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03)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02화(403/412)
#402화. 외전2 – 탄생
오랜 시간 마운드를 지켜온 베테랑 선발투수와 팀의 기둥 중 하나인 2선발, 그리고 3번 타순에서 역대급 성적을 기록한 중심타자를 동시에 잃은 워리어스의 2041 시즌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세 사람이 빠진 자리를 간신히 메우긴 했지만 2루수와 좌익수를 제외한 주전급 선수들의 평균 나이가 33세에 달한다는 건 장기 레이스를 펼치는 데 상당한 약점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39세 시즌을 맞이한 투수 최고참 천상진이 시즌 개막전에서 팔꿈치 부상을 당하며 워리어스는 역대 최악의 스타트를 기록했다.
한수혁과 용병 투수로 이어지는 1, 2선발은 여전히 강력했지만, 차마 강하다고 말할 수 없는 나머지 선발진과 중간 계투진이 팀의 발목을 잡았다.
그 결과 전반기가 모두 끝났을 때 서울 워리어스는 5할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성적으로 리그 6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따아아아아아악!
이 팀에는 그가 있었다.
메이저리그와 한국야구, 아니, 전 세계 야구계를 완전히 초토화시킨 규격 외의 존재,
야구의 신이라 불리는 선수,
그리고 이제 얼마 후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남자,
한수혁.
따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즌 전반기, 안치욱의 부재로 인해 노골적인 고의사구 행렬이 이어지며 한수혁의 출루율이 6할 중반대를 돌파했다.
모든 투수들이 한수혁과의 승부를 피했고, 안타보다 볼넷이 더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게 만든 건 지명타자 최재민이었다.
이제는 장애가 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프로 야구선수가 된 그가 후반기 맹타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런 최재민이 장덕수와 함께 뒤를 받치자 투수들이 어쩔 수 없이 한수혁에게 승부를 걸었고, 결국 장렬하게 산화했다.
한수혁의 성적과 함께 워리어스의 승률 역시 급속도로 상승했다. 그리고 마침내 부상으로 물러나 있던 천상진이 팀에 복귀했다.
천상진의 복귀와 함께 역대 팀 최다연승 공동 1위에 해당하는 22연승을 내달린 워리어스는 9월 마지막 주가 되었을 때 서울 매지션스에 이은 2위까지 올라섰고,
슈웅
파아아앙!
“스윙! 아웃!”
10월 둘째 주 첫 경기에서 한수혁이 매지션스를 완봉으로 잡아내며 마침내 1위 자리에 등극했다.
그리고 시작된 가을 야구,
또다시 가을야구 맛을 보게 된 대전 팔콘스와 지난 시즌 준우승팀 부산 타이탄스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맞부딪혔다.
세기의 대결이라 불린 그 경기의 승자는 부산 타이탄스였다.
[4위 부산 타이탄스, 9이닝 3실점, 1홈런 2타점 기록한 박장열의 활약에 힘입어 대전 팔콘스 제압] [경기 MVP로 선정된 박장열 “내 우상이자 정신적 스승인 한수혁 선배님의 발뒤꿈치라도 쫓아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무한한 영광을 느낀다.” 올해는 워리어스를 이길 수 있을 거 같냐는 질문에 “글쎄, 그건 좀…” 타이탄스 팬들 분노]그렇게 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부산 타이탄스는 인천 레인저스와 5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그리고 결국 3승 2패로 레인저스를 누르고 플레이오프 행 티켓을 따냈다.
[지난 시즌 준우승팀 부산 타이탄스, 서울 매지션스와 한국시리즈 진출권 놓고 정면 승부] [한수혁을 제외한 유일한 투타 겸업 선수 박장열을 앞세운 부산 타이탄스 VS 팀 타율 0.290을 기록한 타격의 팀 서울 매지션스]2040시즌, 워리어스의 압도적인 전력에 밀려 준우승에 머문 부산 타이탄스는 좌절하지 않고 팀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번 정규시즌 순위 경쟁이 워낙 치열했던 탓에 시즌 성적은 4위에 머물렀지만 전체 전력은 지난 시즌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평가였다.
그런 타이탄스가 또다시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매지션스를 물리쳤다.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 9회 등판해 팀의 마지막 이닝을 책임진 박장열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까지 왔는데 우짜겠노, 라고. 나 역시 같은 생각이기에 망설임 없이 마운드에 설 수 있었다.”]누군가는 선수 혹사라 말했고 또 누군가는 투혼이라 말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런 박장열의 희생으로 타이탄스가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 한수혁의 압도적인 투구에 밀려 완봉패를 당한 타이탄스는 이어진 2차전과 3차전 역시 허무하게 내주고 말았다.
그럼에도 부산 시민들은 타이탄스를 응원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78889878을 찍던 팀이 2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충분히 기뻤다.
