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8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85화(386/412)
#385화. 110마일
한수혁의 회귀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구단을 꼽으라면 단연 수원 커맨더스와 인천 레인저스를 들 수 있었다.
원 역사대로라면 2020년대와 2030년대를 양분했을 이 두 구단은 한수혁이 이끄는 워리어스에 치이고, 그가 미국으로 떠난 후에는 난데없이 각성한 매지션스와 타이탄스 등에게 밀리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리그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적극적인 모기업의 투자와 선진화된 시스템을 갖춘 구단들이라는 걸 감안하면 너무나도 아쉬운 성적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수원 커맨더스의 억울함이 더욱 컸다.
한수혁 데뷔 이전에는 인천 레인저스에 밀려, 그리고 한수혁이 한국에서 뛰던 시절에는 워리어스에 밀려, 급기야 그가 미국으로 떠난 후에는 매지션스에까지 밀려 만년 2위 팀이라는 불명예를 갖게 된 팀.
그런 치욕적인 역사를 씻어내기 위해 수원 커맨더스는 과감한 모험을 단행했다.
기존 팀을 이끌던 감독과 코치진을 모두 내보내고,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의 젊은 감독과 그를 따르는 새로운 코치진을 선임한 것이다.
한수혁과도 상당한 친분이 있는 명포수 출신의 정대한 감독과 그의 단짝으로 국내 최고 좌투수 중 하나라 불리던 최경재 코치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형님! 아니, 감독님. 어우… 속은 괜찮아요? 난 아직도 머리가 아파 죽겠네.”
“하아… 내가 이 새끼를 데려오는 게 아니었는데. 야, 넌 매지션스에서 은퇴했으면 거기서 코치를 하든가 하지, 왜 수원으로 돌아온 건데?”
“또, 또, 또 마음에 없는 소리한다. 나 없으면 누가 형님 속을 맞춰준다고. 됐고, 우리 감독실 가서 뭐라도 한 잔씩 합시다. 자판기에서 꿀물 뽑아 갈 테니 먼저 가 있어요.”
“꿀물은 됐고, 그래. 일단 감독실로 가자.”
잠시 후 정대한 감독과 최경재 코치 두 사람이 감독실 책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전날 달린 술자리의 여파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일이 있는 건지 두 사람의 표정은 어둡기 짝이 없었다.
잠깐 동안의 침묵이 흘렀고, 먼저 그 침묵을 깬 건 정대한이었다.
“인생 진짜 불공평하지 않냐?”
“뭐 그렇긴 한데, 갑자기 무슨 소리유?”
“누군 감독 취임 선물이 한수혁이고 누군 최경재라는 것 말이야.”
“이런 씨… 비교할 걸 해야지, 걔는 현역 선수이고 나는 코치로 합류한 거잖아.”
“어쨌든 내가 원하는 대로 코치진 구성해 준다고 해서 신나서 감독 맡았는데, 뒤돌아보니 성오 형님은 수혁이를 선물로 받았네? 인생무상이다.”
“흐흐, 뭐 어쩌겠어요. 그것도 그 형님 복이지. 그나저나 인천에 그 멍청이…….”
“멍청이 누구? 아, 헥터 산티아고 그 새끼?”
“네, 갈비뼈 골절에 하악골 골절에, 암만 빨라도 하반기나 돼야 복귀 가능할 거라네요. 재현이 형님 지금 열받아서 전화도 안 받아요.”
“지가 머리에 빈볼 던지다 얻어맞았으니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지. 그놈도 참 한심하지, 대체 무슨 깡으로 수혁이한테 시비를 건 거야?”
“걔가 원래 일본에서만 뛰어서 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경향이 있더라고요. 어쨌든 부산도 한국시리즈 한번 나가보겠다고 올인했는데 선발 하나가 날아가 버렸네요.”
“뭐… 우리 입장에서는 땡큐지. 우승까지는 무리여도 2위에는 도전해 봐야 할 거 아냐.”
