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8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87화(388/412)
#387화. 이게 대체 머여
시즌 60경기가 진행된 시점에서 41승 2무 17패, 승률 0.707에 달하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서울 워리어스.
감독 취임 첫해부터 팀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조성오가 출근길에 올랐다.
한때 야구 못하는 아버지 때문에 유치원에 나가기 부끄럽다고 엉엉 울던 아들은 이제 대학생이 되어 스스로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 그의 야구 인생을 묵묵히 지원해준 아내의 얼굴에는 굵은 주름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여보, 가면서 이거 약 꼭 드시고, 버스 안에서라도 한 숨 꼭 주무세요. 어젯밤에도 한 잠도 못 자는 것 같던데.”
“알았어. 고마워, 꼭 챙겨먹을게. 당신도 오늘 친정 잘 다녀오고. 장인어른하고 장모님께도 대신 안부 좀 전해드리고.”
아내의 배웅을 받고 집을 나온 조성오가 주차장 한켠에 서 있는 자신의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1, 2군 코칭스태프 전원과 팀장급 이상 프런트 직원 전원에게 지급된 최신형 자율주행차가 삐빅 소리를 내며 그를 반겼다.
위이이잉
원정길 버스에 타기 위해 구단으로 향하는 길, 사방이 꽉 막힌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차 안에서 조성오는 생각했다.
이렇게 부담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프로 데뷔 이후 줄곧 이 팀의 유니폼을 입었고,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코치를 거쳐 감독 제안을 받기에 이르렀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팀을 지휘하며 막강 워리어스 왕조를 구축한 전임 감독 이대준.
개인 사정으로 인해 지휘봉을 놓게 된 그가 후임으로 자신을 지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저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한국에 단 10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근 100여 명에 달하는 선수단과 프런트 직원들의 운명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프로야구 감독 자리에 오르고 보니 그때부터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경기에 이긴 날에는 그 기세를 이어가기 위해, 그리고 경기에 진 날에는 어떻게든 연패만은 피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팀이 이기든 지든 계속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고, 선수 시절에도 잘 먹지 않았던 각종 보약까지 입에 달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
조성오의 머릿속에 다른 9개 구단 감독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1위를 질주 중인 자신조차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 사람들 속은 어떨까 하는 동정심마저 들었다.
끼익
조성오의 차가 멈춰선 곳에는 이미 원정길 출발 준비를 끝낸 선수단 버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감독실에 들러 몇 가지 자료를 챙겨 나온 조성오가 버스에 올라탔다.
“나오셨습니까, 감독님.”
“오냐, 치욱이 넌 어째 얼굴이 팅팅 부은 것 같다. 밤에 또 라면 먹고 잤냐?”
“아뇨! 저 요즘 다이어트 합니다, 감독님.”
“흠, 다이어트 한다는 놈이 뱃살이… 어이구, 이거 누가 보면 임신한 줄 알겠다.”
“아앗, 후배들 있는 데서 인신공격은 그만…….”
안치욱의 뱃살을 잡고 농담을 해보았지만 뭔가에 눌린 듯한 무거운 기분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조성오는 알고 있다. 지금 이 기분은 자신이 무슨 수를 쓰던 간에 해소되지 않을, 프로야구 감독으로 살아가는 한 계속 달고 살아야 할 업보와도 같은 것이라는 걸.
짧은 한숨을 내쉰 조성오가 자신의 자리에 앉으려던 그 순간,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야, 한수혁. 빨리 빨리 안 다닐래? 너 늦잠 잔 거지?”
“뭐라는 거야. 나 화장실 다녀온다고 말했잖아.”
“맞습니다, 선배님. 한수혁 선배님이 오늘도 제일 먼저 나오셨습니다.”
“그래? 흠, 내가 오해했군. 좋아, 화해의 의미로 초코파이라도 하나…….”
“아침부터 설탕덩어리나 입에 넣고, 잘 논다. 안 되겠다. 안치욱, 넌 내려서 각오해. 죽음의 펑고다.”
