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7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69화(370/412)
#369. 월드시리즈(8)
꾸욱
보내기 번트로 만든 2사 주자 2루 찬스에서 다음 타자 조쉬 올리버가 볼넷으로 출루하는 순간,
벤자민 감독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한수혁을 1번에 배치한 보람이 드디어 찾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추가점이 나온 건 아니다.
아무리 한수혁이라 해도 전 타석에서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벤자민 감독은 이 상황에서 한수혁이 범타, 혹은 삼진으로 물러나는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득점 여부를 떠나 1번 한수혁 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두 점 뒤진 상황에서 주자 두 명을 루상에 두고 만난 한수혁.
자신이 만약 투수였다면 그대로 마운드 위에서 실신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엄청난 압박감이 투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수혁을 피하자니 만루 상황에서 타이 존슨과 상대해야 한다.
이런 압박감은 결국 투수의 정신력과 체력을 엄청나게 갉아먹을 것이다.
양 팀의 1, 2선발이 모두 소모된 상태에서 벌이는 최종전, 선발투수가 얼마나 버텨주느냐가 경기 초반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저기 마운드 위를 보라.
타석에 들어선 채 담담한 표정으로 투수를 노려보는 한수혁, 그리고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4만5천 명의 관중들.
그 거대한 에너지에 짓눌린 투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지 않은가.
조금은 과감하고 무모했던 자신의 선택이 맞아떨어졌음을 느끼며, 벤자민 감독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남은 건 이 벤치에 앉아 한수혁이 만들어낼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따아아아아악!
한수혁이 그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했다.
존 밖으로 도망가는 슬라이더를 그대로 걷어 올린 한수혁.
그가 만들어낸 예술적인 타구가 우측 담장을 살짝 넘어가는 순간,
“오, 빌어먹을, 신이시여! 이게 정말 꿈이 아니고 현실이란 말입니까!”
“한수혁! 우리들의 영웅! 야구의 신! 미스터 베이스볼!”
벤자민 감독은 비로소 참아왔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야구의 신은 그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았다.
* * *
– 이제 경기가 중반부로 접어듭니다. 정말 기대한 것만큼이나 멋진 경기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고동식 위원님?
– 네, 이게 정말, 뭐랄까 5 대 3이라는 스코어 자체만 놓고 보면 대단할 게 없는데, 양 팀 선수들이 보여주는 집중력이 정말 엄청납니다. 세계 최고의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필살의 각오로 경기에 임하면 어떻게 되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경기라고 할까요? 월드시리즈 최종전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명승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 동감합니다. 그럼 지금까지 경기 상황을 좀 정리해보죠. 1회 말 시애틀이 안토니오 가르시아 선수의 3루타, 그리고 데릭 플레밍의 스퀴즈 번트로 두 점을 선취했죠? 물론 여기에는 한수혁 선수의 2루타가 선행되었고요.
– 그렇죠. 벤자민 감독의 1번 한수혁 카드가 아주 제대로 먹혀들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그리고 이어진 2회 말 공격에서 시애틀이 또 추가점을 냈습니다. 이번에는 하위 타선이 출루했고, 한수혁 선수가 그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 석 점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아, 다시 한 번 돌려봐도 정말 등골이 오싹해지는 대단한 홈런이었습니다.
– 홈런도 홈런이지만 1사 1루 상황에서 보내기 번트를 지시한 벤자민 감독의 배짱이나, 거기서 침착하게 볼넷을 골라 상위 타선에게 기회를 연결시킨 조쉬 올리버 선수도 칭찬받아야 마땅하겠죠.
– 맞습니다. 반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3회 초 그랜트 딕슨의 투런 홈런, 그리고 5회 초 마르퀴스 데일리 선수의 솔로 홈런, 이렇게 홈런 두 방으로 석 점을 따라붙었습니다. 그렇게 5 대 3, 시애틀이 두 점을 앞서 나가는 가운데 6회 초 카디널스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시애틀의 마운드는 여전히 마이크 워렌이 지키고 있습니다.
– 자, 이제부터는 양 팀 덕아웃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투수 교체 타이밍에 승부가 갈리게 될 겁니다. 오늘은 특히나 그렇습니다. 양 팀 모두 로스터에 등록된 모든 투수들이 등판 준비를 시작했거든요. 총력전입니다. 어떤 투수가, 어떤 타이밍에 나올지, 그게 오늘 경기의 승패를 결정 짓게 될 것입니다.
– 그렇군요. 아, 고동식 위원님, 저기 한수혁 선수를 보세요. 공수교대를 틈타 어린이 팬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네요. 참 보기 좋죠?