“2위… 현실적인 목표이긴 한데 뭔가 좀 아쉽긴 하네요. 콩 소리 듣는 것도 이제 지겹고.”
“어쩌겠냐, 우리 팔자가 그런가벼. 시발, 감독이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수혁이 그놈이 있는 팀을 어떻게 이겨?”
“메이저리그 4할 70홈런 타자랑 20승 투수가 한국에서 뛰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긴 하죠.”
“하아… 진짜 수혁이 그놈 때문에 현역 말년에 그 고생을 했는데 이젠 감독이 돼서도 그놈 눈치 보게 생겼네.”
“흐흐, 그러니까 내가 그때 FA로 같이 워리어스로 옮기자고 할 때 갔으면…….”
“뭐라는 거야. 너한테 오퍼도 안 들어왔잖아. 그리고 덕수가 있는데 미쳤다고 나를 데려갔겠냐?”
“아뇨, 수혁이가 나중에 그러던데요. 그때 정말로 저랑 형님이랑 같이 데려갈 생각이었다고. 좋은 선수는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냐고.”
“…하긴, 그놈 재산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네. 크크크, 야, 진짜 쇼킹하지 않냐? 걔가 워리어스 구단주였다는 게? 아니, 그걸 떠나서 이 세상에서 제일 야구 잘하는 놈이 프로야구단을 두 개나 갖고 있다는 거 자체가 만화 아닌가?”
“맞아요, 거기에 얼굴도 잘생겨, 목소리도 좋아, 결정적으로 애인이 민예린이야……. 하아, 혼자서 만화 같은 인생 사는 놈이죠.”
마흔 초반의 나이에 수원 커맨더스라는 명문 구단을 이끌게 된 정대한 감독이 자신의 오랜 동료이자 후배인 최경재 코치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 전 저 녀석과 배터리를 이뤄 한수혁과 맞서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그 한수혁이 10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의 앞을 가로막을 거라는 걸, 아니, 그걸 떠나 또 한 번 KBO 리그에서 그 녀석과 맞상대하게 될 거라는 걸.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두 벌어진 일이고 자신은 이제 수원을 이끌고 한수혁과 대결을 펼쳐야 한다.
정말 거지 같은 건 부산과의 벤치 클리어링으로 인해 출장정지를 당했던 한수혁이 하필이면 오늘, 수원과의 경기에 맞춰 복귀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선발투수로서 말이다.
누군가 말했다.
한수혁이 선발로 등판하는 경기는 포기하라고.
개소리다. 그 뒤에 등판하는 2, 3선발이 최마루와 호세 카를로스다. 이번 시즌 나란히 1점 후반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는 탈 KBO급 투수들. 자칫하면 스윕을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시즌 초반에야 한수혁 등판 경기에 5선발을 배치하고, 다른 투수들과 맞대결을 하는 식으로 강약을 조정했지만, 그것 역시 뚜렷한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결국 승부를 벌여야 한다는 거다.
“가서 투수들 컨디션이나 다시 점검해 봐. 오늘은 불펜 총동원이다.”
“어라, 한번 해보시게요?”
“넌 이 새끼야. 프로팀 코치라는 놈이 경기 시작 전부터 포기할 생각이나 하고… 하, 내가 이런 놈을 믿고.”
“뭐래, 어제 술 마시면서 오늘 경기는 그냥 다 포기하고 신인들한테 기회 주겠다고 한 게 누구인데.”
“됐고, 이 짓 1년만 하고 그만둘 거면 마음대로 하고, 그거 아니면 가서 투수들이나 어떻게든 해봐. 우쭈쭈쭈 해서 사기를 올리든 안마를 해서 몸이라도 풀어주든 할 수 있는 거 있음 그게 뭐든 다 해보라고. 빨리 가봐.”
최경재를 내보낸 정대한 감독이 자신의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지난 선발 등판에서 창원 랩터스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둔 한수혁의 투구 영상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그 영상을 말없이 바라보던 정대한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시발, 이건 진짜 사기 아니냐고…….”
