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9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93화(394/412)
#393화. 핏줄
“정말 대단하긴 대단하네. 국민영웅이라는 게 바로 저런 건가?”
“확실한 건 스포츠선수로서 저 정도 인기와 인지도를 가진 사람이 다시 나오긴 힘들 것 같습니다, 회장님.”
“음, CF 건은 여전히 어려운 거지?”
“송구합니다. 에이전트와 만나보기는 했는데 말도 제대로 못 꺼내봤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그렇고, 아예 광고 같은 건 찍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긴, 저 녀석, 개인자산만 따지면 나보다도 많잖아. 돈이 궁할 리 없으니… 그럼 형제로서 부탁을 해보면 되려나? 어쩌면 저 녀석, 한수혁이 아니라 천수혁이 될 수도 있었던 거잖아. 안 그래, 이 실장?”
오강 그룹 총수실, 아버지 천필주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그룹을 십여 년 만에 정상화시키는 데 성공한 2대 회장 천도하, 그가 입가에 웃음을 띠운 채 TV 속 한수혁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전대 비서실장의 주도 하에 애물단지 야구단이 듣도 보도 못 한 회사로 팔려나가던 그때,
천도하는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배다른 형제가 있다는 걸.
솔직히 말하자면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버지란 사람의 도덕성에 대해 별다른 기대가 없기도 했거니와, 그룹 경영권을 인계받아야 하는 중요한 상황에서 야구단에 신경 쓸 여력 같은 건 없었으니까.
그보다는 궁금했다. 남자 형제 없이 자란 그는 갑자기 생긴 동생이 어떤 사람인지 그게 궁금할 뿐이었다.
그리고 1년도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자신의 배다른 동생이 세상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
“저 녀석, 눈매가 아버지를 닮았어. 저것 봐. 저런 눈을 가진 사람은 절대 적으로 만들면 안 돼. 이 실장도 내 말에 동의하지?”
“네, 둘째 도련님… 음, 죄송합니다. 한수혁 선수 눈매가 전대 회장님을 닮긴 하신 것 같습니다.”
“괜찮아. 죄송은 무슨. 둘째 도련님 맞지, 엄연히 아버지 피를 이은, 내 하나뿐인 동생인데. 편하게 불러도 돼.”
“송구합니다.”
“하, 아버지도 참. 저렇게 듬직한 동생이 있었으면 돌아가시기 전에 소개해 줬으면 얼마나 좋아. 이 실장은 알잖아? 내가 남동생 하나 있었으면 하고 얼마나 노래를 불렀는지 말이야.”
“아무래도 그때는… 혼외 자식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룹 이미지에… 아마 회장님도 그걸 염려하셨을 겁니다.”
“그랬겠지. 그런데 지금 봐. 욕을 좀 먹었다 해도 이쯤 되면 여론이 완전히 반전되었을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수혁이잖아. 저 녀석이 오강 그룹 오너 일가라고 했으면 주가에 도움이 되면 됐지, 마이너스는 아니었을 거야.”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 밝히기엔 너무 늦었지. 우리에게도, 저 녀석에게도.”
천도하 회장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안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제 와서 모든 걸 밝히기에 자신이나 동생이나 너무 많은 걸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특히나 대중의 평판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동생에게 혼외자라는 타이틀이 붙는 건 자신도 원치 않는다.
그저,
이 모든 일을 벌여놓고 무책임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나저나 회장님. 지난번에 지시하신 일 말입니다.”
“응? 일? 무슨 일? 아아, 그거?”
“네, 야구단 인수에 대해 유성 그룹 측과 논의를 해봤는데 인수가가 너무 턱없이 책정되어서 일단 보류시켜 놨습니다.”
“흠, 그 양반 여전히 욕심이 철철 넘쳐흐르나 보네. 주주들 여론 때문에 야구단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 업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 와중에 본전은 찾아야겠다 이건가?”
“회장님.”
“말해봐, 이 실장.”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제 와서 굳이 다시 야구단을 인수하는 게 그룹에 어떤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실장 말이 맞아. 그룹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겠지. 그냥, 뭐랄까… 어릴 때부터 하도 아버지 따라 야구장을 다녀서 그런지 경영권이 안정되니까 다시 야구단을 하나 갖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워리어스를 다시 달라고 할 순 없잖아? 그럼 수혁이한테 크게 혼날걸? 하하하.”
“네, 무슨 말씀이신지는 이해했습니다. 어쨌든 저와 비서실 의견은 인천 레인저스를 당장 인수하는 건 적절치 않다 정도로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흠, 그렇다 이거지……. 그럼 이 실장, 차라리 말이야. 새로 만드는 건 어떨까?”
“새로 만든다? 11구단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KBO에서 12개 구단 체제로 가려고 벼르고 있다며? 그 기류에 편승해 보는 건 어때? 후보지가 어디라고 했더라, 강원도, 전라남도, 제주도, 그렇게 세 곳인가? 그럼 강원도가 괜찮겠네. 우리 연구단지가 그곳에 있잖아?”
