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80)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79화(380/412)
#379화. 부활! 워리어스
‘이게 꿈은 아니겠지.’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개장한 워리어스 필드 내 클럽하우스, 그곳 한가운데 자리 잡은 감독실에서 조성오 감독이 감격에 겨운 얼굴로 라인업을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1번 우익수 데릭 플레밍
2번 투수 한수혁
3번 3루수 안치욱
4번 1루수 장덕수
5번 포수 박동석
6번 유격수 유인철
7번 중견수 서준석
8번 2루수 박경배
9번 좌익수 최민석
지난 시즌, 자신이 이 팀의 타격코치로 일하던 시절 암담했던 라인업이 떠올랐다.
장덕수의 뒤를 받치기 위해 데려왔던 용병 타자가 난데없는 향수병에 걸리고, 새로 팀에 합류한 신인들이 1할에도 못 미치는 타율에 허덕이고, 그런 영향을 받아 기존 주전 타자들마저 흔들거리던 끔찍한 기억.
그런데,
그때와 거의 차이 없는 라인업에 한수혁의 이름을 적어 넣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어 버렸다.
1번 데릭 플레밍, 2번 한수혁, 3번 안치욱, 4번 장덕수로 이어지는 상위타순.
조성오 감독이 생각하기에 이건 당장 메이저리그에 던져놔도 전혀 밀릴 게 없는 라인업이었다.
갑작스런 개인 사정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대준, 그의 뒤를 이어 급하게 이 팀의 지휘봉을 잡게 될 때만 해도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수혁아…….’
조성오 감독은 생각했다.
야구에 있어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항상 그 대답은 먼 곳이 아닌 바로 옆, 가장 가까운 곳,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한편으로는 존경하는 후배 한수혁에게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 얘들아. 내 손으로 직접 작성한 첫 번째 라인업이다. 거기 안치욱, 너 그런 얼굴로 웃지 마라. 이상하게 혼내주고 싶어지니까.”
“왜 저만…….”
“됐고, 다들 라인업 확인하고,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만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온 수혁이의 첫 경기다. 승리투수로 만들어줘야지?”
“네! 코치, 아니, 감독님!”
“마루 넌 오늘 경기도 안 뛸 놈이 목소리는 제일 커가지고. 됐고, 그럼 준비 마치고 그라운드에서 보자. 이상.”
아직 감독보다는 코치, 혹은 선배라는 느낌이 더 강한 조성오 감독이었다.
그런 감독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선수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마지막 준비를 시작했다.
워리어스 필드 개장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된 서울 라이벌 매지션스와의 개막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 * *
– 고동식 위원님.
– 말씀하세요, 박철민 아나운서.
–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오시니 어떠십니까? 집에서 가족들이 따뜻하게 맞이해주시던가요?
– 어허, 이 양반이 남의 사생활을, 크흠……. 뭐, 일단은 쫓겨나지 않고 무사히 밥은 얻어먹고 있습니다. 그보다 우리 야구 이야기나 할까요?
– 네, 그냥 생각이 나서 한번 말해봤습니다. 그럼 선발 라인업부터 살펴볼까요?
지난 10년간 미국 현지에 파견되어 한수혁의 전 경기 중계를 맡았던 두 콤비가 이번에는 새롭게 개장한 워리어스 필드 중계부스에서 얼굴을 맞댔다.
한때 해설계의 이단아로 불렸던 전직 유튜버와 야구 중계 초짜 아나운서 콤비는 이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야구 해설위원과 아나운서가 되어 있었다.
– 라인업 소개에 앞서 시청자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서울 라이벌 간에 치러지는 오늘 경기는 전년도 1위 팀인 서울 매지션스의 홈구장 잠실야구장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이곳 워리어스 필드의 개장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이곳으로 무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 맞습니다. 저도 공사 중에 몇 번 이곳에 와보기는 했지만… 이야, 정말 대단합니다. 이곳 워리어스 필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드리자면 공사 기간만 10년이 소요됐고요. 공사비는 무려 1조 3천억! 대단하죠? 1천억이 아니라 1조입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구장이라는 텍사스 홈구장보다도 더 많은 돈이 투입된 그야말로 최고의 개폐식 돔구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올해 워리어스 팬들은 정말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실 것 같군요. 1조 원짜리 새 구장에 빅리거급 용병 3명, 거기에 한수혁 선수의 복귀까지……. 이야, 정말 엄청나네요. 자, 어쨌든 이야기가 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선발 라인업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고동식 위원님?
