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9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91화(392/412)
#391화. 미꾸라지 무리 속 메기
└ 0.458, 0.589, 1.105, 45홈런 88타점, 평균자책점 0.31, 12승 무패, WHIP 0.45. 흠, 뭐야? 생각보다는 저조한데? KBO 수준이 생각보다 꽤 높군.
└ 그 의견에 공감해. 이쯤이면 아예 리그가 박살이 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 젠장, 그나저나 이제야 중계권료 협상이 끝나다니, 이게 대체 말이 돼? 거의 70경기 이상을 놓쳤다고. 다시 보기도 안 되고 말이야.
└ 진정해, 그나마 지금이라도 해결된 게 어디야.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우리들의 신이 어떻게 플레이를 하는지 지켜보자고.
한수혁의 한국 무대 복귀로 인해 혜택을 본 사람, 혹은 집단 중에는 KBO도 포함되어 있었다.
갑작스레 발표된 한수혁의 한국 복귀 소식.
그 난데없는 소식에 패닉에 빠졌던 미국 야구계, 그중에서도 특히 한수혁 경기 중계로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던 방송계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해외 주요 OTT와 스포츠 채널들, KBO와 프로야구 전 경기 중계권 협상 시작] [메이저리그를 떠난 야구의 신, 그의 추종자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지만 중계를 통해서라도 그의 플레이를 계속 보고 싶다.” 한 목소리] [난데없이 찾아온 행운에 긴급회의 소집한 KBO, 적정 중계권료는 얼마?]세계 야구팬들이 한수혁을 사랑한 건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뛰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다른 선수들과의 경쟁 자체가 별 의미 없는, 혼자서 야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장인이었다.
한수혁이 펼치는 완벽한 플레이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계속 지켜보고픈 야구팬들이 각 나라의 스포츠 채널들을 들들 볶았고, 돈 냄새를 맡은 OTT들이 중계권 협상을 위해 급히 한국으로 들어왔다.
한 가지 아쉬운 건 KBO가 그런 글로벌 이슈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한국 프로야구를 해외로 전송할 일이 있을 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긴급회의가 소집되고,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KBO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깎으려는 해외 사업자들 간의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 2040시즌 전반기 종료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드디어 협상이 완료되었고, 한수혁의 플레이가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중계되기 시작했다.
이번 일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의 시장 규모가 급작스레 성장했다.
KBO 및 각 구단의 최고 수입원인 중계권료에 엄청난 상승 요인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KBO로부터 일괄적으로 중계권료를 배분받던 각 구단들의 수입이 대폭 증가했고, 이로 인해 적자를 탈출해 흑자로 전환하는 구단이 생겨날 정도였다.
야구선수 한수혁의 KBO 복귀가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였다.
└ 흠, 저 팀의 투수는 작년까지 시카고에서 뛰던 것 같은데?
└ 맞아. 메이저리그에 올라왔다가 패전 처리로 몇 번 뛰고 다시 마이너로 내려갔지.
└ 꽤 잘 던지는데? 마이너로 쫓겨난 녀석치고는 말이야.
└ 내가 보기에도 기량이 꽤 올라온 거 같아. 한국에서 지내면서 성장했나 보군.
└ 오! 다들 저 배트플립 봤어? 대단한데? 역시 한수혁의 나라답군! 어메이징해!
└ 저 정도는 기본이지. 유튜브에서 KBO 배트플립 모음을 검색해 봐. 메이저리그에서는 상상도 못 할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게 될 테니까.
그렇게 인터넷과 전파를 타고 한수혁의 플레이가 전 세계 야구팬들에게 배달되는 사이, 워리어스는 서울 파이터즈와의 3연전에 돌입했다.
* * *
“…젠장, 여긴 올 때마다 기가 죽는 것 같아. 같은 돔인데 이렇게 차이가 날 수가.”
“같은 돔은 아니지. 공사비가 다섯 배는 넘게 들었는데.”
“난 이게 제일 놀라워. 클럽하우스 자판기에 동전을 안 넣어도 음료수가 나오는 거 말이야. 헤이, 클락. 우리 한 개씩만 뽑아가자고. 너무 없는 티가 나잖아.”
