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87)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86화(387/412)
#386화. 미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야, 최마루. 넌 계획이 뭐냐?”
“무슨 계획?”
“뭘 모른 척을 해? 올 시즌 끝나고 어떻게 할 거냐고.”
“아아…….”
최마루와 박동석, 각각 워리어스의 2선발과 주전포수로서 팀의 1위 질주에 공헌하고 있는 동기 둘이 저녁식사 자리에 마주 앉았다.
산처럼 쌓인 갈비찜을 말없이 바라보던 최마루가 박동석의 말에 젓가락을 툭 내려놓았다.
“내가 밥 먹는데 괜한 걸 물어봤나? 야, 일단 먹고 얘기하자. 여기 너 제일 좋아하는 집이잖아.”
“됐다. 안 그래도 속도 더부룩한데 네가 밥 먹자고 해서 따라온 거야. 난 그냥 국수나 한 그릇 할려니까 고기는 네가 다 먹어라.”
“흠, 뭐 그러던지.”
고개를 끄덕인 박동석이 갈비찜을 다 먹어치우는 사이, 최마루 역시 국수 한 그릇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후식으로 나온 매실차를 앞에 놓고 두 사람의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다 먹었으니까 얘기해보자. 어쩔 생각이냐, 남을 거야?”
“음…….”
한수혁의 1년 후배이자 워리어스 토종 선발진의 기둥인 최마루는 첫 번째 맞은 FA에서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워리어스 잔류를 선택했다.
조건 자체도 가장 좋았지만 무엇보다 한수혁이 자신에게 물려준 등번호 1번, 그것을 등에 걸고 워리어스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마루는 한수혁이 자리를 비운 사이 워리어스의 에이스로 성장했다.
임준영과 천상진이 나이를 먹으며 공백이 된 워리어스 에이스의 계보를 훌륭하게 계승해 낸 것이다.
그리고 올 시즌이 끝난 후 최마루는 두 번째 FA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나부터 묻자. 동석이 넌 어쩔 건데?”
“나? 나랑 재민이는 현실적으로 해외 진출은 힘들잖아. 당연히 워리어스에 남아야지. 물론 제안이 들어온다는 가정 하에 말이야.”
이번 시즌이 끝난 후 FA 자격을 취득하게 되는 건 최마루뿐만이 아니었다.
입단 동기이자 친구인 포수 박동석, 지명타자 최재민, 거기에 1년 선배인 안치욱까지, 무려 4명의 핵심 선수가 FA 자격을 취득할 예정이다.
지금 박동석이 말하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메이저리그 팀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는 투수 최마루와 달리 자신과 최재민은 현실적으로 미국 진출은 힘들지 않겠냐는 것.
박동석은 포수라는 포지션상 해외 진출이 어려웠고, 청각장애를 가진 최재민은 해외는 고사하고 KBO에서도 워리어스가 아니면 원활한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그렇구나. 음…….”
“아, 치욱이 형님도 얼마 전에 에이전트 선임했다더라. 수혁이 형님이 소개해준 거 같아. 그렇다는 건 미국 진출을 노리신다는 거겠지?”
“그 형님은 당연히 도전해 봐야지. KBO에서 뛰긴 아까운 실력이신데.”
“그렇게 치면 수혁이 형님은…….”
“수혁 형님은 음… 으음…….”
잠깐 다른 곳으로 새려던 이야기를 다시 핵심으로 끌고 온 건 박동석이었다.
“어쨌든 마루야. 너 미국 갈 수 있으면 꼭 가라. 이제 한국에서는 할 만큼 했어.”
“음.”
“문제는 시애틀에서 너한테 제안을 줄까 그건데…….”
“…거기 선발이 너무 빵빵하잖아. 야, 솔직히 말할게. 나도 미국 가볼까 생각은 드는데 시애틀 아니면 싫다. 이유는 굳이 말 안 해도 알지?”
최마루의 말에 박동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십수 년을 붙어 다닌 사이다.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뻔하다는 뜻이다.
야구선수 최마루의 인생 목표는 한수혁처럼 되는 것이다.
비록 그처럼 투타겸업까지는 할 수 없지만 투수 한수혁의 뒤를 쫓는 것이 최마루에게는 가장 강력한 성장 동력원이다.
그런 최마루가 워리어스에서 시애틀로 이어지는 한수혁의 행보를 따라가고 싶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미국 최고의 명문구단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시애틀 선발진에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있냐 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그러지 말고 양키스나 다저스…….”
