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3화(4/412)
#3. 워리어스 1라운드 지명
–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곳에는 958명의 신인 선수들이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부름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7 KBO 신인 드래프트, 저는 오늘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 이승우, 그리고 제 옆에는 야구 전문기자인 황준호 기자 나와 있습니다
– 반갑습니다
– 기자님, 지명을 기다리는 선수들과 가족들, 그리고 관계자들이 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요. 방금 현장에 내려갔다 오셨죠? 분위기는 어땠나요?
– 네, 일단 워리어스가 해체되지 않은데 대해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프로팀 하나가 해체될 경우 적지 않은 수의 선수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야구계 전체로 봤을 때 정말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아, 정말 그렇겠군요. 자, 그럼 본격적으로 올해 드래프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2027 드래프트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어떤 걸 들 수 있을까요?
– 먼저 지난 5년 간 시행되었던 전면 드래프트 제도가 올해도 계속된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에 연고지와 상관없이 전국의 모든 고교 졸업 선수들을 대상으로 각 구단이 전년도 성적의 역순으로 지명을 이어가게 됩니다
– 그렇군요. 또 다른 특징은 없을까요?
– 음··· 지난해까지 시행되었던 드래프트 신청제도가 폐지되고 다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등록된 고교와 대학 졸업 예정 선수라면 누구나 지명이 가능하다는 것도 올해 드래프트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 말씀 감사합니다. 자, 그럼 올해 1순위는··· 전년도 최하위 팀인 서울 워리어스가 되겠군요
– 네. 지난 시즌 최하위였던 서울 워리어스가 1순위, 9위였던 대전 팔콘스가 2순위, 부산 타이탄스가 3순위… 이런 순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 감사합니다. 워리어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오늘 좀 특이하네요? 스카우트 팀이 총 출동한 다른 구단과 달리 워리어스 테이블에는 구단주인 박성훈 대표와 공승찬 스카우터, 이렇게 두 사람만 앉아 있는 상황입니다
– 네, 아까 잠깐 물어보기는 했는데 구단이 매각되면서 내부 시스템이 아직 덜 정비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자세한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기자님. 올해 드래프트의 최대어는 누구라고 보십니까?
– 두 말 할 필요 없겠죠?
– 하하, 그 선수군요. 분명히 존재는 하지만 뽑을 수는 없는··· 마치 신화 속 동물과도 같은…
– 네, 이건 뭐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 지난 3년간 고교야구계를 완전히 초토화시킨 서울 용천고의 한수혁 선수를 모를 수 없을 테니까요
– 아쉽네요. 개인적으로는 한수혁 선수가 국내에서 뛰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는데··· 시애틀 매리너스 입단이 확정적이라고 하죠?
– 맞습니다. 아직 계약이 완료된 건 아니지만, 뭐 시애틀하고 일이 틀어져도 그 뒤에 줄 서 있는 미국 구단이 한 둘이 아니니까요
– 여담이기는 한데 저도 얼마 전 끝난 대회에서 한수혁 선수가 뛰는 모습을 직접 봤습니다
– 대단하죠?
– 네, 저는 국내 선수가, 그것도 고등학생이 165km/h를 던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거기다가 유격수로도 완벽한 수비, 3연타석 장외홈런까지. 그냥 초고교급 선수라는 말 외에는 뭐라 할 말이 없는 수준이더군요
– 그렇죠. 그러니 미국 구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차라리 한수혁 선수가 지금보다 좀 못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겁니다. 1순위 지명권을 가진 서울 워리어스로서는 말이죠
– 하하, 그래도 뭐 어쩔 수 없겠죠. 부디 한수혁 선수가 미국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길 저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팬들의 마음 역시 다르지 않았다.
유튜브로 중계되는 2027 KBO 신인드래프트, 그 채팅창에는 온통 한수혁에 대한 아쉬움과 워리어스에 대한 비웃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씨바, 왜 그렇게 잘 해가지고··· 적당히 좀 하지 ㅠㅠ
﹂시애틀에서 마이너리그 거치지 않고 바로 메이저로 올린다는 소리도 나오더라
﹂아마 될 거임. 변화구는 그렇다 치고 160 넘는 패스트볼이 제구가 되는데, 그걸로 게임오버
﹂제 2의 오타니 드립 나오는 거 보면 뭐··· 시애틀에서도 대놓고 밀어줄 걸
﹂아, 하필이면 워리어스가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해에 왜 한수혁이 나오냐고. 괜히 맘만 아프게
﹂우리 어차피 작년에도 꼴찌고 올해도 꼴찌임
﹂엌ㅋㅋㅋㅋ
﹂한수혁은 논외로 치고 그럼 1라운드 누구 지명할 것 같냐? 우리 취약 포지션이 어디더라?