모기업 없이 스폰서 비용과 구단 수입만으로 야구단을 운영 중인, 금세 망할 거라는 세간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허리띠를 바싹 졸라매고 32년을 버텨낸 서울 파이터즈.
그 팀의 선수들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원정팀 라커룸에 들어섰다.
2040년 현재, 한국에는 두 개의 돔 구장이 존재한다.
서울시가 소유한 최대 수용 인원 16,000명 규모의, 크기와 시설 면에서 전 세계 최악의 돔구장 중 하나로 꼽히는 고척 스카이돔.
그리고 서울시로부터 대지를 임대받아 워리어스 자체 자본으로 완성시킨 최대 수용 인원 45,000명 규모의,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구장 중 하나로 꼽히는 워리어스 필드.
“…잔디가 더 좋아진 거 같은데.”
“맞아. 얼마 전에 새로 깔았다고 하더라고.”
“돔 구장에서 천연잔디를 쓴다는 거 자체가 사기야. 개폐식 지붕, 저거 진짜 부럽네. 우린 인조잔디 중에서도 겨우 중간 레벨 제품을 사용하는데.”
“이런 데서 플레이하면 부상 위험도 확 줄어들 거 같아. 진짜 부럽긴 하네, 쩝.”
워리어스 필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돔 구장임에도 불구하고 인조가 아닌 천연잔디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메이저리그 기준에 맞춘,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한수혁의 기호에 딱 맞춘 최상품을 말이다.
그것은 워리어스 필드의 천장이 고정식이 아닌 개폐식으로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나 눈이 오는 날, 혹은 경기에 지장을 줄 정도의 강풍이 부는 날을 제외하면 항상 지붕을 열어둔 상태로 운영되는 워리어스 필드.
거칠기 짝이 없는 인조잔디 때문에 매번 부상 위협을 달고 사는, 그로 인해 플레이 자체도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파이터즈 선수들에게는 너무나도 부러운 환경이었다.
“그래도 이번에 추가 수입이 들어왔으니 잔디 정도는 교체해 주지 않을까?”
“그 짠돌이 구단주가? 행여나…….”
“하긴, 맨날 인터뷰만 하면 돈이 없다, 돈이 부족하다, 적자 때문에 구단 운영이 불가능하다 징징대는 인간이…….”
한수혁으로 인해 각 구단에 추가로 배정된 중계권료만 대략 80억 원에 이른다. 기존 국내 방송사들로부터 받았던 금액에 육박하는 큰돈이다.
그럼에도 파이터즈 선수들의 얼굴에는 별다른 기대감을 느낄 수 없었다.
너무 오랜 시간 없는 살림에 길들여진 무기력한 아이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양 팀 간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군, 호세.”
“더할 나위 없이요. 오늘 경기 기대해도 좋습니다.”
“좋아, 믿어보도록 하지.”
등판을 앞에 두고 감독과의 대화를 마친 워리어스의 선발투수 호세 카를로스가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음 한국 무대 진출을 선택한 건 모험 대신 안정을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아내가 셋째를 임신했고, 아버지의 병세는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빅리거에 대한 꿈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가족들에게 보다 안정적인 생활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한수혁의 제안을 받고 망설임 없이 한국으로 날아온 호세 카를로스.
그 선택이 호세와 가족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메이저리그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연봉, 그리고 미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최고급 옵션의 맨션, 구단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자녀들에 대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에 만족한 호세 카를로스가 전력을 다해 초구를 뿌렸다.
뻐엉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들어오다 역회전하며 떨어지는 160㎞/h 하드싱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호세 카를로스 정도 되는 투수가 3선발로 나서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한수혁이 한국야구계를 망치고 있다고.
전 세계 최고의 선수가 한국에서 뛰는 것으로도 모자라 메이저리그급 용병들을 잔뜩 끌어들여 전체 리그의 밸런스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고.
물론 개소리다.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그 리그의 경쟁력은 자연스레 강화되기 마련이다. 아니, 강화되어야만 한다.
