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6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64화(365/412)
#364. 월드시리즈(3)
“부담되지 않냐고요? 당연히 부담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감정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어깨를 내리누리는 부담감이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어서 빨리 마운드에 올라가서 제 모든 걸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랄까요? 글쎄요, 그건 아마도 제가 이 팀의 선수이기에 앞서 오래된 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군요.”
월드시리즈 2차전을 앞두고 진행된 미디어데이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바로 오랜 시간 시애틀을 홀로 지탱해온 원조 에이스 라이언 티보우였다.
포스트시즌 들어 한수혁에게 1선발 자리를 양보하긴 했지만, 올 시즌 단 한 번도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으며 233이닝, 19승 5패, 평균자책점 2.07, WHIP 1.09, WAR 7.8을 기록한 라이언 티보우.
비록 20승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자신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그가 카디널스의 또 다른 20승 투수 조던 이스트와 맞대결에 나서게 되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난 시즌, 그리고 지지난 시즌, 연속 4위에 머물던 그 시절 말이죠. 그때는 몰랐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우리에게 부족한 게 뭔지 말이죠. 그래서 많이 고민했습니다.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매일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 팀에 진짜 부족했던 게 뭔지. 그건 리더였습니다.”
“라이언 티보우 선수, 당신이야말로 시애틀을 대표하는 리더 아닐까요? 방금 그 발언은 너무 지나친 겸양 같은데요? 이 팀에서 데뷔해 9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킨 당신이라면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기자님의 말에 개인적으로는 감사드립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올 시즌 저희 팀에 합류한 타이 존슨이 젊은 타자들을 어떻게 이끄는지, 그리고 마이크 워렌이나 애덤 머피 같은 투수들이 경험 부족한 우리 투수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네, 결국 부족한 건 저였습니다.”
“음, 그런데 뭔가 중요한 이야기 하나를 빼놓은 것 같은데요?”
“아, 한수혁 말이군요. 일부러 빼놨습니다. 그는 이렇게 제가 뭉퉁그려 언급할 대상이 아닌 것 같아서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만약 올 시즌 지구 2위, 혹은 3위를 한 팀에 한수혁 그 친구를 더하면? 제 생각에 그 팀은 곧바로 우승후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맞아요. 그는 정말 완벽한 선수입니다. 저를 비롯한 시애틀 선수들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언제까지 그와 뛸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저는 야구선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 * *
2030시즌 233이닝 동안 19승 5패, 평균자책점 2.07, WHIP 1.09, WAR 7.8을 기록한 라이언 티보우, 그리고 201이닝을 던져 평균자책점 3.01, 20승 9패를 기록한 카디널스의 2선발 조던 이스트.
에이스가 아님에도 에이스 이상의 포스를 뽐내는 두 투수 간의 맞대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라이언, 축하해요. 당신의 꿈이 이루어져서 저도 기뻐요.”
“미아, 고마워. 라일리, 너도 이리 와. 아빠한테 뽀뽀해 줘야지.”
“아빠! 꼭 이기세요! 제가 수혁 아저씨한테 메시지 보냈어요. 아빠를 도와달라고.”
“하하, 그래. 라일리. 고맙다.”
“어서 출발하세요. 저는 조금 있다가 라일리 데리고 구장으로 갈게요.”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라이언 티보우가 자신의 자율주행차에 몸을 실었다.
천천히 집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그의 차를 향해 이웃들이 힘차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라이언이 홈경기에 선발로 등판하는 날이면 언제나 반복되어 온 그런 풍경이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이 설렜다.
어린 시절부터 이 팀을 응원하며, 그리고 시애틀의 지명을 받아 투수로서 성장하며,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이던가.
저 멀리 차창 밖으로 보이는 T모바일파크의 전경이 라이언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끼익
라이언의 차가 경기장에 도착하자 게이트에서 대기하던 안전요원들이 달려와 그를 선수단 입장 통로로 안내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경기장 주변에 모여든 팬들은 라이언에게 달려들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배려하기 위해 큰 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묵묵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팔짱을 낀 채 아무 말 없이 라이언을 바라보는 시민들, 작은 소리로 박수를 치며 그를 격려하는 사람들, 그리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자신의 우상을 바라보는 어린 팬들까지.
경기장 입구로 들어서려던 라이언이 갑자기 뒤로 돌아 그들을 향해 외쳤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 * *
‘1번? 아니면 원래대로 2번. 아니야, 차라리…….’
정규시즌에도 그랬지만 포스트시즌 들어 벤자민 감독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한수혁의 자리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기에 2번 타자로 출전했던 한수혁은 리드오프 데릭 플레밍의 컨디션이 떨어지거나 상대 투수들의 견제가 집중될 때면 1번으로 자리를 옮겨 배치되기도 했다.
정규시즌에서야 공격력 극대화 외에도 한수혁의 체력 관리라는 또 하나의 조건이 붙어 있었지만 길어야 일곱 경기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월드시리즈에서는 굳이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지금 벤자민 감독이 고민하는 건 어제 1번 타자로 출전한 한수혁을 상대로 세인트루이스 벤치가 정면승부를 선택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정확한 속내까지는 알 길이 없지만, 세인트루이스의 감독은 한수혁을 피하는 대신 승부를 하기로 결정한 듯하다.
그렇다면 굳이 그를 1번으로 기용할 필요는 없다. 어제 경기에서도 한수혁이 1번으로 배치되며 득점찬스에서 약간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렇다면 팀 내 최고 타자에게 타점 기회가 집중되도록 조금 뒤로 배치하는 게 득점생산력 면에서 훨씬 나은 선택일 것이다.