“훠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지난 2년간 최마루에게 가장 적극적인 구애를 펼치고 있는 양키스와 다저스, 두 구단의 이름이 나오자 최마루가 질겁한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었다.
박동석은 깨달았다.
자신의 오랜 친구인 최마루에게는 워리어스와 매리너스, 두 개의 선택지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선발진이 풍부한 매리너스의 오퍼를 받으려면 조금 더 분발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기에 박동석은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야, 최마루. 너 올스타 브레이크 때 뭐 할 거냐? 올스타전 등판 말고는 스케줄 없지?”
“뭐… 그렇긴 하지?”
“됐다. 그럼 나랑 어디 좀 가보자. 시간 통째로 비워놔.”
“가자고? 어딜?”
“다 널 위해서 하는 거니까 입 닥치고 따라와. 자, 차 다 마셨으면 집에 가자. 가서 푹 쉬고 내일 경기 준비해야지.”
박동석이 얼마 전 있던 한수혁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동석아, 마루 저놈 요즘 밸런스가 좀 이상하지 않냐?’
‘어, 수혁이 형님. 형님도 그렇게 느끼셨어요? 저도 뭐라 말을 해주고 싶은데 확실한 게 하나도 없어서.’
‘음, 겨울에 체력 훈련이 부족했나. 저거 딱 힘이 부족할 때 나오는 현상인데… 당장 임시 조치라도 해야 할 거 같은데…….’
‘임시 조치요?’
‘킥킹 동작에서 억지로라도 잠깐 동작 멈추게 하고, 팔 각도도 살짝 올리고, 음, 그래, 밟는 투구판 위치도 중앙으로 반보 정도 옮기고, 일단 그렇게 하면 던지는 게 좀 더 편해질 거야. 내가 제이콥한테 말 해놓을 테니까 올스타 브레이크 때 네가 데리고 가서 손 좀 봐줘라. 일단 올 시즌은 그렇게 넘겨보자고.’
‘차라리 형님이 직접 말씀해 주시지, 왜 저한테……?’
‘나 쟤 부담스러워. 뭐 한 마디만 하면 자꾸 은혜가 어떻고, 충성이 어떻고.’
‘아…….’
짧은 회상을 마친 박동석이 최마루를 향해 말했다.
“넌 진짜 수혁이 형한테 잘해라.”
“흠, 뭔지 몰라도 그건 너무 당연한 소리 아닌가?”
“됐다. 그만하고 빨리 집에 가자. 할 일이 많다.”
박동석이 친구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워리어스가 아닌 다른 구단의 지명을 받았다면 자신과 친구의 야구 인생은 어떻게 변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즐거울 수는 없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수혁이 형님…….’
두 사람에게 한수혁은 그냥 야구 선배가 아닌, 그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춰주는 등대와도 같았다.
* * *
홈런 타자는 팬들을 기쁘게 하고, 좋은 투수는 감독을 기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팀을 운영하는, 혹은 감독하는 입장에서는 확실한 선발 투수만큼 중요한 게 없지만, 가볍게 경기를 즐기는 팬들 입장에서는 홈런만큼 눈을 즐겁게 하는 플레이가 없기 때문이다.
연봉액수와 상관없이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슈퍼스타의 자리는 언제나 타자였다는 게 그것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야구선수 한수혁의 경우 투타 어느 쪽에 더 가중치를 둬야 하는 것일까?
매년 4할이 넘는 타율과 70개 이상의 홈런, 거기에 경기수보다 많은 타점을 기록하는 타자, 그리고 0점대의 평균자책점에 20승 내외의 승리를 보장하는 선발투수.
둘 중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건 보는 관점에 따라 그 판단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 워리어스 한수혁 “나는 내 본질이 투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팬들이 내 홈런에 더 열광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두 포지션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 [투수 한수혁, 타자 한수혁, 둘 중 어느 쪽을 고를 것이냐는 질문에 야구 전문가들 30명 중 17명이 투수 한수혁 선택] [수원 커맨더스 정대한 감독 “WAR 같은 지표만 놓고 보면 타자 한수혁 쪽의 가치가 더 높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감독 입장에서 선발등판 시 거의 승리가 보장되는 선발투수 쪽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KBO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된 야구팬 대상 여론 조사, 투수 한수혁 VS 타자 한수혁… 응답자 천여 명 중 69.5% 타자 한수혁 선택] [워리어스 팬들 “야구를 보며 가장 즐거운 순간은 한수혁이 때려낸 거대한 타구가 담장을 넘어갈 때,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는 느낌.”]2040시즌 전반기, 한수혁이 투타 모든 면에서 감히 경쟁할 상대조차 없이 압도적인 독주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그의 뒤를 받치는 2인자이자 열렬한 추종자인 최마루가 마운드에 올랐다.
