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98)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97화(398/412)
#397화. 양대리그제
“네, 죄송합니다, 회장님. 이렇게 직접 전화까지 주셨는데. 송구합니다. 제 입장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대전이요? 네, 한번 내려가야죠. 알겠습니다. 꼭 한번 찾아뵙고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워리어스 필드 내에 위치한 한 사무실, 사장실이라는 팻말이 달린 그 공간 안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랐던, 아직까지도 국민 투수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박재철.
워리어스 단장직을 거쳐 사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조금은 의외다.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올 줄이야.
“대전이라… 고향, 그래. 나쁘진 않은 제안이지만…….”
십수 년 전 대전을 포함한 여러 구단들이 그에게 감독과 코치 직을 제안했지만 결국 박재철의 선택은 워리어스 단장이었다.
이유는 딱 하나였다. 박재철이 감독이 아닌 프런트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던 자리에 오른 그는 예상 외의 수완을 발휘하며 워리어스의 황금기를 활짝 열었다.
매지션스에서 최민석과 김두영을 데려온 것을 시작으로 워리어스의 뒷문을 10년 넘게 지켜준 양기철을 부산에서 데려오는 등 팀의 부족한 부분을 착실히 메꿨다.
박재철의 수완이 가장 빛을 발한 건 대전으로부터 서형주를 데려온 것이었다.
팀에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던 서형주를 데려와 재능을 개화시키며 워리어스의 왕조 건설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일로 인해 대전 프런트, 그리고 박재철을 아끼던 그룹 회장과의 사이까지 틀어져 한동안 숨어 다녀야 했지만.
그런 대전이, 자신의 고향팀인 대전 팔콘스가 박재철을 부르고 있다.
구단을 맡아달라고, 사장으로서 모든 전권을 줄 테니 팔콘스로 합류하라고.
예전 같으면 혹했을지도 모른다.
경영의 재미를 알게 된 박재철에게 대전은 상당히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많이 양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구단 내 파벌들이 정치싸움을 벌이며 팀 전력을 갉아 먹고 있었고, 선수들의 기량과 정신 상태 역시 개선할 부분이 많았다.
쉽게 말해 손 댈 곳이 많아 그만큼 재미도 보장된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 워리어스는 이미 완성된 조직이었다. 박재철이 없다 해도 무난히 굴러갈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KBO 최고의 팀이었다.
그렇기에 대전의 제안에 살짝 흔들리기도 했다.
얼마 전 한수혁과 저녁식사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박재철 사장님, 거두절미하고 제가 제안 하나 드리겠습니다.’
‘한수혁 선수, 아니, 구단주님. 하하, 이거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요.’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사실 시즌이 끝난 후 말씀드리려 했는데, 대전으로부터 제안을 받으셨다는 말을 듣고 조금 마음이 급해져서요.’
‘음, 아직 결정된 건 없습니다.’
‘좋네요. 아무튼 제가 드릴 제안은 이겁니다. KBO 열두 번째 구단의 창단 작업을 맡아주세요.’
‘네? 그게 대체 무슨…….’
‘이번 시즌이 끝난 후 본격적으로 강원도와 제주도에 신 구단 창단이 시작될 겁니다. 이미 KBO에서 극비리에 사전작업에 들어간 상태이고요.’
‘아아…….’
‘그리고 제주도에 창설될 열두 번째 구단에는 제 손길이 닿을 겁니다. 두 개 구단을 동시에 보유할 수는 없으니 직접 지분을 소유하거나 할 순 없지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지원을 하게 될 겁니다.’
‘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까요?’
‘현재 계획대로라면 제주도에 창설될 신 구단은 시민구단 형태가 될 겁니다. 제주도정의 주도 하에 조합을 설립하고, 도민들이 지분을 사들이고, 여기저기 지역 기업들이 스폰서로 나서고…….’
‘그렇군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제 입김이 닿는 기업들이 스폰서, 혹은 광고주 형태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까지일 겁니다. 안정적으로 구단이 운영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요. 아, 이와는 별개로 제주도에 들어설 신 구장 문제까지는 제가 전담할 생각입니다.’
‘흐음.’
‘처음 이 얘기가 나왔을 때 제가 도지사와 KBO 총재에게 박재철 사장님을 추천했습니다. 제주 구단을 이끌 조합 대표로 말이죠. 쉽지는 않을 겁니다. 워리어스처럼 완벽하게 갖춰진 곳에서 일하다가 그렇게 맨 손으로 다시 시작을 하…….’
‘해 보겠습니다.’
‘네?’
