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9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92화(393/412)
#392화. 이제는 말해야 할 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2040시즌 KBO 리그 전반기가 끝난 후 한국 야구 관계자들과 팬들의 반응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런 것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압도적일 줄은 몰랐다.
한수혁의 복귀와 데릭 플레밍, 호세 카를로스, 에릭 바클리 등 빅리거급 용병들의 합류, 거기에 지난 몇 년간 내리막길을 걷던 노장 선수들의 분전에 힘입은 워리어스는 전반기 80경기에서 55승 4무 21패, 승률 0.723이라는 무지막지한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를 지배했다.
뿐만 아니었다.
이 팀의 주인이자 직전 시즌 메이저리그 MVP이자 사이영 위너였던 한수혁은 전반기 타자로서 타율 0.457, 출루율 0.586, 장타율 1.102, 47홈런 97타점, 투수로서는 평균자책점 0.32, 13승 무패, WHIP 0.41이라는, 만화에서조차 나오면 욕먹을 말도 안 되는 성적을 기록하며 KBO를 폭격했다.
약 500만 표가 쏟아진 KBO 드림올스타팀 외야수 부문에서 한수혁이 전체 득표 중 80%가 넘는 420만 표를 획득하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워리어스와 한수혁의 독주로 점철된 전반기가 끝나자 가을야구에 도전할 팀들의 윤곽이 서서히 가려지기 시작했다.
1위 서울 워리어스
2위 부산 타이탄스
3위 수원 커맨더스
4위 서울 매지션스
5위 인천 레인저스
6위 대전 팔콘스
7위 창원 랩터스
8위 광주 재규어스
9위 대구 버팔로스
10위 서울 파이터즈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2위를 차지한 부산 타이탄스였다.
한수혁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무이한 투타 겸업 선수라 할 수 있는 박장열과 레인저스와 매지션스에서 데려온 거물급 타자 두 명, 그리고 한수혁에게 얻어맞고 시즌 아웃된 헥터 산티아고 자리를 대신한 새로운 용병투수까지.
그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룬 부산 타이탄스는 0.592라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승률을 기록하며 2위 자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전통의 강호인 수원 커맨더스와 당초 우승을 노렸지만 워리어스에 계속 덜미를 잡힌 매지션스, 감독 선임에 문제가 있었다 지적받고 있는 인천 레인저스, 전반기 대진운이 나빴다 평가받는 대전 팔콘스 등이 중위권을 형성하며 치열하게 치고받고 있었다.
가을야구 커트라인인 중위권 싸움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을 앞두고 다양한 설들이 야구계에 퍼져나갔다.
시즌을 포기한 파이터즈가 주전급 선수들을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는다더라, 대전 팔콘스 구단주가 단장의 뚝배기를 깼다더라, 인천 감독이 또 한 번 노환으로 쓰러졌다더라 등등.
역시나 가장 큰 관심은 트레이드 마감 기한을 눈앞에 둔 각 팀들이 얼마만큼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냐 하는 것이었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이미 완성된 전력을 갖췄다 평가받는, 어쩌면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기록될지도 모를 서울 워리어스는 별다른 움직임 없이 내부를 추스르며 하반기를 준비했다.
드림 올스타와 나눔 올스타로 나뉘어 진행된 올스타전에서 왼손 투구와 왼손 타격을 선보인 한수혁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MVP로 선정되었고, 모든 팀들에게 이틀간의 휴식일이 주어졌다.
하반기 워리어스의 첫 번째 상대는 서울 라이벌인 매지션스.
이벤트 형식으로 제주도에서 치르게 될 하반기 첫 3연전을 위해, 그리고 휴식일을 이용해 미뤄두었던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한수혁과 민예린, 그리고 안치욱이 한 발 먼저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 * *
“아이고, 어서 오게마심. 공항에서 바로 완? 밥은 먹언?”
“흠.”
“엄마, 사투리 쓰지 마요. 못 알아듣는다니까. 그리고 저기 집 밖에 계신 분들 힘들지 않을까요? 뭐 이렇게 많이 모이셨대?”
“어휴, 그래. 내 정신 좀 봐. 미안해요. 아니, 말 놓으라고 했지? 미안하다. 기껏 쉬러 왔는데 보는 눈이 너무 많지? 다들 우리 동네 구세주 얼굴이라도 한 번 봐야겠다고 하도 졸라서… 내가 나가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해놓을게. 잠시만!”
