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6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62화(363/412)
#362. 월드 시리즈(1)
“왈론, 갑자기 걱정이 드는군.”
“음?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혹시 이게 다 꿈은 아닐까 하는 걱정 말이야. 젠장, 정말 현실 맞지? 우리가 양키스 그 자식들을 박살 내고 월드시리즈에 오른 거 말이야.”
“조셉, 저기 우리들의 성지를 봐. 뭐가 보이지?”
“음… 2030 월드시리즈 시애틀 매리너스 VS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좋아, 그럼 그 옆에는 뭐가 걸려 있지?”
“뭐긴 뭐야, 한수혁, 그 친구 현수막이 대문짝만하게… 젠장, 좋아. 확실히 꿈은 아닌가 보군.”
“다행이야. 난 자네가 행여 치매라도 걸린 게 아닐까 걱정했거든. 자, 이제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우리의 영웅들을 보러 가자고.”
결전의 날이 밝았다.
사상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시애틀 매리너스, 그리고 지난해에 이어 월드시리즈 2연패를 노리는 내셔널 리그의 절대 강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간의 1차전 경기가 준비되고 있었다.
야구단 창설 이후 첫 번째 월드시리즈 경기를 치르게 된 T모바일파크 주변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그 자체였다.
경기 시작이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경기장 주변에 몰려든 팬들, 그들 중 대부분은 오늘 경기 티켓을 구해지 못했고 매리너스 구단 측에서는 그런 팬들을 위해 경기장 외벽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주변에 야외용 히터를 배치하는 등 응원전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시민 여러분! 시애틀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경우 제가 무슨 수를 써서든 다음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모든 시민분들이…….”
경기장 주변에 몰려든 건 팬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기회를 자신의 재선 발판으로 삼으려는 시애틀 시장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비치며 생색을 냈고, 시애틀과는 아무 상관없는 관광객들까지 몰려들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수혁의 영향일까.
미국 관광을 온 김에 이곳에 들른 한국인 관광객들은 시애틀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무료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나눠주는 상인들, 비싸기로 유명한 한수혁 굿즈를 선뜻 건네는 팬들.
이런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 차곡차곡 경기가 준비되었다.
* * *
1번 투수 한수혁
2번 1루수 타이 존슨
3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4번 우익수 척 클락
5번 좌익수 안토니오 가르시아
6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7번 3루수 리암 랜드먼
8번 2루수 로니 몬타릭
9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고의사구 작전을 견제하기 위해 한수혁을 1번으로 올린 걸 제외하면 여느 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현 시점 매리너스의 최강 전력이 모두 포함된 라인업 용지를 든 벤자민 레이놀즈 감독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
폭풍처럼 지나간 시간들이었다.
구단 내 힘겨루기에 질려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간, 그곳에서 좋은 보스, 좋은 선수들을 만나 3년 동안 최고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벤자민이다.
그렇게 한국에서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 갑자기 시애틀 매리너스 지휘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적지 않은 고민을 해야 했다.
과연 자신에게 빅리그 구단의 지휘봉을 잡을 자격이 있을까?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노리는 팀에 어울리는 감독이 될 수 있을까?
그런 모든 걱정은 이 한마디에 완벽하게 해소되었다.
‘한수혁 선수가 저희와 함께할 겁니다.’
물론 오늘 이 자리까지 오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시즌 초반 여기저기 삐걱거리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선수단을 이끌고 한 발 한 발 여기까지 걸어왔다.
그러는 사이 한수혁이 시애틀 매리너스 지분을 인수하며 최대 주주가 되었다. 그리고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예산이 지원되며 선수단의 빈 자리가 하나씩 메워졌다.
젊은 투수진에 풍부한 경험을 더해준 너클볼러 마이크 워렌, 3선발로 써도 무방한 수준급 4선발 하야시 렌타로, 양키스 출신의 베테랑 마무리 애덤 머피, 거기에 야수진의 구멍을 잘 메워준 내야수 리암 랜드먼과 외야수 카일 섀너한, 라파엘 오수나 등등.
대어급은 없었지만 즉전감들을 대거 영입한 시애틀은 결국 지구 1위로 올라섰고, 결국 2030년 메이저리그 최고 승률을 거둔 팀이 되었다.
매리너스 역사상 최강의 팀을 이끌게 된 벤자민은 생각했다.
이 모든 건 결국 자신이 한국으로 건너가 만난 괴물, 아니, 이제는 괴물이라는 표현조차 한참 부족한, 누군가의 말처럼 미스터 베이스볼이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야구 그 자체, 한수혁 덕분이라고.
그렇기에 오늘,
그 한수혁을 선발로 내세운 매리너스가 다른 팀에게 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저벅저벅
감독실을 벗어나 라커룸으로 들어간 벤자민이 선수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자! 준비됐나? 선봉에 설 선수들의 라인업이다! 오늘 우리는 선수단의 힘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가게 될 거다! 가자! 매리너스!”
“오오오! 물론이죠! 보스!”
선수들의 힘 있는 대답에 벤자민 감독의 얼굴에 짙은 웃음이 떠올랐다.
* * *
“좋아! 가자! 매리너스!”
“너희들은 우리의 영웅이야! 제길,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절대 지면 안 돼!”
“월드시리즈를 보려고 직장까지 그만뒀다고! 날 책임져! 매리너스!”
미 육군 군악대의 국가 연주, 그리고 53년 동안 매일 T모바일파크를 찾았다는 어느 백발 팬의 시구가 끝나고 드디어 월드시리즈 1차전이 시작되었다.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시애틀 팬들의 함성 속에 마운드 위 한수혁이 연습 투구를 시작했다.