– 네, 그렇죠. 중요한 걸 잊을 뻔했네요. 일단 워리어스는 1번 타순에 데릭 플레밍을 배치했습니다. 지난 시즌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타율 0.265, 출루율 0.379, 장타율 0.488에 19홈런 68타점, 11도루를 기록한 선수죠? 이야, 다른 팀에서 불만을 토로할 만하네요. 단언컨대 지금까지 KBO 진출한 모든 용병타자 중 최고의 커리어를 가진 선수임에 분명합니다. 비록 전성기에 비해 기동력이 많이 감소했지만 장타력은 여전한 만큼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리라 기대됩니다.
– 저 역시 미국에서 저 선수를 10년 가까이 지켜봤지만… 아, 표정이 정말 밝네요. 경기 전에 만나서 한국 생활은 어떠냐고 물어보니 그러더라고요. 정말 만족한다고. 가족과 함께 밤에 산책을 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이죠.
– 정말 가정적인 선수군요. 하지만 와이프들의 진짜 진면목은 좀 더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음, 죄송합니다. 갑자기 쓸데없는 소리를. 아무튼 데릭 플레밍 선수가 1번으로 배치되면서 지난 시즌까지 리드오프로 출전했던 유격수 유인철은 6번으로 내려갔습니다.
– 자, 데릭 플레밍의 뒤를 이어 2번에 배치된 건… 아, 드디어 그 선수 차례네요. 아니, 그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하.
– 말해 뭐 하겠습니까? 시청자 여러분, 지난 시즌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으로 타율 0.414, 출루율 0.545, 장타율 1.009, 72홈런 155타점을 기록한 전 세계 최고의 타자 한수혁 선수가 한국 무대 복귀전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 이야… 워리어스 팬분들의 함성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언제 봐도 놀라운 성적입니다. 메이저리그 4할 70홈런 타자가 한국 무대에… 제3자인 저도 이 정도인데 당사자인 워리어스 팬분들은 지금 얼마나 기쁘실까요?
– 말해 뭐 하겠습니까? 어쨌든 오늘 한수혁 선수는 타자만이 아닌 선발투수로서 한국 무대 복귀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 10년간 한수혁 선수 뒤를 졸졸 따… 아니, 모든 경기를 중계한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매지션스 선수들은 각오해야 할 겁니다. 10년 전에도 엄청났지만, 지금 한수혁 선수는 그때보다 더 엄청난 선수가 되어 돌아왔으니까요.
* * *
“…시발, 무슨 이런 좆같은 일이.”
“감독님?”
“이게 대체 말이 돼? 아니, 저놈은 대체 여기 뭐 먹을 게 있다고…….”
“감독님?”
“아, 미안해요. 최 코치. 뭔가 좀 울컥해서.”
“음… 선수들이 기다립니다. 한 말씀 해주시죠.”
“그래요. 하… 얘들아. 아무리 한수혁이라고 해도 무적은 아니다. 지난 시즌에도 1패가 있고, 그래, 물론 그 1패를 기록하는 동안 21번이나 이기긴 했지만… 그래도 평균 자책점도 거의 1점… 후, 9이닝 동안 1점도 안 준다는 소리인데 이게 대체!”
선수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려던 매지션스 감독 김성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로 직전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평균자책점 0.77, WHIP 0.61, 21승 1패를 기록한 괴물을 상대로 어떻게든 안타를 만들어내라고 말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 워리어스와 매지션스 두 팀을 거치며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군림했던 김성수,
지난 시즌 매지션스의 첫 지휘봉을 잡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그리고 그 여세를 모아 왕조를 구축하려던 그의 야심찬 계획 앞에 엄청난 장애물이 등장했다.
현역 시절 후배이자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선수인 한수혁,
그가 돌아왔다.
그것도 자신의 메이저리그 동료들과 함께.
녀석의 기록이 담긴 데이터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예전보다는 조금 좁혀졌지만 메이저리그와 KBO 사이에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수준 차이가 존재한다.
아무리 공 빠르기가 전부는 아니라고 해도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이 153㎞/h에 달하는 상황에서 KBO 투수들의 포심 평균 구속은 143㎞/h에 불과하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하고 그 언저리에 머무는, 흔히 말하는 AAAA급 투수들이 한국에 오면 에이스로 군림하는 게 이 나라 야구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그런데,
그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 중의 최고로 군림한 선수가 상대팀에 있다고?
