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7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76화(377/412)
#376화. 모든 문제가 절로 해결되었고
“자, 다들 자리에 착석해 주시고… 음, 이렇게 전체 인원이 다 모여서 시즌 시작을 준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결산회의라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시작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끝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그 끝없이 되풀이되는 시작과 끝의 윤회 속에서 살 길을 찾기 위해 꿈틀거리는 한 마리 가련한 벌레에 불과하지 않을까? 맞아요, 예전에 제게 이런 말씀을 해준 분이 계셨죠. 제가 첫 번째 FA 자격을 취득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은퇴를 앞두고 있던 피지컬 트레이너가 저에게 이렇게 묻더군요. 이봐, 박…….”
“…박 단장님.”
“자네는 야구가 뭐라고 생각하나? 그러니까 내 말은… 음, 죄송합니다, 대표님. 오랜만에 마이크를 잡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보다는 오늘 논의할 일이 한둘이 아니니 빠르게 본론으로 넘어가보죠.”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럼 2040시즌 대비 서울 워리어스 전체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치열했던 2039 시즌이 끝난 후 대략 한 달간의 휴식을 마친 KBO의 명문구단 서울 워리어스의 팀장급 이상 프런트 직원들, 그리고 1, 2군 감독과 코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 많은 인원들이 시간을 맞춰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지난 시즌을 정리하고, 다가오는 2040 시즌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2039 시즌 서울 워리어스는 정규시즌 4위의 성적을 기록하며 가을야구에 진출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 부산 타이탄스에 덜미를 잡히며 그대로 탈락, 서울 라이벌 매지션스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구경해야만 했다.
한수혁이 입단한 2027년 이후 5년 연속 통합 우승, 거기에 이후 8년간 또 세 차례의 통합 우승을 거두며 2020년대와 2030년대를 대표하는 최강의 왕조로 군림한 서울 워리어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한수혁과 함께 왕조를 건설했던 선수들이 하나둘 그라운드를 떠날 시점이 되자 워리어스는 본격적인 팀 리빌딩을 시작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2037 시즌 6위를 기록하며 10년 만에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한 것을 시작으로 2038년 5위, 2039년에도 4위에 머물며 예전의 위용을 잃고 만 것이다.
문제는 리빌딩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폐쇄적인 트레이드 시장과 FA시장 과열 등으로 인해 돈으로 우승을 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KBO의 구조상 한 번 정상에서 내려온 팀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2040 시즌 워리어스를 우승 후보로 꼽는 전문가들은 아무도 없었다.
기존 스타급 선수들의 노쇠화,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한 신인급 선수들의 미숙함, 지난 시즌 실패한 용병 농사 등.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팀의 중심을 잡아 줄 에이스의 부재, 그리고 노쇠한 장덕수를 대신할 팀의 주포를 구하는 것이었다.
“일단… 본 회의에 앞서 새로 선임된 감독, 코치진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익히 알고 계시는 분들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자리를 빌어 인사를 드리는 게 맞겠지요. 그럼 조성오 감독님부터 한 말씀 부탁드릴까요?”
“네, 그럼… 음, 안녕하십니까. 막상 감독이라는 말이 잘 나오질 않는군요. 그래도 익숙해져야겠죠? 반갑습니다. 올 시즌부터 새로 1군 감독을 맡게 된 조성오입니다. 기왕 일어난 김에 새로 코치진에 합류한 분들에 대해서도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제 옆에는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된 이만식 코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신입코치 이만식입니다.”
“그리고 옆에는 1군 수비 지도를 맡게 된 이창모 코치.”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창모입니다.”
“삼고초려 끝에 어렵게 모신 월터 스미스 1군 타격 코치.”
“흐흐, 괜한 말입니다. 아, 이 표현이 맞나요? 아무튼 다들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은 조성오 신임 감독이 자신이 거느리게 된 1, 2군 코치진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그 코치진들을 지켜보던 박성훈 대표가 자기도 모르게 회상에 잠겼다.
조성오, 이만식, 이창모, 월터 스미스, 김수학, 최진철, 강동하…….
오랜 시간 워리어스 유니폼을 입고 최강 왕조를 구축한 장본인들이자 이 팀의 역사와도 같은 인물들이 신입 감독, 코치라는 명함을 달고 자신 앞에 서 있다.
팀의 역사가 이어진다는 면에서 흐뭇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흐른 것인지 씁쓸하기도 했다.
