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6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65화(366/412)
#365. 월드시리즈(4)
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하는 시애틀 매리너스, 그리고 디펜딩 챔피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간의 월드시리즈 2차전 경기.
2선발이라는 호칭조차 어딘가 부족한, 리그 최고 수준의 선발투수들이 등판하며 투수전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시작부터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1회 초 그랜트 딕슨이 라이언 티보우의 101마일 초구를 강타해 선두타자 홈런을 만들어냈다. 어제 경기에서 당한 퍼펙트게임의 수모를 씻기에 충분한 시원한 타구였다.
물론 시애틀 역시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다시 리드오프로 복귀한 데릭 플레밍이 볼넷으로 출루하고, 2번 안토니오 가르시아의 내야 깊숙한 땅볼에 힘입어 2루까지 진루했다.
그리고 3번 타자로 나선 한수혁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깨끗한 좌전 적시타를 뽑아내며 순식간에 동점.
올 시즌 각각 20승과 19승을 거둔 최고 수준의 선발투수들이 나란히 첫 회 실점을 내주고 만 것이다.
양 팀 선발투수들의 수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세가 오른 세인트루이스 타선이 3회 초 그랜트 딕슨의 볼넷에 이른 트래비스 리드의 2루타로 또다시 한 점을 앞서 나갔다.
필승의 각오로 마운드를 지키던 라이언 티보우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사실 그에게 별다른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오늘 타자들의 집중력이 극한에 달해 있을 뿐이었다.
따아아악!
당초 투수전으로 예상되었던 경기가 타격전의 양상으로 흐르자 양 팀 불펜이 분주해졌다.
3회말, 데릭 플레밍의 안타와 안토니오 가르시아의 볼넷으로 만들어진 2사 1, 2루 찬스에서 한수혁의 배트가 또 한 번 불을 뿜었다.
두 명의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 2타점 2루타.
다시 한 번 시애틀이 한 점을 앞서 나가며 3 대 2.
이제부터는 배짱 싸움이었다.
양 팀 덕아웃 중 누가 먼저 움직일 것인가.
비록 에이스는 아니지만, 정규시즌 여느 팀의 에이스 못지않은 활약을 보여준 선발 투수를 어느 시점까지 끌고 갈 것인가.
따아아악!
또 한 번의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벤자민 감독의 배짱과 인내심이 시험대에 올랐다.
예상치 못한 카디널스 9번 타자의 동점 홈런.
5회까지 85개의 공을 던진 라이언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떠올랐고, 감독을 대신한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랐다.
“라이언, 뭐가 어떻게 되든 이번 이닝은 너의 몫이다. 이게 감독님과 우리 코치들의 의견이야. 어때, 믿어도 되겠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제 모든 걸 걸더라도 말이죠.”
시애틀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라이언은 코치,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5회를 추가 실점 없이 막아낸 후 마운드를 내려오는 그를 향해 시애틀 팬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그들 역시 느끼고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라이언이 최선을 다했음을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5회 말 공격, 어떻게든 라이언을 승리투수로 만들어주려는 시애틀 선수단의 강한 의지가 또 한 번의 추가점을 만들어냈다.
따아아악!
– 쳤습니다! 큽니다! 큽니다! 넘어가느냐! 아! 펜스 최상단을 맞고 떨어지는 타구, 그 사이 2루 주자, 그리고 1루 주자까지 모두 홈으로! 타이 존슨의 2루타로 다시 두 점을 달아나는 시애틀 매리너스, 스코어 5 대 3! 이번 시즌 20승을 기록한 조던 이스트가 5회까지 다섯 점을 내주며 무너지고 맙니다!
– 아직 조금 성급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투수 교체 싸움에서는 시애틀이 한 발 앞서 나가는 분위기입니다. 5회 초, 라이언을 그대로 밀고 간 시애틀의 선택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반면, 불펜마저 철수시킨 채 조던 이스트에게 뒷일을 맡겼던 카디널스의 선택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으니 말이죠.
– 역시 어렵네요. 한편으로는 이런 게 야구의 재미이지 싶기도 하고요.
– 맞습니다. 누가 뭐래도 올 시즌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두 팀 아니겠습니까? 그런 두 팀을 성공적으로 이끈 감독들이 덕아웃을 지키고 있고요. 일단 시애틀이 한 발 앞서 나가고는 있지만 아직 정규이닝이 4이닝이나 남았습니다. 최종 결과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
* * *
“젠장, 저놈들 정말 강하군.”
