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8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84화(385/412)
#384화. 신에게 대항한 자의 최후
한수혁이 국내 복귀를 선언하기 이전, 한국야구 전문가들은 2040년 KBO리그 판도에 대해 이렇게 예측했다.
4강 2중 4약.
일단 5년여간의 리빌딩을 무사히 마치고 2039시즌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서울 매지션스와 모기업의 풍부한 지원과 체계화된 시스템으로 꾸준히 가을야구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수원 커맨더스, 인천 레인저스, 그리고 구단주 교체 이후 팀을 완전히 갈아엎고 매년 한 계단씩 상승해온 부산 타이탄스가 4강으로 꼽혔다.
이어 여전히 리빌딩이 진행 중인 서울 워리어스와 대전 팔콘스가 2중, 그리고 나머지 4팀이 하위권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한수혁의 복귀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서울 매지션스였다.
지난 시즌 전력 대부분을 보존한 채 2년 연속 우승을 노리던 매지션스는 개막전에서 워리어스에 완패를 당한 탓인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고, 급기야 부상 선수까지 속출하며 중위권으로 굴러 떨어졌다.
반대로 한수혁의 복귀로 이득을 본 구단도 있었다.
워리어스가 상위권 팀들을 쥐 잡듯이 잡는 사이, 최대한 그 여파를 피해 몸을 웅크리던, 그 덕분에 시즌의 30%가량이 진행된 가운데 단독 2위에 올라 있는 부산 타이탄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확실해? 정말 올해는 해볼 만한 거야?”
“네, 회장님! 무슨 수를 써서든 팀을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겠습니다. 그 이후의 일은 하늘만이 알겠지만 최소한 한국시리즈 진출 목표만큼은 무조건 지켜내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쇼!”
“음.”
미국 유학 시절부터 야구에 관심이 많았던, 두 명의 형을 밀어내고 그룹 총수의 자리에 오른 부산 타이탄스의 새 구단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그룹의 망신거리나 다름없었던 야구단,
그렇기에 자신이 총수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그 안에 고여 있던 썩은 물들을 일거에 날려버렸다.
이런 식으로 하면 구단 운영 자체가 불가능할 거라 헛소리를 지껄이던 사장도,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던 단장도, 수십 년간 카르텔을 형성하며 구단을 좀 먹던 진산고와 경서고 무리들도,
구단주가 빼든 칼날에 모두 목이 날아갔고, 여기저기 상위권 팀에서 스카웃해온 인재들이 대신 그 자리를 메웠다.
지금 자신의 앞에서 한국시리즈 진출을 장담하는 남자를 포함해서 말이다.
지난 10년간의 공을 인정받아 단장에서 사장으로 진급한 구단주의 오른팔.
100년이 지나도 답이 없을 거라던 타이탄스의 개혁을 성공시킨 일등 공신.
그가 주장하고 있다.
한수혁으로 인해 라이벌 팀들이 박살 날 때 오히려 과감히 치고 나가야 한다고, 너무 대단한 괴물이 버티고 있어 우승까지는 장담할 수 없어도 적어도 41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도전해볼 만하다고, 그 이후의 일은 하늘에 맡겨보자고.
끄덕
마침내 구단주의 고개가 끄덕여졌고, 한국시리즈 진출을 위한 부산 타이탄스의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부산 타이탄스, 최하위 팀 광주 재규어스에 유망주 세 명 내주고 올스타 유격수 오정율 영입] [발목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간 용병타자와 계약 해지한 부산 타이탄스, 메이저리그급 용병 닉 햄프턴 대체 영입 완료] [FA미아로 남았던 3루수 오철대, 부산 타이탄스와 1년 18억 원 계약 체결]시즌 초반부터 계속된 주전 선수들의 부상과 노쇠화, 그리고 용병 선수들의 부진 등이 겹치며 최하위로 떨어진 광주 재규어스.
사실상 조기 시즌 포기를 선언한 그 팀에 유망주 셋을 내주고 올스타급 유격수 오정율을 데려온 부산 타이탄스는 이중 계약 시도 파문에 휩싸여 FA 시장의 미아로 남았던 오철대까지 팀으로 데려왔다. 다른 구단들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부상으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간 용병 타자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메이저리그급 타자를 데려왔다. 위약금 따위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렇게 다방면으로 선수단 보강에 성공한 부산 타이탄스의 기세가 활활 타올랐다.
창원 랩터스와의 3연전 스윕, 이어진 서울 파이터즈 3연전과 광주 재규어스전 3연전에서의 연속 위닝시리즈까지.
올스타급 멤버로 라인업을 꽉 채운 부산 타이탄스가 그 기세를 몰아 워리어스 필드에 입성했다.
타이탄스 선수단의 사기는 하늘 끝까지 치솟아 있었다.