제주 서귀포시에 위치한 조용한 시골마을 예례동.
그곳은 안치욱의 고향이자 한수혁의 별장이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이곳 마을에서 한수혁은 그야말로 귀빈 중의 귀빈이었다.
그는 대단한 야구선수이자 재력가이기도 했지만, 그걸 떠나 중국 자본으로 인해 마구 파헤쳐질 뻔했던 동네를 구해낸 영웅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한수혁 입장에서는 별 것 아닌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를 위해 겸사겸사 진행한 일에 불과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었다.
한수혁이 이곳에 땅을 사고, 은퇴 후 이곳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살고 싶다는 말을 남긴 후 이곳 예례동 일대는 일종의 성지가 되었다.
마을 외곽에 동계 연습장과 갖가지 훈련 시설들, 그리고 야구 박물관 등의 시설들이 하나둘 건설되고, 이곳에 한수혁의 손길이 닿았다는 게 알려진 후에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되기도 했다.
감귤 농사 외에는 별다른 수입원이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며 보다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동네 사람들에게 한수혁이 어떤 존재일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동네 좋구나. 조용하고, 공기도 맑고. 바닷가인데도 별로 습하지도 않네.”
“어, 이 동네가 좀 그렇지. 농사 짓기도 딱 좋아.”
“음.”
동네 사람들의 정성이 담긴 저녁식사를 마친 한수혁, 민예린, 안치욱 세 사람이 집을 나와 산책길에 올랐다.
가로등조차 거의 없어 달빛과 별빛이 전부인, 그럼에도 길을 걷기에는 충분히 밝은 제주의 밤.
길을 걸을 때마다 동네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지만 안치욱 어머니가 신신당부를 한 덕분인지 직접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야, 한수혁. 이제 저쪽으로 가면 돌담길 따라서 동네 한 바퀴 돌 수 있거든. 그 길만 계속 따라가면 다시 여기로 나오게 될 거야. 길 잊어버리지 말고.”
“어디 가게?”
“어, 나도 고향 온 김에 친구 좀 만나봐야지. 예린 씨랑 같이 놀고 있어. 이따 밤에 집에서 보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치욱이 자리를 피해준 건 한수혁과 민예린,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였다.
시즌이 시작된 후에는 좀처럼 서로 시간을 낼 수 없었던, 그래서 이렇게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이 연인들을 위해.
“오빠, 저 이 동네 진짜 마음에 들어요. 따라오길 잘한 거 같아요.”
“그래, 나도 땅만 사놨지. 직접 오는 건 처음인데… 동네 좋다.”
“정말 나중에 은퇴하면 여기 와서 사실 거예요?”
“응, 처음에는 그냥 시애틀에서 지낼까 생각도 했는데… 역시 아닌 것 같더라고.”
민예린은 알고 있다. 한수혁이 한국에 남을 결심을 하게 된 건 그가 아끼는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 있기 때문이란 걸.
겉으로 잘 티를 내지는 않지만 한수혁이 그들을 많이 아끼고 있다는 걸.
“오빠가 사놓은 땅이 저기 박물관 건물부터…….”
“음, 거기서 눈에 들어오는 땅은 다 샀다고 보면 돼.”
“…대단하네요.”
“뭐, 중국 애들이 사려고 다 작업해 놓은 거라 따로 땅주인들 설득할 필요도 없었고, 그 김에 그냥 다 사버렸지.”
“오빠.”
“응?”
“저도 도시보다 시골이 좋다고 생각해요.”
“으응?”
“귤도 되게 좋아하고요, 보기보다 체력도 좋아서 농사도 자신 있어요.”
“흐음.”
“수영도 잘하고요. 물질을 해보진 못했지만 잠수도 아마 잘할 거예요.”
“으음, 예린아.”
“그냥, 그냥 그렇다고요. 우리 이제 들어가요. 가서 맥주 딱 한 잔만 하고 자요.”
집으로 향하는 길, 달빛에 비친 민예린의 얼굴이 살짝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순간 한수혁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제 때가 되었음을, 오랜 시간 자신의 곁에 있어준 고마운 연인을 위해 자신이 용기를 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자고,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둘이 함께 이겨내 보자고.