파앙
파앙
파아앙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포심과 체인지업 위주로 몇 개의 공을 뿌린 한수혁이 준비가 다 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도래했다.
[1번 타자 센터필더 그랜트 딕슨]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보기만 해도 탄력이 넘쳐 보이는 카디널스의 리드오프 그랜트 딕슨이 타석에 들어섰다.
올 시즌 홈런 30개, 도루 60개를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를 넘어 메이저리그 최고의 중견수라 불리게 된 선수.
본명보다는 흑표범이라는 애칭이 더 익숙한 그는 장타력과 기동력, 거기에 선구안을 두루 갖춘, 쉽게 설명하면 데릭 플레밍의 최종 진화 버전이라 봐도 무방할 선수였다.
그런 그랜트 딕슨을 상대로 한수혁의 초구가 날아왔다.
파앙
“스트라이크!”
한복판에 들어온 95마일의 평범하기 짝이 없는 포심.
생각지도 못한 그 공에 그랜트 딕슨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뭘까, 이 느린 공은.
혹시 부상이라도 당한 걸까, 아니면 손에서 미끄러진 건가?
그의 시선이 마운드 위 한수혁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수혁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표정으로 다음 투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그랜트 딕슨이 방금 한수혁이 던진 공의 구속에 맞춰 타격을 준비했다.
만에 하나 그에게 부상이 있다면, 혹은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그런 공을 던진 거라면 담장 밖으로 넘겨버리겠다 마음먹으며.
하지만,
파아앙
“스트라이크!”
다음 공이 들어온 순간 그랜트 딕슨은 깨달았다.
모든 게 다 한수혁의 계략이었다는 걸.
전광판에 방금 전 한수혁이 던진 공의 구속이 새겨졌다.
109마일 3,020RPM을 기록한,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라 불리는 광속구였다.
“Fuck……!”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은 그랜트 딕슨이 무너지려는 멘탈을 간신히 부여잡고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예전 인터리그에서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끔찍해졌다.
공의 빠르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종일관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누가 뭐래도 카디널스는 2030시즌 내셔널 리그를 지배한 최고의 팀이니까.
쳐낸다. 반드시, 반드시 쳐내리라.
슈웅
부웅
“스윙! 아웃!”
물론 그건 그냥 그랜트 딕슨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존 한가운데로 들어오다 공중에서 멈춘 듯 훅 떨어지는 80마일 체인지업에 그의 배트가 허공을 갈랐고, 경기장 내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카디널스 팬들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올 시즌 내셔널 리그를 폭격했던 최고의 리드오프 그랜트 딕슨이 씁쓸한 표정으로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2번 타자 레프트필더 트래비스 리드]30-60을 기록한 리드오프에 이어 등장한 3할 40홈런 타자 트래비스 리드.
단순 지표만 봐도 상대하는 투수들을 절망으로 빠트리기에 충분한 카디널스의 테이블 세터진이었건만 오늘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은 그들의 강함을 조금도 체감할 수 없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부웅
“스윙!”
몸 쪽으로 들어오다 역회전하며 도망가는 하드싱커, 그리고 오랜만에 선보인 95마일 파워 커브.
공 두 개로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만들어낸 한수혁이 아주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승부를 이어갔다.
상대 타자들을 질리게 만드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한수혁만이 가능한 엄청난 속도의 투구 템포.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하아…….”
무릎에 맞을 듯 낮게 날아오던 빠른 공이 갑자기 반대쪽에서 잡아당긴 것처럼 휘며 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102마일 고속 슬라이더에 배트 한 번 내밀지 못하고 삼진을 당한 그랜트 딕슨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순식간에 투 아웃.
“으아아아아! 그래, 바로 이거지!”
“젠장, 이걸 보려고 내가 대출까지 받은 거라고! 한수혁! 네가 최고야!”
“카디널스를 박살 내! 트로피를 우리에게 가져다 달라고!”
[3번 타자 라이트 필더 A.J.존스]시애틀 팬들의 일방적인 함성이 경기장을 뒤덮은 가운데 키가 2미터에 달하는 거한이 타석에 들어섰다.
카디널스에서 타이 존슨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온 유망주 A.J.존스.
올 시즌 타이 존슨의 갑작스러운 이적으로 계획보다 조금 일찍 빅리그 무대를 밟게 된, 루키 시즌 40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내셔널 리그 신인왕이 유력한 괴물.
근 10년 내 세인트루이스 팜 최고의 아웃풋이라 불리는 그가 신중한 자세로 타격 자세를 취했다.
그의 눈빛에는 어떻게든 한수혁을 넘어서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자리 잡아 있었다.
아무리 상대가 한수혁이라 해도 그 역시 괴물 소리를 듣고 자라온 선수였으니 그건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파앙
“스트라이크!”
지금 마운드에 있는 건 그런 괴물들조차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아니, 괴물 전문 사냥꾼이라 불러도 좋을 한수혁이었다.
경기 전 어떤 기자가 한수혁에게 질문했다.
1번부터 4번까지 이어지는 카디널스의 대포군단이 두렵지 않냐고.
한수혁의 대답은 간단했다.
대포건 소총이건 맞지만 않으면 어차피 별 차이도 없다고.
아마도 한수혁에게 그 질문을 한 기자는 지금 이 투구를 통해 그 해답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파앙
“스트라이크!”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숨 돌릴 틈도 없이 날아든 109마일 포심, 85마일 체인지업, 다시 104마일 하드싱커.
공 아홉 개로 카디널스의 1, 2, 3번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낸 한수혁이 마운드 위에서 포효했다.
“흐아압!”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이들에게 한수혁의 진심이 전해졌다.
모두가 깨달았다.
언제나 약간의 여유를 두고 경기에 임하던 그가, 전력을 다해 상대에게 부딪히고 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