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399)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98화(399/412)
#398화. 항명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10년 동안 타자 한수혁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꼽으라면 단연 데뷔 시즌을 들 수 있었다.
0.421의 타율과 0.530의 출루율, 1.019의 장타율만 놓고 보면 세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 시즌보다 못했지만 79홈런이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두 번 다시 나오기 힘든 엄청난 기록을 수립한 해이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야구팬들은 곧 80홈런 시대가 올 것이라 기대했다. 메이저리그 적응을 끝낸 한수혁이 다음 시즌에는 반드시 그 대기록을 이뤄낼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쏟아지는 볼넷에 타격 기회 자체가 줄어들었고, 홈런은 오히려 감소했으며, 대신 출루율만 매년 상승한 것이다.
따아아악!
“오오오! 간다! 간다!”
“됐다! 넘어갔다!”
“이걸로 60개야! 60개라고!”
그런 투수들의 견제는 한국무대로까지 이어졌다.
규격 외의 타자를 상대하게 된 KBO 투수들은 전력을 다해 한수혁을 피했고 그의 출루율은 6할을 넘긴 지 오래였다.
하지만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도 한수혁이 역대급의 홈런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엄청난 집중력의 산물이었다.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찾아왔다.
정규시즌 종료까지 이제 단 서른 네 경기만이 남은 상황.
한수혁은 타율 0.461, 출루율 0.605, 장타율 1.112, 60홈런 130타점을 기록하며 야구팬들을 열광시키고 있었다.
한수혁을, 그리고 야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남은 경기수를 감안하면 2029년 KBO에서 기록한 73홈런을 넘어, 자신의 커리어 하이인 79홈런 경신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110경기 동안 기록한 60개의 홈런, 단순계산으로 한수혁은 한 경기당 0.545개의 홈런을 날리고 있었다.
남은 34경기 동안 이 페이스가 유지될 경우 18개의 홈런을 추가할 수 있다. 80개에 조금 못 미치지만 몰아치기에 능한 한수혁의 패턴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수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루지 못한 80홈런의 꿈, KBO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문제는 투수들의 노골적인 한수혁 패싱]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A팀 감독 “이런 질문 자체가 불쾌하다. 이기기 위해 고의사구는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럼 일부러 홈런을 맞아주기라도 하란 말인가?”] [야구팬들, 수도권 A팀은 혹시 인천? 과연 그라면 충분히 할 만한 이야기.] [MBC 해설위원 고동식 “한수혁이 복귀하기 전, 정확히는 지난 시즌까지 한국프로야구 시장 규모는 매년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던 리그가 한수혁의 복귀로 인해 50% 가까운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라. 전 세계 야구팬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일갈] [신기록에 대한 또 하나의 변수는 남은 경기 일정, 가을야구 진출을 노리는 팀들로서는 한수혁을 피할 수밖에 없어] [워리어스 조성오 감독 “홈런 신기록을 위해 타순을 조정해 주려 했으나 수혁이가 거절하더라. 자신이 2번으로 나서는 게 팀 전력에 가장 도움이 된다며.”] [시즌 개막 전 중위권으로 분류되었던 서울 워리어스, 한수혁의 복귀로 2029년 자신들이 기록한 팀 승률 0.705 경신 유력] [전 세계 세이버매트리션들 “우리는 모든 야구선수와 그들의 플레이를 수치화하고, 그것을 통해 모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장담해왔다. 하지만 단 한 명, 한수혁만은 예외로 둬야 할 것 같다. 어떤 공식을 대입해도 한수혁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평범한 팀도 그가 합류하면 순식간에 우승후보가 되고, 팀 내 모든 선수들이 한수혁의 존재로 자신의 기량 이상을 발휘하곤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수혁에 대한 분석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 *
“잘 들어라, 사람들의 이야기 따위 신경 쓰지 마라.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팬들의 지지나 인기 따위가 아닌 승리, 오직 승리다. 너희가 생각해야 할 일은 오직 그것뿐이다. 다른 생각은 버려라. 내 말을 믿고 따르면 너희에게 영광이 찾아올 것이다.”
80세 먹은 일본 노감독의 말이 통역을 통해 선수들과 코치들에게로, 그리고 다시 영어와 스페인어 통역을 통해 용병 선수들에게 전달되었다.
오늘, 선발투수 겸 2번 타자로 등장할 한수혁과의 대결을 준비 중인 인천 레인저스 선수들은 생각했다.
저 사람이야 대충 돈만 벌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리면 그뿐이지만 자신들은 한수혁이 지배하는 리그에서,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의 질타를 받으며 이 리그에 남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렇기에 무작정 감독의 말을 따르는 건 멍청한 짓 아니겠냐고.
