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05)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04화(405/412)
#404화. 외전4 – 최고참
모든 운동 종목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야구는 타고난 피지컬이 무엇보다 중요한 스포츠다.
예전에는 피지컬이 약해도 타고난 머리와 센스로 이를 극복하는 선수들이 제법 있었지만,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주는 트레이닝 방법이 보급되고, 세이버매트리션들의 손을 거친 각종 데이터들이 선수들의 머리를 대신하며,
이제 야구는 타고난 육체적 재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스포츠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현대 야구의 흐름을 확 바꿔놓은, 100마일을 던지는 투수들의 숫자를 급격하게 늘린 구속 혁명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소프트웨어는 부족하지만 하드웨어 하나는 타고난 중남미 지역 신인 투수들이 대거 시장에 풀렸고, 이들에게 최첨단 분석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트레이닝법이 적용되며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이 확 올라가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난 15년간 워리어스 선발 마운드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수혁이 미국으로 건너간 동안 임준영과 함께 이 팀의 에이스 역할을 했던 천상진은 여러모로 특이한 선수였다.
25세 시즌 전까지 단 한 번도 1군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그는 포심 최고 구속이 140㎞/h 초반대에 불과한, 그렇다고 해서 변화구 각이 아주 대단하지도 않은,
평범한 체구에 평범한 변화구와 부족한 구속, 그나마 괜찮은 제구력을 가진, 좌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그런 투수였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정확히는 15년하고도 또 반년 전,
난생 처음 1군 무대 선발등판에서 9이닝 완봉승을 기록한 천상진은 이렇게 말했다.
‘제게는 재능이 없습니다. 투수에게 가장 좋은 무기인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좋은 변화구를 던지기 위한 길고 튼튼한 손가락도 없습니다. 그나마 왼손으로 공을 던진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기는 하네요.’
‘그래서 더욱 노력했습니다. 잠을 줄이고, 휴식을 줄이고, 대신 다른 팀 타자들의 타석을 하나라도 더 보고 외우고 분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완투승의 비결이요? 글쎄요. 어쩌면 이번이 제 마지막 완투승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선수라도 1군 무대에서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 후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한 발 더 앞으로 움직이는 것, 그것이 오늘 완투승의 비결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팬 여러분, 저는 오늘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시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었던 천상진의 말처럼, 그는 지난 프로 생활 내내 어떻게든 한 발 앞으로 더 움직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투수가 아니라 스토커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상대 타자들을 분석했고, 그 결과 KBO 구단들이 소속 선수들에게 SNS 사용을 금지시키는 웃지 못할 일까지 만들어냈다.
전성기 시절에도 최고 구속이 142㎞/h에 불과했던 이 투수는 40세 시즌이 된 지금까지도 138㎞/h라는 구속을 유지하고 있다.
그건 이 투수가 얼마나 지독한 노력파인지, 자신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부웅
“스윙! 아웃!”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따악
“아웃!”
언제나처럼 구속이나 구위가 아닌 머리로 타자들을 상대하는 천상진.
선수 인생 마지막을 건 천상진의 투구에 매지션스 타자들이 속절없이 물러났다.
1회, 2회, 3회, 그리고 마침내 9회 말,
한수혁의 솔로 홈런으로 워리어스가 1점을 앞서 나가는 가운데 매지션스의 마지막 공격이 준비 중이었다.
8회 말까지 111개의 공을 던진 40세의 나이 든 투수.
지난 3년간 이 팀의 뒷문을 책임져온 특급용병 에릭 바클리가 불펜에서 몸을 풀긴 했지만 조성오 감독은 아무 망설임 없이 천상진을 마운드로 올려보냈다.
“상진아, 가라. 가서 네가 어떤 투수인지 보여주고 와.”
“감독님, 아니, 형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니, 내가 고마웠다. 우리 에이스.”
지금 이 순간, 마운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베테랑 투수는 한수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에이스라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는,
선수생활 내내 단 한 번도 최고였던 적이 없었음에도 그 호칭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투수였다.
“천! 상! 진!”
“천상진! 잘해라!”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연습투구를 마친 천상진이 인생 마지막 투구에 돌입했다.
135㎞/h까지 떨어진 구속, 흔들리기 시작하는 제구, 벌겋게 달아오른 손가락 피부까지.
무엇 하나 희망적인 게 없었지만 그럼에도 천상진은 아무런 동요 없이 타자를 향해 공을 뿌렸다.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그런 천상진의 기세에 눌린 매지션스 2번 타자가 5구 만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잠실야구장의 분위기가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매지션스 팬들보다 숫자적으로 훨씬 많은 워리어스 원정 팬들이 천상진의 이름을 연호했다.
부웅
“스윙! 아웃!”
거구의 용병 타자가 3구 만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천상진이 던진 몸 쪽 낮은 포심의 구속이 143㎞/h를 기록하는 순간,
사람들은 깨달았다.
오랜 시간 워리어스의 마운드를 지켜온 대투수가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고 있음을.
그리고,
따악!
매지션스의 마지막을 책임진 4번 타자의 타구가 중견수 쪽 펜스를 향해 훨훨 날아갔고,
부웅
펜스를 밟고 점프한 한수혁이 그 공을 향해 힘껏 글러브를 뻗는 순간,
터억
그리고 그 글러브 속으로 타구가 빨려 들어가며 2042시즌 챔피언이 결정되는 순간,
한국시리즈 최종전을 은퇴 경기 삼아 마운드에 오른 40세 투수가 생애 마지막 완봉승을 기록하는 순간,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천상지이이이인!”
“천상진!”