리드오프 데릭 플레밍이 포스트시즌 들어 4할이 넘는 출루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오늘 경기 지명타자로 나설 안토니오 가르시아의 타격감이 절정에 달해 있다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며칠 뒤에는 상황이 또 달라질지 몰라도 한수혁 대신 1, 2번에 세울 타자가 두 명이나 존재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고민하던 벤자민 감독이 드디어 펜을 집어 들고 라인업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1번 중견수 데릭 플레밍
2번 지명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3번 3루수 한수혁
4번 1루수 타이 존슨
5번 우익수 척 클락
6번 좌익수 짐 브라운
7번 포수 브루스 매튜스
8번 2루수 리암 랜드먼
9번 유격수 조쉬 올리버
투수 라이언 티보우
벤자민 감독의 구상은 이랬다.
최근 경기에서 절정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데릭 플레밍과 안토니오 가르시아가 어떻게든 루상에 나가고, 한수혁과 타이 존슨이 그들을 홈으로 불러들인다.
어찌 보면 약간은 클래식한 접근법일 수도 있지만, 현재 선수 구성, 그리고 상대팀 감독의 성향 등을 감안하면 이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야구에 백 프로 확실한 작전 같은 건 없다.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그 결과의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빅리그 팀을 지휘하는 감독의 역할이었다.
저벅저벅
“자, 제군들. 오늘 선발 라인업이다. 평소와 조금 다른 점이 있긴 하지만 내 뜻이 무엇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하리라 믿는다. 어제 경기에서 다들 느꼈겠지만 카디널스는 올 시즌 우리가 맞이한 최강의 적이다. 모든 면에서 그들과 우리의 전력은 백중세, 첫 경기를 잡아내긴 했지만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된다. 매일 매일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경기에 임한다. 내 말 이해했나?”
“물론입니다, 보스!”
“좋아. 그럼 잠시 후 그라운드에서 만나는 걸로 하지.”
* * *
– 아, 오늘은 한수혁 선수가 3번에 배치되었군요. 메이저리그로 이적한 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의도라고 보시는지요, 고동식 위원님?
– 네, 음. 제 생각에는 어제 시애틀이 승리를 하긴 했지만 득점을 올리는 상황이 그렇게 매끄럽지만은 않았거든요? 1회 타이 존슨 선수의 희생플라이를 제외하면 말이죠. 1번으로 나서는 데릭 플레밍 선수의 포스트시즌 출루율이 0.425에 달하는 데다가 어제 경기 선발에서 제외되었다가 대타로 나와 안타를 때려낸 안토니오 가르시아 선수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5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했다는 점이 벤자민 감독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 말하자면 한수혁 선수에게 해결사 역할을 맡겼다. 뭐 그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 맞습니다. 이게 사실 감독 입장에서는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한수혁이라는 조커 카드를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라인업의 성격이 확확 변하거든요.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오늘 1, 2번으로 나선 두 명의 선수들이 틀어 막히기라도 한다면 3번 한수혁 작전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갈 테니까요.
– 괜히 야구 감독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 중 하나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군요. 경기 전부터 시작된 양 팀 감독들의 치열한 머리싸움 속에 이제 곧 경기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여기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간의 월드시리즈 2차전 경기가 준비 중인 T모바일파크입니다.
* * *
“이번 시즌, 한수혁 저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 무리한 작전을 시도했던 팀들 대부분이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그렇기에 나는 너희들에게 특별한 지시를 내리지 않겠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실력을 그라운드 위에서 펼치는 것이다. 어제의 패배는 잊어라. 그래 봐야 일곱 경기 중 고작 한 경기를 내줬을 뿐이다. 내가, 아니, 우리가 만들어온 이 팀을 믿고 전력으로 부딪히는 거다. 알겠나?”
“네! 보스!”
“좋아, 출전이다.”
감독의 격려를 받으며 타석에 들어선 카디널스의 리드오프 그랜트 딕슨이 차분한 표정으로 상대 투수를 노려보았다.
월드시리즈 사상 두 번째 퍼펙트게임을 허용하긴 했지만 세인트루이스 선수단 내부의 분위기는 예상 외로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한수혁의 등판 경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
0점대의 평균자책점이 말해주듯 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그야말로 완벽한 경기 지배력을 갖춘 규격 외의 존재였으니까.
퍼펙트게임이든 뭐든 결국 1패는 그냥 1패일 뿐이다.
당황할 것 없다.
오랜 시간 최강 자리를 지켜온, 메이저리그 절대 강자의 DNA가 그들의 멘탈을 단단하게 잡아주었다.
“플레이!”
어제에 이어 오늘도 구관조 군단의 선봉장을 맡게 된 그랜트 딕슨은 편하게, 최대한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경기를 이길 필요는 없다. 한수혁이 아무리 괴물이라 해도 월드시리즈 전 경기에 선발로 등판할 수는 없다.
실력만큼이나 정신력 면에서도 메이저리그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바로 카디널스 선수단이었다.
오랜 시간 자신의 꿈이었던 월드시리즈 선발 마운드에 오른 라이언 티보우가 자신이 던질 수 있는 가장 강하고 파괴적인 공을 초구로 선택했다.
그리고,
슈웅
어제 경기의 패배를 떨쳐버리고 다시 한 번 재도약을 다짐하는 그랜트 딕슨의 스윙과 한 점에서 만났다.
따아아아악!
일직선으로 날아가 우측 외야 관중석 중단부를 강타하는 초구 홈런.
그것은 오늘 경기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