대전 팔콘스의 맹렬한 추격을 받으면서도 아슬아슬하게 5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천 레인저스.
부상으로 잠시 대열에서 이탈한 용병 에이스를 대신해 오늘 선발투수로 등판하게 된 5년차 투수 강경삼의 표정에 여러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당장의 잔소리를 피하기 위해 감독의 말대로 한수혁을 피하고, 자극하고, 대신 절대 다수의 팬들에게 욕을 먹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어차피 올 시즌을 끝으로 잘릴 것으로 보이는 감독의 말을 무시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쳐 팬들에게 박수를 받을 것인가.
갈등은 그리 길지 않았다.
지난 역사를 살펴보니 금세 답이 나왔다.
한국과 미국에서 한수혁과 정면 승부를 하다 얻어맞은 투수들 중 누구도 팬들에게 바보 취급을 당하지 않았다.
반면 노골적으로 한수혁을 피해 다닌 투수들의 이름과 영상은 영구 박제되어 아직까지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결국 답은 정해져 있었다.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독의 뜻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가 될 필요는 없다.
결론을 내린 강경삼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워리어스의 선두타자 데릭 플레밍을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했다.
그리고 선택의 시간이 도래했다.
[2번 타자 투수 한수혁]오늘 나카무라 도모야키 감독은 공 하나하나, 직접 덕아웃에서 사인을 내고 있었다.
한수혁의 타석을 맞아 잠깐 움찔했던 인천 감독이 이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렇게 감독의 사인이 포수를 통해 투수에게로 전달되었다.
‘몸 쪽 높은 코스로 던지랍신다. 얼굴에 최대한 가깝게.’
‘개소리, 그러다가 진짜 맞으면? 나 수혁이 형한테 얻어맞고 병원 실려 가긴 싫은데?’
‘그럼? 어쩌자고?’
‘그냥 우리 던지고 싶은 대로 던지자. 뭐라고 하면 제구가 안 됐다고 하고.’
‘아서라, 그러다 너 2군으로 쫓겨난다.’
‘순위 싸움이 이렇게 치열한데 멀쩡한 선발투수를 2군으로 보낸다? 하! 글쎄, 할 수 있으면 해보든지.’
직접 말을 주고받을 순 없지만 눈빛만 봐도 서로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인천의 동갑내기 배터리.
투수의 뜻이 확고하다는 걸 느낀 포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의 사인이 정말 승리를 위한 것이라면 따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초구부터 몸 쪽 위협구를 지시하는 모습에 그 생각이 싹 사라졌다.
강경삼이 보기에 저 일본인 감독의 머리 구조는 여전히 1980년대와 90년대 사이 어딘가에 갇혀 있었다. 현실 파악이 전혀 안 되는 게 분명했다.
바깥쪽 공을 때리기 위해 배터박스에 바싹 달라붙은 타자.
그래, 정석대로라면 여기서 몸 쪽 위협구를 던져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겁을 줘서 타격 밸런스를 흐트러뜨리면 분명 빈틈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가?
한수혁이다.
지금까지 그에게 몸 쪽 위협구를 던진 투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직접 목격하지 않았는가?
몸에 맞췄다가 얻어맞는 건 둘째 치고, 한수혁이 그런 위협구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건 지난 역사를 통해 충분히 증명되었다.
만약 인천의 감독이 한국인이었다면, 선수들과 직접적인 학연, 지연으로 얽힌 같은 국적의 사람이었다면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금 무리한 지시라 해도 선수들이 따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잠시 머물다 갈 외국인에 불과한 감독을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투수는 없었다.
어쩌면 올 시즌 인천 레인저스의 실패는 무리하게 외국인 감독을 고용한 구단주에게 있는 건지도 몰랐다.
파앙
“볼.”
몸 쪽 낮은 코스에 거의 처박힐 듯 들어온 볼.
자신의 사인과 다른 공이 들어가자 인천 노감독의 얼굴이 잔뜩 찡그려졌다.
‘야, 또 위협구 던지라는데?’
‘꺼지라고 해.’
항명을 결심한 투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대로 힘차게 공을 뿌렸다.
파앙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은 코스에 꽉 차는 슬라이더.
한수혁조차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잘 제구된 공이 존안으로 들어왔다.
관중들이 손에 땀을 쥐고 승부에 집중했고, 해설자의 입에서 강경삼에 대한 칭찬이 흘러 나왔다.
파앙
“볼.”
따악!
“파울!”
예상외의 명승부가 펼쳐졌다. 몸 쪽 낮은 곳으로 들어간 포심에 한수혁의 배트가 밀리며 투 볼 투 스트라이크.
밀려오는 긴장감을 풀기 위해 강경삼이 그라운드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동료 야수들이 자신을 향해 신뢰의 눈빛을 보내주고 있었다.
