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71)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70화(371/412)
## 370.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야구선수
1903년 4월 16일 설립되어 올해로 127주년을 맞은 메이저리그.
그 길고 긴 역사 속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이름은 누구일까?
야구는 기록과 통계의 스포츠이다.
그렇기에 야구팬들, 그리고 전문가들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긴 선수들의 성적과 지표, 그들이 남긴 찬란한 업적을 수치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매년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 100명을 선정 발표하고 있다.
명단에 선정된 선수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약물의 시대가 도래하기 이전까지 타격 거의 전 부문 기록을 독차지했던 전설적인 스타 베이브 루스를 시작으로, 660홈런 3,283안타의 주인공 윌리 메이스, 통산 755홈런으로 약쟁이가 등장하기 전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냈던 행크 애런, 마지막 4할 타자라 불렸던 테드 윌리암스, 타이 콥, 루 게릭, 미키 맨틀 등.
메이저리그 127년의 역사는 이런 스타들의 업적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이저리그에 폭탄 하나가 떨어졌다.
아니, 그건 폭탄이라는 단어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기존 메이저리그의 역사와 체계를 완전히 박살 내버리는 천재지변과도 같았다.
3년 만에 KBO 리그를 박살 내고 세계 최고 무대에 진출한 한국 최고의 선수.
누군가는 기대했고, 또 누군가는 걱정했다.
그가 한국에서 기록한 수많은 업적들이 메이저리그에서 퇴색되는 건 아닐지, 혹시나 그가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할 경우 한국 야구의 비참한 현주소만 더욱 부각되는 건 아닐지 하고 말이다.
하지만,
한수혁이 메이저리그 첫 번째 시즌을 끝마쳤을 때,
전 세계 야구팬들은 알게 되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야구선수 리스트 가장 앞에 그의 이름을 놓아야 마땅하다는 것을, 그는 기존 야구의 모든 법칙을 무시하는 규격 외의 존재라는 사실을.
645타석 515타수 217안타, 타율 0.421, 출루율 0.530, 장타율 1.019, OPS 1.550, 순장타율 0.598, 79홈런, 172타점, 타자 WAR 18.1.
206이닝, 22승 무패, 335K, ERA 052, WHIP 0.59, 투수 WAR 12.2.
마치 만화, 혹은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하며 만년 하위팀 시애틀 매리너스를 월드시리즈 무대에 진출시킨 한수혁.
그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 본 어떤 메이저리그 구단 단장의 예언처럼 정말 야구 선수를 넘어 야구 그 자체로 불리게 된, 전 세계 야구 선수 중 유일하게 ‘미스터 베이스볼’이라는 호칭을 허락받은 선수 한수혁.
그가 지금 2030 시즌의 대미를 장식할, 수십만 시애틀 시민들의 염원이 걸린 월드시리즈 최종전 마지막 타석을 준비하고 있다.
* * *
“젠장, 제발… 제발…….”
“안 돼,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고!”
“한수혁! 제발!”
5 대 3, 두 점 차로 앞선 시애틀 매리너스는 하야시 렌타로의 호투에 힘입어 9회 초 마지막 수비까지 그 기세를 이어갔다.
팀 창단 후 첫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남은 건 고작 아웃카운트 3개뿐.
흥분한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매리너스를 연호했고, 벤자민 감독은 9회 첫 타자와의 승부를 하야시에게 그대로 맡겼다.
어쩌면 그것이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실수였다.
8회까지 잘 던지던 하야시 렌타로의 제구가 갑자기 흔들렸고, 카운트를 잡기 위해 들어간 공이 정타를 당하며 무사 주자 1루.
당황한 시애틀 벤치에서 곧바로 마무리 애덤 머피를 올렸지만 카디널스의 마지막 불꽃을 완벽히 제어하지 못했다.
첫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한숨을 돌렸지만 이어진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1사 주자 1, 2루.
그리고,
따아아아악!
5번 타자 말콤 피터스의 배트에서 강렬한 타격음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T모바일파크가 한순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순식간에 경기를 뒤집는 역전 홈런, 덕아웃에 있던 카디널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어나왔고, 멀리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애틀까지 날아온 원정팬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경기의 주도권이 순식간에 카디널스 쪽으로 넘어갔다.
9회 말 시애틀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카디널스가 자랑하는 최고의 마무리 투수 트레버 닉슨이 마운드에 올라 100마일이 넘는 광속구를 펑펑 뿌려댔다.