당초 워리어스전에서는 힘을 아끼자던 계획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 정도면 우리도 해볼 만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경서고 출신 중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150㎞/h가 넘는 묵직한 공을 자랑하는 이규민이 마운드 위에서 강속구를 뻥뻥 뿌려댔다.
하지만,
따아아악!
따아악!
따아아악!
데릭 플레밍과 안치욱, 장덕수, 최재민에게 홈런 한 방씩을 얻어맞고,
따아아아아아아악!
한수혁의 마지막 타석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던진 공이 장외로 넘어가는 순간,
부산 타이탄스 선수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너무 자만했음을, 분위기에 취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쳐댔음을.
[최근 10경기 8승 2패로 승승장구하던 부산 타이탄스, 서울 워리어스에 12 대 2, 열 점 차 대패] [홈런 다섯 방에 무너진 와르르 부산 타이탄스 투수진, 가중되는 불펜의 부하] [일본 프로야구 출신 헥터 산티아고 “겨우 한 경기에 패배한 것뿐인데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 같다. 내일 나는 선발로 마운드에 오를 것이고 승리할 것이다. 그러니 나를 믿고 기다려 달라.”]한수혁의 프로 데뷔 초창기 시절 그의 활약을 직접 눈앞에서 목격한, 그리고 지난 10년의 시간 동안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를 응원하기도 한 한국선수들,
그리고 한수혁을 야구의 신으로 모시는 미국에서 뛰며 자연스레 그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선수들.
얼핏 보면 KBO에서 뛰는 모든 선수들이 한수혁에 대한 공포와 경외심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어디에나 예외가 있었다.
도미니카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일본프로야구 히로시마 도요카프에 육성 용병으로 입단하고 그곳에서 성장한,
그리고 마침내 일본 1군에 데뷔해 리그 정상급 투수로 성장한 육성형 용병 헥터 산티아고.
히로시마 구단의 짠돌이 행각과 부산 타이탄스의 끈질긴 구애에 결국 한국행을 결심한 부산 타이탄스의 용병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2번 타자 중견수 한수혁]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한수혁을 겪어보지 못한 올해 26살의 젊고 패기 넘치는 투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알고 있다.
아무리 직접 겪어본 적은 없다 해도 그 역시 야구선수이기에 한수혁이 미국에서 기록한 수많은 업적들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한수혁이 투타 겸업을 한 지도 어느덧 14년째에 접어들었다.
아무도 안 하는 데에는 항상 이유가 있는 법이다.
육체에 엄청난 부하를 걸리게 만드는 투타 겸업을 십 년 넘게 지속해온 그의 몸이 정상일 리 없다.
32살밖에 안 된 나이에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걸 생각하면 분명 어딘가 이상이 생긴 것이다.
그저 당장은 그게 겉으로 티가 안 날 뿐이다.
‘몽땅 다 개수작이라는 거지.’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세상을 볼 수 있는 법이다.
성인이 된 후 줄곧 일본이라는 좁은 곳에 갇혀 있던, 거기에 다른 선수들과도 거의 교류가 없이 혼자만의 세상에서 지내온 헥터 산티아고는 한수혁이 두렵지 않았다.
물론 올 시즌 한수혁이 한국에서 기록한 성적들이 엄청나기는 하다.
하지만 헥터는 그것이 투수들이 지레 겁을 집어먹고 도망간 탓이라 생각했다.
한수혁의 플레이 영상을 돌려 보았다.
그를 상대하는 모든 투수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바깥쪽 승부를 고집하다 큰 것을 얻어맞곤 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자고로 타자들이 가장 까다로워 하는 건 몸 쪽 깊숙한 곳으로 파고드는 빠르고 위력적인 공이 아닌가 말이다.
지금까지 한수혁을 상대해온 KBO의 투수들은 그런 중요한 진실을 외면했다.
그러나 자신만은 다르다. 나는 한수혁이 두렵지 않다.
그의 몸 쪽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반드시 승리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내년 시즌 연봉 협상에서 100% 이상의 인상을 요구할 것이다.
자신의 활약에 감동한 부산 타이탄스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고, 미국에서 날아온 스카우터들이 메이저리그 계약서를 내미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기가 잔뜩 오른 헥터 산티아고가 한수혁을 향해 힘찬 초구를 뿌렸다.
파아앙!
“볼.”
“이런 미친! 야! 너 똑바로 공 안 던져?”
“저, 저, 저, 정신 나간 놈이 누구한테 감히!”
“강판시켜! 저 미친놈을 강판시키라고!”
거의 무릎에 닿을 듯 몸 쪽 깊숙이 날아온 158㎞/h의 강속구.
한수혁의 한국 복귀 이후 그 어떤 투수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위협구에 관중석에서 난리가 났다.
‘같은 국적이라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편을 들다니, 지금 공은 어디까지나 정당한 승부였다고!’