“이놈은 내가 뭐라고 말만 하면…….”
가장 마지막에 버스에 탑승한 누군가를 본 순간,
그가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활짝 웃는 것을 본 순간,
조성오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온갖 잡생각과 고민들이 잠시나마 깨끗이 사라졌다.
마치 스모그가 낀 듯 멍하게만 느껴지던 정신이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맑아졌다.
타율 0.468에 39홈런 71타점, 평균자책점 0.31, 10승 무패를 기록 중인 이 팀의 기둥이자 선수단의 정신적 지주.
대체 왜 한국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전 세계 모든 야구선수들의 우상이자 슈퍼스타 한수혁.
“형… 아니, 감독님. 왜 그렇게 제 얼굴을 빤히…….”
“어? 어, 아냐, 수혁아. 이거 한 봉지 먹어봐라. 와이프가 챙겨준 건데 이게 기력회복에는… 아, 맞다. 도핑 검사 때문에 보약은 위험하지. 하아, 이걸 어쩌지. 내가 뭐라도 해줘야 할 텐데.”
“네?”
“아니다. 그냥 존재해줘서 고맙다고.”
“으음?”
지금 이 순간, 조성오는 한수혁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자신의 인생에 한수혁은 유일한 단비나 마찬가지였으니까.
* * *
“내가 보기엔 우리가 전생에 저놈한테 뭔가 큰 죄를 진겨.”
“형도 그렇게 생각하우?”
“그게 아니면 이럴 수는 없는 거지. 왜 하필 이 시점에 한국으로 돌아온 거냐고.”
“뭐, 들리는 말로는 원래 은퇴하려던 걸 민예린 씨가 간신히 뜯어 말려서 한국으로 돌아온 거라는 소리도 있고…….”
“그럼 차라리 진짜 은퇴를 하… 흠,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겨.”
“형, 방금 그 발언은 진짜 위험했어. 야구팬들이 들었으면 형 목부터 날려버렸을지도 몰라.”
“흠, 내가 뭔 소리를 했다고 그러는겨. 당최 모르겄네.”
한수혁의 존재로 인해 2인자라는 타이틀을 떠안게 된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생각하기에 그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는 바로 이들이었다.
조금 일방적이기는 했지만 한수혁의 데뷔 초창기 시절 국내 최고 투수 자리를 놓고 다퉜던, 국내에 이어 미국에서도 경쟁을 이어갔던 한국 역대 최고의 좌완선발 류한결.
그리고 아마도 한수혁이 없었다면 KBO 최고의 타자로 기록되었을 서울 파이터즈의 이찬호.
시애틀 매리너스와 같은 지구 소속인 LA에인절스에서 뛰며 단 한 번도 한수혁을 이겨보지 못한 불운의 아이콘인 두 사람이 팔콘스의 유니폼을 입고 대전 구장에 서 있다.
한때 리그 최하위를 독차지하며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이 팀은 지난 10년간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가을야구를 넘볼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고, 그 기세를 모아 팀의 레전드인 류한결과 LA에인절스에서 코치 연수를 마친 이찬호를 동시에 코치로 영입하며 신인선수 육성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대전 팔콘스의 투수코치 류한결, 그리고 타격코치 이찬호.
지금 이 두 사람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오늘 상대하게 될 워리어스의 중심타자 한수혁이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게 그놈 배트스피드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찬호 넌 이해가 가냐?”
“말도 안 되지. 그놈도 벌써 32살인데. 예전 나이로 치면 34살인 거잖아. 이제 슬슬 피지컬이 꺾일 나이도 됐는데… 그놈 얼마 전에 최고 구속 또 경신했지?”
“어, 기어코 177㎞/h 찍었더라. 허허… 심지어 그 구장 스피드건 되게 보수적인 거 알지? 미국이었으면 110마일은 확실히 넘겼을 거다.”