큰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라는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지난 십여 년간 줄곧 빅게임의 마지막을 책임져온 이 최강의 수호신은 시애틀 팬들이 내뿜는 엄청난 야유와 부담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투구를 이어갔다.
이빨을 꽉 깨물고 어떻게든 출루하겠다고 다짐했던 척 클락이 삼진으로 물러나고, 그답지 않게 스윙 하나하나에 기합을 넣으며 분전했던 짐 브라운의 타구가 유격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을 때,
시애틀 팬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과도 같았던 2030시즌 매리너스의 야구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포기하던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브루스 매튜스를 대신해 대타로 나선 라파엘 오수나가 8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2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안타를 만들어냈다.
빗맞은 안타 하나에 T모바일파크가 다시 후끈 달아올랐다.
라파엘을 대신해 발 빠른 대주자가 투입되었고, 벤자민 감독이 다시 대타 카드를 뽑아들었다.
이적 동기생들에 비해 활약이 다소 미비했던 카일 섀너한이 타석에서 집중력을 발휘했다.
카디널스 수호신의 투구 수가 계속 늘어갔고,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공이 볼로 선언되는 순간,
“우아아아아아!”
“그래, 하나만 더! 하나만! 제발!”
“제발 그에게, 그에게 연결해줘! 부탁이야!”
경기장을 뒤덮고 있던 암울한 기운이 사라지고, 이미 멀어졌다 생각했던 승리의 희망이 다시 타올랐다.
2사 주자 1, 2루, 그리고 9번 타자의 타석.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나가기만 한다면, 안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1루로 걸어 나갈 수만 있다면,
그의 타석이 도래한다.
다시 한 번 그에게 모든 걸 맡길 수 있다.
“레너드, 네 차례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 그러니 나가서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라.”
“네! 보스!”
군기가 바싹 든 대답과 함께 레너드 존스가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이 걸린 이런 중요한 타석에서 감독이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레너드는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의 홈플레이트를 홀로 지키던,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시애틀의 선수가 된 그는 현재 벤치에 남아 있는 타자들 중 가장 뛰어난 선구안의 소유자였다.
그렇기에 감독이 그에게 바라는 건 출루, 어떻게든 1루로 나가 다음 타자에게로 찬스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한수혁이 회귀하기 전 매년 4할 내외의 출루율을 기록했던, 앞으로 몇 년 후면 당대 최고의 포수라 불리게 될 그가 흥분된 표정으로 한수혁에게 다가갔다.
“한, 날 지켜봐줘. 머리에 공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1루로 나갈 테니까. 넌 이 경기를 끝낼 준비나 하라고.”
아직 만개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몸 속 어딘가 막대한 잠재력이 잠들어 있었다.
극도의 집중력으로 그 잠재력을 억지로 끌어올린 레너드가 카디널스의 수호신을 괴롭혔다.
파앙
“볼.”
야구 시스템의 발전도 레너드를 도왔다.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트레버 닉슨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감은 상당한 것이었으니까. 심판의 판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볼 카운트 투 볼 투 스트라이크, 만약 심판이었다면 트레버 닉슨의 이름값에 넘어가 스트라이크로 선언했을지도 모를 공을 AI가 볼로 판정했다.
낙담한 투수가 깊게 한숨을 내뱉었고, 관중들이 내뿜는 열기에 경기장 안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파앙.
“볼. 베이스 온 볼스.”
“됐다! 드디어! 됐어!”
“으아아아아! 레너드!”
“한수혁 차례야! 드디어 된 거라고!”
트레버 닉슨이 마음먹고 던진 몸 쪽 101마일 포심이 볼로 선언되는 순간, 경기장, 아니, 시애틀 시 전체가 크게 진동했다.
그대로 끝날 줄로만 알았던 경기였다.
하지만 대타로 나선 선수들의 눈부신 투혼에 힘입어 마지막 기회가 만들어졌다.
[1번 타자 서드베이스맨 한수혁]누군가는 그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지난 한 시즌간 그가 기록한 성적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역대 레전드들이 쌓아올린 어마어마한 누적 커리어와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말이다.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는 아직 젊었고, 진정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통적인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한 점 차로 뒤진 9회 말 마지막 공격에서 누군가를 타석에 내보낼 수 있다면,
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야구 선수 중 딱 한 사람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누구의 이름을 고를 것인가?
굳이 물을 필요조차 없었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으니까.
한수혁.
“플레이!”
그가 타석에 들어서자 응축되어 있던 에너지가 일순간에 폭발했다.