“맞아, 어제는 한수혁이 너무 완벽하게 막아내서 그 사실을 잊었을 뿐이지.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구관조 놈들은 최강의 적이라는 것 말이야.”
“라이언! 괜찮아! 잘했어! 이제 동료들을 믿고 맡기라고!”
5이닝 5K 3실점.
당초 시애틀 팬들이 기대했던 완벽한 투구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관중들은 라이언을 향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 팀을 오랫동안 응원해온 팬들에게 라이언은 자식이자 동생이자, 친구와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라이언이 얼마나 오늘 경기를 열심히 준비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진심을 다해 경기에 이기고 싶어 했는지 말이다.
[피처 라이언 티보우 물러나고, 디몬 앤더슨 주니어]그렇게 5이닝을 책임진 라이언이 물러난 후 시애틀 마운드에 오른 건 다름 아닌 디몬 앤더슨 주니어였다.
라이언만큼이나 이 팀에 진심인, 포스트시즌 들어 중간계투로 보직을 옮긴 후 혼신을 다해 자신의 임무를 수행 중인 젊은 투수.
그가 6회와 7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냈을 때 시애틀 팬들의 머릿속에 2연승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2이닝 만에 50개 가까운 공을 던지긴 했지만 본래 선발투수였던 그의 스태미너는 아직 충분히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이 벤자민 감독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었다.
8회와 9회, 두 번 남은 수비 이닝.
믿을 만한 셋업맨이 없는 상황에서 디몬이 한 이닝만 더 막아줄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곧바로 마무리 애덤 머피를 등판시킬 수 있으리라.
“좋아, 일단 디몬으로 가지.”
“네, 보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선택은 벤자민의 실착이었다.
따아아아악!
1차전에 이어 2차전까지 내주면 모든 게 끝난다는 각오로 덤비는 카디널스 타자들.
8번 타자이기는 하지만 다른 팀에 가면 중심 타선에 서도 부족할 것 없는 제일런 톰슨의 배트가 날카롭게 돌았고, 그 타구가 좌측 펜스를 살짝 넘겨 홈런이 되는 순간 갑자기 T모바일파크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당황한 시애틀 벤치가 다시 한 번 불펜을 점검하는 사이, 디몬이 9번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하고 말았다.
“타임! 타임! 투수 교체!”
댈빈 슈워츠와 제이크 하워드 사이에서 고민하던 벤자민 감독이 결국 댈빈 슈워츠를 선택했다.
싱커를 주무기로 하는 좌완투수가 무사 1루 위기를 막기 위해 마운드에 올렸다.
그리고 바뀐 투수의 초구를 공략하라는 야구계의 격언을 떠올린 카디널스의 선봉장 그랜트 딕슨의 배트가 힘차게 돌았다.
따아아아악!
또 한 번 경기를 뒤집는 그랜트 딕슨의 투런 홈런.
댈빈을 응원하던 시애틀 팬들이 머리를 감싸쥔 채 자리에 주저앉았고, 긴장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세인트루이스 팬들이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6 : 5 시애틀 매리너스
전광판에 새겨진 두 개의 숫자가 많은 사람들의 희비를 교차시켰다.
* * *
콰앙!
대타로 나선 카일 섀너한이 삼진으로 물러나고, 분노한 그가 덕아웃에 헬멧을 집어던지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를 탓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6 대 5 한 점 차로 뒤진 9회 말 시애틀의 마지막 공격.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어떻게든 루상에 출루해 팀의 중심타선에게 마지막을 맡기는 것이었다.
뒷문을 봉쇄하기 위해 등판한 내셔널 리그, 아니,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 트레버 닉슨을 상대로 말이다.
9번 조쉬 올리버를 대신해 카일 섀너한이 대타로 나섰지만,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원 아웃 주자 없는 상황, 데릭 플래밍이 타석에 들어섰다.
“이봐, 오늘 경기는 그냥 포기해.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리고 세인트루이스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고.”
카디널스의 포수가 슬쩍 말을 걸어왔지만 데릭은 입을 꾹 닫은 채 타격에만 집중했다.