“으음… 나쁜 생각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게 생각보다 그리 쉽지는…….”
“아니야, 지난번에 신문 보니까 수혁이 저 녀석이 제주도에 야구단 만들고 싶다, 뭐 그런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거든. 그럼 그거랑 묶어서 11, 12구단을 동시에 창단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그 김에 형제들 간에 우애도 좀 다지고 말이지. 내 아이디어 어때?”
비서실장의 머릿속에 남동생 하나 갖고 싶다 부모님을 졸라대던 천도하 회장의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그제야 깨달았다.
워리어스가 매각될 때도 별다른 반응이 없던 회장이 이제 와서 왜 야구단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건지.
그의 관심은 야구단이 아닌,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길지 모를 동생과의 만남에 포커싱되어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비싼 돈을 주고 기존 구단을 인수하느니 처음부터 우리 그룹의 색채를 듬뿍 담은 새 구단을 만드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제가 직접 KBO 총재와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래. 어차피 야구단으로 돈 벌 생각은 없으니까 국민들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겸사겸사 그룹 홍보에도 활용한다는 마인드로 시작해 보자고. 그럼 부탁해요, 이 실장.”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구단명은 강원 코디악스, 어때? 우리 그룹 이미지에도 잘 맞고?”
“기억해 놓겠습니다.”
대화를 끝낸 천도하 회장이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이제 막 경기 준비를 마친 한수혁이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 타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즐거운 표정으로 동생의 경기를 지켜보는 회장,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비서실장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을 것 같은 한수혁의 단단한 눈빛은 분명 전대 회장을 쏙 빼닮아 있었다.
TV를 두고 서로 마주 선 두 형제를 바라보며 비서실장은 다짐했다.
‘회장님, 제가 동생분과 다리를 놓아드리겠습니다. 꼭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 * *
한수혁이라고 해서, 그리고 한수혁이 지키는 워리어스라고 해서,
시즌 전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올 시즌 워리어스의 승률이 7할을 넘어섰지만 반대로 말하면 10번에 3번은 패배한다는 뜻이고, 한수혁 역시 승리를 기록하지 못한 채 마운드에서 내려온 적이 몇 번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창원 랩터스와의 원정 3연전이 어느 팀의 손을 들어줄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시즌 출루율이 4할 7푼대에 육박하는 리드오프 데릭 플레밍이 오늘따라 단 한 번도 루상에 진출하지 못했고, 한수혁의 뒤를 든든히 받쳐온 안치욱이 급체로 인해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
그렇지만 그 둘을 뺀다 해도 여전히 워리어스의 전력은 막강했다.
무엇보다 마운드를 지키는 투수가 올 시즌 선발등판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한수혁이었으니까.
하지만,
따악!
“어, 어, 어! 야 이 씨, 그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박경배!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아우! 이 중요한 순간에!”
지난 시즌 백업 멤버에서 올 시즌 주전 자리를 꿰찬 신인 2루수 박경배.
6회 말 창원의 선두타자가 친 애매한 땅볼타구가 박경배의 글러브를 피해 외야로 빠져나가면서 경기의 흐름이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천금 같은 노아웃 주자 1루 상황을 잡게 된 창원 덕아웃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내기 번트를 지시했고, 그렇게 1사 2루 상황이 만들어졌다.
타임이 요청되고, 한수혁과도 대표팀에서 안면이 있는 창원의 베테랑 타자 장근영이 대타로 나섰다.
이제는 기량이 많이 쇠퇴했지만 프로 통산 타율 3할을 자랑하는, 장타력을 제외한 순수 컨택 능력만 보면 여전히 리그 수위급인 장근영이 한수혁의 초구를 받아쳤다.
따악!
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다.
172㎞/h에 달하는 강력한 포심에 장근영의 배트가 밀렸고, 그렇게 빗맞은 타구가 중견수를 향해 날아갔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백이면 백 외야플라이로 끝날 상황.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신인이 또 한 번 사고를 치고 말았다.
선발 등판한 한수혁을 대신해 중견수로 출전한 신인 서준석이 타구 낙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안 돼! 뭐 하는 짓이야!”
“아… 진짜… 이게 대체 뭐야…….”
힘껏 뻗은 서준석의 글러브는 결국 공에 닿지 못했고, 결국 평범한 중견수 플라이로 끝났어야 할 타구는 데굴데굴 외야 펜스 앞까지 굴러가고 말았다.
신인들의 연속 실책으로 인해 어이 없이 점수를 내준 한수혁.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다음 타자 둘을 연속 삼진으로 처리하며 남은 이닝을 완벽히 봉쇄했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됐어, 고개 들어. 실수라는 거 알아. 너희 나이 때는 그럴 수도 있어. 앞으로 잘하면 되지, 뭘 그렇게 기죽어 있어?”
당연한 말이지만 워리어스 선수들, 특히 그중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한수혁과 함께 뛰게 된 신인급 선수들에게 그는 신이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메이저리그를 박살 낸 위대한 커리어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고, 심지어 이 구단의 주인이기까지 하다.
