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pitcher hides 170km RAW novel - Chapter (406)
천재 투수가 170km를 숨김-405화(406/412)
#405화. 외전5 – 마지막 발걸음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는 이 지구상 모든 이들이 인정하는,
전 세계 야구, 아니, 스포츠계의 황제이자 대한민국 개인 자산 1위에 빛나는 남자가 살고 있었다.
한수혁,
18세의 나이에 프로에 데뷔한 후 KBO를 3년 만에 폭파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 그곳에서 보낸 10년 동안 빅리그 투타 통산 기록 대부분을 갈아치운,
그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7년을 뛰며 자신 소유의 팀 워리어스를 여섯 차례 우승으로 이끈 야구의 신.
우당탕
“시원아! 아빠 왔다!”
그의 커리어에서 야구 실력만큼이나 유명한 게 바로 싸움 실력이었다.
프로 통산 35차례의 벤치클리어링을 벌이며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 없는, 상대가 누구건 펀치 한 방으로 때려눕히는 주먹의 소유자이자 적에게는 한 치의 자비도 베풀지 않는 냉혹한 성격의 소유자 한수혁.
하지만,
“시원아, 아빠… 음, 우리 시원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저 그림책 볼 시간이라 들어가 볼게요.”
“그래? 아빠가 피자 사왔는데 이거라도 먹고…….”
“나중에 먹을게요, 아빠.”
“응? 피잔데?”
그런 한수혁 역시 자신의 자식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평범한 아빠에 불과했다.
올해 다섯 살이 된 한수혁과 민예린의 아들 한시원,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또래에 비해 유난히 감수성이 풍부하고 언어능력이 발달한 아이가 아빠가 사온 피자를 두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뜻밖의 상황에 굳어버린 한수혁에게 그의 아내 민예린이 다가왔다.
“들어오셨어요, 오빠? 회의 금방 끝났나 봐요?”
“어, 오늘은 뭐 선수단 인센티브 문제만 결정하면 되는 거라서… 아니, 그보다 저 녀석 왜 저래? 어린이집에서 친구랑 싸우기라도 한 건가?”
“시원이요? 풋, 아니에요. 오빠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아니, 애가 피자를 거부하는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뭔데, 예린아. 그러지 말고 말해봐.”
“음, 진짜 별 것 아닌데.”
민예린이 TV를 켜 방금 전 아들이 보던 동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화면 속에는 금발에 파란 눈을 한 잘 생긴 야구 선수 하나가 마이크 앞에 서 있었다.
“쟤 데이빗 블레이크잖아. 이건 왜 트는 건데?”
“시원이가 이것 때문에 시큰둥한 거거든요.”
“응? 뭔 소리지? 이게 뭔데?”
“오빠가 직접 보세요.”
민예린이 대답 대신 스피커 볼륨을 높였다.
방금 전 한수혁이 언급한,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이자 중심타자이며 나아가 올해 정규시즌 MVP와 사이 영 상, 월드시리즈 MVP를 모두 석권한 뉴욕의 슈퍼스타 데이빗 블레이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데이빗, MVP와 사이 영 위너가 된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나아가 한수혁 선수 이후 처음으로 투타 겸업에 성공하신 것도요.”
“감사합니다.”
“전 세계 야구팬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바로 이걸 겁니다. 한수혁 선수가 한국으로 떠난 후 메이저리그에는 투웨이라 부를 만한 선수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올 시즌 데이빗 선수가 투수로서, 타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을 놓고 모두가 열광하고 있습니다. 질문 드립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이자 투웨이의 교본이라 불리던 한수혁 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의 질문에 데이빗이 살짝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곧 생각이 정리되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일단 전 한수혁 선수를 진심으로 존중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메이저리그 선배로서, 아직 누구도 따라잡지 못한 커리어를 쌓아올린 레전드로서, 그리고 빅리그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투웨이를 다시 되살린 선구자로서 말이죠.”
“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얼마 전 재미있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스포츠 도박 전문 사이트에서 저와 한수혁 선수 간의 가상 투타 대결을 진행했다고 하더군요. 서로 마운드와 타석을 번갈아 바꿔가면서 말이죠.”
“저도 봤습니다. 이래저래 꽤 화제가 된 사건이었죠.”
“네, 제가 놀랐던 건 그 내기에 참가한 도박사들 중 상당수가 한수혁 선수 쪽에 배팅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팬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물론 한수혁은 여전히 대단한 선수입니다. 비록 하위 리그에서 뛰고 있긴 하지만 38세라는 나이에 55개의 홈런에 평균자책점 1.58을 기록한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알 수 있죠. 하지만!”
“하지만?”