“암만 공인구에 차이가 있다 해도… 괴물 같은 놈.”
“웬수 같은 놈이지. 그놈 때문에 미국에서 고생한 거 생각하면…….”
시애틀 왕조가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를 넘어 메이저리그 전체를 지배하던 지난 10년간, LA에인절스는 시애틀의 대권에 도전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팀 중 하나였다.
억만장자 구단주가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고, 거기에 팜에서 길러낸 신인들의 재능이 동시에 만개하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같은 리그, 같은 지구에 역사상 최강의 팀이라 불려 마땅한 시애틀 매리너스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2034년부터 2039년까지 5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2위라는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만약 시애틀이 아니었다면 그 기간 에인절스는 한 개 이상의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는 팀이었다.
그런 팀에서 에이스와 중심타선으로 활약한 류한결과 이찬호.
결국 월드시리즈 반지를 하나도 끼지 못한 채 현역 생활을 마친 둘은 한수혁을 존경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원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승부는 승부지, 안 그러냐?”
“당연하죠, 형.”
“좋아, 그럼 내가 생각하기에 그놈의 약점은…….”
“약점은?”
“…읎어. 젠장, 그런 게 있으면 저놈이 이렇게 오래 해 먹을 리가 읎지.”
“난 또, 형이 뭔가 발견한 줄 알았네. 됐고, 우리 기본에 충실합시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에이스랑 상대 5선발이 붙는 경기인데 오늘은 꼭 잡아야지.”
“쯧, 암만 나이를 먹었어도 준영이 형이 5선발이라는 건 말도 안 돼. 사기라고, 저거.”
“어쩌면 준영이 형 상대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지금 워리어스 2군에서 선발 수업 받는 애들, 진짜 살벌하더라고. 구속도 구속인데, 슬슬 제구까지 잡혀가던데? 하반기쯤이면 걔들 1군에 올라올지도 모르겠더라고.”
“쯧, 수혁이 놈만 아니었으면 그 어린 새싹들 다 자라기 전에 미리미리 밟아줄 수 있었을 텐데.”
“뭐 어쩌겠어. 그것도 다 지들 복이지. 어쨌든 이제 슬슬 나가보자고. 경기 준비해야지.”
류한결의 푸념처럼 만약 한수혁이 KBO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직 제대로 성장을 마치지 못한 워리어스의 신인 투수들이 급하게 1군 무대에 올라와야 했을 것이고, 별다른 보호막 없이 프로 세계의 쓴맛을 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상상일 뿐이다.
그들 모두는 한수혁의 보호 아래 2군 무대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으며 다음 세대를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류한결의 머릿속에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2040년대, 중위권을 넘어 상위권 도약을 준비 중인 자신의 고향팀 대전 팔콘스가 한수혁의 위세에 밀려 영원한 2인자로 남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그가 워리어스 선수로 남아 있는 한 다른 팀에게는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아주 불길한 예감.
“염병, 하늘은 뭐 또 저렇게 쓸데없이 맑디야…….”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긴 류한결의 눈가에 눈부신 햇살이 쏟아졌다.
초여름에 들어선 대전 구장의 하늘은 구름 하나 없이 청명했다.
그 파란 하늘 아래서 열심히 경기를 준비 중인 후배 선수들을 보며 류한결이 탄식했다.
“아그들아… 이를 어쩌면 좋으냐. 저 괴물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언제나 그랬듯 그 어디서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류한결이 기대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혹시라도 한수혁의 컨디션이 좋지 않기를. 뭘 잘못 먹어 배탈이라도 나서 경기에 빠지기를.
하지만,
따아아아아아악!
경기가 시작되고 곧바로 터진 한수혁의 투런 홈런에 그 작은 기대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시즌 61경기 만에 터진 40호 홈런.
“이게 대체 머여… 진짜 홈런 100개쯤 칠 생각인겨?”
류한결의 중얼거림이 바람을 타고 그라운드 어디론가 흩어졌다.
혹시나 했던 기대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