젊음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얼굴에는 굵은 주름이 자리 잡아 있었고, 쓰고 있는 모자 옆으로는 하얀 새치들이 듬성듬성 삐져나와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들이 마치 꿈만 같았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코앞에 뒀던 한수혁이 갑자기 진로를 변경해 한국 잔류를 선언하고, 난데없는 출생의 비밀과 함께 자신에게 워리어스의 운영을 맡기고, 그런 녀석과 함께 워리어스 왕조를 만들어나가던 기억들이 하나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자, 그럼 인사는 이 정도로 마치고,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먼저 지난 2039 시즌 리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다들 화면을 봐주시죠.”
박재철 단장의 목소리에 박성훈 대표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주 중요하고, 또 중요한 자리이다.
기존 주전선수들의 노쇠화 등 여러 문제들이 겹치며 중위권으로 떨어진 워리어스의 성적, 이것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중차대한 회의인 것이다.
박재철 단장의 주도 하에 지난 시즌에 대한 리뷰가 진행되었고, 이를 정리하는 데만 대략 세 시간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길고 긴 리뷰와 잠깐 동안의 휴식 시간이 끝난 후,
다시 회의실에 모인 참가자들은 2040 시즌 선수단 구성을 위한 본격적인 브레인스토밍에 돌입했다. 용병선수 계약과 FA 영입, 트레이드 목록 확정, 스프링 캠프 참가자 선정 등 내년 시즌 팀의 농사를 결정 짓게 될 2차 회의가 시작된 것이다.
포지션별 선수들의 세부지표 등이 화면을 가득 메웠고, 그들에 대한 옥석 가르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에 저희 프런트에서 1차적으로 선정한 포지션별 주전급 선수들 명단입니다. 확인해 주시고, 이와 관련해 의견 있으시면 거수 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화면 봐주시죠.”
[2040 시즌 서울 워리어스 포지션별 주전선수 후보군 및 지난 시즌 성적]포수: 박동석(31세), 타율 0.293, 출루율 0.380, 장타율 0.511, 20홈런 78타점
1루수: 장덕수(39세), 타율 0.254, 출루율 0.348, 장타율 0.558, 35홈런 98타점
2루수: 박경배(21세), 타율 0.252, 출루율 0.338, 장타율 0.358, 6홈런 29타점
3루수: 안치욱(32세), 타율 0.348, 출루율 0.420, 장타율 0.574, 23홈런 113타점
유격수: 유인철(32세), 타율 0.270, 출루율 0.372, 장타율 0.420, 12홈런 48타점,
좌익수: 서준석(21세), 타율 0.243, 출루율 0.307, 장타율 0.333, 3홈런 25타점
중견수: 미정
우익수: 용병
지명타자: 최재민(31세), 타율 0.283, 출루율 0.363, 장타율 0.435, 20홈런 75타점
선발투수: 최마루(31세), 좌투, 210이닝, ERA 2.54, WHIP 1.21, 17승 9패
선발투수: 용병
선발투수: 용병
선발투수: 천상진(38세), 좌투, 180이닝, ERA 3.55, WHIP 1.30, 11승 9패
선발투수: 유병철(28세), 우투, 175이닝, ERA 4.01, WHIP 1.55, 8승 10패
선발투수 : 임준영(44세), 우투, 180이닝, ERA 4.22, WHIP 1.49, 7승 8패
셋업맨 : 양기철(35세), 우투, 65이닝, ERA 3.29, WHIP 1.29, 2승 3패 12세이브 11홀드
마무리 : 미정
“음…….”
“흐음…….”
전력분석팀에서 1차 분류 작업을 마친 각 포지션별 주전선수 라인업이 발표되자 회의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전체 예산과 향후 방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프런트 측과 당장 내년 시즌 성적을 걱정해야 하는 코칭스태프 측의 시각이 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으으음…….”
그럼에도 양 측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물음표가 너무 많아. 투타에 중심축도 뚜렷하지 않고…….’
한수혁이 있던 시절, 팀 타율과 홈런, 득점, 타점, 거기에 투수들의 투구이닝과 평균자책점 등 투다 모든 부문에서 리그 정상급의 수준을 자랑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 라인업은 여러 모로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라인업에 포함된 타자 중 4명이 20홈런 이상을 때려내긴 했지만, 주포라 할 수 있는 장덕수의 나이가 어느덧 39세이다. 내년 시즌 당장 기량이 급하락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야수진에 있어 확실한 카드는 국내 최고 좌타자인 안치욱과 지난 시즌 처음으로 20홈런 시즌을 만든 포수 박동석, 그리고 청각장애를 딛고 팀의 지명타자로 자리 잡은 최재민 정도가 전부다.