어떻게든 살아나가야 한다. 아무리 트레버 닉슨이 무적의 마무리 투수라 해도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니다.
자신과 토니 중 누구 하나라도 살아갈 수 있으면 그들에게 흐름을 이어줄 수 있다.
이름 석 자만으로 상대를 질리게 만드는 한수혁, 그리고 오랜 시간 최고의 자리에 군림해온 타이 존슨에게로 말이다.
“플레이!”
다른 모든 것에 신경을 끊은 채 오직 출루에만 모든 것을 집중한 데릭 플레밍 대 내셔널 리그를 지배한 최고의 마무리 투수 트레버 닉슨의 맞대결.
무려 10구까지 가는 처절한 승부의 승자는 데릭 플레밍이었다.
“베이스 온 볼스, 타자 1루로.”
“좋아! 됐어!”
“데릭! 이 대단한 자식!”
“할 수 있다! 아직 끝난 거 아니야!”
시애틀 팬들로 가득 찬 관중석, 그리고 덕아웃이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반대로 승리의 목전에서 마지막 위기를 만나게 된 카디널스 덕아웃이 침묵에 잠겨들었다.
파앙
“세이프!”
올 시즌 37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뛸 수 있다는 걸 증명한 데릭 플레밍이 스타트와 복귀를 반복하며 투수를 괴롭혔다.
계속되는 도발에 신경이 한층 예민해진 투수가 두 개 연속 견제구를 던졌지만 데릭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리드 폭을 넓게 벌렸다.
견제구 제한에 걸려 더 이상의 시간 끌기는 불가능한 상황.
이를 앙 다문 카디널스의 마무리 투수가 안토니오 가르시아를 향해 초구를 던졌다.
파앙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에 정확하게 제구 된 102마일 포심.
하지만 자신이 정한 코스가 아니면 절대 방망이를 내지 않는 토니가 그 공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인 투수가 다시 다음 공을 던졌다.
파앙
“볼.”
집요하리만치 같은 코스를 공략하는 투수, 그리고 그 유혹을 참아낸 채 자신이 원하는 공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타자 간의 인내심 싸움.
파앙
“볼.”
파앙
“스트라이크!”
그 긴장감 넘치는 공방 속에 투 볼 투 스트라이크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제 결정의 시간이 도래했다.
한수혁의 앞에 두 명의 주자를 내보내는 건 사실상 경기를 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투수도 알고, 타자도 안다.
이 다음 공이 승부구가 될 거라는 걸.
가볍게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마음의 준비를 마친 시애틀의 2번 타자 안토니오 가르시아가 존을 살짝 확대한 채 투수를 노려보았다.
때린다. 어떻게든 때려서 한수혁에게 바톤을 넘겨주리라.
짧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길게 느껴지던 준비 시간이 끝나고 투수의 손끝에서 하얀 공이 날아올랐다.
몸 쪽으로 바싹 붙는, 아마도 그대로 두면 스트라이크가 선언될 것이 확실한 공이었다.
“흡!”
숨을 한껏 들이킨 안토니오 가르시아가 팔꿈치로 자신의 갈비뼈를 있는 힘껏 누른 채 몸통을 회전시켰다.
몸 쪽 공을 때려내기 위한 최적의 스윙.
따악!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총알 같은 타구가 1-2루 간으로 향했다.
앉아 있던 관중들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그들 중 일부의 입에서는 비명과도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터억
“아웃!”
파앙
“아웃!”
그곳에는 내셔널 리그 최고의 2루수라 불리는 코리 넬슨이 있었다.
내야를 빠져나가는 총알 같은 타구를 묘기와도 같은 동작으로 잡아챈 그가 유격수를 향해 공을 토스했고, 베이스를 밟아 선행주자를 아웃시킨 유격수가 1루로 송구해 타자 주자까지 잡아내는 순간,
“아악!”
“젠장! 저게! 저게 잡히다니!”
“안 돼! 이건 무효야!”
T모바일파크의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절규가 울려 퍼졌고, 시애틀 선수들의 고개가 땅으로 축 떨궈졌다.
어린 시절의 바람처럼 라이언은 결국 이 꿈의 무대를 밟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꿈꾸던 찬란한 승리의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
T모바일파크에서의 일정을 끝낸 두 팀은 이제 세인트루이스에서의 3, 4, 5차전을 준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