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02)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01화 (외전)(402/412)
#401화. 외전1 – 대투수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던 해, 처음 야구공을 잡은 제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고 싶어 하니 허락은 하겠지만 언젠가 야구를 포기하고 일반인의 삶을 살게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라고,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에 입단할 확률은 10% 미만이고, 그렇게 프로에 들어가서 다시 1군에서 자리를 잡을 확률은 1%도 안 될 거라고. 아버지는 아마 어린 아들이 걸어갈 험난한 길이 걱정되셨던 것 같습니다.”
2041시즌 KBO리그 개막전, 부산 타이탄스와의 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한 타자만을 소화하고 내려온 임준영이 경기가 끝난 후 다시 팬들 앞에 섰다.
오늘은 지난 26시즌 동안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온 영원한 에이스 임준영이 유니폼을 벗는 날이었다.
“저는 그때부터 단 한시도 아버지의 말씀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공에 집착하기보다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죠.”
워리어스 필드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워리어스뿐만 아니라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군림해온 그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모인 야구팬들이 임준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는 아직 더 뛰었으면 좋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그만하면 충분하다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두의 마음속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건 아쉬움이었다. 매년 시즌이 시작되면 항상 마운드 위에 서 있던, 26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순간도 그곳을 비우지 않고 지켜왔던 어떤 베테랑 투수를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야구팬들의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제가 속한 학교가 봉황대기 결승전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결승전에서 3이닝 5실점이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때 전 야구를 그만둘 생각이었습니다. 저를 마중 나온 아버지가 그 말을 하시기 전까지는요.”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던 임준영이 갑자기 울컥했는지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모자를 벗어들고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평소 조금이라도 몸에 안 좋은 영향이 있을까 염색조차 하지 않던, 그렇기에 새치가 가득하던 임준영의 머리카락이 단정한 검정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걸 본 관중들의 마음이 덩달아 울컥했다. 그 머리색을 보니 새삼 임준영이 마운드를 떠난다는 게 실감났기 때문이다.
“아들아, 솔직히 말하면 네가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 난 네가 금방 포기할 줄 알았어. 그래서 항상 네게 학업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혼내곤 했지. 하지만 오늘 네가 던지는 모습을 보니 알겠더구나. 넌 내 아들이기 이전에 야구선수 임준영이라는 걸. 그러니 아들아, 실망하지 말 거라. 넌 아직 어리다.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많은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러니 이제 머릿속에서 실패라는 단어는 지워라. 그리고 마운드 위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던지거라. 아빠와 엄마도 널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마.”
임준영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이 그의 마음을 진탕시켰다.
그 순간 워리어스 필드를 가득 메운 수만의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를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임준영의 어깨가 들썩거렸고 곧 잠잠해졌다. 그러자 관중들 역시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경기가 끝난 후 한참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누구도 경기장을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공을 던지다 보니 어느새 이만큼이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이제 전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정말 긴 시간이었고, 한편으로는 쏜살같이 지나간 시간들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팬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전 그저 145g짜리 가죽공을 조금 빠르게 던질 수 있는 사람에 불과했을 겁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저를 여러분은 에이스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임준영! 임준영! 임준영!”
“여러분, 정말 잘 놀다 갑니다. 이제 저는 그라운드를 떠나지만 이곳에 남은 후배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어린 선수들이 그 빈자리를 채울 것입니다. 혹자는 얘기합니다. 대한민국 야구의 미래는 어둡다고. 갈수록 줄어드는 아마추어 야구 인프라, 부족한 투자, 좁은 내수 시장… 네, 다 맞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 야구밖에 모르는 바보 같은 후배들을 믿습니다. 그들이 있기에 이 땅에 야구는 계속될 거라 확신합니다.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준 야구라는 스포츠에 경의를 보냅니다. 그럼 저 임준영, 물러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 워리어스 NO.11 임준영(45)
통산 26시즌 (역대 1위)
투구이닝 3,421이닝 (역대 1위)
평균자책점 2.94 (역대 5위)
승리 275승 (역대 1위)
탈삼진 2,851개 (역대 1위)
완투 112회 (역대 1위)
완봉 41회 (역대 1위)
패전 158회 (역대 1위)
피안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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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1년 4월 1일, 야구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한 에이스로 기억될 임준영이 유니폼을 벗고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 * *
“형님, 수고 많으셨어요. 정말로요.”
“고맙다, 수혁아. 은퇴 경기도 그렇고, 이렇게 좋은 기회도 만들어줘서.”
“뭘요, 제가 더 고맙죠. 그나저나 이제 정말 큰일이네요. 형님 없이 시즌 치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네요.”
“흐흐, 엄살은.”
“엄살이 아니라 확실히 메이저리그 같지는 않네요. 한번 빈자리가 생기면 채워 넣기가 쉽지가 않아요. 이건 뭐 트레이드를 하려고 해도 상대를 안 해주려고 하니.”
“그건 우리랑 트레이드하면 무조건 손해라는 인식이 퍼져서 그런 거 아닐까?”
“흠, 어쨌든 형님. 미국 가시면 일단 푹 쉬세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형님 집처럼 편하게 쓰셔도 돼요. 아, 이참에 은퇴 선물로 그냥 드릴까요?”
“야야야, 암만 그래도 그런 대저택을 내가 어떻게 그냥 받냐. 부담스럽다. 싫어.”
“형주랑 치욱이 그놈 새끼들은 입만 열면 집 내놓으라고 난리던데요?”
“걔들은… 흐흐, 너희 동기들은 언제 봐도 사이 좋아 보인단 말이지.”
“제가 참아줘서 가능한 거죠. 어쨌든 형님, 구단에는 다 말해놨으니 가서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2년 후에 다시 여기로 돌아오시는 겁니다.”