더 이상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거대한 열기가 T모바일파크를 넘어 시애틀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것은 지난 53년간, 소년이 노인이 될 때까지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수십만 시애틀 팬들의 염원을 담은 파동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거대한 에너지에 고스란히 노출된 투수가 혼신의 힘을 다해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서 무게 145g의 하얀 공 하나가 떠올랐다.
한수혁의 배트에 시애틀 팬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면, 그 공에는 디펜딩 챔피언 카디널스의 자존심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공과 배트가 한 점에서 만났고,
따아아아아아아악!
길고 길었던 월드시리즈의 승자가 결정되었다.
* * *
“한수혁 선수! 잠시만, 잠시만! 이쪽 한 번만 봐주시죠!”
“뒤로 물러서세요! 밀지 마시고요! 잠깐, 거기 잠깐!”
“월드시리즈가 끝나자마자 한국에 들어온 이유가 뭡니까? 혹시 또 중대발표라도 하실 예정인가요?”
한수혁의 야구 인생에서 꽤나 의미 있는 순간으로 남을 게 확실한 2030시즌 월드시리즈가 드디어 끝났다.
9회 말 터진 한수혁의 극적인 끝내기 만루 홈런.
그는 비로소 자신이 회귀 전 그토록 소망하던, 혼자서 경기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완벽한 선수가 되었다.
창단 53년 만에 첫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심지어 그 첫 무대에서 우승까지 달성한 시애틀 매리너스.
모든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그들의 이름을 연호했고, 시애틀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축제가 시작되었다.
우승의 주역들이 모두 참석한 카 퍼레이드.
자신에게 배정된 버스 위에 민예린과 나란히 탑승한 한수혁은 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마지막 타석에서의 결과는 모두 팬 여러분의 응원 덕분입니다. 조금 더 쉽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내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초반에 상대를 박살 내고 트로피를 갖고 돌아오겠습니다. 그걸 위해 이번 스토브리그에 과감한 투자도 준비되어 있고요. 그러니 아무 생각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항해는 이제 막 시작되었으니까요.’
팀의 핵심 선수이자 구단주인 한수혁의 야심찬 발언에 시애틀 시민들의 환호가 더욱 커졌다.
일각에서는 한수혁이 당장 선거에 출마하더라도 시장 자리는 따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까지 흘러 나왔다.
그렇게 시애틀이 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의 기쁨에 물들어 있는 사이, 우승 행사를 마친 한수혁과 민예린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예정에 없던 한수혁의 기습적인 귀국에 인천공항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국적을 넘어 역대 최고의 야구선수라 불리게 된, 거기에 미국과 한국의 야구단을 동시에 소유한 구단주 한수혁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등 뒤에 기자들을 주렁주렁 매단 그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잠실야구장이었다.
서울 워리어스와 매지션스 간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 준비 중인 잠실야구장 말이다.
“수혁아! 이 자식!”
“형,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안 좋은 거 아냐? 올해 건강검진은 받… 윽!”
“받았어! 당연히 받았지! 그보다, 얼굴 좀 제대로 보자. 너야말로 괜찮아?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
미국에 있으면서도 한수혁은 항상 박성훈의 건강을 걱정했다. 지난 삶에서 그를 병으로 잃은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수혁은 이제 사람의 힘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믿게 되었다. 그렇기에 관심을 기울이되 과한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오오오! 한수혁 선수, 이게 대체 얼마 만입니까! 뭐라고요? 그래 봐야 9개월밖에 안 됐다고요? 이런, 정말 그렇군요. 음, 맞아요.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인간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알려주는 좋은 교훈이군요. 생각해 보면 제가 미국에 있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1994년의 어느 봄날이었죠. 아직까지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 제 전 코치, 음, 제가 말씀드린 적 있나요? 만약 그분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저 역시 없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분의 집에 초대받은 기억이 납니다. LA 외곽에 위치한 아담한 목조주택이었지요. 혹시 그거 아시나요? 왜 미국에서는 석조가 아닌 목조 건물이 주를 이루는지 말이죠. 흠, 그것에 대해 제가 설명을 드리자면…….”
그냥 지나치기 뭐해 살짝 들렀던 단장실에서 삼십 분 넘게 잡혀 있던 한수혁이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오랜만에 들른 잠실야구장은 그가 기억하던 모습에서 조금 변해 있었다.
비용 생각하지 말고 최대한 선수들의 편의를 우선시하라는 한수혁의 지시에 클럽하우스 여기저기에 대대적인 공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나온 한수혁이 새롭게 리뉴얼된 워리어스 라커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허억…!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저기, 정말 죄송한데 한수혁 선수… 아니, 구단주님. 사인 한 번만 해주시면 평생의 영광으로…….”
