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9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95화(396/412)
#395화. 빈 자리는 내가 채운다
“서형주 선수, 오늘 홈런으로 2년 연속 30-30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한마디 해주시죠.”
“최근 팀의 부진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일각에서는 매리너스 선수단에 대한 불화설도 제기되고 있는데요.”
서형주의 석 점 홈런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에 7 대 5로 패배한 시애틀 매리너스.
귀찮게 몰려드는 기자들을 피해 버스에 올라탄 서형주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수혁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매리너스는 지구 우승을 다투는 강팀이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이제 다른 팀들이 무작정 매리너스를 피하고 무서워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건 모두 한수혁, 그의 존재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한수혁이 뛰던 10시즌 동안 매리너스는 6연속 우승을 포함, 월드시리즈 우승트로피를 아홉 번이나 들어 올린 그야말로 리그를 지배한 절대강자였다.
현대야구에서는 불가능하다던 4할 타율과 0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며 팀을 절대무적으로 만들었던 한수혁.
그런 선수의 공백을 메우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매리너스의 황금기를 이끌던 선수들 대부분이 팀을 떠나거나 유니폼을 벗었다.
한수혁은 고향으로 돌아갔고, 타이 존슨은 은퇴했으며, 그 외 여러 선수들이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팀에 남은 마지막 황금 멤버는 우익수 척 클락과 유격수 조시 올리버, 투수 디몬 앤더슨 주니어, 그리고 은퇴를 앞둔 베테랑 투수 라이언 티보우 정도가 유일했다.
그렇게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지금, 이 팀을 이끄는 건 한수혁의 뒤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온 32세의 2루수 서형주였다.
“이봐, 서. 요즘 그 친구랑 연락한 적 있어?”
“연락? 연락이야 가끔 하지. 왜?”
“아니, 뭐 좀 물어볼… 젠장, 됐어. 못 들은 걸로 해줘.”
매리너스의 중심축 중 하나인 3루수 제임스 테일러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형주는 또 한 번 한수혁의 빈자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예전 팀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을 때, 선수들이 가장 먼저 찾는 건 코치나 감독이 아닌 한수혁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두고 월권이다, 혹은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강하다 우려하기도 했지만,
한수혁과 한 시대를 살아온 선수들은 그 의견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했다.
평범한 인간이 야구의 신에게 의존을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 아닌가?
“서, 오늘 플레이 아주 좋았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기록에 너무 신경을 쓸 필요는 없어. 아무래도 도루는 좀 위험해서 하는 말이야.”
“네, 보스. 알고 있습니다.”
“좋아, 자네가 개인적인 욕심이 없다는 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지만…….”
어느덧 메이저리그에서 아홉 시즌째를 맞이한 서형주는 데뷔 네 번째 시즌, 타율 0.315, 출루율 0.401, 장타율 0.587, 30홈런 50도루를 기록하며 30-50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100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다시 30-30을 달성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기록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어린 시절이라면 모를까, 이제 서형주는 뭐가 더 중요한지 잘 알고 있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다만,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보겠습니다, 보스.”
“흠, 좋아. 자네 뜻이 그렇다면.”
지금 서형주가 생애 첫 40-40을 욕심내는 건 모두 팀을 위한 것이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어느새 상당한 애정을 갖게 된 매리너스를 위해, 다른 팀 선수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줄 수 있는 타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예전의 한수혁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요한, 오늘 경기는 아까웠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네 홈런도 정말 멋졌어.”
언제나 친구를 넘어서기 위해 전력을 다해 질주했던 서형주는 이제 그 친구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고 자신이 아닌 다른 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멋진 빅리거로 성장했다.
딸깍
[2사 만루에서 터진 안치욱의 역전 3타점 2루타, 워리어스, 서울 라이벌 매지션스에 극적인 역전승] [한 경기 다섯 개의 고의사구를 당한 한수혁 “이건 내가 아무리 야구를 잘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동료들을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고, 오늘 안치욱은 그에 대한 멋진 해답을 보여줬다.”] [승장 조성오 감독 “누가 뭐래도 우리 팀의 3번 타자는 안치욱이다. 그가 하지 못하는 일은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다. 앞으로도 그는 한수혁과 호흡을 맞춰 팀 공격을 이끌어나갈 것.”] [자동고의사구 작전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매지션스 김성수 감독 “모두 내 잘못이다. 한수혁을 너무 경계한 나머지 안치욱이 얼마나 좋은 타자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 감독 자리가 쉽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다.”]인터넷에서는 어제 있었던 워리어스와 매지션스 간의 경기 뉴스가 연신 쏟아지고 있었다.
한수혁, 그리고 안치욱.
그 둘의 이름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녀석들이 보고 싶어졌다.
이런 어려운 순간 기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안심되는 일인지 지난해까지는 미처 몰랐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몸만 간단히 풀고 들어가.”
“알겠습니다. 코치.”
이곳 메이저리그에서는 경기 후 연습을 하려는 선수를 코치와 감독이 오히려 말린다. 추가 훈련보다는 빨리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는 게 다음 경기에 더 도움이 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부터 연습벌레로 알려진 서형주는 여전히 경기가 끝나고 홀로 구장에 남아 이렇게 배트를 돌린다.
이제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언제나 든든한 성처럼 느껴졌던 한수혁도, 그리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의지가 되었던 안치욱도.
베테랑들이 차례로 은퇴하고, 마이너리그에서 계속 새로운 얼굴이 올라오는 시애틀 매리너스. 이제 서형주는 이 팀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이다.