관중들은 자신이 워리어스를 응원한다는 사실을, 야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천상진이라는 대투수의 마지막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했다.
화려한 축포와 우승 세레모니가 모두 끝나고, 아직 그 열기가 남아 있는 그라운드에 천상진이 홀로 섰다.
“안녕하십니까, 천상진입니다.”
언제나처럼 다소 딱딱한, 그렇기에 오히려 신뢰가 가는 천상진의 목소리가 잠실야구장에 울려퍼졌다.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본 워리어스 팬들뿐만 아니라, 또다시 준우승에 그친 매지션스 팬들, 그리고 명승부를 보기 위해 찾아온 중립 팬들 모두 숨을 죽인 채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그 시기가 조금 빨랐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감독님이 그러셨거든요. 넌 아마 투수로 대성하기는 힘들 거라고.”
“어린 마음에 그 말이 너무 가슴에 맺혔습니다. 오기가 생겼죠. 꼭 그 말을 후회하게 만들어드릴 거라고.”
“하지만 반전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그런 투수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0라운드에 간신히 지명되어 2군 생활을 했으며, 스물 중반의 나이가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1군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런 제가 이렇게 워리어스의 선발투수가 되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프로에서 뛸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건 분명 기적일 겁니다. 지금까지 절 도와주신 수많은 분들이 없었다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세상은 때론 잔인합니다. 노력보다는 재능이, 그리고 재능보다는 운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한다는 걸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처럼 재능도, 운도 없는 녀석은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 하루하루를 보내야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항상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노력이고, 그 노력이 아무리 성공에 작은 역할밖에 못한다 해도, 그것마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라는 걸 말이죠.”
“다행히 제 인생을 바꿔줄 단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고, 그 오랜 시간 제가 준비해온 노력들, 그리고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그 경기에서 절 위해 안타와 호수비를 기록해준 옛 동료들, 그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누군가는 제게 조금만 더 해보라고, 아직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얼마 전 제가 밥을 먹다 젓가락을 계속 떨어뜨리는 걸 본 아내가 그러더군요.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지쳐 보인다고.”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제 제게 투수 천상진이 아닌 아빠 천상진, 남편 천상진으로 살아가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제 욕심보다는 가족을 위해 살아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저 천상진, 이만 물러갑니다. 제가 남긴 기록들이 재능이 없어 좌절하는 후배들에게 아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길 바라며, 저는 두 번째 인생을 살기 위해 떠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 그 어떤 선수보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하던,
평생 야구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던 천상진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누군가는 말했다.
현역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야구 이론에 대해 누구보다 빠삭했던, 단 한순간도 야구에 대한 공부를 쉬지 않았던 그가 지도자의 길을 밟게 될 거라고.
이 세상에 천상진만큼 준비된 지도자 감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유니폼을 벗은 천상진은 그라운드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미국 유학을 지원해 주겠다는 한수혁의 제안마저 거절한 그는 경기도 인근에 작은 전원주택을 짓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두 번째 삶을 시작했다.
그건 어쩌면 반평생 야구만을 위해 살아온 남자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몰랐다.
한때 투수가 아닌 스토커라 불렸던,
두뇌피칭이라는 말이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던 KBO 역대 최고의 피네스 피처 천상진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서울 워리어스 NO.75 천상진(40)
통산 15시즌
투구이닝 2,598 1/3이닝 (역대 3위)
평균자책점 3.15 (역대 13위)
승리 171승 (역대 3위)
탈삼진 1,819개 (역대 4위)
완투 65회 (역대 8위)
완봉 18회 (역대 7위)
.
.
.
* * *
한편, 2042시즌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난 건 천상진만은 아니었다.
한국시리즈 우승 전까지 별다른 말이 없던, 그렇기에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남기지 못한 선수 하나가 또 그라운드를 떠났다.
“형, 아직 좀 더 하실 수 있어요.”
“야, 이제는 뛰다 보면 무릎이 시큰거려서 눈물이 찔끔찔끔 나와. 됐어, 이 정도면 진짜 할 만큼 한 거 같다.”
매지션스에서 트레이드되어 와 오랜 시간 워리어스의 외야를 책임졌던 베테랑 외야수 최민석이 현역 은퇴 의사를 밝혔다.
젊은 시절에는 1번 타자 같은 9번 타자라 불리던, 그리고 나이를 먹은 후에는 팀의 4, 5옵션으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 최민석이었지만 어느새 41세에 접어든 그는 예전의 주력과 수비력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3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 도화선이나 된 것처럼 선수들의 은퇴 선언이 줄을 이었다.
한수혁의 KBO 데뷔 시즌 깜짝 마무리 투수로 발탁된 후 계투요원으로서 아주 좋은 성적을 남긴 양기철 역시 옷을 벗었고…….
“인철아, 포지션을 바꿔서라도 조금만 더 시도해 보자.”
“아냐, 수혁아. 조금 이르긴 하지만 지금이 딱 좋은 시기인 것 같아. 너희 동기들 덕분에 정말 재미있게 야구한 것 같다. 고맙다.”
한수혁, 안치욱, 서형주 등 화려한 동기들에 가려 있었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꾸준한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유격수였던 유인철이 조금 빠른 은퇴를 결정했다.
3년 전부터 계속된 부상과 치료, 재활에 지쳐 있던 그는 와이프가 하는 사업을 함께하기로 결정하고 미련 없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임준영, 장덕수, 천상진, 최민석, 양기철, 그리고 유인철까지,
그렇게 많은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제 워리어스 선수단에 한수혁보다 나이 많은 선수는 아무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한수혁은 워리어스의 최고참이 되었고,
시간은 계속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