﹂이건 포지션 무시하고 그냥 서형주지 뭐. 한수혁이 워낙 이레귤러라 그렇지, 서형주 정도면 곧바로 내년 워리어스 주전 2루수일걸
﹂하아··· 매리너스 팬들은 좋겠다. 한수혁 데려가서 잘 먹고 잘 살아라. 씨바!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도 최상위권에 손꼽히는 월드클래스 유망주 한수혁.
1라운드 지명권을 갖고 있음에도 그를 뽑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서울 워리어스 팬들은 쓰린 마음으로 다른 신인선수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없었다. 2루수 서형주 정도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즉전감이 전무한, 유난히 흉작인 올해 신인드래프트였다.
문제는 이 업계에 서형주에 대한 공공연한 소문이 돌고 있다는 점이다.
워리어스의 지명을 받게 되면 차라리 대학 진학을 하겠다. 서형주가 그런 말을 했다는 소문이 구단 사이에 파다하게 퍼졌다.
만약 그렇게 되면 워리어스로서는 지명권 하나를 허무하게 날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진퇴양난.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성훈 구단주와 공승찬 스카우터, 단 둘이 앉아 있는 워리어스 테이블의 분위기는 그저 고요하기만 했다.
고작 둘이 나온, 게다가 표정조차 담담하기만 한 그들의 모습은 마치 모든 것을 해탈한 고승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야? 그냥 다 포기한 건가?’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오르던 그때 마침내 본격적인 드래프트가 시작되었다.
입담이 꽤나 인상적인 사회자가 가벼운 농담으로 장내의 분위기를 환기시킨 후 곧 본격적인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자, 그럼 2027 KBO 신인 드래프트 지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순서는 지난 시즌 성적의 역순입니다. 1라운드 서울 워리어스, 준비되셨습니까?”
“준비됐습니다.”
“네, 그럼 지명해주시죠.”
벌겋게 상기된 표정의 공승찬 차장이 마이크를 집어 들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드래프트장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 한수혁이다.”
“어, 진짜? 쟤가 왜 여기···”
“그냥 구경 온 건가? 아, 학교 친구들 응원하러 왔나 보다.”
“아, 맞네. 친구들도 여기 꽤 있지.”
“어우야··· 얼굴하고 비율 봐. 쟤는 야구 말고 그냥 모델 같은 거해도 되겠는데?”
“이따 끝나면 사인이나 받아둬야겠네. 미국 가면 다시 보기도 힘들텐데.”
갑자기 등장한 한수혁 때문에 잠시 행사 진행이 지연되었다.
사람들의 예상처럼 한수혁은 자신의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악수를 나누고 빈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정말 응원을 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한수혁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회자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공승찬 차장을 향해 말했다.
“잠시 소란이 있었습니다. 계속하겠습니다. 서울 워리어스, 1라운드 지명해주세요.”
장내가 다시 조용해졌다. 다시 모두의 시선이 공승찬 차장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다.
“서울 워리어스 지명하겠습니다. 서울 용천 고등학교 투수 한수혁!”
“뭐?”
“왜?”
“누구라고?”
“한수혁? 한수형이겠지?”
“한수혁이라잖아. 용천고등학교 한수혁.”
“거기 한수혁이 또 있나?”
“아냐, 저기 봐!”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친구들과 함께 앉아 있던 한수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람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제서야 모두가 깨달았다.
정말이다.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워리어스가 한수혁을 낚는데 성공한 것이다.
“미친!”
“진짜야?”
“야, 쟤 미국 간다며?”
“아니, 이러면 드래프트 순위 전부 다 밀리는 거잖아.”
“한수혁 인트로 영상도 없는데? 어떻게 하죠?”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9개 구단 관계자들은 얼빠진 표정으로 한수혁과 워리어스 테이블을 번갈아 쳐다보았고, KBO 관계자들은 지명 선수를 소개하기 위한 인트로 영상이 없다는데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워리어스 단장이 직접 말하지 않았던가. 한수혁과 접촉을 해봤으나 미국 진출 의사가 너무 확고해 포기했다고.
작년까지 시행되었던 드래프트 신청 제도가 폐지되면서 이래저래 혼란에 빠졌던 KBO는 한수혁에 대한 소개 영상조차 만들어 놓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왜 한수혁이 국내, 아니 꼴찌팀 워리어스에?
당황한 사회자가 임원들이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대책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결국 눈을 질끈 감은 사회자가 한수혁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건넸다.
“한수혁 선수, 죄송합니다. 지금 기술적인 착오로 인트로 영상 재생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혹시 야구팬분들에게 직접 자기소개와 인사말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풋내기라 해도 한수혁은 차원이 다른 선수였다.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에 던져놓아도 5선발은 거뜬한, 국내 야구라면 바로 에이스로 군림할 거라는 평을 받는 선수다.