“내년이면 그도 39살입니다. 네, 이제 마흔이 다 되었다는 거죠. 그리고 저는 올 시즌 세계 최고의 무대인 빅리그에서 평균자책점 1.61, 홈런 62개를 친 25살의 선수고요. 전성기 시절 한수혁 선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제가 밀린다 해도 아무 불만도 없습니다. 그 시절 그는 매 시즌 70개 이상의 홈런에 0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위대한 선수였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그도 늙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매년 발전하고 있고요. 그런데 왜 사람들이 제가 한수혁 선수보다 못하다 여기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기 데이빗,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조심을 하는 게…….”
“논란이라고요? 이게 논란이 될 거리인가요? 하,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현 시점 저는 빅리그 최고의 스타입니다. 반면 한수혁은…….”
틱
필요한 건 다 봤다는 듯 영상을 꺼버린 민예린이 한수혁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 아시겠죠? 시원이가 왜 기분이 상했는지? 아빠가 세상 최고라고 생각하는 애가 난생 처음 그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게 돼서 그런 거니까 그냥 모른 척하시면 돼요. 얼마 안 있으면 잊어버릴 거예요, 오빠.”
“흠.”
“오빠, 설마 저런 풋내기 말에 신경 쓰는 건 아니죠? 저거 아마 에이전시에서 시켰을 거예요. 장기계약 앞두고 화제거리 좀 만들어서 몸값 올리겠다는 속셈이겠죠.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빨리 씻고 나오세요. 저녁 드셔야죠.”
“흐음.”
“오빠?”
“흐으음…….”
* * *
– 잘했어, 데이빗. 오늘 그 인터뷰로 자네 몸값이 최소 천만 달러는 더 올라갔을 거야. 욕은 좀 먹겠지만 뭐 어떤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제길, 알프레드. 내 SNS가 사람들의 욕으로 뒤덮여가고 있어. 알림조차 켜놓을 수가 없다고.”
– 흐흐, 어쩔 수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수혁을 건드렸으니 말이야.
“아니, 반쯤은 시켜서 한 일이긴 하지만 이게 이렇게 논란이 될 일인가?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내일 모레 마흔이 되는 늙은이와 비교하지 말라고 한 게 뭐가 문제인데? 어?”
– 맞아. 자네 말이 다 맞아. 원래 과거란 미화되는 법이거든. 지금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건 전성기 시절 메이저리그를 박살 내던 한수혁이니까. 지금 그가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그런 건 전혀 안중에 없는 거지. 한수혁 다음으로 위대한 야구선수로 베이브 루스가 꼽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안 그래?
“쯧, 어쨌든 좋아. 그건 그렇고 양키스 쪽은 어때? 여전히 10년 7억 달러, 거기서 버티고 있나?”
– 아쉽게도.
“제길, 고리타분한 것들. 역대 최고액 이상은 절대 못 주겠다 이거지?”
– 그래서 말인데, 데이빗.
“왜.”
– 자네, 팀을 옮길 생각은 없나? 텍사스에서 12년 계약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안 돼. 너도 알잖아. 난 뉴욕을 떠날 생각이 없다는 거. 세계 최고의 선수는 최고의 팀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거야.”
– 흠, 알았어. 그럼 계획대로 텍사스 쪽 오퍼는 협상카드 정도로만 사용하지. 조금만 기다려봐. 내가 어떻게든 스타인브레너 이 늙은이의 고집을 꺾어놓을 테니까.
“좋아, 자네만 믿지.”
– 아, 그리고 데이빗, 이건 그냥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기왕 이렇게 된 거 한수혁 선수에게 SNS로라도 인사 한마디 정도 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뜻하지 않게 당신의 이름이 거론되게 해서 죄송하다 뭐 이 정도?
“뭐 하러. 어차피 욕은 벌써 다 먹었는데. 굳이 굽히고 싶지 않아. 나 운동 갈 시간이니 이미 끊자고.”
– 잠깐, 잠깐만, 데이빗, 아무리 그래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데이빗이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며 투덜거렸다.
“젠장, 그놈의 한수혁, 한수혁, 한수혁, 대체 언제적 한수혁이야? 지겨워 죽겠군 정말.”
* * *
2041시즌 임준영, 장덕수, 안치욱, 최마루,
2042시즌 천상진, 양기철, 최민석, 유인철,
그렇게 워리어스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선배들과 동기, 후배들을 모두 떠나보낸 한수혁은 새로운 신인들과 함께 팀을 지켰다.
주축 선수들이 한꺼번에 빠진 채 맞이한 2043시즌, 매지션스에 일격을 맞으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그 해를 제외하면 워리어스는 단 한 번도 챔피언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모든 건 한수혁의 존재 덕분이었다.
선배들을 대신해 1군에 자리 잡은 워리어스의 신인들은 역사상 최강의 타자이자 투수로 불리는 한수혁에 기대 천천히, 하지만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한수혁 복귀 후 7시즌 동안 여섯 번의 우승, 그리고 한 번의 준우승,
이제는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최강의 야구팀은 서울 워리어스라는 걸 말이다.