– 네, 이곳 현지에서도 한수혁 선수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저 팬서비스 때문인데요. 생각해 보세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저렇게 팬들에게 감사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거든요. 솔직히 저 같으면 관중석으로는 눈길 한 번 못 줄 것 같습니다. 저 살기 바빠서 말이죠.
– 그게 보통의 인간이겠죠. 그런 면에서 볼 때 한수혁 선수의 멘탈이 역시 대단한 거구요. 그런 대단한 선수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야구의 역사, 잠시 광고 보고 다시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 T모바일파크입니다
* * *
“마이크, 불펜 준비는 끝났어. 뒤는 걱정하지 말고 전력을 다해 던져보라고.”
“물론이죠, 보스. 하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
좌타자부터 시작하는 카디널스의 6회 초 공격.
그에 대응하기 위해 좌투수 하야시 렌타로와의 교체를 고민하던 감독이 마이크에게 조금 더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야구를 하다 보면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누적된 데이터와 정밀하게 계산된 지표보다는 왠지 감에 의존해지고 싶어지는 그런 순간.
벤자민 레이놀즈 감독에게는 지금이 그런 순간이었고, 그는 이제 막 너클볼러로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나이 든 투수를 조금 더 믿어보기로 했다.
“플레이!”
앞선 타석에서 좋은 타구를 만들어낸 트래비스 리드가 두 눈을 번득이며 투수를 노려보았다.
너클볼러를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침착성을 잃지 않는 것이다.
눈앞에서 제멋대로 너풀거리는 공을 때려내 파울라인 안쪽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냉철한 판단력과 정밀한 배트 컨트롤이 필요하다.
“흐읍!”
다부진 기합 소리와 함께 트래비스 리드의 스윙이 시작되었다.
따악!
하지만 정타가 되지는 못했다.
존안으로 들어오다 역회전하며 떨어지는 너클볼에 배트가 걸렸고, 그리 멀리 뻗지 못한 공이 좌익수의 글러브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웃!”
원 아웃.
마이크 워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경기 전 한수혁이 해준 말, 자신 역시 알고는 있지만 항상 실천으로 옮기기는 어려웠던 그 말,
존 한가운데로 던지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라는 그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라서다.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찾던 신은 다름 아닌 한수혁이 아닐까.
오늘 전 타석 출루에 홈런까지 더하며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고 있는 저 사나이야말로 진정한 신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상상마저 들었다.
[3번 타자 퍼스트베이스맨 A.J.존스]만약 한수혁이 없었다면 1번부터 4번까지 줄줄이 등장하는 이 거포군단의 무게감에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야구의 신이라 불려도 하나도 아까울 게 없는 동료를 생각하면 저기 타석 위 힘 하나만 믿고 자신이 최고인 것처럼 구는 애송이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카디널스 내에서 타이 존슨의 후계자로 공들여 키우고 있는, 심지어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체구까지 꼭 빼닮은 A.J.존스.
그의 몸 쪽 가장 깊은 코스로 마이크 워렌의 너클볼이 날아들었다.
따아아악!
너클볼의 변화가 평소보다 조금 덜했다. 밋밋한 상태로 존 안으로 들어가는 공을 A.J.존스가 제대로 받아쳤다.
맞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어마어마한 힘이 느껴지는, 올 시즌 내셔널 리그 신인왕 0순위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그런 타격음이었다.
한수혁만큼은 아니지만 여타 다른 선수들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거대한 궤적의 타구가 중견수 방향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모자를 벗어던진 데릭이 전력을 다해 펜스 쪽으로 질주했고, 타구의 낙하점과 그의 전력질주가 한 점에서 만났다.
터억
“아웃!”
“우오오오오오!”
“바로 그거지!”
“세계 최고의 중견수는 누구?”
“데릭! 그건 바로 데릭 플레밍!”
펜스 바로 앞에서 넘어지며 타구를 건져낸 데릭 플레밍의 플레이에 다시 한 번 T모바일파크가 크게 진동했다.
경기 중반부 가장 큰 고비가 될 카디널스 2, 3, 4번과의 승부.
마이크는 그렇게 동료들의 도움 속에 한 발 한 발 그 위기를 벗어나고 있었다.
* * *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최고다! 마이크! 넌 역사상 최고의 너클볼러로 기록될 거야!”
“마이크 워렌! LA에서 온 우승청부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강타선을 상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마이크 워렌.
7회 초, 그가 카디널스의 강타자 말콤 피터스와 마르키쉬 데일리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는 순간 경기 내내 가만히 때를 기다리던 매리너스의 벤치가 움직였다.
“타임!”