한수혁으로 인해 추가 중계권료 수입까지 들어오는 상황에서 투자에 인색하게 군다면?
그런 구단은 자연스레 도태될 것이고,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구단들끼리 또 치열한 승부를 벌이며 리그의 수준은 올라갈 것이다.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가 그렇게 발전해온 것처럼 말이다.
부웅
퍼엉
“스윙!”
또 다시 날아온 159㎞/h의 하드싱커.
경기 시작 전부터 왠지 모르게 어깨가 축 처진 파이터즈의 리드오프가 힘없는 헛스윙을 했고, 순식간에 노 볼 투 스트라이크 상황이 만들어졌다.
시즌이 중반에 다다른 지금, FA선수들의 이탈과 용병 농사 실패로 단독 최하위에 처진 파이터즈로서는 호세 카를로스의 공을 도저히 공략할 수 없었다.
그리고,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161㎞/h의 포심에 선두타자가 배트조차 내지 못한 채 그대로 삼진을 당하는 순간, 가뜩이나 축 쳐져 있던 파이터즈 덕아웃의 분위기가 장례식장처럼 변해버렸다.
한수혁이 한국으로 돌아온 지 불과 반년,
오랜 시간 제자리에 머물며 무사 안일주의에 빠져 있던 몇몇 팀들과 선수들은 이제 자신들도 변해야 할 때가 왔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예전처럼 그냥 흘러가는 대로 대충, 어떻게든 다른 팀과 선수들에 묻어 중간만 가려고 했다가는 그대로 도태될 것이라는 걸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파아앙!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 따라 유난히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호세 카를로스가 파이터즈의 1, 2, 3번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웠고, 이어 워리어스의 공격 차례가 돌아왔다.
[1번 타자 중견수 데릭 플레밍]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올 시즌 순수 연봉만 500만 달러에 달하는, 역대 KBO 용병 선수 중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워리어스의 리드오프가 타석에 들어섰다.
따아악!
망설임 없이 잡아당긴 타구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외야로 뻗어나갔다.
무사 주자 2루 위기.
이제 막 경기가 시작되었건만 파이터즈 투수의 이마에서 굵은 땀이 뚝뚝 떨어졌다.
지이잉
적의 사기를 뚝 떨어뜨리는 강렬한 베이스 연주음과 함께 세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저 상징적인 의미로 33억 원이라는 헐값에 팀을 위해 봉사 중인 한수혁이 등장했다.
물론 워리어스의 고액 연봉자가 이 둘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각각 300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을 받고 있는 선발투수 호세 카를로스와 마무리 투수 에릭 바클리, 그리고 오랜 시간 이 팀을 위해 헌신해온 임준영과 천상진, 장덕수 등의 베테랑, 여기에 한수혁을 제외하면 한국 최고라 불려야 마땅할 투수 최마루와 타자 안치욱까지 고액 연봉자가 수두룩했다.
올 시즌 예산 절감을 위해 선수단의 연봉을 동결하고, 거기에 용병 연봉마저 아끼다가 완전히 농사를 망쳐버린 파이터즈로서는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라인업이었다.
모든 프로스포츠가 그렇지만 특히 한 시즌 100경기가 넘는 장기 레이스를 치러야 하는 야구에서는 탄탄한 선수단을 구성하는 것이 곧 우승의 지름길이었고, 그것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풍부한 자본력과 적극적인 투자였다.
누군가의 말처럼 당장은 워리어스의 이런 적극적인 투자와 과감한 행보가 리그의 밸런스를 깨뜨리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수혁을 제외하면 여전히 일본에 형편없이 밀리는, 심지어 대만에게도 절대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한국야구에는 이런 미꾸라지 속 메기와도 같은 존재가 필요했다.
따아아아아악!
한수혁이 때려낸 거대한 타구가 워리어스 필드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며 힘차게 날아갔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이 있는 힘을 다해 한수혁의 이름을 연호했고, 인터넷과 TV를 통해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던 전 세계의 팬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아주 오랫동안 한 자리에 고여 있던 한국 야구는 한수혁의 복귀로 인해 이제야 비로소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