지난 20년간 그런 최강팀을 운영해온,
한수혁을 대신해 워리어스의 대소사를 총괄해온 박성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수혁아, 내년 시즌까지만 하고 은퇴한다는 말 진심이냐.”
“응, 이제는 진짜 할 만큼 한 것 같아. 시원이가 크는 것도 옆에서 지켜보고 싶고. 형, 그거 알아? 얘가 나 어릴 때랑 입맛이 아주 똑같아. 진짜 신기하지 않아?”
그 말에 박성훈이 피식 웃었다.
“너 진짜 애 아빠 다 됐구나.”
“흐흐, 그러니까 형도 빨리 아기 가져.”
“안 그래도 내년에는 한번 시도해 보려고. 와이프도 이제 슬슬 애 생각이 나는 것 같더라.”
“그래? 다행이네. 가만, 우리 조카 태어나면 내가 출산 선물로 뭘 해줘야 하나……. 급한 일 생기면 타고 다니게 헬기라도 하나 사줄까? 그래, 헬기, 그거 괜찮겠다.”
“됐어, 인마. 이 좁은 나라에서 무슨 헬기를 타고 다녀.”
“난 전용기까지 샀는데?”
“흐흐, 그건 네가 못 말리는 팔불… 됐고, 일단 알았다. 네 말이 맞아. 이 세상에 누가 너보고 야구 좀 더 하라고 등 떠밀 수 있겠냐. 수고했다. 정말 고생 많았어.”
“의외네. 반대할 줄 알았는데?”
“내가? 왜? 너가 야구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왜 반대를 해. 한수혁,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넌 최고였어. 아니, 최고야. 그러니까 이제 좀 편히 살아도 돼. 넌 그럴 자격이 있어.”
“이해해줘서 고마워, 형. 아, 제일 중요한 걸 말 안 했구나. 한국 팬들에게는 조금 미안한데 은퇴 시즌은 미국에서 보낼까 해.”
“응? 시애틀에서? 왜? 아, 기록 몇 개 못 깬 거 마저 깨보려고?”
“아니, 그런 건 관심 없고 시원이 때문에.”
“시원이? 혹시 교육 때문에 그래?”
“교육은 무슨, 그냥 아빠가 누구다 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응?”
“그 김에 이상한 소리 하는 애송이도 좀 밟아줘야 할 것 같고.”
“으응?”
* * *
시애틀 매리너스 극동아시아 담당 스카우터에서 단장, 다시 사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다니엘 미첼은 그 운영 능력을 인정받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수혁이 뛴 10년간 메이저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했던 시애틀 매리너스.
하지만 그가 떠난 후, 그리고 그와 함께 팀의 전성기를 만들어냈던 베테랑들이 모두 은퇴한 후,
시애틀은 예전의 그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KBO로 떠난 후 7시즌 동안 2번의 월드시리즈 우승.
일반적인 팀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적이지만 이 팀의 황금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많이 아쉬운 결과물이었다.
특히 지난 2년 연속 챔피언십에서 천적 뉴욕 양키스에게 당한 치욕은 시애틀 선수들과 운영진, 그리고 팬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다.
분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금력에 있어서는 메이저리그 최고를 다투는 시애틀 매리너스였지만 뉴욕 양키스가 쌓아올린 찬란한 역사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같은 조건을 제시해도 선수들의 선택은 양키스였다. 거물급 FA를 놓고 펼쳐진 영입 전쟁에서 시애틀은 번번이 양키스에게 패배했다.
그런 일들이 누적되며 시애틀과 뉴욕 간의 전력 차는 조금씩 벌어졌다. 그 와중에 한수혁 이후 유일무이한 투웨이 선수라 불리는 데이빗 블레이크까지 등장하며 두 팀 간의 밸런스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지난 시즌 투수로서 평균자책점 1.61에 16승을 기록한 사이영 위너이자 타율 0.333, 홈런 62개를 기록한 MVP 데이빗 블레이크.
얼마 전 발칙하게도 한수혁에게 도발을 날렸던,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퇴물 취급했던 그 애송이의 등장이 두 팀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젠장…….”
팬들 앞에서는 내년 시즌 반드시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가져오겠다 큰소리쳤지만,
사실 자신 없었다. 선수단 구성으로 봤을 때 뉴욕 양키스는 그야말로 역대 최강의 팀이었다. 어쩌면 한수혁이 있던 시절 시애틀만큼이나.
해결할 수 없는 고민에 다니엘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던 그때,
드르륵
책상 위에 올려놓은 그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한숨을 푹 내쉰 다니엘이 전화기를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음?”
자신의 보스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그 메시지를 확인한 다니엘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이, 이게… 대체?”
길지 않은 메시지였다. 그저 한 줄에 불과한 짧은 문장이었다.
[마지막 시즌을 시애틀에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제 자리 비워놓으세요.]