그것도 선발투수 겸 타자로?
당장 개막전 시리즈는 둘째 치고, 이번 시즌 연속 우승을 노리던 매지션스의 행보에 엄청난 먹구름이 끼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커리어에도.
“시발…….”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을 무너뜨릴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김성수의 입에서 또 한 번의 욕설이 튀어나오고, 곧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부웅
“스윙! 아웃!”
매지션스 감독의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로 도래했다.
1회 초 매지션스의 선공,
지난 시즌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인 테이블 세터와 3년째 중심타선을 지키고 있는 용병 타자까지 세 명이 연속 삼진으로 물러났다.
한국 무대 복귀를 위해 정성껏 몸을 만들어온 한수혁의 위력은 실로 경천동지 그 자체였다.
경기 개시 사인과 함께 날아온 174㎞/h의 포심. 지난 10년간 메이저리그를 박살 냈던 절대자의 주 무기.
엄청난 소리를 내며 포수 미트에 처박힌 그 공에 매지션스 타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1번 타자가 공 네 개 만에 삼진으로 물러났고, 2번 타자는 아예 세 번 연속 헛스윙으로 삼진을 당했다.
차라리 거기까지는 다행이었다.
LA에인절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까지 경험한, 벌써 3년째 매지션스의 중심타선을 책임져온 용병 타자가 한수혁에게 삼진을 당하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차렷 자세로 모자까지 벗은 채 상대팀 선발투수를 향해 90도 인사를 하는 용병 타자.
분노한 김성수가 용병 타자를 불러 크게 꾸짖으려 했지만…….
“그는 제, 아니,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모든 야구선수들의 우상입니다. 그에게 삼진을 당하긴 했지만 저는 오늘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겁니다. 어쩌면 제 야구 인생에 다시 찾아오지 못할 영광스러운 순간일 수도 있으니까요.”
당장 계약을 해지해 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눌러 담은 채 용병 타자를 돌려보냈다.
무슨 마음인지 이해는 간다.
마운드 위에 선 한수혁을 보고 있자면 선배인 자신조차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그의 활약을 직접 옆에서 지켜본 용병 선수들의 마음이 어떨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매지션스 덕아웃이 뒤숭숭한 가운데 1회 말 워리어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매리너스의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 무대를 질주하던 데릭 플레밍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헤이, 반가워. 그 팀과 우리 팀이 라이벌 관계라며? 그럼 앞으로 자주 보겠군.”
“…한국말을 꽤 잘하네?”
“한수혁, 저 친구가 자꾸 한국말로 욕을 해서 나도 열심히 배웠지. 뭐, 와이프가 워낙 K-POP과 드라마 팬이기도 하고 말이야.”
“아아… 그렇군.”
데릭 플레밍의 호의적인 태도에 매지션스 포수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지금 그의 가슴은 크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데릭 플레밍이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계에서나 볼 수 있던, 지난 10년간 네 차례나 올스타에 선정된 세계 최고의 외야수 중 하나가 아닌가?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포수가 투수를 향해 초구 사인을 냈다.
‘바깥쪽 낮은 코스’
끄덕
전성기 시절 장타력과 정교함, 기동력을 동시에 갖췄다 평가받던 이 올스타 외야수는 나이를 먹으며 플레이스타일을 조금 바꿨다.
부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도루를 최대한 자제하는 한편, 웨이트를 통해 장타력을 키우는 데 주력한 것이다.
매지션스 포수는 생각했다.
이런 타자에게 몸쪽 공 승부는 절대 금물이라고.
다행히 오늘 선발로 나선 매지션스의 에이스는 구속보다는 제구력에 더 강점이 있는 타입.
스륵
고개를 끄덕인 투수가 데릭 플레밍의 바깥쪽 낮은 코스를 향해 힘차게 공을 던졌다.
그리고,
따아아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데릭 플레밍이 친 타구가 워리어스 필드 좌측 펜스를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일반적인 한국 타자라면 잘해야 3루 땅볼, 혹은 좌익수 플라이가 되었을 코스의 공이 펜스를 향해 쭉쭉 뻗어나가는 모습에 매지션스 포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됐다! 크다!”