* * *
2020년 KBO 투수들의 포심 평균 구속은 143.5㎞/h였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30년, 그러니까 한수혁이 미국으로 진출하던 당시 평균 구속은 144.1㎞/h였으며 다시 1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간신히 145㎞/h대에 돌입했다.
구속 향상을 위한 선진화된 트레이닝 방법이 일반화된 상황에서 유독 KBO 투수들의 구속 향상이 더딘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들이 있었다.
갈수록 줄어드는 고교 야구 자원, 그로 인한 에이스들의 혹사와 부상, 거기에 여전히 구시대적 발상에 머물고 있는 몇몇 지도자들, 타 종목으로의 인재 유출,
이유가 뭐든 간에 현실은 그랬다.
여전히 한국야구에서는 150㎞/h가 강속구라 불렸고, 155㎞/h 이상을 던지는 투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수혁이 던지는 172㎞/h 투심은 그야말로 마구에 가까웠다.
부웅
“스윙! 아웃!”
서울 워리어스와 수원 커맨더스 간의 3연전 첫 경기.
출장정지가 풀린 한수혁이 선발 마운드에 올라 수원의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서른에 접어들며 한수혁은 자신의 피칭 스타일에 약간의 변화를 가했다.
포심의 비율을 살짝 줄이고, 팔꿈치와 손목에 무리를 주는 하드싱커 대신 다시 투심을 장착했다. 그리고 투구 이닝을 약간 줄이는 것으로 어깨에 가해지는 부담을 감소시켰다.
특히나 한국에 돌아와서는 변화구의 사용에도 약간은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구속에 거의 차이가 없는 포심과 투심, 거기에 중간 중간 섞여 들어오는 체인지업이 올 시즌 그의 주된 레퍼토리였다.
하지만,
거의 쓰리피치나 다름없는 투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타자들은 그 공에 전혀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150㎞/h 구속에 눈이 맞춰진 KBO 타자들로서는 170㎞/h를 넘나드는 한수혁의 공에 타이밍을 맞추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우아아아! 한수혁!”
“넌 최고야! 시발, 다 죽여버려!”
“한수혁! 한수혁! 한수혁!”
정대한 감독은 생각했다.
과연 이곳이 자신들의 홈구장이 맞긴 한 건가?
아무리 서울과 수원이 지척이라 해도,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 대부분이 한수혁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하고 있었다.
‘인생이란…….’
정대한 감독의 한숨과 함께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다.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 경기 전까지 총 아홉 번 선발로 등판해 평균자책점 0.29, WHIP 0.43, 8승 무패를 기록 중인 한수혁의 투구는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20대를 벗어나 30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만 먹으면 175㎞/h, 자신의 최고 구속을 찍을 수 있는 강인한 어깨와 지난 세월의 무게만큼 더 무르익은 변화구와 제구력.
올해 32세의 한수혁은 그야말로 투수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답을 제시할 수 있는, 야구가 생겨난 이래 가장 완벽하게 준비된 선수였다.
1회에 이어 2회와 3회, 4회, 그리고 5회까지,
무려 15명에 달하는 타자들이 한수혁의 공을 건드리지도 못한 채 연속 삼진으로 물러나자 수원 정대한 감독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잘 들어. 작전을 바꾼다. 무조건 초구에는 게스히팅이다. 오늘 수혁이 저놈 투구 패턴을 감안하면 어차피 확률은 삼 분의 일이야. 포심, 투심, 체인지업. 그중 하나 골라서 초구에 풀 스윙한다. 만약 그게 실패하면… 어떻게든 공 하나라도 더 던지게 만든다. 커트를 하든 볼을 골라내든,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했나?”
“네! 감독님!”
“좋아, 다행히 아직 0 대 0이야. 아무리 한수혁이라고 해도 투수 혼자 경기를 이길 수는 없는 거다. 가장 좋은 건 저놈에게서 선취점을 빼앗아 내는 거고, 그게 어렵다면 저놈이 내려갈 때까지 우리도 버티는 거다. 자, 다들 나가봐!”
