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6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61화(362/412)
#361. 정말 원해?
“음, 재미있네. 결국 지금까지 내용이 다 꿈이었다 이거지?”
“…재밌어요? 이게요? 오빠,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왜? 난 재미있는데, 그럼… 안 되는 건가?”
“안 되죠! 세상에, 그동안 실컷 감정 이입을 시켜놓고 마지막 화에 와서 이게 다 꿈이었습니다, 짜잔! 하는 거잖아요. 이건 시청자를 우롱하는 거라고요.”
“흠, 그런가?”
“오빠… 아무래도 취향이… 혹시 제일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뭐였어요?”
“방금 본 이거.”
“네?”
“이 드라마가 처음으로 끝까지 다 본 거라… 이거 말고는 잘 모르겠네.”
“오빠…….”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시애틀이 4승 1패, 그리고 내셔널 리그에서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4연승을 거두며 월드시리즈 진출 팀이 확정되었다.
어제 경기가 끝난 후 시애틀로 돌아와 즉석 카 퍼레이드를 벌인 우리 선수단은 오늘 하루 완전한 휴식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난 예린이와 한 약속대로 아무 일정 없이 집 소파에 드러누워 하루 종일 드라마만 보는 호사를 부렸다.
예린이 말처럼 마지막에 와서 모든 게 꿈이었다는 결론으로 끝난 게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 평생 처음으로 끝까지 완주한 드라마는 나름 재미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걸 함께 본 사람이 예린이었기에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암… 그럼 우리 간단하게 뭐라도 좀 먹어볼까?”
“네, 그럼 아까 샌드위치 만들어놓은 거 가져올게요. 일단 그거 드시고 계시면 제가 저녁 차릴게요, 오빠.”
“같이 하자.”
“아뇨, 내일부터는 또 훈련인데 오늘 하루라도 완벽하게 쉬세요.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요.”
“그래도 미안한데…….”
“에잉,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빠 저한테 장가 올래요? 그럼 제가 손에 물 한 방울 안…….”
“응? 뭐라고? 방금 잘 못 들었는데, 예린아?”
“아뇨! 아니에요. 샌드위치 살짝 데워갈 테니 잠시만요!”
예린이가 잠깐 주방으로 간 사이 리모컨을 돌려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보았다.
한 채널에서 KBO에 대한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포스트시즌이 진행되는 사이 한국에서도 뒤늦게 정규시즌이 종료되고 가을야구가 시작되었다.
올 시즌 KBO의 최종 승자는 워리어스였다. 2위 매지션스와 불과 한 게임 반밖에 차이 나지 않는 접전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또 한 번의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조성오 선배의 스탯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대신 서형주와 안치욱의 기량이 물이 올랐고, 시즌의 절반 정도는 지명타자로 나서는 장덕수 선배, 그리고 월터 스미스의 장타력은 리그 최고의 수준이었다.
내 자리를 메운 유인철의 활약 역시 충분한 합격점을 줄 수 있었고, 백업 멤버들도 모두 자신의 몫을 다 해냈다.
임준영 선배와 천상진 선배의 원투 펀치는 여전했고, 중간계투와 마무리 역시 지난해보다 오히려 더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올 시즌 매지션스와 더 큰 격차를 벌리지 못한 것은 내가 빠짐으로 인해 생긴 공백이라 봐야 할 것 같다.
뭐, 그건 내가 아무리 돈이 많은 구단주라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라이언 티보우나 타이 존슨급의 용병을 보내주지 않는 이상 답이 없는 문제이니 말이다.
음,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정말 라이언 그놈에게 제안을 한 번…….
– 왕 레이 선수, 그러니까 지금 하신 말씀을 종합하면…….
– 네,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저랑 한수혁 선수를 비교하지 마세요. 우리 둘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것뿐입니다. 그 외에는 무엇 하나 제가 내세울 게 없다니까요?
– 대륙의 기상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발언이군요. 아무리 그래도 왕 레이 선수 역시 당당한 메이저리거로서…….