그 외 2년차 신인들로 자리를 메워야 하는 2루와 좌익수, 공석이나 마찬가지인 중견수와 우익수 자리를 보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실상 외야 전체가 텅 빈 상황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아… 이거 어디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그나마 투수 쪽은 용병 2명만 잘 구하면…….”
“말이 쉽지. 용병은 로또에 가까우니까요. 거기에 마무리 자리가 구멍 난 걸 생각하면 용병 한 명은 마무리투수로 데려와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으음, 산 넘어 산이네요.”
문제는 투수진에 비하면 야수진의 상태는 그나마 낫다는 점이었다.
현 시점, 워리어스의 투수진은 그야말로 붕괴 일보 직전이었다.
그동안 팀의 선발진을 이끌던 천상진이 38세 시즌에 접어들었고, 한때 이 팀의 에이스였던 임준영은 44세 은퇴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난 시즌 용병 농사가 대실패로 끝난 탓에 용병 슬롯 두 자리는 공석이었고, 거기에 마무리 양기철의 기량이 하락하며 새로운 마무리 투수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의견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일단 한 분씩 말씀해 보시죠.”
“네, 일단 제 생각에는 용병 타자는 1루와 우익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좌타자로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장덕수 선수의 무릎에 언제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라서요.”
“용병 선수 동시 출전 제한이 3명으로 늘어났으니 차라리 2루수와 외야수 두 명을 구해보는 건 어떨까요?”
“안 됩니다. 투수 용병 한 자리를 마무리 투수 쪽에 할애해야 하는데, 설마 용병 선발투수 없이 시즌을 치르자는 건 아니시겠죠?”
“다음 시즌까지는 기철이에게 마무리를 맡기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아무리 봐도 중심타선에 설 용병 타자가 더 급해 보이는데요.”
“하반기 양기철 세부 지표 좀 보세요. 더 이상 클로저는 무리입니다.”
“FA로 용철이를 데려오는 건 어떨까요? 몸값이 그리 높진 않을 텐데.”
“창원 구단주가 용철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라고 지시했다더군요.”
“그럼 차라리 트레이드를…….”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회의 참가자들이 금세 격양된 얼굴로 각자의 의견을 쏟아냈다.
누군가는 투수진의 보강이 시급하다 말했고, 또 누군가는 타선의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우선이라 주장했다.
문제는 이 의견들이 모두 맞는 말이라는 거였다.
주포 장덕수는 언제 라인업에서 빠져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인 데다가 안치욱 외에는 안정적으로 중심타선을 지킬 타자가 보이지 않는다.
선발진 역시 최마루 외에는 모두 노쇠화가 뚜렷했고, 용병 슬롯 두 자리를 모두 선발로 갈지, 아니면 마무리 투수로 구해야 할지조차 결정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
지난 십수 년간 리그를 지배한 후유증이라 애써 위안해 보지만 당장 내년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암담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회의가 점점 격양된 분위기로 흘러가던 그때,
드르륵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박성훈 대표의 스마트폰이 크게 진동했다.
침중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던 박성훈이 손을 들어 스마트폰의 화면을 슬쩍 확인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그대로 전원을 꺼버릴 생각으로.
하지만,
[발신자: 내 동생 수혁이]전화를 건 이가 한수혁이라는 걸 확인한 박성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 구석으로 향했다.
“야, 수혁아. 너 무슨 일이야? 이번 주까지는 민예린 씨랑 휴가 보낼 거라며? 아, 맞다. 시애틀에 눈 폭탄이 떨어졌다며? 너희 동네는 어때? 응? 뭐라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럼 뭐가 중요한데? 뭐? 그게 대체 뭔 소리야? 돌아오다니? 한국에서 휴가를 보내겠단 뜻인가? 그게 아니라고? 그럼 대체 뭔데? 응? 응? 으으응? 뭐어어어?”
박성훈 대표의 목소리가 커지자 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뭔가 중요한 말이 오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통화를 마친 박성훈이 얼빠진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음… 여러분, 조금 미안한 이야기인데 오늘 회의는 며칠 후에 다시 여는 걸로 하죠.”
“대표님,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혹시 안 좋은 일이라도?”
“그게 아니라,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네?”
“수혁이가 돌아온답니다.”
“네? 그게 무슨…….”
“수혁이가 메이저리그 생활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답니다. 선수단에 자기 자리 비워놓으라는데요?”
“네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