말을 해놓고 생각해 보니 한수혁은 혼자서도 경기를 끝낼 수 있는 선수였다. 투타 겸업을 하며 완봉을 거두고 결승홈런을 때려 가져온 경기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선수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무런 도움도 안 될 것이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작전 지시를 내린 정대한이 다시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느낌이 안 좋아. 느낌이…….’
야구 판에 몸을 담근 지도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그의 직감이 말하고 있다. 오늘 뭔가 일이 생길 거라고.
마음이 조급해진 정대한은 선수들에게 약간은 무리한 지시를 내렸다.
포심과 투심, 체인지업, 세 개의 공으로 타자를 농락하는 놈을 상대로 초구 게스히팅을 지시했다. 그리고 만약 그 시도가 실패한다면 곧바로 투구 수 늘이기에 들어가라는 말을 덧붙였다.
정대한이 생각하기에 그건 지금 저 괴물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부웅
“스윙! 아웃!”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마치 이쪽의 작전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한수혁의 투구 패턴이 변했다.
커브와 고속 슬라이더, 그리고 스플리터.
연속으로 날아오는 변화구에 타자들의 배트가 허공에서 춤을 췄다.
초구 게스히팅 작전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고, 당황한 타자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덕아웃을 바라보았다.
부웅
“스윙! 아웃!”
그렇게 수원 선수들과 덕아웃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한수혁은 마치 구석에 몰린 쥐새끼를 잡아내듯 172와 173, 그리고 174㎞/h에 달하는 포심 세 개를 던지며 이닝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음 이닝, 정대한이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따아아아아악!
한수혁을 거르고 안치욱과의 승부를 선택한 수원의 투수,
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진 153㎞/h 포심이 안치욱의 배트에 걸렸고, 수비가 손 쓸 사이도 없이 우중간 펜스를 강타하는 2루타가 되며 마침내 0의 행진이 깨지고 말았다.
선취점을 등에 업은 한수혁의 기세가 더욱 타올랐다.
이제는 한 명의 타자를 상대할 때마다 투구 패턴이 변화했다. 포수로 출전한 박동석이 공을 잡는 것조차 버거워할 정도로 빠르고 현란한 투구가 시작되었다.
마치 타자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기가 막힌 볼 배합.
그냥 포심만 주구장창 던져도 치기 힘든 괴물투수가 볼 배합에까지 신경을 쓰고 있으니 KBO 타자들이 그 공을 쳐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느 순간부터 눈을 감은 채 개잡는 스윙을 시작한 수원 타자들. 그런 수원 타자들을 허수아비처럼 보이게 만드는 한수혁의 투구.
한 점 차 승부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경기가 마침내 9회 초에 이르렀다.
수원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이제 정대한의 목표는 이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었다.
“희생양만큼은 되지 말자. 어떻게든 쳐내는 거다. 너희도 프로다. 할 수 있다고!”
감독의 독려에도 수원 선수들의 표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7번과 8번 타자가 맥없이 삼진으로 물러나고, 결국 마지막 대타가 타석에 들어섰다.
이 순간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관중들이 행여 한수혁의 집중력을 깨트릴까 숨조차 멈춘 채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파아아아앙!
“스트라이크! 아웃!”
“커헉!”
“야, 이거 그거지? 그거 맞지?”
“맞아! 이런 시발! 한수혁! 미친! 사랑한다!”
“한수혁! 한수혁! 한수혁!”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관중들이 한수혁의 이름을 연호하고, 그라운드 위에 있던 워리어스 선수들이 모두 마운드로 달려갔다.
그런 광경을 씁쓸하게 지켜보는 수원의 타자, 그의 등 뒤로 방금 전 한수혁이 던진 공의 구속이 아련하게 새겨졌다.
177㎞/h.
기존 자신의 기록인 109마일, 175.4㎞/h를 넘어선 세계 최고 구속이 또 한 번 경신되는 순간이었으며, 동시에 한수혁의 한국 복귀 후 첫 번째 퍼펙트게임이 기록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