‘말만 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군요. 무엇보다 제가 생각하는 대로 팀을 만들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하고요. 하겠습니다. 아니, 하게 해주시죠.’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날 이후 박재철 사장은 워리어스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고 KBO, 그리고 제주도와 함께 신 구단 창설 작업에 본격적으로 손을 담갔다.
나이를 먹어가며,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며 점점 생기를 잃어가던 박재철의 얼굴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에 그의 말수가 다시 많아지며 본의 아니게 피곤함을 느끼게 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한국 야구의 오랜 숙원이었던 12개 구단 체계 완성, 그리고 양대리그제로의 전환.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돈만 있다고 될 일도 아니다.
인구 감소로 인해 가뜩이나 좁은 선수 풀이 더더욱 크게 부각될 것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용병제도 개선, 나아가 일본 리그처럼 2군에서 용병을 육성하는 등의 대대적인 시스템 손질이 필요할 것이다.
많은 이들의 이권이 걸린 일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반대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 파업을 들먹이는 목소리도 등장할 것이다.
그럼에도 KBO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수혁이 이번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스포츠스타 한수혁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양대 리그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최소 두 개 이상의 신 구단 설립이 필요하다. 또한 리그 수준 저하를 막기 위해 경기당 용병 출전제한 숫자를 완화하고, 2군 육성 용병군을 운영하는 등 추가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과 위험이 따를 것이라는 것,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야구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다.”] [한수혁이 던진 폭탄 발언에 야구계 전체가 술렁, 반대파와 찬성파로 나뉘어 연일 치열한 설전] [국내 재계 서열 9위이자 서울 워리어스의 전 소유주였던 오강 그룹, 강원도를 연고로 한 11구단 창설 계획 발표] [오강 그룹 천도하 회장 “그룹 경영권이 흔들리며 아쉽게 워리어스를 매각해야만 했다. 이제 그룹이 다시 정상궤도에 올라선 만큼 야구단을 다시 갖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팀 숫자가 너무 늘어나면 리그 수준이 저하될 거라 우려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수혁 선수가 말한 것처럼 용병제도를 적극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KBO와 협의해 빠른 시일 내에 정식 창단을 발표할 것.”] [강원도를 연고로 한 오강 그룹의 신 구단 창설에 이어 이번에는 제주특별자치도의 깜짝 발표 “제주도를 연고로 하는 시민 야구단을 창설할 생각. 도민, 그리고 지역 기업들과 스폰서들을 통해 운영자금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야구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형태가 되겠지만 한수혁 선수가 도움을 주기로 했기에 그를 믿고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 중이다.”]강원도와 제주도를 연고로 하는 11, 12 구단의 창설이 정식으로 발표되었고, 기존 10개 구단과 선수협 등이 각자의 손익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특정 집단의 지시를 받은 걸로 추정되는 시위대가 KBO 앞을 점거하기도 했고, 관련 단체들의 홈페이지는 디도스 공격으로 다운되어 버렸다.
하지만 결국 상황은 하나하나 정리되었다.
지금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국제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할 거라는, 우물 안 개구리, 배부른 돼지들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 천천히 죽어갈 거라는 의견이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론 12개 구단, 양대 리그제에도 불안요소가 없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구단 숫자만 늘리다 보면 리그 전체 수준이 떨어질 수도 있었고, 용병 의존도가 심해질 경우 생각지도 못한 다른 문제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실제 배구, 농구 같은 다른 종목에서 그런 식의 접근법을 사용하다 역효과가 일어난 적도 있었고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KBO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었다.
다름 아닌 한수혁, 한국 야구계를 받치는 가장 든든한 기둥이 참여하는 일이었으니까, 그가 있는 한 다른 종목에서 발생했던 부작용 같은 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으니까.
[신 구단 창설 우려에 대해 한수혁 “우리가 하려는 일이 반드시 정답이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대로 가만있으면 반드시 죽게 될 거라는 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야구의 세계 경쟁력은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 다음 세대를 살아갈 미래의 야구 꿈나무들을 위해 한 번쯤은 모험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한수혁의 말에 반대론자들의 입이 순식간에 닫혔다.
그렇게 2040년 한국야구의 운명을 결정지을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었다.
* * *
11, 12구단 창설 등 여러 사람과 단체의 이권이 걸린 문제로 야구계가 들썩거리는 가운데 리그는 계속 진행되었다.
90경기를 넘어 95경기, 드디어 100경기.
우천 취소 등으로 연기된 경기를 합해도 각 구단에 남은 잔여 일정이 40에서 50경기 미만으로 떨어지며 드디어 2040시즌 가을야구에 진출할 팀들의 얼굴이 하나둘 가려졌다.