– 하아, 참. 네, 맞아요. 저도 메이저리거이긴 하죠. 9월 확장 로스터 때 한 번 올라가긴 했으니까요. 하지만 말이죠. 그래서 더더욱 한수혁과의 차이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 선수는 말이죠. 뭐랄까, 저뿐만이 아니라 어떤 선수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니, 비교해서도 안 되는 그런 선수란 말입니다.
– 그래 봐야 소국의 야구선수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중국도 야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니 조만간 그에 못지않은…….
– 아니, 글쎄! 그런 수준이 아니라니까!
채널을 계속 돌리다 보니 이번에는 어떤 인터넷 방송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사회자와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왕 레이였다.
중국 대표팀 소속으로 나와 WBC에서 만났던, 그리고 올 시즌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으로 빅리그 데뷔전을 마친 투수.
처음 국제무대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꽤나 건방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놈이었는데 지금 말하는 걸 보니 정신을 좀 차린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여러 나라의 방송 채널과 인터넷 채널들을 뒤적이는 사이 예린이가 샌드위치를 들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국만 데워지면 제가 식사 차릴게요. 그동안 이거 하나씩 나눠 먹어요.”
“그래? 그럼 식탁은 같이 차리자.”
“안 돼요! 그러다가 괜히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못 들으셨어요? 다저스 선수 하나가 집에서 음식 준비하다가 손가락 다쳐서 챔피언십 통째로 날렸잖아요. 절대, 네버, 아무것도 하지 말고 당분간은 야구만, 알았죠?”
“음, 뭐 그렇게 호들갑을 떨 것까지는… 그래, 알았어.”
“히히, 그나저나 오빠.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그래?”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기분은 어떠세요? 그러니까 이게, 야구선수에게는 꿈의 무대 같은 거잖아요. 대부분의 선수들이 평생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는, 와…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제 가슴이 갑자기 떨리네요.”
“음, 솔직히 별 생각 없는데.”
“에엥? 아무리 그래도 오빠도 월드시리즈는 처음이잖아요. 저 같으면 엄청 떨릴 거 같은데.”
사실 예전에 몇 번 해봤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냥 참아 눌렀다.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로 시애틀 시내 전체가 여전히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예린이처럼 시애틀과 별다른 연고도 없는 야구팬들조차 그 분위기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내게 월드시리즈는…….
음, 그냥 또 한 번의 경기일 뿐이다.
물론 이기면 기분이야 좋겠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예린이와 함께 맛있는 걸 나눠먹고, 함께 재미있는 걸 보는 이런 시간이 훨씬 더 소중하다.
“예린아, 월드시리즈고 뭐고 다 그만두고 그냥 어디 놀러가 버릴까?”
“네에? 에헤, 행여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그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겨야죠. 저 오빠가 월드시리즈 챔피언이 되는 모습, 꼭 보고 싶어요.”
“그래?”
“네!”
“정말 원해? 월드시리즈 챔피언?”
“당연하죠!”
“좋아, 저번에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는 줬으니 이번에는 월드시리즈 반지도 가져다줄게. 좀만 기다려.”
“우와…….”
활짝 웃으며 내 품에 안겨드는 예린이에게서 기분 좋은 향기가 난다.
아주 어릴 적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던, 상큼한 풀내음을 닮은 그런 향기가.
이 애의 얼굴에 웃음이 계속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 * *
“좋아, 다들 하루 동안 푹 쉬었지? 데릭, 넌 지나치게 잘 쉰 거 같은데? 눈이 왜 그렇게 퉁퉁 부은 거야? 알콜로 샤워라도 한 건가?”
“네? 보스,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카디널스 놈들 경기 영상을 하도 돌려보다 보니…….”
“됐어. 어제 하루는 말 그대로 휴식을 준 거니까 뭘 했든 너희 자유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다르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우리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말이야.”
월드시리즈라는 단어 하나에 시애틀 선수들의 얼굴에 기합이 확 들어갔다.