벼랑 끝에 몰린 팀을 응원하기 위해 부산 시민들이 사직구장을 가득 메웠다.
팀의 운명이 달린 마지막 4차전,
오늘 이 순간을 있게 해준 팀의 에이스 박장열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의 얼굴에 렌즈 없는 금테 안경이 씌워져 있었다.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그의 모습에 부산 팬들이 또다시 열광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타이탄스 팬들이 웃을 수 있었던 건 말이다.
안경 에이스의 손끝에서 떠난 커브가 멋진 각을 그리며 포수 미트로 들어가는 순간,
그 공을 던진 투수가 어깨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리고 타이탄스는 패망했다.
[또다시 싱겁게 끝난 한국시리즈, 서울 워리어스의 4연승으로 끝나] [한국시리즈 MVP 한수혁 “팀의 우승도 기쁘지만 후배의 부상이 더 걱정된다. 박장열은 괜찮은가?” 기자들에게 물어] [1회 마운드에서 쓰러진 타이탄스 에이스 박장열, 검진 결과 어깨 회전근개 파열 진단, 선수 생명 위험] [분노한 타이탄스 팬들, 사직구장 앞에 몰려들어 집단 시위 시작] [2040년대에도 계속되는 투수들의 혹사, 과연 막을 방법은 없는가] [서울 워리어스 선수이자 구단주인 한수혁 “타이탄스 측에서 요청한다면 매리너스 측과 연계되어 있는 전 세계 최고 권위자에게 박장열의 치료를 부탁하겠다.”] [부산 타이탄스 “성의는 고맙지만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일축, 분노한 타이탄스 팬들 구단 사무실에 계란 투척]그렇게 여러 일들이 있는 가운데 드디어 2041시즌 KBO 리그가 막을 내렸다.
한수혁 복귀 이후 2년 연속 챔피언의 자리에 등극한 서울 워리어스,
그 팀의 또 다른 누군가가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 * *
“형, 정말 은퇴 경기 안 하실 생각이세요?”
“응, 필요 읎어. 괜히 엔트리 한 자리 차지하는 것도 민폐고, 마지막 한국시리즈에서 홈런 쳤으면 됐어. 그 정도면 훌륭한 은퇴 경기지.”
“그럴 줄 알았으면 그때 팬들에게 발표라도 했을 텐데…….”
“아녀, 괜히 그런 말 해봐야 애들도 그렇고, 팬들도 뒤숭숭하기만 하지.”
“섭섭해요. 형.”
난생 처음 한수혁에게서 섭섭하다는 말을 들은 장덕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유니폼을 벗을 결심을 하는 이런 순간에 후배의 말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지다니,
참으로 모를 일이었다.
“수혁아.”
“네, 덕수 형.”
“고맙다.”
“뭐가요?”
“그때 내 편 들어줘서.”
“편? 언제… 아, 그때요?”
“그래, 황성민 선배가 나 괴롭힐 때 네가 없었으면 오늘 이 순간도 없었을겨.”
“제가 무슨 편을 들었어요. 솔직히 그때 형한테 못 할 말도 했는데요.”
“아녀, 내가 그 말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잖여. 너 아니었으면 나 아직도 그런 놈들한테 구박받으면서 그냥 꾹 참고 살았을겨. 고맙다. 너 덕분에 야구 재미있게 하고 간다.”
“…….”
장덕수의 담담한 고백에 한수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또 한 사람의 동료가 자신의 곁을 떠나려 한다는 사실이 그를 울적하게 만들었다.
현역 은퇴 후 코치의 길을 선택한 다른 선배들과 달리 장덕수는 야구계를 완전히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팀의 주전 포수로서, 나이를 먹어서는 1루수이자 주포로서, 그리고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질 때면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료로서,
그렇게 지난 20년간 서울 워리어스를 지켰던 장덕수가 은퇴 경기도 없이 그대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서울 워리어스 NO 18. 장덕수(40)
통산 18시즌
타율 0.278
출루율 0.355
장타율 0.558 (역대 2위)
OPS 0.913 (역대 13위)
안타 1,975개 (역대 19위)
홈런 394개 (역대 2위)
타점 1,290개 (역대 8위)
볼넷 815개 (역대 17위)
삼진 1,305개 (역대 11위)
* * *
“그럼 1루수는 FA 영입 쪽으로 가닥을 잡고… 3루수는 신인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보는 것도… 음, 수혁아.”
“…….”
“수혁, 한수혁?”
“어, 형. 미안. 방금 뭐라고 했지?”
“흐흐, 너도 사람이 맞긴 맞구나. 하나도 집중 안 되지?”
“아니, 꼭 그렇다기보다는…….”
“그러니까 내가 그냥 알아서 한다니까 굳이 회의는 왜 잡아서. 야, 지금이라도 그냥 가봐. 어차피 오늘 휴일이잖아. 너나 나나 이게 뭔 청승이냐?”