쏟아지는 야유를 애써 무시한 헥터 산티아고가 다시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파아아앙!
“볼.”
매섭게 바라보는 주심의 눈빛에 헥터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절대 고의로 던진 게 아니다. 그저 생각했던 것보다 몸 쪽으로 조금 더 붙었을 뿐이다.
관중들은 둘째 치고 심판들조차 저렇게 노골적으로 한수혁의 편을 드니 투수들이 기를 못 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괜스레 억울한 마음이 들고, 남의 나라에 와서 차별을 받고 있다는 울분이 치솟았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헥터 산티아고가 다시 한수혁을 향해 다음 공을 뿌렸다.
그리고,
따아아아아악!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높은 코스에 형성된 공을 한수혁이 그대로 잡아당겼다.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정도의 굉음과 함께 총알 같은 타구가 외야를 향해 날아갔다.
그 순간 헥터의 입에서 걸쭉한 욕설이 튀어 나왔다.
“개자식……!”
스윙을 마친 한수혁이 그 자리에서 배트를 지팡이처럼 짚은 채 타구를 감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트 플립만 해도 열이 뻗칠 지경인데 저렇게 대놓고 자신의 타구를 감상한다고?
방금 전 자신이 던진 공이 한수혁을 맞힐 뻔했다는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선명한 분노만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터엉
“아우! 아까워라!”
“그게 거기서 휘네! 파울폴대 위치가 이상한 거 아냐?”
“괜찮아! 다시 한 번 더! 이번에는 좀 더 안쪽으로!”
까마득히 날아가던 거대한 타구가 폴대를 살짝 빗겨나 파울이 되었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한수혁이 다시 타격 자세를 취했다.
타자와 투수의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타자가 무어라 중얼거리는 모습이 투수의 눈에 들어왔다.
‘저 개자식, 분명 내 욕을 하고 있는 거겠지.’
사실 한수혁은 파울폴대의 높이를 조금 조정해야겠다고 혼자 중얼거린 것뿐이지만 이미 모든 것이 삐딱하게 보이기 시작한 헥터는 그가 자신을 욕하고 있다 오해하고 말았다.
‘죽여버릴 거다.’
그 순간, 일본 프로야구 시절 헤드헌터라 불렸던, 필요할 경우 아무 망설임 없이 상대의 머리를 향해 공을 던지던, 그로 인해 몸값에까지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던 헥터의 악동 기질이 발동되었다.
한수혁이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야구의 영웅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헥터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단 하나, 자신을 도발하고 욕한 저 건방진 놈을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개자식!”
마침내 결심을 마친 헥터가 한수혁의 머리를 향해 전력을 다해 공을 뿌렸다.
슈웅
퍼억!
“꺄아악!”
“야 이 미친!”
“저 미친 개자식이!”
그리고 곧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깨와 목 사이를 향해 날아가는 공을 한수혁이 피해냈고, 공은 홈플레이트 뒤 안전망에 처박혔다.
아주 잠깐 그 자세 그대로 멈춰 있던 한수혁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헥터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깨달았다.
‘잡히면 죽는다…….’
한수혁이 미국에서 보여주었던 엄청난 벤치클리어링 영상들이 뒤늦게 떠올랐다. 펀치 한 방으로 2미터가 넘는 거한들을 잠재우던 한수혁의 무시무시한 얼굴이 코앞에 닥쳐 있었다.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든 헥터가 글러브를 집어던지고 덕아웃 쪽으로 도망을 시작했다.
하지만,
꽈악
“…어딜 도망가. 이 개자식아. 머리로 공을 던져?”
“커허억!”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한 시즌 도루 50개는 거뜬하다 평가받는 한수혁의 빠른 발이 순식간에 그를 따라잡았다.
뒷덜미를 잡힌 헥터가 버둥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신을 도와줄 동료들의 손길을 기대하며.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한수혁의 주먹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돕고자 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돕기는커녕 두려워하고 있었다. 동료 선수들의 얼굴에는 괜히 끼어들었다가 대신 얻어맞을 것 같다는 두려움, 그리고 한수혁이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이거 놓… 꿰엑!”
퍼어억!
퍼어어억!
그것이 헥터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옆구리에 주먹이 꽂히는 순간 마치 질식이라도 한 듯 숨이 막혔고, 이어 턱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대로 기억이 끊어졌다.
삐이이이
“선생님, 환자 깨어났습니다! 이쪽으로!”
“그래? 어디, 내가 보겠네.”
“끄어어… 여기는 어디…….”
“환자분, 이거 보이시나요? 보이면 움직여 보세요.”
누군가의 경고처럼 헥터 산티아고가 눈을 뜬 곳은 병원 응급실이었다.
한수혁의 KBO 복귀 후 첫 벤치클리어링, 그리고 퇴장이 기록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