한수혁과 타이 존슨을 포함해 이적생들이 있긴 하지만 이 팀의 코어는 누가 뭐래도 시애틀 자체 팜에서 성장한 어린 선수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창단 후 첫 월드시리즈 진출 멤버라는 사실은 감히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영광이었다.
“우리가 양키스 그 망할 놈들을 4승 1패로 박살 내버리긴 했지만, 카디널스 역시 다저스를 4연승으로 제압했다. 즉, 기세 면에서 우리 못지않다는 소리지. 게다가 놈들에게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풍부한 월드시리즈 경험이란 게 있고 말이야. 그렇지 않나, 타이?”
“흠, 그 질문에 대답하기는 조금 곤란하군요, 보스.”
“흐흐, 딱히 대답을 기대한 건 아냐. 너희들에게 부담을 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정말 수고 많았고 남은 경기는 하늘에게 맡기고 최선을 다하자, 이딴 소리를 하기에 우린 너무 멀리 왔다는 거다. 다들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보스!”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카디널스의 우위를 예상하고 있다. 고작 경험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야. 하지만!”
잠시 말을 멈춘 벤자민 감독이 손가락으로 한수혁을 가리켰다.
“저기 저 녀석을 봐라. 경험이란 게 얼마나 의미가 없는지, 실력만 있다면 아무리 경험 많은 베테랑이라 해도 충분히 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산증인이 저기 있으니 말이다.”
“맞는 말씀입니다!”
“좋아, 물론 경험이란 걸 제외하고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충분히 강한 팀이다. 투수진부터 시작해서 타선까지, 어디 하나 뚜렷한 약점이 없는 존중받아 마땅한 팀이지. 하지만!”
벤자민 감독의 손가락은 여전히 한수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팀에는 저 친구가 없다. 누군가 내게, 아니, 우리에게 의존적이라 폄하해도 어쩔 수 없다. 혹은 편애라 해도 할 말 없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저 친구가 있기에 우리는 또 한 번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거라고. 내 말에 불만 있는 녀석 있나?”
“아뇨! 저희도 반지를 얻을 때까지 저 녀석 뒤에 졸졸 따라붙을 예정입니다!”
시애틀의 젊은 선수들을 대표하는 라이언이 그렇게 대답하자 나머지 선수들이 재미있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이야말로 벤자민 감독이 바라던 분위기였다.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무게감에 눌려 있는 젊은 선수들에게는 기댈 곳이 필요했다. 용기를 불러 일으켜줄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다행히도 시애틀에는 그런 존재가 있었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역사를 홀로 깨부순, 역사에 남을 시즌을 보낸 한수혁이.
“내가 더 이상 주저리주저리 떠들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그래, 그럼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한스, 화면 준비해주고.”
감독의 등 뒤로 스크린이 켜졌다. 그리고 세인트루이스의 주요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가 화면 가득 떠올랐다.
“첫 번째 경기에 등판할 카디널스의 에이스 앤드류 데이비스다. 239이닝을 던져서 21승 6패, ERA 2.01, WHIP 1.02, WAR 8.01, 젠장, 끔찍한 스탯이군.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쯤 저쪽에서는 한수혁 저 친구의 스탯을 보고 이보다 더 심한 말을 하고 있을 테니까.”
“하하하.”
“앤드류 데이비스뿐만이 아니다. 그 뒤를 이어 등장할 조던 이스트, 201이닝 ERA 3.01, 20승 9패, 찰스 워싱턴 15승 7패, 빅터 할로우 12승 9패… 대단하지? 그런데 너희들 그거 아나? 우리 팀의 2, 3, 4선발이 라이언 티보우, 마이크 워렌, 하야시 렌타로라는 것 말이야.”
“맞습니다! 우리가 더 강합니다!”
“좋아, 기다리던 대답이야.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한스, 앞으로 나와. 자네가 분석한 앤드류 데이비스에 대한 모든 걸 선수들에게 설명해줄 차례야.”
월드시리즈 1차전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시애틀 선수들이 눈을 반짝이며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