“아냐, FA 계약 때문에라도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처리해야지. 어쨌든 형, 아니, 프런트 생각은 덕수 형 자리는 FA로 메우자 이거지? 근데 저 친구는 외야수잖아?”
“어쩔 수 없어. 지금 FA 매물 중에 전문 1루수는 하나도 없으니까. 너 미국에 있을 때 쟤 1루수로 간간히 뛰었는데 생각보다 기록 괜찮았거든.”
“그래? 음, 어디 보자. 세부 지표가…….”
“야, 그냥 지금이라도 그거 손에서 내려놓고 빨리 가봐. 네 돈 들어가는 거라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있긴 한데 솔직히 내 마음이 다 불편하다, 야.”
“돈이 문제가 아니라, 빠져나간 전력 메우려면 정신 바싹 차려야지. 작년에 준영이 형이랑 마루랑 치욱이 놈 나가고, 이제 덕수 형까지 나가고. 여기가 미국이면 그냥 돈으로 다 사버릴 텐데 이건 뭐 돈을 쓰려고 해도 매물이 없으니.”
“하기사, 시애틀만 봐도 잠깐 휘청거리더니 바로 본궤도로 돌아왔지. 확실히 그쪽이 시장이 크긴 커.”
“당연하지. 가성비 같은 거만 안 따지면 거기서는 돈만 있으면 선수단 보강하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럼 양키스는 뭔데? 매번 돈은 돈대로 쓰고 20년 넘게 우승 한 번 못하는 걔들은?”
“그건 그냥 멍청이들이고, 아무튼… 어?”
“왜?”
“형! 나 먼저 가볼게. 이거 나머지는 나중에… 아니다, 어차피 형이 내 뜻은 다 아니까 전결로 처리해줘.”
“뭐야? 연락 온 거야? 지금? 바로 오래?”
“응, 나 간다.”
“야, 뛰지 마! 그러다 다친다! 밖에 차 대기시켜 놨으니까 바로 타고 가면 돼. 어차피 5분 거리잖아.”
“어, 고마워! 나중에 전화할게!”
“그래, 미리 축하한다. 나도 여기 정리하고 바로 갈게!”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한수혁이 구단 사무실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박성훈이 미리 준비해둔 차가 대기 중이었다.
“모시겠습니다.”
“네, 부탁드려요.”
한수혁을 태운 차가 다급히 출발했다.
구단 사무실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병원.
차에서 내린 한수혁이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섰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선수이자 재벌인 그가 나타나자 로비가 웅성거렸다. 누군가 사인지를 내밀려 하다가 한수혁의 표정이 다급한 걸 보고는 그냥 집어넣었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뚫고 사라진 한수혁이 어딘가에 도착했다.
밖에 대기 중이던 간호사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늦지 않게 오셨네요?”
“시작된 건가요?”
“네, 방금요.”
“예린이는, 괜찮은 거죠?”
“그럼요. 아무 이상 없으세요. 모든 게 완벽하니 너무 걱정 말고 기다리세요.”
“감사합니다.”
가슴을 쓸어내린 한수혁이 병원 복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무나도 기다리던 순간이었고, 또 너무나도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제발 아무 일 없길, 모두가 무사하길.
“야, 수혁아! 괜찮아? 아직이야?”
“한 서방! 예린이는?”
잠시 후 일을 마치고 달려온 박성훈, 그리고 민예린의 아버지이자 한수혁의 장인인 민태현이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덜컥
“한수혁 선수, 아니, 아버님, 이리 들어오세요.”
“네? 저요?”
끄덕
기분 좋은 미소를 띤 간호사가 한수혁을 향해 손짓했고, 그녀가 내민 가운과 장갑을 낀 한수혁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얼마 크지 않은 작은 분만실 안에,
기적이,
회귀보다 더 큰 기적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응애!”
“오빠…….”
“예린아, 힘들었지.”
“아뇨, 전 괜찮아요. 이 정도야 뭐, 헤헤.”
“고생했어. 정말로.”
“그보다 우리 애기, 우리 왕자님 빨리 안아주세요.”
“응? 으응…….”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아이를 건넸다.
아이를 받아든 한수혁이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마도 회귀 후, 아니, 그의 생을 통틀어 가장 커다란, 그런 웃음이었다.
“오빠를 쏙 빼닮았어요. 아, 그리고 조금 늦었지만 오빠.”
“으응…….”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 둘 다 생애 가장 큰 선물을 받게 되었네요.”
방금 전까지 멀쩡했던 하늘에서 갑자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거리로 나왔던 연인, 가족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크리스마스의 기적처럼 하나가 되었던 야구의 신과 팝스타에게 왕자님이 생겼다.
그건 한수혁이 80개의 홈런을 치고, 0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 무엇보다 값진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