마운드에 오른 건 코치가 아닌 벤자민 감독이었다.
6과 3분의 2이닝 3실점.
완벽하다 할 수는 없지만 처음 그에게 기대했던 것 이상의 훌륭한 성과였다.
“마이크, 잘 던졌어. 자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네. 이제 뒤는 동료들에게 맡기도록 하지.”
“조금 아쉽지만… 알겠습니다. 제 가을야구는 여기서 끝이군요.”
“아니, 이제부터 시작인 거지. 들어가서 트로피를 들어 올릴 준비나 하라고, 챔피언.”
투아웃을 잡긴 했지만 다음 상대가 오늘 마이크 워렌을 상대로 안타 2개를 기록한 코리 넬슨이었다.
만약 그를 또 출루시킬 경우 카디널스에서는 곧바로 대타 카드를 뽑아 들 것이다. 언제든 타구를 담장 밖으로 날려버릴 수 있는 타자들이 덕아웃에 줄줄이 대기 중이니 말이다.
[투수 교체, 마이크 워렌 물러나고 하야시 렌타로]2점 차 리드를 지키기 위해 벤자민 감독이 선택한 카드는 일본인 투수 하야시 렌타로였다.
일본 시절 재팬시리즈와 국제무대 등에서 중요한 경기를 많이 경험한 좌완 투수.
구위만 놓고 보면 그보다 나은 투수가 분명 있었지만 벤자민 감독은 하야시의 그 경험을 믿어보기로 했다.
“좋아, 조금 긴장되긴 하지만 그건 당연한 거겠지. 어쨌든 난 준비됐어.”
“하야시, 낮게, 최대한 낮게 땅볼 타구를 유도해. 내가 어떻게든 잡아내줄 테니까.”
“물론이야. 젠장, 갑자기 속이 좀 울렁거리는군.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으니까.”
동료들의 격려를 받은 하야시 렌타로가 연습투구를 시작했다.
이런 큰 경기에서 7회 두 점 차 리드는 사실 큰 의미가 없었다.
큰 것 한 방이면 바로 동점, 혹은 역전이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된 하야시 렌타로가 자신이 상대할 타자를 바라보았다.
이번 시리즈 들어 공수 양면에서 매리너스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고 있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2루수 코리 넬슨.
배트를 짧게 잡은 채 타석에 바싹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맞아서라도 1루로 나가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침착하자, 침착해. 하야시, 재팬시리즈 때의 감각을 기억해. 별 거 아니야. 그냥 야구 경기일 뿐이야.’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하야시가 천천히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타자가 바싹 붙어선 탓에 던질 수 있는 존이 확 좁아졌지만 그럼에도 저곳으로 공을 던져야 한다.
코리 넬슨의 약점은 결국 저 몸 쪽 공에 있다.
욕심 부리지 말고, 구속보다는 제구에 더 신경을 써서,
파앙
“스트라이크!”
“그렇지! 바로 그거야!”
몸에 거의 닿을 듯 들어온 꽉 찬 포심.
허를 찔린 코리 넬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타석에 바싹 붙어 섰다.
결국은 배짱 싸움이다.
몸 쪽 공에 절대적인 약점을 가진, 그렇기에 최대한 그곳으로 공을 던지지 못하게 만들려는 타자, 그리고 한껏 작아진 몸 쪽 코스에 공을 우겨넣으려는 투수.
스륵
지금 이 순간 하야시 렌타로의 시선은 타자의 몸에 반쯤 가려진, 좁다 못해 희미하게까지 느껴지는 몸 쪽 스트라이크 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제구력 하나는 내가 최고다. 자신이 일본 무대를 재패하고 미국에 진출하게 된 것도 이 제구력 덕분 아닌가.
쫄지 말자, 겁먹지 말자, 그리고 물러나지 말자.
하야시는 다짐했다.
그리고 행동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야호!”
방금 전 공과 거의 같은 궤적을 그린,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잘 제구된 공.
그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순간 하야시가 자기도 모르게 환호했다.
그리고 두 번 연속 허를 찔린 코리 넬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반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몸 쪽 공을 놓고 벌어진 배짱 대결이 결국 투수의 승리로 끝났다.
정상적인 타격 위치로 돌아온 타자를 상대로 하야시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바깥 쪽 변화구들이 연달아 날아왔다.
그리고,
부웅
“스윙! 아웃!”
그의 주무기라 할 수 있는 포크볼에 코리 넬슨의 배트가 맥없이 허공을 갈랐다.
벤치에 앉아 있던 벤자민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고, 그라운드 위 내야수들이 우르르 달려가 하야시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창단 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해 매리너스가 또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