마이크를 내미는 사회자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물론이죠.”
그런 사회자를 향해 가볍게 웃음을 지어 보인 나는 마이크를 받아 들고 카메라를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 채팅창이 폭발했다.
﹂커헉! 진짜다! 진짜 한수혁이야! 항수혁, 한수형, 한스혁, 그런 거 아니고 한수혁!
﹂워리어스 꼴통들이 선수랑 상의도 없이 질렀나 했더니 아니네. 한수혁이 웃고 있어!
﹂진짜 오려나 봐. 왜? 대체 왜? 돈 보따리 싸 들고 온 미국 애들 버리고 왜?
﹂서형주라도 건지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수혁이 온다고?
﹂와, 나 뭔가 깨달았다
﹂뭔데?
﹂워리어스 인수한 아이코닉 파트너스 대표가 누구냐?
﹂박성훈
﹂그 박성훈의 전 직업은?
﹂한수혁···의 에이전트? 아, 이거 큰 그림 그린 거였음?
﹂한수혁 데려오는 조건으로 워리어스 인수한 거임? 거기서 그 각을 봤다고? 야! 미쳤다
﹂죄송합니다. 듣보잡이 워리어스 인수했다고 씨부린 제가 미친놈입니다
﹂한수혁이면 인정이지. 국내 어떤 기업이 한수혁 데리고 올 수 있겠냐고
﹂꼴) 야, 쓰바, 쟤가 KBO에서 뛰는 건 반칙이지
﹂꼴) 맞음. 167은 커녕 147도 잘못치는 애들인데··· 야, 다 같이 먹고 살자
﹂그나저나 얼굴 봐. 진짜 잘 생겼다. 얼빠들 줄줄이 달고 다니게 생겼네
﹂ㅋㅋ, 지금 워리어스 쇼핑몰 뻗었음. 한수혁 유니폼 마킹하려는 거겠지
﹂와! 와! 진짜 이건 생각도 못했다. 쟤가 왜 여기서 나와?
﹂이러면 FA 먹튀 3인방 내보내는 건 아무 문제도 없지. 걔들 내보내고 그 돈으로 우리 수혁이한테 몰빵해주자
﹂그 분들도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들입니다. 너무 까지 맙시다
﹂쓰벌, 못해도 어지간히 못해야 참지. 그 가장들 어차피 다른 구단 가서도 잘 먹고 잘 살 테니 워리어스를 떠나다오. 괜히 우리 수혁이한테 꼰대질할까 겁난다
야구팬들의 반응이야 어쨌든 행사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익숙한 광경이다.
내가 미국에서 처음 사이영 위너가 되었을 때, 그리고 타자로 전향한 후 MVP를 따냈을 때, 그때 사람들의 표정이 지금과 꼭 같았다.
그때도 충분히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하지만 장담하건데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미국 최고의 투수라는 타이틀도, 아메리칸 리그 최고 타자에게 주는 상도 지금 이 순간만큼 나를 기쁘게 해주지 못했다.
그저 이 팀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메이저리그를 포기하고 한국야구 꼴찌팀 지명을 받고 좋아하다니.
누군가는 미친 소리라고 하겠지만 상관없다.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거니까.
그렇기에 나는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서울 워리어스의 지명을 받은 야구선수 한수혁입니다.”
“오···”
사람들의 표정에 그제야 실감난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정말 믿음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미국을 포기하고 한국에 남기로 했다는 것, 그리고 워리어스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는 것 말이다.
“한수혁 선수, 정말 메이저리그를 포기하고 국내에서 뛰시는 건가요? 이유가 뭡니까?”
얼빠진 표정으로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들을 향해 싱긋 웃어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습니다. 오늘은 그런 제 꿈이 이루어진 날이고요.”
“메이저리그 진출 외에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제가요? 그럴 리가요. 그저 여러 선택지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내 뜻이 제대로 전해진 것일까, 기자들이 추가 질문 대신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십, 수백 번 상상해온 순간이건만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차오르는 고양감으로 온 몸이 충만해진다.
“한수혁 선수, 질문 하나만 더! 내년 시즌 목표와 각오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그래서일까, 기자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마음 속 진심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여러분들이 제 말을 어떻게 생각하실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허황된 소리라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제 목표는 우승입니다. 워리어스가 우승하는 그 순간까지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내 가슴 깊숙한 곳에 돌덩이처럼 박혀 있던 무언가가 깨끗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꼈다.
젠장.
이렇게 쉽고 가까운 곳에 행복이 있었다는 걸 나는 왜 몰랐던 걸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