부담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피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의 친구이자 라이벌, 그리고 우상인 한수혁이 데뷔 첫해부터 해온 일이다. 10년차를 넘어선 자신이 이 정도 압박도 이겨내지 못한다면 녀석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진다.
“흐압!”
따악!
오늘 홈런을 때려낸 타격감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기분 좋은 웃음을 지은 서형주가 천천히 배팅게이지를 나와 샤워실로 향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이 팀에서 계속 뛰며 빅리거로서 선수 커리어를 마감할지, 아니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한수혁, 그 녀석과 또 한 번 호흡을 맞추게 될지.
그 무엇도 결정되진 않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친구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앞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너희들이 없어도 아무 문제없다고, 나 혼자서도 이만큼의 결실을 이뤄냈다고.
한수혁과 서형주, 안치욱.
동갑내기 절친이자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세 명의 스타는 이렇게 항상 서로를 의식하며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 * *
한수혁의 KBO 복귀설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대부분의 야구팬들과 전문가들이 리그가 폭파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나타냈지만,
일각에서는 한수혁이 생각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할 거라며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근거로 삼은 것은 한수혁이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피지컬 하락세에 접어들게 되는 32세 시즌에 들어섰다는 것,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투타 겸업을 이어온 육체가 한계에 달해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한국야구의 수준 역시 10년 전보다 많이 올라왔다는 점 등이었다.
따아아아아아악!
물론 그것이 모두 헛소리라는 게 밝혀지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시즌의 60%가량을 소화한 시점에서 타율 0.457, 출루율 0.601, 장타율 1.109, 51홈런 107타점을 기록한 타자 한수혁.
그리고 18번의 선발등판에서 평균자책점 0.33, 15승 무패, WHIP 0.39를 올린 무패의 투수 한수혁.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도 그랬지만 그런 대선수의 활약을 직접 눈앞에서 지켜본 야구팬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들이 더욱 충격을 받은 건 선수로서 역대 세계 그 어떤 스포츠 스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업적을 쌓아올린 그가 미국과 한국에 야구단을 하나씩 소유한 기업가이자,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개인자산을 보유한 재력가라는 사실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한수혁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두 부러워하고 동경하는 워너비라는 것이다.
“싫어! 안 해! 난 축구가 더 좋아! 야구 싫어!”
“얘는! 이 좋은 걸 왜 안 한다고. 선생님, 우리 애 잘 좀 봐주세요. 분명 재능이 있을 거예요. 어려서부터 동네에서 운동신경 좋기로 유명했거든요.”
“걱정 마십쇼, 어머님. 제가 잘 키워서 한수혁처럼 대단한 야구선수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제가 사실 중학교 때 수혁이 그 녀석이랑…….”
“어머! 한수혁 선수와 동창이세요?”
“아니, 그게 동창까지는 아니고, 제 사촌동생의 친구가 한수혁이랑 같은 중학교를 다녔는데…….”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저 출산과 이로 인한 초중고 학교들의 잇따른 폐교로 인해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근간이 흔들리던 그때,
한수혁의 성공을 직접 지켜본 학부모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2의 한수혁을 꿈꾸는 아이들, 야구 아카데미 창업 붐] [학교 숫자 감소 속에 야구부 숫자는 오히려 늘어] [2040년 초등학생들이 꼽은 장래 희망 1위는? 프로야구 선수]갑작스레 불어 닥친 야구 열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수혁이라는 인물이 한국 야구, 나아가 나라 전체에 엄청난 긍정적 요인을 불러온다는 것이었다.
이제 서른 초반에 불과한 운동선수에게 공천을 약속하는 정당도 나왔고,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기업들이 한수혁을 광고모델로 기용하기 위해 그의 에이전트 사무실을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급기야는 대통령까지 나서 시즌이 한창인 선수를 식사 자리에 초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물론 한수혁은 그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께서 한수혁 선수를 꼭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시간을 내주시죠.
“아뇨, 중요한 경기가 있어서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면 몰라도 이건 경우가 아니죠. 상당히 불쾌하네요.”
– 불… 쾌라고 하셨습니까? 한수혁 선수, 당신이 아무리 대단한 야구선수라 해도 결국 국민 중 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 님이 부르시…….
“끊습니다. 이런 쓸데없는 일로 전화할 거면 다시는 연락하지 마세요.”
얼마 전 대통령 자리에 오른 남자는 상당한 고집쟁이였다. 몇 번이고 거절 의사를 밝혀도 이렇게 계속 달라붙는 걸 보면 말이다.
결국 한수혁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 소문은 한수혁의 에이전트를 거쳐 미국에 있는 어느 가문에까지 전달되었다.
“각하! 큰일 났습니다! 미국에서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에 대해 재협상을 하자고 연락이…….”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모르겠습니다……. 주한 미국대사 말로는 한국 정부가 요즘 한가해서 그런지 자꾸 야구 판에나 신경 쓰는 거 같다고, 이 기회에 양국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자고…….”
“뭐라는 거야, 대체!”
그들은 몰랐다.
한수혁 자체도 거물이지만, 그 뒤에는 미국, 아니, 전 세계를 지배하는 누군가가 버티고 있다는 걸.
그렇게 한수혁에 대한 정치권과 경제계의 구애가 조금씩 정리되는 가운데 KBO에서는 가을야구에 진출할 팀들의 윤곽이 조금씩 가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