워리어스 점퍼를 입은 신입 직원에게 사인을 해준 그가 복도를 지나 라커룸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 그러니까 성오 형님, 제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요. 우리가 앞으로는 조금 더… 헉, 야! 한수혁!”
“응? 그게 무슨? 어라, 정말이네! 수혁아! 인마! 너 여기 무슨 일이야!”
“수혁이? 수혁이가 왔다고? 갑자기?”
결전을 앞둔 워리어스 선수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나눈 한수혁이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년 동안 떨어져 지내며 늘 걱정했던 동료들, 화려한 언변으로 다른 팀 단장들을 압살하는 박재철 단장, 언제나 조금 피곤한 얼굴로 대표실을 지키고 있던 박성훈까지.
모든 것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음에 한수혁은 감사했다.
“야구팬 여러분! 오늘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여러분에게 깜짝 손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누구일지 궁금하시죠? 다들 놀라지 마시고 두구두구두구, 그분은 다름 아닌! 한국이 낳은 최고의 스포츠스타, 한수혁 선수입니다!”
“어어엉? 한수혁? 진짜? 오늘 한국 들어온 게 한국시리즈 보러 온 거야?”
“와씨, 이건 생각도 못 했네.”
“한수혁! 온 김에 한 경기만 뛰고 가면 안 될까? 매지션스 놈들 좀 때려 잡아줘!”
깜짝 놀란 관중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한수혁의 이름을 연호했다.
사회자의 소개를 받아 마운드 위로 오른 그에게 마이크가 건네졌다.
평소보다 훨씬 밝은 얼굴로 마이크를 받아든 한수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워리어스 팬 여러분, 그리고 오늘 경기를 보러 경기장에 오신 야구팬 여러분, 오랜만에 뵙네요. 한수혁입니다.”
“수혁아! 온 김에 시구라도 좀 하고 가라! 170 한 번 더 보자!”
“수혁 오빠! 이쪽 한 번만 봐주세요! 꺄악! 어떻게 해! 눈 마주쳤어!”
아직 본 경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마치 9회 말 역전 만루 홈런이라도 나온 것처럼 경기장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그 광경을 보며 한수혁은 자기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아주 오래 전 그가 꿈꾸던, 아무도 없는 낯선 미국 땅에서 그토록 바라던 모든 것이 여기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 눈만 봐도 서로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동료들, 친구들, 친형제나 마찬가지인 형, 그리고…….
“큰 경기를 앞두고 제가 너무 오래 마이크를 붙잡고 있는 건 민폐겠죠. 짧게 인사 드리고 물러가겠습니다. 미국에서 첫 시즌 잘 보내고 돌아왔고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우승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아, 선수이기에 앞서 구단주로서 워리어스와 매리너스 양 구단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도 계속 진행할 생각입니다. 제가 바라는 건 단 하나, 팬 여러분들이 야구를 편안하고 즐겁게 즐기는 것, 그것뿐입니다.”
“그동안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야구를 하며 힘든 적도 많았고, 잘못된 선택에 후회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걸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결국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걸 깨닫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죠. 괜찮습니다. 이제는 정말 괜찮아졌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야구 선수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습니다. 야구는 그저 그 행복을 만들어나가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죠.”
“그렇기에 저는 앞으로도 저와 주변 사람들, 그리고 팬 여러분들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야구를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항상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저를 보면서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서 잠깐 말을 마친 한수혁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홈팀 클럽하우스에서 경기장으로 향하는 복도 끝자락, 그곳에는 시구 준비를 마친 민예린이 눈물을 주렁주렁 매단 채 서 있었다.
“여러분, 이런 말을 여기서 드리는 게 맞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저는 행복해지기 위해 누군가와 함께 앞으로 남은 인생을 걸어 나갈 생각입니다. 지금의 제가 있게 해준, 그리고 제가 힘들고 지쳐 쓰러질 때면 믿고 기댈 수 있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말이죠.”
“…오빠.”
“예린아, 이리 와.”
끼고 있던 글러브와 공을 집어던진 민예린이 한수혁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한수혁이 팔을 크게 벌린 채 그녀를 기다렸다.
그런 두 사람의 머리 위로 경기장의 조명이 내리쬐었다.
한 해의 야구가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던 그때, 한수혁과 민예린은 하나가 되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야구선수라 불리게 될 어떤 사나이의 두 번째 인생이 비로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작가의 말]즐겁게 읽으셨는지요?
끝난 것 같다고요.
아뇨,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가보도록 하죠.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