저 멀리 덕아웃에서 얼굴이 빨개진 감독이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듯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확신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자신이 가진 최고의 공을 던질 수 있으리란 확신 말이다.
또다시 감독에게서 위협구 사인이 전달되었지만 인천 배터리는 그것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오직 승부에만 집중했다.
끄덕
몇 차례의 사인이 오가고, 투수의 고개가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승부의 순간이다.
슈웅
이번 타석에서 처음으로 던진 몸 쪽 높은 공.
하지만 위협구가 아닌, 정말 타자를 잡기 위해 제대로 던진 155㎞/h의 위력적인 포심.
따아아악!
던지는 순간 투수 스스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멋진 공이었지만 한수혁은 그 공을 놓치지 않고 잡아당겼다.
“와아아!”
“가라! 가라! 가!”
좌중간을 향해 힘차게 뻗어나가는 타구.
평소와 달리 타구를 감상하지 않고 곧바로 스타트를 끊은 한수혁이 1루를 돌아 2루로 질주했다.
어쩌면 시즌 61호 홈런이 될지도 모를 큰 타구, 하지만 인천의 중견수가 펜스를 딛고 날아올라 그 공을 낚아챘다.
터억
“어휴!”
“와, 그걸 잡네!”
홈런성 타구를 건져낸 중견수가 손을 번쩍 들어 관중들의 환호에 응답했고, 멋진 플레이를 본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심지어 아웃이 된 한수혁조차 중견수를 향해 휘파람을 불 정도로 대단한 수비였다.
그야말로 잘 던지고, 잘 치고, 잘 잡은, 한국야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는 플레이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그런 분위기에 전혀 감응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타임!”
–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인천 나카무라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 투수에게서 공을 빼앗습니다!
– 투수 교체네요. 어? 포수까지 한 번에 교체되네요? 대체 무슨 일이죠? 방금 전 플레이는 정말 대단했는데요. 부상… 음, 부상이면 배터리를 한 번에 교체할 일은 없을 텐데, 이거 당장은 확인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저런, 관중석에서 오물이 날아옵니다! 관중들이 화가 많이 났어요.
– 그럴 만하죠. 워리어스의 막강 테이블 세터를 잘 잡아낸 투수가 아무 이유 없이 쫓겨 내려가고 있으니 말이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저 팀 감독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 결국 경기가 잠시 중단됩니다. 그럼 저희도 광고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이곳은 인천 레인저스의 홈구장 레인저스 필드입니다.
* * *
야구는 투수의 손끝에서 공이 떠나는 매 순간순간 고도의 집중력과 판단력이 요구되는, 그 작은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스포츠이다.
인천의 감독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은 투수와 포수를 1회가 끝나기도 전에 마운드에서 끌어내렸다.
결과론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국 좋지 못한 결과로 돌아왔다.
강경삼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른 3년차 투수가 감독의 뜻대로 한수혁을 향해 위협구를 던지다가 스스로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찌었다.
그라운드 위의 분위기가 험악하게 변하자 손해를 본 건 레인저스 선수들이었다.
한수혁과 장덕수 등이 뿜어내는 엄청난 기세에 레인저스 선수들의 기가 확 죽어버렸고, 투수의 제구력이 실시간으로 흔들거렸다.
그리고,
따아아아악!
따아아악!
위협구를 던지라는 감독의 지시와 바로 눈앞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한수혁의 눈빛 사이에서 방황하던 투수가 한가운데 어정쩡한 공을 던져버렸고, 결국 연타석 홈런으로 이어졌다.
얼굴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달아오른 인천 감독은 또 덕아웃 뒷문을 통해 어디론가 사라졌고,
따아아아악!
다음 타석에 들어선 한수혁이 또 하나의 홈런을 추가하며 시즌 홈런 개수를 63개로 늘리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한 경기 3홈런 한수혁, 시즌 63호 홈런 기록하며 80홈런 달성 청신호] [6이닝 무실점 투구, 3홈런 5타점, 혼자서 경기를 지배한 무결점 선수 한수혁] [경기 중 또 덕아웃을 비운 나카무라 도모야키 감독에 비난 쏟아져, 레인저스 측 “금일 저녁 중대 발표가 있을 것”] [인천 레인저스 “나카무라 도모야키 감독을 경질하고 남은 일정은 수석코치 대행 체제로 진행할 것. 팬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 [한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당한 노 감독… 야구 전문가들 “구단주의 독단으로 움직이는 야구가 이렇게 무섭다. 이 세상 구단주 중 팀 운영에 관여해도 되는 건 한수혁이 유일하다.” 한 목소리] [승률 0.710, 역사를 써나가고 있는 워리어스의 위대한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