지난 100경기에서 68승 4무 28패, 승률 0.708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은 절대강자 서울 워리어스.
시즌 초반부터 줄곧 3위권을 유지하다 결국 2위까지 치고 올라온 부산 타이탄스.
승운이 다소 따랐다는 평가이지만 그럼에도 강팀임에 분명한 3위 팀 수원 커맨더스, 2년 연속 정규시즌 1위는 물 건너갔지만 가을 야구 진출권 진입에 성공한 서울 매지션스, 쓰러졌던 노감독이 다시 돌아오며 막판 스퍼트를 시작한 인천 레인저스,
그리고,
따아아아악!
“어이쿠야!”
지금 워리어스와 상대하고 있는 대전 팔콘스까지 총 6개 팀이 가을야구 커트라인인 5위 자리를 놓고 마지막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중 5위 인천 레인저스에 2게임 차로 뒤지고 있는 팔콘스는 매 경기 결승전이라는 각오로 시합에 임하고 있었다.
“시발! 그만 좀 쳐맞으라고!”
“왜 한수혁하고 승부를 하는 건데!”
“하아… 제발, 이 멍청한 독수리들아. 이젠 정신 차릴 때 좀 되지 않았니?”
결정적인 찬스에서 한수혁에게 석 점 홈런을 허용한 대전 팔콘스.
휴일을 맞아 경기장을 가득 메운 대전 팬들이 입에 물고 있던 햄버거와 치킨을 집어던지며 격렬한 야유를 보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투수.
그런 투수를 향해 류한결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수혁을 거를까 고민도 했지만, 그 뒤 안치욱, 장덕수의 최근 7경기 타율이 4할 5푼에 육박한다. 지금 당장만 놓고 보면 한수혁만큼 무서운 타자들이라는 뜻이다.
“진짜 미친 거 아녀?”
“워리어스 쟤들 미친 거 맞아요.”
“찬호야.”
“네, 형님.”
“쟤들 통째로 메이저 던져놔도 꼴찌는 안 할 거 같지 않냐?”
“아메리칸 리그 중부지구라면 중간 이상은 갈 거 같은데요.”
“허허… 망할 놈들. 여기서 또 우리 발목을 잡네.”
최근 팔콘스 구단 내에서는 워리어스에 대한 반감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목을 잡아대는 건 기본이고, 트레이드를 할 때마다 매번 손해를 보기 일쑤였다.
거기에 최근에는 팔콘스 신임 사장으로 내정되었던 박재철이 그 제안을 까버리며 이래저래 미운 털이 박힌 것이다.
물론 팔콘스가 무슨 생각을 하건 워리어스 쪽에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볼. 베이스 온 볼스.”
“우우우!”
“집어쳐!”
“시발 놈들아! 그냥 야구단 매각하라고!”
5위와 6위를 오가는 성적,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10년 이상 최하위를 기록하던 팀을 중위권으로 끌어올리는 데도 뼈를 깎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했다.
류한결 역시 코치가 되고 나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 손바닥만 한 구단의 선수단과 프런트에 얼마나 많은 파벌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파벌을 들어내기 위해서는 아예 구단을 해체하는 게 더 빠를 거라는 걸 말이다.
“정말 죽겄구먼…….”
순식간에 역전당한 경기, 이어진 볼넷, 그리고 타석에는 또 다른 거포의 등장.
상황이 이런데 감독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 마운드 위에 선 투수가 감독과 단장이 아닌 사장 라인이라는 이유다. 감독의 요청 없이 사장이 독단적으로 1군에 올린 투수이기에 차라리 작살이 나는 게 낫다는 이유일 것이다.
“못 해 먹겠구먼, 진짜.”
입맛을 다신 류한결이 눈을 감은 채 경기장을 외면했다.
그리고,
따아아아악!
또 한 번의 거대한 타격음이 울려 펴졌다.
한숨을 쉬며 눈을 뜬 류한결의 시야에 주먹을 불끈 쥐고 다이아몬드를 도는 워리어스의 5번 타자 최재민이 들어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팀의 중심타자로 손색 없는 성적을 올리고 있는 저 녀석이 만약 대전에 입단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애초에 장애를 가진 선수를 뽑을 리도 없었고, 설사 뽑았다 해도 2군에서 몇 경기 뛰다가 그대로 방출당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1위 팀 워리어스와 6위 팀 팔콘스의 차이였다.
‘신생 구단 생기면 그쪽으로 한번 지원을 해볼까……. 제주도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찬호한테도 같이 가자고 한번 말해볼까.’
류한결의 머릿속에 인생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