그렇게 얘기해야 할 때가 임박했음을,
“오빠, 나 여기서 사진 한 장만요. 밤이라 잘 안 나올려나? 그래도 너무 이뻐서.”
그날 밤, 가로등 불빛 하나 없는 제주의 어느 시골 밤길에서 한수혁은 깨닫고 말았다.
* * *
“에, 70만 도민을 대표해 다시 한 번 한수혁 선수의 제주 방문을 환영하며, 앞으로도 도정 차원에서 한수혁 선수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응원을…….”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온몸에 힘이 쭉쭉 빠지는 제주도지사의 격려사, 그리고 시구와 함께 제주에서 진행되는 서울 라이벌 두 팀 간의 3연전이 시작되었다.
“일단 야구장부터 하나 지어야 할 거 같은데? 혹시 여기에 구장 지으면 1년에 몇 경기라도 정기적으로 치를 수 있을까, 형?”
“음, 한번 알아볼까?”
“응, 알아봐줘. 아무리 프로팀이 없다고 해도 이건 좀 심한데.”
제주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제주종합경기장 야구장, 프로 경기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경기장을 바라보던 한수혁이 박성훈을 향해 말했다.
바쁜 구단 운영에서 잠시 벗어나 반쯤 휴가를 간다는 마음으로 제주도로 날아온 박성훈이 얼마 전 한수혁이 한 말을 떠올렸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신규 팀 창설하겠다는 소리는 아직 안 나오지? KBO에서 12개 구단 만들어서 양대 리그제 하고 싶다고 한 게 몇 년 됐잖아?’
‘뭐, 여기저기 알아는 보고 있는 거 같은데 한꺼번에 구단 두 개 만드는 게 쉬울 리가 없지. 아직은 그냥 서칭 단계라고 보면 돼.’
‘그래? 그럼 만약에 한 개 팀 창설이 확정이라고 하면? 그러면 일 진행이 좀 빨라질까?’
‘응? 혹시 무슨 말 들은 거 있어? 어디서 야구단 만든대?’
‘내가 하나 만들어 볼까 해서.’
‘뭔 소리야. 워리어스도 있고, 미국에도 또 하나 갖고 있으면서 여기서 하나를 더 늘린다고?’
‘어, 갑자기 든 생각인데 강원도랑 제주도 연고 야구팀이 없잖아. 기왕에 제주도에 땅도 사놨겠다 한번 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은데.’
‘흠, 동일 리그에서 구단 두 개를 동시 소유하는 게 가능할까……. 일단 그건 두 번째 문제라 치고, 넌 그걸로 뭘 얻으려고? 야, 제주 연고 프로축구팀도 매번 죽 쑤잖아. 여긴 시장이 너무 작아.’
‘말 했잖아. 심심해서라고.’
‘심심해서 그런 일을 벌인다고?’
‘어차피 돈을 좀 쓰긴 써야 해. 그렇게 돈을 써대도 계속 잔고가 불어나서 감당이 안 되네. 내가 사업을 할 것도 아니고, 배운 게 이건데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야구단이나 하나 더 만들어볼까 하는 거지 뭐.’
‘부러운 놈… 돈이 넘쳐나서 그 짓을 하겠다니.’
‘흐흐, 아무튼 한번 알아봐줘.’
방금 한수혁이 한 말, 제주도에 야구장부터 하나 지으면 어떻겠냐는 말은 아마 예전에 한 그 말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한수혁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제주도와 협력해 새로운 야구장을 세우고, 거기서 1년에 몇 차례라도 정규 일정을 소화하고, 도내 고등학교 선수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그런 식으로 천천히 제주도에 야구를 보급하고…….
‘가만, 이거 마냥 불가능할 것 같진 않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며 쌓인 사업가의 감이 말해주었다.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고, 어차피 리미트 없는 투자가 가능한 한수혁의 재력을 생각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괜찮은 사업이 될 수도 있겠다고.
그렇게 박성훈이 새로운 사업 구상에 골몰하던 그 순간,
따아아아악!
거대한 타격음이 울려 퍼지고, 그 타구를 때려낸 한수혁이 손을 번쩍 들고 다이아몬드를 돌고, 오랜만에 프로야구를 보게 된 제주도민들이 목이 찢어져라 한수혁의 이름을 외쳐댔다.
신 구단 창설에 다소 부정적이었던 박성훈의 생각이 찬성 쪽으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