“좋아! 달려! 달리라고!”
“역시 돈값을 하는구나! 현질이 최고야!”
“데릭! 데릭! 데릭! 데릭!”
“세이프!”
그나마 다행이었다.
좌중간 길이가 125m에 달하는 워리어스 필드의 크기가 매지션스를 살렸다.
넘어갈 듯하던 타구가 좌중간 펜스 최상단을 맞고 그라운드 안으로 굴러 들었고, 그 사이 발 빠른 데릭 플레밍은 3루까지 진출했다.
경기 시작과 함께 맞이하게 된 무사 3루 위기.
지이이이잉
스피커가 찢겨져 나갈 듯한 강렬한 베이스 연주음과 함께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2번 타자 투수 한수혁]“우아아아아아아아아!”
“한수혀어어어어억!”
“네가 누구인지 보여줘! 매지션스 저 빌어먹을 놈들을 박살 내줘!”
“오빠아아아아!”
그라운드 위 수비 위치를 조정하던 매지션스 야수들이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워리어스 필드를 가득 메운 45,000명의 대관중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한수혁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장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끔찍하기까지 한 그런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한국 스포츠사에 이런 절대적인 입지를 가진 선수가 또 있었을까?
아니, 단언컨대 예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선수는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곳에 모인 관중들이 목이 터질 듯한 큰 목소리로 한수혁의 이름을 연호하는 것이다.
“이봐, 표정이 왜 그래? 집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서, 서, 선배님!”
메이저리그에서였다면 시비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는 말에 생각지도 못한 답이 날아오자 한수혁이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수혁이 미국으로 떠난 후 KBO에 데뷔한, 그래서 별다른 접점이 없는 후배 선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의가 아닌, 동경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말이다.
새삼 이곳이 미국이 아닌 한국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눈만 마주치면 주먹부터 날리고 보는 짐승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잊고 있던 감각이 떠올랐다.
“음, 내가 괜히 말을 시켰나 보네. 나중에 시간 되면 식사나 한번 하는 걸로 하고 오늘은 야구나 하자고.”
“시, 식사요? 정말인가요? 언제요? 저는 오늘 당장이라도 괜찮습니다!”
허둥거리는 포수에게서 눈을 뗀 한수혁이 마운드 위 투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난 시즌 우승의 주역인, 유난히 하얀 얼굴이 인상적인 매지션스의 에이스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끄덕
한참 동안 사인이 오갔고,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 마치 투명인간처럼 보이는 매지션스의 에이스가 땀을 뚝뚝 흘리며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파앙
“볼.”
포수가 제자리 점프를 하고서야 간신히 잡을 수 있었던 폭투에 가까운 공.
타석에 서 있는 것만으로 상대 배터리를 패닉에 빠트린 한수혁이 배트를 가볍게 돌리며 타격 자세를 취했다.
또 한 번의 사인이 오가고, 제한 시간이 다 되어서야 간신히 다음 투구 동작에 들어가는 투수.
파앗
투수의 손끝에서 공이 발사되는 순간, 한수혁의 배트가 힘차게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바깥쪽 살짝 높은 곳으로 쏘아 들어오는 고속 슬라이더.
포심에 맞춰 휘둘러지던 한수혁의 배트가 중간에서 살짝 멈칫하더니 그 슬라이더의 궤적에 따라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따아아아아아악!
방금 전 데릭 플레밍 때보다 더한,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한수혁이 친 타구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KBO 투수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45도 각도로 솟구쳐 올라 엄청난 포물선을 그리며 넘어가는 한수혁의 타구 궤적.
터엉
그렇게 날아간 타구가 우측 펜스를 넘어 최상단 개폐식 천정 시설물을 강타하는 순간,
“우아아아아아! 돌아왔구나!”
“수혁아! 사랑한다! 보고 싶었다!”
“오빠아아아아아! 나 죽어!”
“한수혁! 한수혁! 한수혁!”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한수혁을 연호하는 관중들, 황제의 복귀 홈런포를 기념하는 불꽃놀이, 그리고 들을수록 모골이 송연해지는 한수혁의 테마곡.
그 광란의 도가니 속에 덩그러니 외롭게 던져진 매지션스 선수들, 그 선수들을 이끄는 김성수 감독의 입에서 또 한 번 욕설이 튀어 나왔다.
“시발… 진짜 저런 놈을 어떻게 상대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