“알았다. 고맙다, 수혁아. 그리고…….”
“다녀오세요. 나머지 인사는 그때 하는 걸로 하죠.”
현역에서 은퇴한 임준영은 곧바로 가족들과 함께 미국 시애틀로 향했다.
앞으로 그는 약 두 달간 미국에서 달콤한 휴식을 즐길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시애틀 구단에 합류해 지도자 교육을 받게 될 예정이다.
임준영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한수혁이 민예린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오빠!”
“뛰지 마. 그러다 또 넘어진다.”
“알았어요. 조심할게요. 임준영 선수하고는 잘 인사 나누셨어요?”
“어, 내일 바로 시애틀로 넘어가야 해서 급하게 인사했지.”
“오빠는 괜찮으세요?”
“응? 뭐가?”
“오빠, 주변 사람들하고 헤어지는 거 힘들어하시잖아요. 특히나 임준영 선수하고는 정도 오래 드셔서…….”
“아냐, 내가 무슨. 이번에 안치욱하고 최마루 두 놈 미국으로 쫓아내는 거 못 봤어? 나 별로 그런 거 연연하는 사람 아니야.”
한수혁의 너스레에 민예린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겉보기와 달리 잔정이 많고, 다른 사람과의 이별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란 걸 민예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음, 그건 그렇고, 오빠. 다음 주 월요일에 구단 나가실 거예요? 훈련 있나요?”
“훈련이야 매번 있지만… 왜? 무슨 일 있어? 혹시 아버님 오시나?”
“아뇨, 그게 아니라, 같이 좀 가주셨으면 하는 데가 있어서…….”
“그래? 알았어. 그럼 그날 훈련 하루 쉬지 뭐.”
“네! 좋아요!”
* * *
– 야, 한수혁, 나 좆된 거 같다.
“뭐가?”
– 타구가 앞으로 나가질 않아. 시범경기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거든? 그런데 시즌 개막하니까 투수들이 던지는 공이 완전히 달라지네?
“당연하지. 내가 뭐라고 했냐. 시범경기는 진짜 시범경기일 뿐이라고 말했지?”
– …지금이라도 계약 무르고 다시 워리어스 돌아가면 안 되나?
“되겠냐?”
– 그치? 하아…….
지난 시즌 타율 0.338, 출루율 0.399, 장타율 0.565, OPS 0.964, 32홈런 121타점, wOBA 0.441, wRC+ 173.5, WAR 7.99로 데뷔 후 최고 성적을 기록한 안치욱은 결국 FA를 통해 시애틀 매리너스로 진출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루수가 FA 시장에 풀리자 국내 팀뿐만 아니라 빅리그 팀들까지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계약 기간 4년에 7천5백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시애틀을 이길 팀은 없었다. 물론 안치욱 역시 시애틀이 아니면 그냥 워리어스에 남는다는 입장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간 안치욱은 시범경기에서 2할대의 타율에 그쳤지만 간간히 터지는 장타와 그럭저럭 쓸 만한 수비력을 보여주며 새 시즌을 기대케 만들었다.
정규시즌이 시작되며 조금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한수혁이 생각하기에 그건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곧 투자한 만큼의 성적을 올릴 것이라, 한수혁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안치욱.”
– 어, 왜? 뭐 꿀팁이라도 하나 던져주게?
“잘해라. 너 계약서에 마이너리그 거부권 없는 거 알지?”
– …….
“못 하는 건 상관없는데 열심히 안 한다는 소리 내 귀에 들리면 바로 더블A행이다. 너한테 투자한 돈? 나 그거 별로 안 아까워. 그냥 다른 데서 3루수 하나 더 사오면 되니까 잘 생각해라.”
– 왜 넌 맨날 나만 쥐 잡듯이…….
“됐고, 집은? 새로 들어간 집은 어때?”
– 다 좋은데 꼭 형주 저놈이랑 같은 집에서 살아야겠냐?
“그럼 네 돈으로 따로 구하든지. 공짜로 집을 줘도 불평이네. 야, 이 새끼야. 마루 좀 본받아. 걔는 좋은 집 구해줘서 고맙다고 계속 메시지 보내던데.”
말은 그렇게 해도 안치욱은 같은 팀에 서형주가 있다는 데, 그리고 그와 같은 집에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건, 그냥 투정일 뿐이다.
– 형주 그 새끼, 새벽마다 나 깨워서 강제로 러닝시킨단 말야. 난 아침에 푹 자야 컨디션이 올라오는 타입인데. 그리고 간식도 못 먹게 하고!
혹은 진심일 수도 있고.
어쨌든, 한수혁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기인 서형주, 안치욱, 그리고 후배 최마루가 모두 그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빅리그라는 큰 무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한수혁은 생각했다.
이 정도면 된 것 아닌가?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 아닐까?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묘한 감정이었다. 한수혁은 자신이 두 명의 동기들과 꽤 깊숙이 정이 들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그때,
“오빠! 지금 출발하실 수 있으세요?”
“어? 그래, 바로 나갈게.”
민예린의 말에 한수혁이 외투를 걸쳐 입고 후다닥 따라나섰다.
오랜만에 민예린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한 두 사람.
그 차가 도착한 곳은 병원이었다.
“예린아, 여기는 왜…….”
“그냥 따라오세요.”
그리고 잠시 후 인자한 미소가 썩 잘 어울리는 중년의 여의사가 한수혁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축하드려요. 한수혁 선수.”
“네?”
“임신 8주차입니다. 야구팬들이 많이 기뻐하겠네요.”
오늘 하루 조금은 우울해 있던 한수혁의 얼굴에 세상 다시없을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건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남자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