창원에서 펼쳐지는 랩터스와의 3연전 두 번째 경기.
어제 경기에서 한수혁의 7이닝 무실점 호투로 기선을 제압한 워리어스는 오늘 2선발 최마루를 앞세워 연승을 노리고 있었다.
“플레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최마루가 가장 존경하는 투수는 한수혁이었다.
얼마 전 야구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투수 한수혁 VS 타자 한수혁 논란에서 최마루는 아무 망설임 없이 투수 한수혁의 손을 들어주었다.
프로 입단 전부터 한수혁의 활약을 지켜봐온, 그의 열렬한 팬이자, 추종자,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최마루다.
한수혁이 미국으로 떠난 후 그가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하는 영상을 수도 없이 돌려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최마루는 깨달았다.
매 경기 170㎞/h 이상의 공을 뻥뻥 뿌려대는 세계 최고 구속 기록의 소유자 한수혁이 사실은 강속구 투수가 아닌 기교파 투수일지도 모른다는 걸.
아니, 확실히 그랬다.
투수 한수혁이 가진 진짜 무기는 빠른 공이 아닌, 자로 잰 듯 자신이 목표한 곳에 꽂아 넣을 수 있는 제구력과 경기 운영 능력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구단에 도입된 최신 투구 분석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익히고 그곳에 임의의 데이터를 넣어보았다.
한수혁이 170이 아닌 160, 아니, 150㎞/h의 공을 던진다고 가정했을 때 어느 정도 위력을 보일 수 있을지를 예측하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놀라웠다.
모든 예상 지표를 종합할 때 한수혁이 구속이 지금보다 20㎞/h 이상 하락한다 해도 그는 충분히 리그를 지배할 투수로 군림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한수혁을 따라 잡기 위해 단 1㎞/h라도 구속을 끌어 올리고자 노력했던 최마루는 그 순간 즉시 진로를 변경했다.
억지로 구속을 올리기보다는 항상 일정한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투구 매커니즘을 변경했고, 한수혁의 경기 운영 방식을 배우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 결과 최마루는 데뷔 4년차인 2031시즌, 임준영과 천상진의 뒤를 잇는 3선발로 떠올랐고, 나이를 먹은 두 사람이 뒤로 물러난 후에는 그 자리를 대신할 워리어스의 토종 에이스로 성장했다.
파앙
“스트라이크!”
“좋아, 최마루! 파이팅!”
“공 좋다! 조금만 더 빠르게!”
전광판에 찍힌 자신의 구속 157㎞/h를 바라본 최마루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 자신이 목표로 했던 최고 구속 100마일, 160㎞/h.
그것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은 더 좋은 무기를 갖게 되었다.
타자 무릎에 거의 닿을 듯 힘차게 꿈틀거리며 빨려 들어가는 위력적인 포심.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이들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공을 자유자재로 던지기 위해 지난 수년간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최마루는 생각했다.
존경하는 한수혁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제 이 정도면 스스로를 투수라 불러도 부끄럽지 않은 수준에 도달한 것 아니겠냐고.
부웅
파앙!
“스윙!”
157㎞/h 포심 뒤에 따라붙는 128㎞/h 체인지업에 타자의 배트가 맥없이 휘둘러졌다.
자칫 배팅볼이 될 수도 있는 이 공을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한수혁의 플레이를 수도 없이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그렇기에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수혁을 따라 잡는 건 무리겠지만, 적어도 그가 추구하는 투구의 이상형에 대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한 것 같다고.
그걸 위해 10년 가까운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지만, 조금의 후회도 없노라고.
파아앙!
“스트라이크! 아웃!”
“흐압!”
첫 타자를 삼구 삼진으로 돌려세운 최마루가 자기도 모르게 기합을 질러냈다.
이제는 정말 알 것 같다.
자신이 지금 뭘 해야 하는지, 한수혁의 뒤를 쫓아 여기까지 온 자신이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잘했다. 최마루.”
“수혁이 형님!”
“왜.”
“저 결심했습니다. 미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더 넓은 곳에 가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해 보고 싶습니다.”
그 말에 한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씨익 웃으며 그의 등을 두들겨 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최마루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