, 부상으로 라인업에서는 빠졌지만 매년 20홈런은 기본으로 치는 베테랑 1루수 고철환.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부러운 멤버이기는 하다.
저 정도 이름값 있는 놈들을 모아 놨으니 지난 시즌 준우승을 한 거겠지.
생각해보니 열 받네.
쟤들이 저런 선수들을 키우고 사 모으는 동안 대체 이 팀은 뭘 했길래 송기태, 황성민, 한진우, 정기호 같은 놈들만 있었던 거야?
이 팀의 소유주로서 불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눌러 삼키며 경기 준비에 들어갔다.
“자, 가자!”
“파이팅!”
먼저 수비를 하게 된 워리어스 선수단이 힘차게 그라운드를 향해 뛰어나갔다.
평소보다 족히 1.5배는 더 큰 것 같은 어마어마한 함성이 잠실야구장에 메아리쳤다.
그동안 팬으로서 지켜보던 잠실 라이벌전과, 실제 선수가 되어 벌이는 라이벌 전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갭이 있었다.
좋다.
진짜 경기할 맛 나네.
오늘은 왠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다.
“플레이볼!”
경기가 시작되었다.
원정팀 매지션스의 리드오프 양선우가 천천히 타석에 들어섰다.
좌타자가 즐비한 매지션스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기동력이 좋은 좌타자.
매년 3할대의 타율에 4할에 가까운 출루율, 그리고 두 자릿수 도루를 밥 먹듯이 하는 리드오프의 교과서 같은 타자.
그런 양선우를 상대로 라이언은 바깥쪽 승부를 이어갔다.
존 밖에서 안쪽으로 말려 들어오는 백도어 슬라이더과 바깥쪽에 살짝 걸쳤다 떨어지는 투심이 타자를 유혹한다.
“볼!”
“볼!”
“퉤!”
공 두 개를 연속으로 잘 골라낸 양선우가 침을 퉤 뱉으며 라이언을 노려보았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좌타자를 상대로도 몸 쪽 공 승부를 즐겨온 라이언 스타크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난 시즌 워리어스의 유격수였던 송기태의 수비를 믿을 수 없어서.
그보다는 2루를 지키고 있는 이창모 선배의 수비가 훨씬 믿음직했기에 그렇게 승부를 가져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라이언은 내게 예고한 대로 바깥 쪽 승부를 고집했고, 결국 참다 못한 양선우가 배트를 내밀었다.
따악!
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백도어 슬라이더가 제대로 배트에 걸렸다.
비록 한 시즌 홈런 개수가 10개를 넘기기 힘든 양선우이지만 손목 힘이 제대로 실린 타구가 3-유 간으로 날아왔다.
“안치욱!”
타격음과 동시에 반사적으로 안치욱의 이름을 불렀다.
3루수 옆으로 향하는 총알 같은 땅볼 타구. 이건 아무리 나라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코스다. 저 놈이 처리해야 한다.
그동안 갈군 보람이 있는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런 타구에 반응조차 하지 못했던 안치욱이 타구를 향해 힘껏 글러브를 내밀었다.
툭
“아앜!”
하지만 아쉽게도 포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안치욱이 필사적으로 내민 글러브에 맞은 공이 공중으로 크게 튀어 올랐다.
관중석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안타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턱
슈웅!
“우와와! 미쳤, 미쳤다!”
“저게 뭐야!”
“공중에서 멈춘 거야? 지금?”
안치욱의 글러브에 맞은 공이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순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걸 잡고 바닥에 착지한 후 1루로 송구하면 늦을 거란 사실을.
순간적으로 모든 계산을 마친 나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오른 손으로 타구를 잡아챘다.
그리고는 그대로 허공에서 스탭을 밟으며 1루를 향해 총알 같은 송구를 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1루심의 입에서 아웃 선언이 떨어졌다.
“아, 아웃!”
성공이다. 이건 아무리 나라 해도 백 프로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플레이였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타구를 놓친 줄 알고 얼굴이 허옇게 질렸던 안치욱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라이언 스타크가 입을 헤 벌린 채 박수를 치고 있다.
워리어스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반대로 매지션스 팬들이 먹고 있던 닭다리를 던지며 야유를 퍼붓고 있었다.
그리고 민예린이라는 가수는 안전망을 기어 오르려다가 안전요원에게 붙잡혀 바둥거리고 있었다.
잠실야구장 전체가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