그런 위대한 선수의 경기를 망쳤다는 데 후배들은 절망했고, 또한 그 위대한 선수의 격려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따악!
“아웃!”
어떻게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덤벼드는 워리어스 선수들.
창원 투수들은 한수혁에게 단 하나의 스트라이크도 던지지 않았고, 워리어스는 좀처럼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7회와 8회가 순식간에 지나고, 드디어 워리어스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기회만이 남게 되었다.
[7번 타자 2루수 박경배]운명의 장난인지 그 마지막 공격의 선봉에 서게 된 건 6회 결정적인 실책으로 실점의 빌미를 내준 신인 박경배였다.
그의 눈이 감독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조성오 감독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대타 작전은 없었다. 감독은 그에게 스스로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준 것이다.
“플레이!”
앞선 타석에서 안타 하나 없이 볼넷 하나를 얻는 데 그쳤던 박경배.
그가 온 힘을 다해 공을 골라냈다.
창원 랩터스의 투수 중 최고의 구위를 자랑하는 마무리 투수를 상대로 안타를 뽑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박경배가 노리는 건 어떻게든 볼을 골라내 1루로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파앙
“볼.”
파아앙
“스트라이크!”
끈질기게 달라붙는 2년차 신인, 그리고 어떻게든 이번 이닝을 막아내고 승리를 가져가겠다 마음먹은 베테랑 마무리 투수.
두 선수 간의 치열한 공방전은 8구까지 이어졌고, 결국 승패가 가려졌다.
“볼. 베이스 온 볼스!”
“오! 좋아, 잘한다!”
“박경배! 고개 들어! 잘했어!”
바깥쪽 높은 코스에 꽉 찬, 배트가 나갔어도 하나 이상할 게 없는 완벽한 공을 박경배가 기적적으로 골라냈다.
무사 주자 1루, 박경배와 함께 6회 실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또 다른 신인 서준석의 타석이 돌아왔다.
워리어스 덕아웃이 곧바로 움직였다.
툭
쉽지 않은 코스의 공이었지만 서준석이 침착하게 보내기 번트를 성공시키며 원아웃 주자 2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9번 타자 좌익수 최민석 물러나고 대타 안치욱]장내 아나운서의 멘트에 창원 구장 원정석에서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오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선발 라인업에서 빠졌던 이 팀의 주포 안치욱이 대타로 나섰기 때문이다.
한때 이 팀의 애물단지였던 그는 어느새 이런 중요한 찬스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타자로 성장해 있었다.
올 시즌 타격 전 부문에서 한수혁의 뒤를 따르고 있는 2인자 안치욱.
창원 마무리 투수의 멘탈이 마구 흔들렸고, 결국 불안한 멘탈은 제구력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볼. 베이스 온 볼스.”
“좋았어!”
“가자!”
네 개 연속 날아온 볼.
1사 주자 1, 2루 상황이 만들어지고 창원 덕아웃이 타임을 요청했다.
고개를 떨군 창원의 마무리가 마운드에서 내려갔고, 생각지도 못한 투수가 마운드에 대신 올랐다.
전반기 막판 부상을 당해 복귀 일정을 조율 중이던 창원의 용병 에이스 투수가 등판한 것이다.
과감한 모험수였다. 당초 다음 시리즈 선발 등판이 예정되었던 팀의 에이스를 이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리다니.
한수혁이 등판한 경기를 잡는다는 게 단순히 1승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창원 감독의 승부수였다.
하지만,
따악!
그런 에이스조차 워리어스의 기세를 막아서진 못했다.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운이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1사 주자 1, 2루 상황에서 1번 타자 데릭 플레밍이 친 타구가 3루 베이스 라인을 타고 힘차게 뻗어나갔다.
온 힘을 다해 몸을 던진 3루수의 글러브 속으로 공이 빨려 들어가나 싶었지만,
“어우! 어유! 아우! 진짜 미치겠네!”
“아냐, 됐다! 막은 것만으로도 잘했어!”
더블 플레이를 의식한 3루수가 그만 공을 더듬고 말았고, 그 사이 베이스가 가득 차고 말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1사 주자 만루 위기,
창원 랩터스 선수들, 그리고 팬들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2번 타자 투수 한수혁]감정이 전혀 섞이지 않은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마치 사형선고처럼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메이저리그에 이어 KBO에서도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얼마 전 양 리그 통산 1.000홈런을 넘어선 괴물 중의 괴물.
눈앞까지 다가왔던 승리가 어느새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팀의 승리를 위해 등판을 자처했던 창원 에이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따아아아아악!
거대한 타격음과 함께 지금까지 창원이 공들여 쌓아올린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기적은 없었다.
만루 홈런 한 방으로 단숨에 경기를 뒤집은 한수혁은 9회 말 마운드에 올라 스스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날 경기를 본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은 이제 과거의 유산에 불과하다고,
저기 우리들의 눈앞에 팀보다 위대한 선수가 우뚝 서 있지 않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